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 상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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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간만에 본 재밌는 책을 하나 소개하려 한다. 오랜만에 고속버스를 탈 일이 생겼는데 시간때울만한 것이 없어 학교 도서관에서 급하게 빌린 책이지만 읽고 난 지금은 굉장히 잘 골랐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책 제목은『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세계』(상)이며 그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의 최근작이었다. 이 책은 서점을 오가며 몇 번 표지를 보긴 했지만 확 와 닿지 않았었는데 마땅히 빌릴 책이 없어서 급하게 집어 들고 나오게 됐다. 시오노 나나미의 책은『로마인 이야기』시리즈(다 읽지는 못 했다)와『신의 대리인』(읽으면서 정말 대단한 책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밖에 읽어보지 못 했는데 이 책을 다 읽은 지금은 그녀의 나머지 작품들도 다 읽어보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 생겨났다. 그만큼 재밌는 책이라는 소리가 될 수 있으려나? 필자가 너무 주절주절 말이 많다고 여길 것 같아서 그만 본론으로 넘어가도록 하겠다.

전술한 바와 같이 필자가 처음 겉표지만 놓고 봤을 때는 단순히 제목 그대로 로마가 멸망한 이후 지중해세계, 그러니까 유럽이 어떻게 변했는지 혹은 고대 로마와 중세 유럽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서술한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머리말(?)에서부터 저자는 흥미로운 얘기를 꺼내고 있었다. 바로 ‘海賊’말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일본에는 해적이라는 말 밖에 없지만(한국이나 중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일본 밖에서는 두 종류의 해적이 있다고 한다. ‘Pirate(피라타)’와 ‘Corsair(코르사르)’가 그것인데 쉽게 얘기해서 우리가 흔히 아는 해적은 전자로서 비공인 해적이고, 후자는 공인된(아니, 묵인되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해적이라고 한다. 당연히 동양에서 해적이 공인되었을 리 만무하다. 물론 일본 정부에서 왜구들의 존재를 알면서도 어느 정도 묵인해준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고 공인한 것은 아니었다. 이 후자에 속하는 해적으로 유명한 사람으로 영국 엘리자베스 1세 휘하의 프랜시스 드레이크 경을 꼽을 수 있겠다. 암튼 그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을 언급하고 있어서 흥미로웠다.

더불어 그녀는 두 단어가 모두 라틴어에서 나왔지만 분명히 차이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즉, 전자가 고대 로마시절부터 내려온 단어라면 후자는 분명히 로마 멸망 이후 중세 라틴어를 어원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인즉슨 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지중해 세계에서 활개치고 다니던 해적은 (어느 누군가로부터) 공인된 존재였으며, 그 이전에는 없었던 존재라는 소리가 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로마가 멸망하고 어째서 지중해에 해적이 넘쳐나게 되었단 말인가? 불과 머리말 3페이지를 읽었을 뿐인데도 이 책이 내뿜는 흡입력이란 결코 작지 않았다. 그러면서 저자는 자극적인 문구를 끝으로 본론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해두고 싶다. 검은 바탕에 하얀 색으로 해골을 물들인 깃발을 돛대 위에 높이 내걸고 접근하는 해적선은 카리브 해의 해적밖에 없었다는 것, 그것도 사실은 소설이나 영화 속의 이야기에 불과했다는 것을. -

흠. 그렇지. 아무래도 우리는 소설작품(『보물섬』)이나 만화(『원피스』), 영화(‘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해적하면 검은 바탕에 하얀 색 해골이 그려져 있는 깃발을 해적의 트레이드마크인 양 여겨 왔다. 덥수룩한 수염을 기르고 럼주를 마시며 약탈로 얻은 금화를 나누면서 술집에서 크게 웃고 떠드는 해적.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해적은 이러한 이미지였다. 하지만 그처럼 꾸미고 다니는 해적은 오히려 적다고 할 만큼 이는 특정 이미지가 크게 부각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마치 한국영화 중에 조폭을 다룬 영화들(넘버3, 조폭마누라, 짝패, 친구 등등)이 대거 흥행을 거두고 널리 알려지면서 조폭 생활이 미화된 면이 없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어떡하다가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지만 암튼 저자는 그러한 이미지(일반상식이 고착화된 것 마냥)들이 아주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당당히 깃발을 내꽂고 사나이의 로망처럼 바다를 누비고 다닌 것이 아니라 적의 취약한 부분을 골라 몰래 숨어들어가거나 거짓정보를 흘려 적을 혼란시키고 갖은 범죄(살인, 약탈, 강도, 강간 등)를 저지르고 다녔다고 말이다. 그렇다. 이제 저자는 본론에서 2가지를 말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첫째, 로마 멸망 이후 지중해세계는 해적이 지배했으며, 그 해적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낭만적인(?) 해적과 아주 달랐다. 오히려 당시 해적은 하나의 생업수단으로서 비즈니스로 여겨질 만큼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즉, 암흑시대라고 부르던 중세시대 지중해는 그야말로 무법천지였으며 그 와중에 새롭게 등장한 경제구조가 해적을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

