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근의 고고학 박물관 - 선사시대를 이해하는 42가지 열쇠
박정근 지음 / 다른세상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부제는 ‘선사시대를 이해하는 42가지 열쇠’인데 부제만 본다면 이 책의 내용이 어떠한 것들로 이뤄졌는지 쉽게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쓴 논문이나 저서를 봐도 선사고고학 전공자임을 알 수 있는데(머리말에 ‘고고학의 연구대상은 주로 선사시대의 유물 · 유적들이다.’라고 쓴 것만 봐도 대강 저자의 전공을 짐작할 수 있겠다), 실제 이 책에서도 구석기~청동기시대까지 다루고 있었다.

우선 이 책에 대한 총평(總評)을 하자면 비전공자를 위해 쉽게 썼기 때문에 읽는데 부담이 없으며, 중간 중간 저자가 상상력의 나래를 펼쳐 논지를 전개했기 때문에 머릿속으로 그 당시의 모습을 그려보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아마 이 2가지가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만큼 너무 쉽기 때문에 관련 전공자들이 읽기에는 조금 엉성한 책이라고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선사고고학에 대한 내용을 한번 정리하고 그에 대해 가볍게 되돌아본다는 차원에서 책을 읽는다면 그 역시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각 장마다 앞에 2~3쪽에 달하는 ‘시대개관’이라는 챕터가 있는데 어느 정도 전문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시험 공부할 때 내용 정리한다는 개념으로 읽어두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럼 구석기시대부터 가볍게 살펴보도록 하자. 목차를 죽 보면 정말 저자가 쉬운 주제를 간추려서 글을 썼구나~하는 생각을 할 수가 있다. 구석기시대는 인류가 어떻게 직립보행을 하게 됐는지부터 어떤 연모를 썼고, 불은 어떻게 쓰기 시작했으며, 인류가 어떤 식으로 변화했는지 등을 가볍게 언급하면서 시작하고 있다. 그 다음에 구석기인들도 옷을 해 입었고, 예술이 뭔지 알았으며 장례풍습이 있었고, 흑요석이라고 하는 돌을 교역했다는 등의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이야기를 하고 마지막으로 석장리와 전곡리 유적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필자는 처음 책을 딱 펼쳐보고 세부 주제들이 조금 중구난방으로 나열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인류의 변화, 도구 및 불의 사용, 정신세계, 생업경제, 관련 유적 등으로 소제목을 달아서 다시 보기 좋게 내용을 세분했으면 더 좋았지 않았나 싶었다. 

맨 처음 나오는 내용은 ‘네 발보다는 두 발이 낫다’인데 이것은 아주 간단하면서도 기본적인 내용이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넘어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는 모두 두 발로 걷거나 뛰기 때문에 네 발로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서커스나 동물원의 동물 보듯이 쳐다볼 것이다(실제로 아직도 네 발로 기어 다니는 한 가족이 외국에 있다는 신문기사를 몇 년 전에 봤던 기억이 납니다. 해외토픽이었죠). 하지만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다. 초창기 인류는 네 발로 뛰기도 했으며, 필요하면 두 발로 움직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허리 디스크의 고통, 무좀의 고통, 관절염의 고통 등에도 불구하고 두 발로 걷는 것을 택했는데 그 순간이 언제이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가 늘 학계의 고민이었다. 책에서는 ‘연모사용 가설’, ‘사냥 가설’, ‘음식분배 가설’, ‘먹거리 유인 가설’, ‘로드만과 메킨리의 가설’ 등을 소개하면서 저자 자신은 ‘연모를 이용한 방어와 먹거리 획득’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어느 것이 맞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여러 학설을 소개하고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면서 이 부분은 더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말하면서 글을 끝맺고 있었다. 독자로 하여금 저자의 생각이 어떠한지 알려주고, 독자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방식이 좋은 것 같다.

