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와 고고학 - 과거와 현재의 정체성 만들기 영남문화재연구원 학술총서 2
시안 존스 지음, 이준정.한건수 옮김 / 사회평론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영국의 고고학자인 시안 존스(Siân Jones)가 자신의 박사학위논문을 토대로 저술한 것이다. 솔직히 누구인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책에 적힌 설명에 의하면 ‘사회인류학을 비롯한 인접 학문과의 학제 간 연구에 관심이 많으며, 민족지 고고학, 문화정체성과 민족성, 고고학과 현대 정체성의 생산 등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고 한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연구자가 없기에 주변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분야를 공부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더욱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암튼 저자가 쓴 서문을 간단하게 보면, 그가 박사학위논문을 쓸 때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한 것은 ‘최근의 민족성 이론에 기대어, 고고학에서 민족성을 분석하기 위한 이론적 틀을 제공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고 한다. ‘고고학에서 민족성을 분석한다고?’ 얼핏 이해가 가지 않았다. 민족성이라는 것을 그냥 우리가 흔히 언급하는 문화의 개념과 연결시켜 이해하면 되는 것인가? 암튼 우리는 민족성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지 않은가. 그래서 좀 어리둥절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뒤에 보니 저자가 논문을 쓸 때에도 역시 주변에서 “현대 고고학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또는 “왜 그 주제를 연구하려 하는가?”와 같은 질문을 받기 일쑤였고, 본인 스스로도 반신반의하며 혼란스러워하다가 거의 이 연구를 포기할 뻔 했다고 적고 있었다. 이 부분까지 읽으니 필자가 궁금해졌다. 필자가 생각하기에도 이 부분은 연구하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 고고학보다는 인류학이나 사회학과 더 연관이 깊은 주제인 것 같은데 도대체 뭘까? 하고 말이다. 일단 책을 구입한 동기도 주제가 흥미롭다고 여겨서였는데, 서문에서도 필자의 흥미를 돋우는 내용들이 많았기 때문에 본문을 읽기 전부터 다소 흥분되었다. 나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본문을 읽기 전에 필자 혼자서 민족성에 대해서 고민해봤다.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민족주의’, 우리가 흔히 ‘民族主義’, ‘nationalism’이라고 표현하는 이 단어의 의미는 ‘민족에 기반을 둔 국가의 형성을 지상목표로 하고, 이것을 창건(創建) · 유지 · 확대하려고 하는 민족의 정신 상태나 정책원리 또는 그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네이버 백과사전 검색 결과). 그런데 민족주의 혹은 민족성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 그리고 이러한 민족주의와 고고학과의 상관관계가 무엇이 있을까? 뭐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면서 책장을 넘겼는데 앞부분에 역자들이 이런 부분에 대해 개략적인 내용을 정리한 것이 있었다. 아마 저자가 쓴 부분을 번역하고 이에 대한 추가설명을 곁들인 것 같다. 암튼 이게 없었다면 책을 읽어나가는데 있어서 상당히 혼란스러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또한 역자들이 책 중간 중간에도 각주로 용어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정리한 용어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민족 정체성(ethnic identity) - 문화적 차이 그리고/또는 공통의 혈통에 대한 인식을 토대로, 타자들에 대비되는 집단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한 개인의 주관적 개념화와 관련된 양상을 일컫는다.

민족 집단(ethnic group) - 문화적 차이 그리고/또는 공통의 혈통에 대한 인식을 토대로, 상호작용하거나 공존하는 타자들과 자신들을 구별하는 그리고/또는 그들에 의해 구별되는 사람들의 집단을 말한다.

민족성(ethnicity) - 이상에서 정의된 것처럼 문화적으로 구성(construction)된 집단 정체성과 관련된 모든 사회적 · 심리적 현상을 통칭하는 것이다. 민족성 개념은 민족 집단을 정체화하는 과정에서나 민족 집단 간의 상호작용에 있어 사회적 과정과 문화적 과정이 서로 교차하는 방식에 주목한다.

필자도 읽으면서 뭔 소린지 잘은 몰랐지만, 암튼 머릿속에 대강의 개념 정도는 정리할 수 있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혹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용어에 대해서 정리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엿보였다. 필자 역시 석사학위논문을 쓰면서 이러한 용어의 정리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에 저자의 의도가 십분 이해가 갔다. 뒷부분에 나오지만 이사지브라는 학자가 민족성에 대한 사회학과 인류학 분야의 65개 연구 사례를 검토한 결과, 이 중 13개에서만 어떤 식으로든 민족성을 정의하였으며, 나머지 연구에서는 분명한 개념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88쪽). 인문과학에 있어서 연구 대상에 대한 용어 및 개념의 정리, 기본 가설의 정립 등은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너무 기본적이면서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용어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연구방법론이 적용되지 않은 때문인 것 같다. 다시 돌아와서 역사들 역시 저자의 의도에 맞춰 용어 해석에 신중을 기한 흔적이 보였다. 그리하여 ethnic group(민족 집단)은 ‘민족’, ethnicity(민족성)는 그대로 ‘민족성’, nation은 ‘국민’으로 해석하였으며, nationalism은 관행대로 ‘민족주의’로도 해석하고 ‘국민국가주의’로도 해석했음을 밝혔다. 이처럼 나름 만반의 준비를 하고 드디어 서론 첫 장을 넘겼다.