둘째, 해적의 피해를 가장 심하게 입은 것은 이탈리아나 시칠리아 섬, 프랑스 남부 연안이 아니라 그 지역에 살고 있던 이름 없는 수만~수십만의 기독교인들이었다. 하지만 그간 이런 얘기에 주목하는 관련 연구자는 별로 없었다. 프랑스 남부가 위태로웠다, 이탈리아 전역이 피해를 입었다, 제노바 상선이 약탈당했다...등의 서술은 나왔었지만 그 당시 살았던 사람들 한명 한명에 대해 서술한 연구 성과는 없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저자는 서로마 제국이 오도아케르에게 로마를 내주고 난 이후의 상황부터 소개하고 있었다. 과거 제국이 건재했을 때 지중해는 그들의 내해였지만 북아프리카와 스페인 등을 상실하면서부터 지중해란 위험한 경계가 되고 말았다. 어디서 갑자기 해적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그런 경계 말이다. 저자는 엄밀히 말해 지중해 동부뿐만 아니라 지중해 서부(이탈리아나 시칠리아 섬 등 지중해 한복판에 위치한 곳들) 역시 당시 비잔틴제국의 정치적 영향력이 닿는 지역이었지만 비잔틴제국은 그곳을 지킬 엄두도, 의지도 별로 없었다고 한다(그러면서도 세금만은 꼬박꼬박 받아갔다. 얼마나 얄미웠을까). 즉, 지중해 서부가 일종의 정치적 공백지대로 남았던 것 같다. 마치 6~7세기 요서 지역에 수-당의 군현(비록 아주 작지만)이 있었지만 일종의 완충지대로 작용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지중해 서부를 장악한 것은 사라센인들이었다. 당시 신흥종교인 이슬람교는 무서운 속도로 그 세를 확장했는데 기독교 세계에서는 아랍인과 아랍인에게 정복당한 북아프리카의 베르베르인, 무어인들을 모두 사라센인으로 통칭했었다. 그리고 그 ‘사라센인=이슬람교도’는 ‘해적’과도 동의어가 되어버렸다. 여기서 조금 의문이 들긴 했다. 페니키아 식민지 시절과 카르타고 시절만 해도 북아프리카는 지중해 교역의 중심지이자 번영을 구가했던 동네였다. 또한 제국이 번영했을 당시 북아프리카가 제국의 주요 곡창지대였다는 사실도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로마가 멸망한 이후에는 그곳이 해적이 판치는 동네가 됐단 말인가. 저자는 말한다. 경제가 번영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안정과 평화가 필요하다고. 로마의 정치적 영향력이 지중해 바다 속으로 흩어지면서 그 지방의 생업경제는 파괴됐다. 농경민이 안정적으로 생업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오래도록 발전했던 농업기술은 점점 퇴색했을 것이다. 농경민이 북아프리카를 떠난 후에 그 곳을 차지한 것은 原住民이었던 베르베르인, 무어인 등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농경과는 거리가 먼 사막민족들이었으니 이제 그들이 선택할 생업활동은 많지 않았다. 바다로 나가 어업을 하거나 아니면 해적질을 하는 것뿐이었다.