그렇기에 필자의 생각을 덧붙이면, 인류는 초창기에 단순히 ‘살기 위해서’ 직립 보행을 했던 것 같다. 초창기 인류는 털이 조금 적은 침팬지와 고릴라의 중간 단계 유인원에 가까웠을 텐데 더 민첩하지도 못 했고, 나무를 더 잘 타지도 못 했고, 이빨이 더 날카롭지도 못 했으며 꼬리도 없었기 때문에 여러모로 다른 유인원보다 불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잠자리나 먹는 음식 등은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즉, 장점은 딱히 없으면서 단점은 더 많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런 초창기 인류가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했었나? 아마 자연스럽게 연모를 쓰기 시작했을 것이다. 돌이나 나무 등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 것이나 들고 휘두르며 자신을 방어했을 것이다(초창기 인류가 위대한 사냥꾼이라는 설은 저자도 적고 있듯이 현대인의 인식이 반영된 것이며 남성중심주의적인 가설이라는 비판을 받은지 이미 오래이므로 연모를 써서 사냥을 한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연모를 쓴다고 꼭 두 발로 설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필요할 때만 두 발로 서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발로 서면 네 발로 기어 다니는 유인원보다는 더 높이, 더 멀리 주변 환경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점차 두 발로 서서 주변을 보는 쪽으로 진화했을 가능성이 높다. 남들보다 더 빨리 위험을 감지하고 더 먼저 위험에 대비한다면 그만큼 생존확률이 높아질 테니 말이다. 그렇게 되면 두 발로 더 멀리 이동할 수도 있었을 것이며, 네 발로 나무 등지를 오르내리며 위험을 피하는 대신 더 강한 연모로 자신을 보호하려고 했을 것이다. 즉, 초창기 인류는 단지 다른 유인원보다 더 불리한 상태에서 생존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직립보행을 하는 것이 낫다고 말이다. 어떻게 보면 저자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여기에 먹거리 획득이라는 조건을 굳이 달아야 할까 싶다. 어쨌든, 이런 부분은 초창기 인류 역시 그 당시 원숭이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전제조건 하에서 생각해야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저자는 ‘신이 선물한 불’이라는 챕터에서 소설적 상상력을 발휘한다. 인류가 최초에 불을 어떻게 발견했고, 불을 어떻게 사용하기 시작했는지를 말이다. 이런 상상은 대부분의 사람이 쉽게 할 수 있는 것이지만, 프랑스에서 제작한 ‘불을 찾아서’라는 영화의 대략적인 줄거리를 소개한 것은 좋았다고 생각한다(처음 보는 영화였다). 불씨를 관리하고 요리를 하는 등의 행위는 여자가 담당했을 것이라는 아주 상식적인 인식이 반영된 영화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불을 찾아서 이곳저곳을 여행했을 구석기인에 대한 설정은 굉장히 참신했다. 청동기인으로 추정되는 얼음인간 외찌의 경우에도 박달나무 통에 잿불을 담아 불을 피우는데 사용했을 것이라 하지 않는가. 하지만 필자는 그런 생각도 해 본다. 흔히 최초의 불을 언급할 때 많이 얘기하는 것이 천재지변(특히 번개나 산불 등)에 의한 큰 불을 보고 인류가 경외심을 느꼈고, 그 불을 사용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인데 과연 그랬을까~싶기도 하다. 원래 거대한 존재(산이나 물, 불, 하늘 등)를 보고 경외심을 느끼면 그것을 섬길 생각을 하기는 쉬워도 그것을 따라한다거나 소유하려는 생각은 하기 힘들다. 그런 상황에서 큰 산불을 보거나 번개 등으로 생긴 불을 보면 신성하게 여기지, 그것을 소유하거나 만지려고 했을까? 그래서 불은 오히려 주변의 아주 소소한 이유로 생겨났고, 호기심 많은 인류가 그것을 계속 관찰하고 따라하다 보니 사용하게 된 것은 아닐까 싶다. 이 주제 역시 오늘날 밝혀내기가 상당히 어려운 것이므로 이 정도 상상만 하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다만, 저자는 저우커우뎬 유적에서 발견된 재와 불에 그슬린 뼈들을 당시 사람들이 불을 사용한 증거로 제시하고 있지만 이는 이후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판명이 났다. 이 책이 2002년에 출간되었는데, 그 이전에도 새로운 연구 성과가 있었을 텐데 참고 되지 않은 것 같아 그 점이 아쉬웠다. 그리고 저자는 이 책에서 ‘슬기사람’, ‘신경굼’, ‘가운눈굼’, ‘가운콧굼’ 등 순수 우리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러다보니 오히려 이런 부분은 책을 읽는데 불편하기까지 했다. 그 대신에 ‘호모 사피엔스’라는 보다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말을 쓰면 어땠을까 싶다. 그 밖에 ‘-굼’이라는 미칭을 쓴 단어는 아직도 뭔지 잘 모르겠다.  