예상대로 민족주의와 관련한 고고학이 어떠한 행보를 걸어왔는지가 서술되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독일의 선사학자였던 구스타프 코신나가 언급이 되었다. 그는 그 자신이 개발한 ‘취락고고학’이라 불렸던 민족적 패러다임을 통해 게르만족의 인종적 · 문화적 우월성에 대해 주장하였다. 그의 연구는 뚜렷하게 민족주의적이고, 인종주의적이었으며 이를 통해 게르만족이 선사 · 원사시대에 폴란드, 남러시아, 코카서스 지역 등으로 확산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고고자료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다. 트리거가 ‘대부분의 고고학적 전통은 그 지향점이 민족주의적이다’라고 주장한 것처럼 말이다(20쪽).

이처럼 고고학은 민족주의와 연결되어 민족 정체성을 구성하고 영토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용되는 사례가 많았다. 19세기 덴마크에서는 민족적, 목가적 풍경을 구성하는 데 분묘나 고인돌 같은 선사기념물들이 이용되었으며, 워새와 같은 고고학자들은 독일의 침략에 맞서 민족의식을 재건하는 데 공공연히 나서기도 하였다. 폴란드 고고학자 콘라트 야슈제프스키는 독일의 게르만족 팽창론에 대항하여 슬라브 민족이 유럽 각지로 확산했음을 주장하였고, 프랑스에서는 로마 제국에 대한 갈리아인의 저항이 민족의식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주장하였다. 마사다 유적이 이스라엘 민족의식에 매우 중요한 상징적 표상이 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테고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국민이 고구려를 동경하는 것과 중국에서 필사적으로 고구려사를 자국화하려는 동북공정을 실시한 점, 박정희 대통령 시절 내부의 단합과 통합을 강조하기 위해 신라를 중요시 여기면서 경주 일대의 문화유적 조사가 활발히 진행된 것들 역시 이에 해당한다 할 수 있다. 서론에서 이런 얘기들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게 뭐야? 별거 없잖아?’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심오한(?)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먼저 저자는 과연 특정 유물복합체(혹은 유구까지 포함하여)가 어떤 민족과 일대일 대응한다는 가정이 맞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물론 대응하는 민족(혹은 부족)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안 그런 경우도 있음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고학 연구는 그렇게 진행되어 왔음을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듣고 보니 그러했다. 어떤 문화적 현상은 그 집단의 성격을 의미하는 것이지, 그 집단에 소속된 사람들의 인종적인 측면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오늘날 미국인들은 누구나 햄버거를 먹고, 콜라를 마시며, 청바지를 입고, 영어로 된 책을 읽고 힙합 음악을 즐긴다. 그런 그들이 모두 앵글로-색슨계 백인은 아니지 않는가. 어떻게 고고자료를 통해 인종적인 측면을 구분할 수 있단 말인가.