분명 이들은 해양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던 민족들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바다로 나가 해적질을 하게 됐는데 얼마 안 있어 이 해적질이 비즈니스로 굳어 버렸다. 더불어 이슬람교는 이교도를 죽여도 별말 안 하는 교리를 갖고 있어 이러한 비즈니스를 더욱 부채질하였다. 필자가 놀란 것은 로마가 패권을 잃어버리자마자 지중해 서부에서 그 공백을 메꿀만한 정치체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세계사 교과서 혹은 시중에서 파는 책을 통해서 유럽역사(혹은 서양사)를 배운다. 그리고 로마 멸망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서로마는 오도아케르 이후 게르만족들의 각축장이 되어버림’, ‘동로마는 이후 비잔틴제국이라 불리며 기독교 세계의 방파제 역할을 하며 번영함’ 뭐 이런 정도의 지식을 습득하게 된다. 하지만 거기에 해적에 대한 내용은 없으며, 북아프리카에 대한 언급도 없다. 프랑크왕국이 세워지기 전에 무수히 스쳐가는 게르만족의 왕국과 그 이후의 왕국 사이에 이탈리아 도시국가에 대한 언급도 전혀 없다. 다만 이슬람교가 확산된 이후 기독교와 대립하게 되면 잠깐씩 언급하는 정도였다. 즉,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은 필자가 거의 처음 접하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라는 소리가 된다. 그래서 더 재밌었다. 모르는 것을 알아간다는 것만큼 흥미로운 것이 또 있을까.

해적에 대한 내용은 앵거스 컨스텀의『해적의 역사: The History of Pirates』라는 책에도 잘 나와 있었다(지금 찾아보니『단숨에 읽는 해적의 역사』라는 책도 작년에 나왔단다). 하지만 거기에 사라센 해적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었다. 로마 멸망 이후에 북유럽 해적을 잠깐 언급하고 바로 그 유명한 바르바리 해적에 대한 내용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물론 몰타기사단에 대한 내용을 비롯해 중세시대 해적을 언급하면서 간략하게 소개는 됐지만, 이 책에서처럼 거시적인 안목에서 사라센 해적을 다루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놀라울 따름이었다. 정말 구멍이 뻥 뚫린 역사의 한 맥락을 찾은 듯 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라센인들은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배를 타고 정박하는 곳마다 닥치는 대로 쳐부수고 뺏고 불사르고 돌아왔다. 가장 좋은 표적감은 당시 모든 기독교적 열망이 속세의 물건으로 표현되어 있던 수도원과 교회 등이었다. 이보다 조금 늦게 노르만족이 유럽 전역을 분탕질할 때(뭐 얼마 후 이슬람세력과 만나기도 하지만) 그들 역시 유럽 각지의 수도원과 교회 등을 약탈했다. 그 곳에는 신에게 어떻게 하면 잘 보일까~고민하는 사람들이 갖다 바친 무수히 많은 재화들이 산처럼 쌓여있었기 때문이다. 사라센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이런 곳을 약탈해 배에다 싣고 쓸 만한 남자(노예로 팔기 위해), 여자(가사노예 겸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들도 납치해갔다. 물론 그들이 수도원이나 교회만 약탈한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지만 배가 정박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나 들이닥쳤다. 그렇다고 ‘나 해적이요~’라고 하지도 않았다. 정박지의 동맹국 깃발을 달거나 신원이 불분명한 상태로 접근해 불시에 해적질을 벌이는 것이었다. 그런 북아프리카의 해적집단을 유럽 국가들은 어떻게 할 도리도 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필자는 당시 해적들의 위세가 대단했음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동양에서도 해양세력이 패권을 잡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하지만 정치적 의지를 지닌 해양세력과 단순한 해적(물론 경제적인 목적이 강했으며, 일부 종교적 · 정치적 색채도 띠긴 했지만)들은 분명 차이가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倭寇라고 불리던 일본 해적집단이었다. 그들은 전국시대 내전의 소산물로서 한마디로 정규군이었다. 하지만 먹고 살 길을 찾기 위해 고려나 중국 해안가를 분탕질했고 몇 차례 격퇴당하기도 하였지만 조선 초기까지 난리도 아니었다. 그들은 단순히 해양세력이라고 하지 않는다. 해적이라고 하지. 그렇게 봤을 때 지중해에서 난리치던 그들도 단순히 해적이라고 해야 옳을까? 책을 더 읽다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들이 비록 해적질을 하고 살아갔지만 엄연히 이슬람교라는 단일신교의 테두리 안에 포함된 자들이었다. 그들은 앞서 언급했던 ‘코르사르’였기 때문에(왜구는 어느 정도 묵인은 했어도 일본 정부가 공인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코르사르는 정경 유착된 경제 집단이었다) 알라의 축복을 받는 신의 자식들이었고, 기독교 세계에 맞서 최전방에서 활약하는 전사들이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이슬람교와 관련된 테러리스트 집단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러한 집단의 규모가 거대했다는 점에서 분명 양자는 차이가 있겠다.