그밖에 필자가 재밌게 본 부분은 ‘천을 짰던 구석기시대 여인들’이었다. ‘끈 혁명’이라는 말이 일단 독특했는데 생각해보니 단순히 가죽을 갖고 옷을 해 입는 것보다 실을 짜고 그것으로 어떤 직물을 만들고, 끈을 이용해 디자인한 옷을 입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화장에 대해 언급하면서 얼굴보다 피부 보호를 위해서 신체 화장을 먼저 했을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한다. 사람이 일반적으로 추워지면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옷을 입었을 테지만 마찬가지로 얼굴도 몸뚱이의 일부인지라 역시 무언가로 덮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피부보호를 위해 화장을 했다면 얼굴화장 역시 신체화장과 같이 이뤄졌다고 봐야 상식적이지 않을까 싶다. 여기까지 읽고 나니 좀 재밌는 생각이 들었다. 인류는 맨 처음에 동물가죽, 소위 말하는 모피를 입었을 테고 조금 시간이 지난 뒤부터는 각종 직물을 이용한 옷을 해 입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시대가 흘러 소위 문명이라는 것이 탄생한 다음부터는 문명인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옷을 해 입느냐, 모피를 입느냐는 것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중화인들이 북적이니, 동이니 하는 주변 민족들을 언급할 때 냄새나는 동물 가죽을 입는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다시 비싼 돈을 주고 모피를 사 입으려고 난리를 치니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이 아닌가.  

또한 ‘구석기시대 예술품과 그 의미’라는 챕터에서 저자는 단양 수양개 유적에서 확인된 첫소[原牛]의 정강이뼈에 드려진 문양(새인지 물고기인지 잘 분간이 안 가는)을 거론하고 있었다. 이를 두고 저자는 ‘영혼은 사람이든 짐승이든 궁극적으로 뼈 안에 깃들이고 개체는 바로 그 뼈로부터 부활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죽은 첫소의 혼이 저승으로 잘 인도되기를 바라는 의미로 예술품에 새를 그려놓은 것이 아닐까’ 하는 추정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생각된다. 저자는 단순히 ‘현존하는 수렵민’이 이러한 행위를 하고 이러한 생각을 한다고 적고 있지만 지구상의 수많은 수렵민의 문화는 모두 다르다. 어느 지역의 어떤 수렵민이라는 언급도 없는데다가 이 부분은 적어도 동북아의 수렵민을 예로 들어야 그나마 적절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왜 하필 정강이뼈에 그렸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으며, 새인지 물고기인지도 모르는 그림에 대한 철저한 분석도 없었다. 그리고 죽은 첫소의 혼을 구석기인이 정말 잘 인도하라고 그렸을까도 의문이다. 그럼 그 첫소는 가축이었는가, 아니면 사냥해 온 것이었는가? 그럼 다른 사냥감들도 그렇게 저승으로 보냈을까? 등등 꼬리에 꼬리를 물 수 있는 애매한 주제를 너무 쉽게 처리한 감이 없어서 아쉬웠다. 마찬가지로 아스마트족, 지바로족의 머리사냥에 대한 예를 들면서 죽은 사람의 머리뼈에 대한 생각을 얘기했지만 아주 특수한 경우로 구석기인의 삶을 일반적으로 규명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이 부분은 더 많은 인류학적 근거를 제시하거나 더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저자가 책을 쉽게 쓰려고 노력했고, 최대한 오늘날 구석기시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는 흔적은 확인되지만 그 노력이 조금 부족했다는 느낌 역시 지울 수가 없었다.  

