이 영화는 초기 영화가 제작될 당시부터 화려한 캐스팅과 장대한 스케일로 화제가 됐던 영화다 - 마치 한국영화 무사처럼 말이다 - 일단 시대극이라면 빠지지 않고 보는 주인장이지만 이 영화는 뭔가 좀 달랐다. 일단 영화는 무협이 가미된 시대극치고는 전체적으로 굉장히 영상미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와호장룡'이 수많은 찬사를 받으며 호평받았던 이유가 심미한 정신 세계와 화려하고도 사실적인 액션 장면때문이었는데 이 영화는 그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결코 모자람이 없는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액션은 중국 영화가 지금까지 보여줬던 정통 무협 영화의 요소가 빠짐없이 들어있었으며 그 액션 하나하나가 사실적이고도 역동적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분위기있는 음향 효과 역시 시각 효과와 운치있게 어우러져 한껏 멋을 내고 있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화려하지만 그 내용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 '영정'과 그런 진시황에게 조국을 잃고 복수하려는 자객들의 열전이라고 보면 된다.
전국 7웅 중 변방인 진나라의 왕으로서 강력한 철권통치를 통해 진나라를 강국으로 성장시키고 천하통일을 목전에 두게된 영정은 전대륙에 막강한 권세를 과시한다. 1만이 넘는 황실 호위대와 진시황의 100보 안에서 항상 그를 보호하는 7인의 친위대를 거느린 진시황은 바로 자신을 노리는 자객들 중 전설적인 무예를 보유한 세 명의 자객, 은모장천(견자단 분)과 파검(양조위 분), 비설(장만옥 분)의 위협에 항상 밤잠을 설칠 정도로 좌불안석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일당 천의 무예와 검술을 보유한 그들은 호시탐탐 영정의 목을 노렸고 실제 그들의 실력은 황실 호위대 정도는 우습게 날려버릴 정도다. 진시황은 이들의 목에 현상금을 걸고 그들의 목을 친 자에게는 황제의 10보 안에서 황제를 직접 알현할 영광이 주어진다. 그러던 어느날, 지방에서 백부장으로 녹을 받고있는 한 미천한 장수 무명(이연걸 분)이 정체모를 3개의 칠기상자를 가지고 영정을 찾아오고 진나라 황궁은 한 이름 모를 장수의 출현으로 떠들썩해진다.
영화는 바로 이 '무명'이라는 장수가 3개의 칠기상자를 가지고 황궁을 찾아간 다음에 진시황 앞으로 한보한보씩 다가서면서 내용을 진행시켜 나간다. 무명이 어떻게 그 무시무시한 3명의 전설적인 자객을 처치해 이렇게 진시황의 10보 앞에까지 나아갈 수 있었는가? 하는 부분을 진시황과 무명의 독대로 처리한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화려한 영상미는 지금까지의 무협 영화라는 개념을 완전히 뒤바꿀 정도로 주인장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온 것이 사실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주인장이 눈여겨 본 것은 딱 2가지였다. 당대, 동시대 세계 최강이라고까지 칭해졌던 진나라 군대에 대한 묘사와 진시황이란 인물에 대한 영화 내 평가가 바로 그것이었다.
진의 군대는 궁병과 노병, 기병과 보병, 전차병 등 각종 세분화된 제대로 이뤄져 있어 체계적이고도 합리적인 부대 운용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 강력함으로 진은 중원 대륙을 통합하는 것은 물론, 북방의 패자, 거칠디 거친 흉노족까지 저 멀리 막북으로 쫓아내고 만리장성을 쌓아 중원과 그들 사이에 경계선을 확실하게 그었다. 혹자는 당시 진이 천하통일에 만족하지 않고 서진했다면 그런 진의 군대를 막을 정도의 나라가 없었다고 할 정도로 영정이 이끄는 진나라 군대는 최강의 위력을 과시했었다. 영화에서는 그 진의 군대가 세계 최강인 이유를 강력한 활(弓)과 쇠뇌(弩)때문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전쟁이 시작되면 노병은 노를 두 발에 걸고 드러누워 45도 각도로 들어 전방을 향하게 한 다음에 활시위를 잔뜩 당기면 다른 한명이 화살을 활에 걸어준다. 그렇게 2인 1조로 노부대가 편제를 이루고 장궁을 사용하는 궁병은 따로 존재하는 것으로 묘사했다. 영화 안에서 나오는 5천명의 노병, 궁병이 화살을 쏘는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 중의 장관이라 할 수 있다. 영화 '글레디에이터'를 본 사람들은 영화 초반부에 등장한 게르만 정벌전에서 보여준 화살 세례를 보고 멋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영웅에서 보여지는 화살 세례는 멋있다 못해 아름답다고 할 정도로 멋드러지게 표현했다.