거기다가 그러한 가정과 더불어 고고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이뤄지는 유물에 대한 형식학적 분류 역시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기존의 연구를 통해 정해진 형식학적 분류체계에 따라 새로운 유적들은 상대 편년되는데, 그 과정에서 어떤 특수성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스켈레톤 그린 유적을 예로 들면서 기존에는 유물복합체에서 ‘로제트(Rosette) 브로치’가 없는 것은 기원후 25~40년 사이에 취락 성격에 변화(아마도 점유의 감소)가 있었기 때문으로 해석되었다고 했다. 이는 스켈레톤 그린 유적이 주변의 인접한 유적과 같은 유물 형식에 의해 재현되는 동일한 발전 유형을 따라야만 한다는 가정 하에 내려진 해석으로서 문제가 있다고 재삼 비판하고 있다(190쪽 결론 부분). 이와 관련해서 언급되는 것이 로마화 현상인데, 기존에는 단순히 물질문화의 변화상을 두고 로마화의 현상으로 이해하던 것이 이제는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즉, 단순히 로마 문화의 확산과 전파가 아니라, 주변 토착 세력의 ‘필요성’에 의한 적극적인 로마 문화의 수용과 변용, 그리고 각 지역마다 다른 레벨과 규모로 이뤄진 로마화에 대한 이해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는 마치 동아시아 전 역사를 통틀어 언급되는 ‘조공-책봉 관계’에 대한 하나의 이론적 틀을 제시할 수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3~4세기 무렵, 백제 영역(직접통치영역과 간접통치영역을 포함하여)으로 추정되는 각지에서 발견되는 중국제 청자의 존재를 통한 중국화(아니면 중국과 백제 사이의 조공-사여 관계) 혹은 중국 문화의 주체적이면서 적극적인 수용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생각할 때 고고학이라는 학문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바로 ‘끊임없이 발견되는 유적으로 인해 기존의 주장이 계속 변화한다.’ 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와 같은 해석은 지극히 위험하다고 할 수 있지만 당장의 이론적 틀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또 어쩔 수 없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이제 민족성에 대한 개념적 · 이론적 영역에 대해서 언급하기 시작한다. 간추리자면 특정 민족은 외부의 관찰자가 연구한 ‘객관론적’ 접근방식과 내부 소속원들에 의한 자기정의 체계의 과정을 거친 ‘주관론적’ 접근방식을 통해 그 실체가 규명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민족성에 대한 원초주의 이론과 도구주의 이론, 2가지 방법론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원초주의 이론에서는 문화적 상징의 중요성은 강조되지만, 문화와 민족성 간의 관계는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 그들은 어떤 문화의 특정 측면이 지속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단순히 민족 정체성의 심리적 중요성 때문이라고 설명할 뿐이다. 그와 달리 도구주의 이론은 문화와 민족성 간의 차이에 더 중점을 둔다. 그러나 여기에서 문화와 민족성 간의 일대일 대응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민족성의 조직적 측면만 이해한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는 집단의 변화하는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조작적으로 이용되는 부수적이고, 자의적인 상징들로 전락시켜 버렸다. 이러한 장단점 때문에 이 둘을 통합할만한 이론적 틀이 없을까? 에 대한 논의가 있어 왔으며 저자는 부르디외의 실천이론을 거론하고 있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것이 아비투스 개념인데, 이는 필자가 이전에 읽은『인류학과 고고학』에서도 간단히 언급되었던 내용이기도 하였다(그래서 이해하기가 조금 수월했다). 이 부분은 여러 번 읽어봐도 필자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인데 필자가 나름 이해한 부분만 정리하자면, 저자는 대안적인 민족성 이론에 대해 ‘민족성과 문화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있다. 민족성의 구성은 실천의 객관적인 공통성(사회의 관습이나 습득된 지식 등등), 즉 아비투스를 형성하고 또한 아비투스에 의해 형성되는 사회적 행위주체의 공유된 잠재의식적 성향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처럼 공유되는 아비투스에 의해 재현되는 기존의 문화적 실재에 민족성이 각인되는 정도는 매우 가변적이고, 주민 집단 간의 상호작용과 권력관계의 특성에 의해 발생되는 문화적 변형에 의존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변형은 일시적일 수도 있지만, 끊임없이 재생산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민족성은 유사성과 상이성에 대한 이해 속에서 정의되기에 이르는 것이다. 즉, 쉽게 얘기하자면 민족성은 한쪽의 입장에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아비투스라고 하는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이해해야만 한다는 개념인 것 같다(이 부분은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인데 이 정도밖에 이해를 못 해서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

또한 저자는 책 전반에서 민족성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가변적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즉, 시간이 흐르면 민족성도 바뀔 수 있고, 당연히 고고학적 물질자료 상에서도 이것이 반영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고자료 상에 확인되는 민족성 역시 변화되는 것이라고 봐야한다고 역설한다. 하지만 기존에는 그렇게 인식되지 않았기 때문에 고고자료의 해석에 있어 문제가 있었다고 보고 있다. 예를 들면, 원삼국시대 마한과 백제의 구분이 가능한지가 여기에 해당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현재 마한(을 비롯한 삼한 전체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50여 개국에 대한 뚜렷한 역사, 지역적 경계, 문화적 양상(을 나타내주는 확실한 표지유물이나 유물복합체 등등)은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이전 시기인 청동기시대와 이후의 백제시기에 속하지 않은 몇몇 특정 유물과 유구가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마한과 백제를 시기적으로, 공간적으로, 민족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가능할까? 단순히 토기의 형식 분류와 묘제의 지역적 분포를 설정하는 것만으로도? 앞서 로마화 현상에 대해서도 언급되었지만, 민족성과 문화의 상관관계를 이해하는데 전통고고학적인 입장에서 접근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저자는 ‘민족성은 고고학 연구의 타당한 주제가 될 수 없다고 노골적으로 거부하는 입장과, 문화를 자의적이고 이차적인 역할로 한정시키는 입장에서 민족성을 분석하는 기능주의적 접근방식 양자 모두에 대한 대안적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 것 같긴 하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는 다소 추상적인 ‘민족성’이라는 테마를 잡고 그에 맞춰 기존 연구현황을 재구성(혹은 재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결론 부분에서 ‘고고학자들이 과거에 대한 특정한 재현이 특정한 정체성을 구성하는 데 기여하는 방식과, 타자에 대한 특정한 재현의 지배가 집단 내부와 집단 간의 권력 관계에 어떻게 깊숙이 관련되는지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고 적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고고학자들(또는 다른 사회과학자들)이 사회와 그 이데올로기적 구성의 외부에서 특권적인 관점을 갖고 있다고 가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고고학에서 사용되는 분류와 해석 양식이 집단 간의 권력 관계를 형성하는 데 관여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책임을 질 필요도 있다. 이는 현대 세계의 정치적 정당화의 속성뿐만 아니라 실천적인 관계와 전략의 토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라고 마무리하고 있다.