이러한 부분은 ‘식인습속에 담긴 의미’에서도 잘 나타나는데 저자는 전문적인 내용조차도 너무 쉽게 풀어 쓰려다보니 앞뒤 다 자르고 가운데 부분만 얘기하고 있어 자료의 객관성이나 자세한 근거 자료의 제시라는 측면에서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저자는 식인에 2가지 유형이 있으며 하나는 족외식인(다른 집단을 공격하기에 앞서 상징성을 갖는 행위로서 집단 간 결속력을 다진다)이며, 다른 하나는 족내식인(위대한 사람의 지혜와 능력을 부여받기 위해 그 사람의 일부를 먹는다)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몇몇 부족에서 보이는 인류학적 근거가 구석기인들과 동일했으리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중국의 경우, 기본적으로 자연환경이 우리나라와 많이 다르기 때문에 예로부터 식인풍습이 보편적으로 잔존했었다. 즉, 흉년이나 전쟁으로 인해 먹을 것이 없어지면 근처 수백 ㎢에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으므로 자연스레 식인할 수밖에 없는 실정인 것이다. 이는 산천이 수려하고 지형이 상대적으로 좁아 어로, 수렵, 채집, 농경 등의 활동을 다양하게 영위할 수 있던 우리와는 다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먹을 것이 없을 때 식인 했다는 문헌기록들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확인되고 있는데, 그 식인풍습에 어떤 의식적 · 정신적 의미는 없다. 그저 ‘배고프고 먹을 것이 없으므로 먹을 수 있는 고기’를 찾아 먹는 것뿐이었다. 마찬가지로 구석기인들 역시 먹을 것이 없으니까 식인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애써 인간다운 해석으로 치장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필자가 구석기시대를 다룬 주제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부분은 바로 ‘구석기시대에 살았던 어느 한 남자의 일생’이라는 챕터이다. 당시 구석기인들의 삶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죽 그려내고 있었는데, 이런 식의 접근은 독자들로 하여금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기 때문에 이러한 선사시대를 다룬 책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필자의 생각과 조금 다른 부분을 언급하자면, 먼저 저자는 막돌이의 누나를 두고 두 부족 간에 벌어진 문제를 결국 합의를 해서 해결한 것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하지만 선사시대일수록 이러한 중재보다 전투를 통한 해결이 더 많았다는 고고학적 근거들이 속속 발견되는 만큼 이런 설정은 오히려 보다 후기의 모습이 투영된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할 듯싶다. 또한 저자는 세습제를 통해 부자간에 지도자의 자리가 이동해간 것으로 보았지만 구석기인들 사이에서 그런 것이 가능했을지 의문이다. 오히려 힘이 세고 더 발언권이 강했던 사람이 차기 지도자 자리를 꿰차지 않았을까 싶다. 이 두 가지만 제외한다면 전반적으로 구석기시대를 잘 묘사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혹 저자가 개정판을 내놓게 된다면 이 부분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완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본다. 

그 다음은 신석기시대이다. 저자는 시대개관에서 선사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로 ‘환경’을 꼽았는데 이에는 필자 역시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구석기시대뿐만 아니라 신석기시대, 더 이후의 청동기시대와 역사시대까지도 인류는 환경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환경의 변화에 맞춰 그들 나름의 역사를 만들어 갔던 것이다. 저자는 신석기시대 농경의 시작과 함께 이러한 환경 변화를 언급하고 있는데, 실제 고구려 때는 추웠던 만주지역이 발해 때에는 벼의 특산지로 언급되는 것만 봐도 환경 변화가 인간의 생업경제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은 재삼 언급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시대개관 말미에 ‘토기의 형태와 문양이 다르다면 분명히 지역마다 독특한 문화적 특징 또는 문화적 차이가 있을 터인데, 아직까지 이런 점에 대해서 명쾌하게 설명이 되지 않았다.’라고 밝히고 있는데 이 역시 필자가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중국 고고학계의 경우, 이러한 고고학적 문화가 지역적으로 다르게 나타나면 거의 대부분 ‘-문화’ 라는 식으로 이름을 붙여 지역성을 부과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양사오 문화’, ‘홍산 문화’, ‘룽산 문화’ 처럼 말이다. 한국 고고학계 역시 이처럼 지역성을 부과할만한 자료를 충분히 갖추고 있을 텐데 이러지 않는 것은 개인적으로 의아하기까지 하다.  

저자는 먼저 간석기의 출현을 두고 ‘나무 연모를 대체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추운 시기가 지나고 따뜻한 시기가 되면서 나무의 질이 이전보다 떨어졌으며, 나무를 가공했던 기술을 그대로 돌을 가공하는데 사용하면서 이전 시기보다 돌을 더 잘 다룰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간석기를 사용한 이후에도 목기가 꾸준히 사용된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오늘날까지 말이다. 즉, 단순히 나무 연모를 대체하기 위해서 간석기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너무 작의적인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뗀석기의 비효율성을 알아채고 그것을 끊임없이 개선한 결과, 간석기가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또한 저자는 토기가 신석기시대부터 사용된 것을 두고 이동 생활하던 구석기인에게 토기는 불편했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과연 그랬을까? 그렇다고 해서 정착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모두 토기를 사용했다고 볼 수만도 없는 것 아닐까? 즉, 토기 사용을 두고 이동생활 혹은 정착 생활하는 식으로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수렵민들도 토기를 만들며, 정착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무조건 토기를 만들지는 않지 않은가.  