흔히 알기로 노병, 궁병은 그다지 좋은 병종이 아니라고 생각들을 한다. 방어력도 약하고 기동성도 떨어지는 그런 부대 말이다. 하지만 집단전에서 장거리 공격력을 지닌 노, 궁병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영화 '반지의 제왕 3 : 왕의 귀환'을 본 사람들이라면 오르크와 우르크하이의 대부대가 로한 왕국의 6천 기마대를 상대로 싸울때 창병을 앞에 세우고 뒤에서 활을 계속적으로 쏘는 장면이 등장함을 기억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때는 파죽지세로 밀려드는 로한 왕국의 기마대에 의해 그들이 짓밟혔지만 그보다 앞서 파라미르가 이끄는 기마대가 오르크들에게 돌진하다가 전부 전사했던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노, 궁병의 위력은 어마어마하다.
높다란 성과 치, 강력한 활(貊弓)로 무장한 고구려군을 뚫지 못한 수, 당군이 그러했으며 신라의 활을 얻기 위해 당나라가 그렇게 안달이 났던 것도 그러한 이유 탓이다. 중세 유럽에서는 석궁 - 흔히 말하는 쇠뇌(노) - 과 장궁을 쏘아대는 보병을 두꺼운 갑옷으로 무장한 기병들이 돌파하지 못하고 무너질 정도였다. 그런 노와 궁에 대한 묘사가 이 영화에서는 대단히 사실적으로, 또 멋드러지게 잘 드러나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또 하나 주목할만한 것은 진시황에 대한 인물 평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객들은 결국에 진시황을 죽이지 않는다. 이유는 단 하나! '천하(天下)'를 위해서다.
당시 전국시대는 칠웅이라고 불리는 7개 국가들이 중원 대륙 도처에서 자웅을 겨루던 때였으며 한때 1,000만호가 넘는 인구를 자랑하던 중원은 전쟁의 폐해 덕분에 뿔뿔히 흩어지고 갈가리 찢겨졌다. 그렇게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고 천하는 피폐해진 이때, 자객들은 말한다. 대의를 위해서 그들 개개인의 사사로운 원한은 잊겠다고 말이다. 마지막까지 진시황 앞에 서서 그를 죽이지 않고 칼 손잡이로만 그를 건드린채 돌아서는 주인공 무명, 그리고 자객들이 진시황을 죽이기 위해 거짓을 꾸며 그 앞 10보까지 다가설 동안, 이 모든 것이 자신에게 다가서기 위한 거짓임을 알면서도 태연하게 자객을 상대하는 진시황. 영화는 말 그대로 영웅들이란 누구이며, 어떠한 면모를 지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진시황도 당대의 영웅이었으며 그런 진시황을 암살하려 했던 자객들 역시 당대의 영웅들이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진시황을 암살하려다가 그가 천하를 위해서는 살아있어야만 된다고 생각한 무명은 결국 돌아선다. 이는 앞서 비설과 함께 황궁으로 쳐들어와 수천의 황궁 호위대를 쳐부수고 7인의 호위대까지 격파했던 파검이 진시황의 목에 상처만 내고 돌아섰을 때와 똑같다. 파검 역시 개인적인 원한보다는 수천만의 죄없는 백성들을 위해서 하루빨리 대륙을 통일하고 안정을 가져다줄 진시황을 죽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무명은 진시황을 뒤로 한채 어전을 나왔다. 그리고 진을 강력한 제국으로 이룩시켜준 철저한 법률에 의해, 황제의 목숨을 빼앗으려했던 주인공은 5천의 황궁 호위대가 쏜 화살에 목숨을 내놓는다.
진시황은 자신을 암살하려던 자객들과 긴장이 끊이지 않은 시간을 보내며 서로간에 대한 이해와 연민을 느끼고 적이 아닌 친구로써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 역사에서도 진시황에 대한 암살 기록은 확인이 가능하다. 물론 영화에서처럼 극적인 장면은 아니었을 것이다. 정치, 사회, 역사, 권력 이 모든 것을 모두 제쳐두고 이 영화는 순수한 무(武)와 협(俠)의 세계, 진정한 영웅의 면모를 묘사하는데 집중했고, 또 성공했다. 이 영화를 통해봤을때 영화속 인물들에 대한 묘사에서처럼, 진시황이 진제국을 이룩한 당시의 시대상을 한단어로 고친다면 아마 '영웅(英雄)'이라는 단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왜 우리나라에는 이런 멋진 시대극이 등장하지 않는거지? TV 사극은 많이 발달해 있는듯 한데 이런 장대하고 스펙타클한 시대극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하루빨리 우리나라도 이런 멋진 영화 한편 만들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이만 글을 줄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