그런 사라센인들은 이후 ‘성전(지하드)’을 벌인다. 간단하다. 기독교세계를 정벌하자는 것이다. 이미 북아프리카에서 배를 타고 건너가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한 일파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서지 못 했지만, 유럽에 정착했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다. 또한 동쪽에서는 비잔틴제국이 연신 잽을 맞으며 카운터펀치가 오길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당시 기독교세계는 동~서 어디나 모두 이슬람 세력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고 북아프리카의 이슬람세력 역시 지중해를 건너 北進을 시도했다. 해적들이라고 표현된 그들은 비록 잘 훈련된 정규군은 아니었지만 끊임없이 유럽 남부를 뒤흔들어 힘을 빼놓으면서 야금야금 자신들의 발판을 넓혀가고 있었다. 당 태종이 고구려를 한번 크게 쳐들어왔다가 안시성 앞에서 혼쭐이 나게 도망간 다음 고구려 변경에서 야금야금 국지전으로 괴롭혔던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비록 영토를 정복하지는 못 했지만 잽을 계속 맞고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는 곧 상대편 선수를 무너뜨릴만한 지경까지 이르게 하니 말이다.

그 대망의 격전지는 바로 시칠리아 섬. 사르데냐와 코르시카 섬도 있지만 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 사이에 딱 걸쳐있는 시칠리아 섬이 두 세력(기독교와 이슬람교) 간의 격전지가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이전에 아테네에서도 그렇게 눈독을 들이던 동네가 이 곳 아닌가. 그리고 결과는 이슬람세력의 승리였다. 그들은 단번에 정복하지는 못 했지만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가 결국 비잔틴제국의 영토였던 시칠리아 섬을 알라의 보호 아래 넣는데 성공했다. 여기에서 독특한 현상이 벌어진다. 그렇게 두 세력이 대립하고 싸우는 와중에도 양자의 교역은 꾸준히 진행되었으며, 시칠리아 섬에서는 종교의 자유까지 허용됐다. 세금을 내고 안 내고의 차이가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이슬람교는 기독교인에 대해 종교의 자유를 허용했다. 물론 해적들은 여전히 기독교인을 잡아다가 노예로 만들었고 말이다. 모든 기독교인이 이슬람교로 개종하면 곤란하다. 정기적으로 제대로 된 세금이 들어오지 않으니 말이다. 양자의 이해관계 속에서 시칠리아 섬은 양 문화가 혼합된 독특한 문화가 싹튼다. 마치 낙랑 문화가 중국과 고구려 사이에서 독특하게 꽃피웠던 것처럼 말이다.