그 밖에 지금 책이 없어서 딱 비교는 못 하겠지만 ‘과연 농경이 신석기혁명이었을까’라는 챕터는 마치 제레드 다이아몬드의『총, 균, 쇠』일부분을 그대로 축약해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특히 농경의 전파가 더뎠다는 점, 농업을 채택한 사람들의 건강상태가 더 빈약하다는 점, 1840년대 아일랜드에서 감자 충해를 입어 100만 명의 농민이 굶어 죽었다는 점, 부시맨의 여유로운 수렵채집 생활 등 모두 필자가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책에서 본 내용들이 언급되고 있었다. 그래서 맨 뒤의 참고문헌을 봤더니 그 책은 없었다.『총, 균, 쇠』개정판은 2005년에 나왔지만 초판이 1999년에 나왔기 때문에 저자가 충분히 읽어볼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참고문헌에 없다는 것은 다른 책에서도 이 내용을 봤다는 얘기가 될 수 있다. 필자 역시 저자가 본 참고문헌을 전부 본 것은 아니므로 이 부분은 차후 다시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이어 저자는 ‘미궁에 빠진 소금제조법’이라는 챕터에서 흥미로운 주장을 한다. 신석기시대 주거지를 보면 불 땐 자리 곁에 반드시 토기저장시설이 확인되는데, 저장시설로 사용된 토기들을 보면 바닥 면을 제거하고 엎어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습기에 약한 물품이나 습기를 잘 흡수하는 물건을 저장했기 때문인데 그것이 바로 소금이라는 것이다. 소금을 그 곳에 두면 불 가까이에서 열을 조절할 수도 있고, 화재를 예방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 필자는 그러한 토기저장시설에 조리와 관련된 것들, 예를 들면 음식물 등을 뒀을 것이라고는 생각해봤지만 소금일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았었다. 일단 한국 고고학계에서 선사시대 소금을 만드는 방법이 고고학적으로 확인이 안 되었기 때문에(아직 우리나라에서 제염토기-바닷물을 끓여서 소금을 만들 때 쓰는 토기-가 확인되었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다) 소금에 대한 연구는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이처럼 재밌는 추정을 했다는 것이 신기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신석기인들이 어떻게 소금을 만들고, 어떻게 해안과 내륙 사이에 소금 교역이 이뤄졌는지 궁금하다고 했는데, 이미 구석기인들도 수백㎞ 거리의 흑요석 원거리 교역망을 갖추고 있었던 만큼 신석기시대에 소금 교역이 그리 어렵게 이뤄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또 ‘최초의 직업병 환자는 누구일까’도 재밌었다. 통영 앞바다 욕지도의 돌무지무덤 2호에 매장된 장년의 남성과 연대도의 집단무덤에 매장된 성인 여성의 두개골에서 외이도골종의 흔적이 확인되었는데, 이는 깊은 바다 속을 잠수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걸리는 직업병이라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 병은 전문 잠수부들에게 종종 발생하곤 하는데 신석기시대에도 이러한 직업을 갖춘 사람이 있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뭐 당시에는 이미 모든 구성원들이 식량을 수렵 · 채집하지 않아도 잉여생산물이 남을 정도로 생업경제에 있어 많은 변화를 겪고 있었으므로 이처럼 전문적으로 깊은 바다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던 사람들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저자의 말처럼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능력을 몹시 부러워했을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굳이 전문 잠수부 일을 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는데 그 일을 부러워했을까?

마지막으로 저자는 청동기시대를 언급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청동기술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필자 역시 주변 사람들에게 가끔 청동기시대 청동기술의 우수성을 언급할 때 자주 거론하는 ‘숭실대박물관의 국보 141호 청동거울’을 언급하고 있었다. 이 유물의 정확한 출토지와 출토상황은 알 수 없지만 그 세밀함과 정교함은 현대 청동기 제작기술로도 결코 따라갈 수 없는 것이라 하니 그저 경탄할 따름이다. 필자가 짧은 공부지만 다른 나라의 청동기들을 살펴봐도 이처럼 세밀하고 정교한 선을 세부적으로 만든 제품은 없었던 것 같은데 단순히 웅장하고 거대한 규모로만 따지지 않는다면 이 청동거울은 세계사적으로도 길이 남을 대단한 유물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또한 저자는 한국 청동기시대 개시연대에 대해서 북한학계의 연구 성과를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피력했는데, 이는 강단에 있는 저자의 이력을 봤을 때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북한학계의 여러 연구방법을 비과학적이라고 치부하는데 반해 저자는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다루고 있었다. 물론 통일이 되면 이러한 연구 성과들이 교류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계 청동기문화의 기원지로 한반도가 표시될 수는 있을지 의문이다. 그밖에 고인돌 덮개돌에 새겨진 별자리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었는데, 이 역시 한국 고고학계에서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것 역시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고 있었다. 특히 이러한 성혈(星穴)들이 피장자의 매장 시기를 표기한 것이라는 주장까지 하고 있는데, 달력도 없는 당시에 그렇게 쉽게 천문을 관측해서 고인돌에 새길 수 있었는지 그저 궁금할 따름이다. 다양한 의견제시나 해석은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지나친 억측은 오히려 저자의 생각을 깎아내리는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다.