문득 인류학과 고고학이 식민주의의 기반 아래 생겨난 학문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앞서 민족주의 결합한 고고학의 사례에 대해 언급된 것처럼 과거와 마찬가지로 현재에도 이러한 현상은 쉽게 확인된다. 그리고 그것이 효과를 거두는 국가가 있기에 이러한 현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고고학은 올바른 민족 정체성 확립에 기여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차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면 올바른 영향을 주는 것이 긍정적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상호작용과 분석 양식에 대한 꾸준한 연구와 이론적 틀의 확립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필자가 최근에 읽었던 일련의 책들(『환경고고학』,『인류학과 고고학』)과 중첩되는 내용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 특히 고고학사(혹은 인류학사)에 대한 부분, 사상적인 부분을 언급한 것들은 분명 어려운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집중적으로 관련 내용들을 읽어와서 그런지 생각보다 쉽게 읽혔다. 사실 필자가 이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이 책을 읽었던 후배가 너무 어려워서 책장 넘기기가 쉽지 않다면서 앓는 소리를 했는데, 생각보다는 쉽게 읽혔고 분량도 260쪽 정도여서 크게 부담이 가지도 않았다. 하지만 1번 읽는 것만으로는 저자의 생각과 의도를 100% 다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앞의 책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1~2번은 더 읽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박사학위논문을 정리하여 책으로 엮은 것이라서 그런지 서술방식이 논문을 읽는 듯 한 느낌을 주는 것이 독특했다. 국내에도 박사학위논문을 책으로 엮은 것이 여럿 있는데, 모두 논문의 형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다소 딱딱하다는 느낌을 많이 주곤 한다(뭐 고고학 서적이면 어떤 책이든지 대부분은 딱딱한 느낌을 주긴 하다만...). 그런데 외국서적 중에는 그런 책들을 많이 못 봐서 그런지 조금 신선하기는 했다. 맨 앞에서 용어 정리를 하고 본론으로 넘어가는 것이나, 어떤 이론을 소개하고 장단점을 분석해서 소개하는 것이나 뭐 전반적인 것들이 다 그러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특정 주제에 대해 자세하게 소개하는 부분도 많이 있었다. 만약 이 책이 단순히 개설서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었다면 아마 이처럼 민족주의라는 부분에 대해서 심도 있게 접근하지 못 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한번 해 본다. 암튼 그런 부분이 필자에게는 오히려 좋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이런 주제들로, 이렇게 서술한 내용이 박사학위논문으로서 재구성된다는 것 자체가 많이 인상에 남았다. 이론적인 면, 사상적인 면에서 한국 고고학계는 아직 발달하지 못 했기 때문에도 그렇겠지만, 이런 주제를 갖고 이런 식으로 글을 풀어나가는 것 자체가 좀 쇼킹하기도 하다(이는 역설적으로 그만큼 이 책의 내용과 주제가 한국 고고학계의 현 실상과 크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민족주의와 관련된 사항은 그간 한국 사학계에서 많은 논의가 되어왔던 부분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사관이 이러한 민족주의와 많이 결부되었는데,『조선상고사』에서 보여준 ‘아(我)’와 ‘비아(非我)’의 구분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한국 상고시대의 거대한 영토를 증명하려는 일부 역사학계(혹은 그를 추종하는 아마추어 역사단체들)의 움직임도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이 책에서 저자가 언급하는 것이 이와 직접적인 상관관계는 적다하더라도 민족주의 혹은 민족성이라는 것이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와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고학계에서는 이런 민족성에 대한 논의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던 찰나에 이 책을 읽게 되어 필자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 부분은 고고학도라면 누구나 생각해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