이 과정에서 눈에 띄는 것은 이탈리아 해양 도시국가들이 처음에는 그야말로 미약한 존재였다는 점이다. 또한 초창기 해양 도시국가들은 가에타, 아말피, 피사 등등이었는데 이는 우리가 흔히 아는 국가들과 다르다. 세계사 관련 서적에서 흔히 언급되는 것은 제노바, 베네치아, 피렌체 등이다. 물론 책의 뒷부분에 나오긴 한다. 이러한 초창기 해양 도시국가들은 종교적 압박에도 불구하고(교황이 바로 코앞에서 벌어지는 이교도와의 교류를 묵인하겠는가) 북아프리카의 사라센인들과 교역함으로써 부를 챙겼다. 하지만 힘은 없었다. 그래서 항상 뺏겼다. 물론 몇 번 대들기도 했지만 알다시피 어설프게 대들었다가 진압당하면 그 다음에는 더욱더 가혹한 탄압만 있을 뿐이다. 저자는 그녀의 다른 저서『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언급하면서 당시 이탈리아 해양 도시국가들에 대해 잘 알려면 이 책을 보라고 권하고 있다(조만간 읽어볼 참이다). 그러면서 여기에도 간략하게 그 내용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탈리아 해양 도시국가들이 이슬람 해적들과 싸우면서 어떻게 성장했는지 그 과정이 대단히 흥미진진했다. 사라센해적은 지중해를 주름잡으며 유럽인들에게 공포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지만 이탈리아 해양 도시국가들은 결국 이집트인들이 침략자 힉소스인에게 배워 그들을 다시 몰아냈던 것처럼 사라센해적과의 꾸준한 교류 속에서 그들을 이겨낼 힘을 길러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흔히 아는 르네상스 시대 강력한 해양도시국가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그렇게 강력해진 이탈리아 해양 도시국가들은 서로 연합하여(때론 프랑스 같은 열강도 협력했다) 지중해 서부를 장악하기 시작했고, 저자는 이를 두고 ‘십자군 시대 이전의 십자군’이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유럽 남부 혹은 이탈리아 곳곳에 퍼져있던 사라센해적의 근거지는 모두 사라지고 심지어 시칠리아 섬마저도 북에서 내려온 노르만족에게 빼앗겼다(물론 그 이후에도 시칠리아 섬만의 독특한 문화적 양상은 그대로 유지되었지만...물론 보수적인 프랑스, 스페인 왕가가 지배하기 전까지만). 지중해가 다시 기독교 세계의 품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후 레판토 해전에서 완전히 이슬람세력이 깨져나간 것은 뭐 많이들 알고 있으니 생략하자.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해적들은 여전히 활동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깨부수고 없애버려도 근거지를 완전히 정복하지 않는 이상 그 효과는 그리 크지 않다(拔本塞源이라는 말을 기억하자). 고려 말 박위와 조선 초 이종무가 쓰시마 섬을 1번씩 정벌해 본보기를 보여줬어도 왜구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마침 유럽에서는 ‘십자군’이 유행처럼 번지며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하지만 애초의 목표가 변질되면서 허울뿐인 십자군 원정도 끝을 맺는다. 물론 여기에서도 이탈리아 해양 도시국가(저자는 이들을 ‘경제동물’이라고까지 칭하고 있다)들은 종교와 국경의 벽을 허물고(?) 이런저런 경제행위를 일삼는다. 소년 십자군이 단체로 노예로 팔린 일, 라틴제국이 성립된 일 등을 꼽을 수 있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라센해적들이 활동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즈음 되면 이탈리아 해양도시국가라고 하는 강력한 해군력을 지닌 존재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해적들은 그들의 비즈니스 스타일을 바꾼다. 이제는 대규모 혹은 소규모로 여기저기 난타전을 벌이며 약탈하고 빼앗고 납치하지 않는다. 그들은 노예를 중점적으로 획득하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유럽인들이 돈을 써서 노예들을 다시 되찾아간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는 곧 목숨 걸고 성을 공격하고 힘들게 마을을 불태우고 약탈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말이 된다. 이제는 사람만 왕창 잡아오면 걔네들이 언젠가는 돈으로 바뀐다는 소리가 된다. 고구려 초기 한나라 변경을 미친 듯이 공격해서 그 주민들을 잡아온 것을 떠올려보자. 한나라는 이를 막대한 돈을 주고 다시 바꿔오기 시작했다. 고구려인들이 그 짭짤한 돈벌이를 언제까지 계속했는지 상기해보자. 투자 대비 이득이 훨씬 큰 경제활동을 선호하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본능일 것이다.

여기에서 당시 이슬람세력과 기독교세력의 경제구조가 언급된다. 이슬람세력은 당시 유럽에서 목재부터 선박에 필요한 모든 도구, 액세서리(귀중품) 등을 모두 수입한다. 수출하는 건 별로 없으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세력은 이슬람세력과 끊임없이 교류하길 원한다. 바로 사하라사막에서 올라오는 막대한 양의 황금 덕분이다. 대항해시대가 찾아오고 유럽 열강이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설치하면서 황금에 목말라한 것도 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암튼 유럽 애들이 가져갔던 황금은 노예를 되사기 위해 다시 이슬람 쪽으로 돌아온다. 이 대목을 읽고 있자니 마치 아편을 팔아 중국에 넘어갔던 은을 다시 뺏어갔던 유럽 열강이 떠올랐다. 청나라에서 그렇게 아편을 반대하고 탄압했던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세력은 노예를 되사가는 것을 끊이지 않는다. 완전 중세판 ‘쉰들러 리스트’다.