그리고 저자는 청동기시대 마지막에 ‘비파형동검이 말해주는 고조선 영역’, ‘고조선은 어디에 있었는가’, ‘이야기로 된 역사, 단군신화’라는 챕터를 마련했는데 개인적으로 이 책의 NG라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역사를 언급하는데 있어 청동기시대 대신에 ‘고조선’이라고 하는 정치집단의 명칭을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중국에서 ‘구석기시대-신석기시대-하·은·주’ 식으로 시대 구분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즉, 고조선이 존재했던 시기는 단순히 청동기시대로만 구분할 것이 아니라 ‘-문화’ 혹은 ‘-문화권’이라는 표현을 써서 어떤 특정한 지역성을 부과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분명히 특정 유물과 유적을 통해서 어떤 특정 정치집단의 영역과 문화가 확인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청동기시대 후기 한반도 중남부에서 널리 확인되는 송국리문화 역시 특정 정치집단의 특징이 아닐까 하는 추론을 해 보기도 한다. 어쨌든, 저자는 선사시대를 언급한다고 하면서 어설프게 청동기시대 말미에 고조선을 집어넣으면서 사족(蛇足)을 다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마치 송시열과 조선시대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연구로 인정받던 이덕일 선생님이 고대사를 괜히 건드렸다가 비판받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고조선을 거론하려면 일단 고고학적 자료뿐만 아니라 각종 문헌자료를 동원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고조선을 전공한 전문 고고학자가 우리나라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냥 사학을 전공한 사람이 고고학 자료를 인용하는 것으로 연구가 진행되는 것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고조선 연구 현황인 셈이다. 그런데 저자는 어설프게 약간의 문헌을 거론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고 있는데, 그 부족함이 너무 눈에 띄는지라 보는 이가 민망해질 정도였다. 아마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에 비해 챕터가 너무 적어지는 바람에 억지로 집어넣은 부분 같은데 차라리 뺐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저자는 고조선을 두고 ‘막강한 지배력을 가진 대제국(연맹왕국)’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 저자가 지금은 알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제국과 왕국은 동일한 의미가 아니라는 것도.

최근에는 홍산 문화가 주목받으면서 요하 문명이 고조선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많이들 거론되고 있다. 물론 저자가 이 책을 쓸 당시 홍산 문화에 대해 얼만큼 자료를 갖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관련된 최신 자료들은 인용하지 않고, 너무 뻔한(교과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내용들로 고조선에 대해 거론하고 있었기에 그것은 분명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고조선과 관련된 여러 고고학적 성과들을 보다 자세하게 소개하면 모를까, 이런 식으로 얼버무리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전체적으로 쉽게 쓰려다보니 몇몇 부분에서 중요한 내용들이 많이 누락된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이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하는 부분이다. 비전공자들에게 고고학이 이런 것이다~고고학적 증거들이 이런 것이다~라는 식으로 쉽게 고고학을 소개할 수는 있지만 반대로 너무 쉽게 알려주다 보니 고고학에 대해 분명하게 설명하지 못 하는 부분들이 많아서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적 상상력을 동원해서 당시인들의 삶을 친숙하게 표현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런 스타일의 책들이 더 많이 나와야 고고학이 대중성 있는 학문으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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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9-08-27 0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만에 들렸는데 좋은 책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조선 부분은 빼고 읽어야겠네요.
이덕일씨가 괜히 고대사 건드려서 기존의 조선시대 연구까지 싸잡아 욕먹는 거 정말 깊이 공감합니다.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읽고 정말 허걱 했거든요.

麗輝 2009-08-27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덕일 선생님은 생각을 잘 했어야죠. ㅋㅋ
암튼 이 책도 전체적으로 괜찮긴 한데, 고조선 부분은 완전 손발이 오그라드는...ㅋ
그럼 즐독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