이제는 이 책의 백미인 ‘구출수도회’와 ‘구출기사단’에 대한 내용을 언급하자. 앞서 필자가 언급한 것처럼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2가지 중 나머지 한 가지가 바로 이 것이다. 앞에서 나왔듯이 해적에게 끌려간 사람들은 대부분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었다. 한 만 명당 1명 정도가 좀 유명한 사람이랄까? 암튼 그들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어느 세계 역사나 마찬가지겠지만. 하지만 그러한 사람들을 주목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는 국경을 초월한 자원봉사집단(?)인 구출수도회와 구출기사단이 조직되었다. 그들은 십자군 전쟁처럼 무력으로, 성전을 일으켜 예루살렘을 되찾자는 취지에서 조직되지 않았다. 순전히 노예로 끌려간 사람을 돈을 주고 다시 구해오는 일을 했을 뿐이다. 이러한 조직의 활동은 곧 이슬람세력의 못된(?) 경제활동을 더욱 부채질하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떤 학자는 그들이 구해온 사람이 10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물론 정확한 통계수치는 모르지만. 하지만 구출기사단의 경우 무려 560여년에 가까운 시기동안 평균 2년에 1번꼴로 꾸준히 사람들을 구하려 북아프리카로 향했으며,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거나 돈을 뺏겨 그냥 돌아오는 기사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꾸준히 자신의 할 일을 계속 해나갔다. 이런 내용도 이 책에서 처음 보는 것이었다. 당시 십자군 원정을 떠날 당시에도 북아프리카의 ‘목욕장(고대 로마시대 대중목욕탕이 황폐화되자 이슬람세력은 그곳에 노예들을 기거시켰다)’에는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수많은 기독교도 노예가 있었지만 십자군은 이를 몰랐다. 아니 모른 척 했다고 해야 하나? 그들은 大義를 위해 小를 희생하기로 마음먹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역사는 목욕장과 노예들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필자는 오히려 십자군의 진정한 의미는 이들 2개의 조직이 이뤄낸 것이 아닌가 싶었다.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가기 위해 온갖 고생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숭고한 정신으로 박애와 평화를 실현했던 이 2개의 조직이 오히려 역사적으로 큰 조명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얘기한다. 지중해에서 해적이 언제쯤 사라졌는지 아느냐고. 혹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때가 1492년인 것을 아는가? 아니면 마젤란이 마젤란 해협을 겨우겨우 통과한 것이 1520년이 것은? 혹은 아메리카 13개 식민주가 영국에게 독립을 선언한 것이 1776년이라는 것은??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상당히 근대의 사건들이라고 배우는 것들이다. 그럼 이번에 다른 것을 한번 살펴보자. 1571년은 레판토 해전에 종군했다가 에스파냐로 돌아올 때 세르반테스가 해적에게 납치된 해이다. 또한 1779년은 구출기사단이 마지막 구출행을 다녀온 해이기도 하다(정말! 18세기 말까지!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1797년은 중세 지중해를 주름잡던 베네치아 공화국이 멸망한 해이며, 1830년 프랑스가 알제리를 침공하여 식민지를 만들면서 비로소 지중해에서 해적이 사라졌다. 참고로 서로마가 멸망한 시기는 476년이며 이슬람 세력이 오늘날의 리비아(북아프리카)를 이슬람화한 시기는 644년이다(그로부터 54년 뒤 이슬람세력은 카르타고를 정복하면서 북아프리카 전역을 지배하게 된다). 사라센 해적이 얼마나 오랜 시간 활약했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간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것에 놀랐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치 김성호의『중국진출백제인의 해상활동 천오백년』을 읽었을 때의 전율이 느껴졌다. 전혀 몰랐던 역사의 한 귀퉁이를 알아버린 느낌이랄까.

마지막으로 ‘사라센의 탑’이라고 불리는 이탈리아인들이 세운 사라센 해적 대비용 감시탑의 도판들을 죽 보면서 책장을 덮었다. 지금은 대부분 절벽이나 높은 지대에 축조되어 멋진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예전에는 얼마나 이것 하나에 목숨을 걸어야 했을까? 라는 생각을 하니 씁쓸했다. 한편으로는 이런 도판을 일일이 책에 실어서(물론 본인이 안 찍고 어디서 제공받았을 수도 있지만) 당시의 상황을 잘 소개하고 있어 그 점도 좋았다. 이탈리아로 무작정 날아가 그 지역의 어떠한 공교육의 도움도 없이 그 지역의 역사를 이렇게 깊이 통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저자를 무한정 존경스럽게 만드는 것 같다. 그리고 이 도판에서 그러한 저자의 의지가 엿보이는 것 같아 또 한 번 대단하다고 느낀다.

아직 ‘하’권을 읽지 않았지만 벌써 필자의 가슴은 두근거린다. 또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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