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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전쟁의 나라 - 7백 년의 동업과 경쟁
서영교 지음 / 글항아리 / 2007년 10월
평점 :
한국 고대사학자 중에서 보기 드문 전쟁사학자이자 전쟁 관련 다큐멘터리를 100기가 바이트 이상 소장하고 있다는 저자에 대한 소개. 지금까지의 저자 소개와 다른 듯 해서 눈길을 끌었다. 주인장도 전쟁 관련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300기가 가량 보유하고 있기에 1000기가 바이트가 어느 정도 분량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우리나라에는 전쟁사학자 혹은 전쟁고고학자가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전쟁사 혹은 군사사 관련 저서가 아예 출간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전공자라 불릴만한 학자가 적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출간 당시부터 언론의 주목을 상당히 끌며 인터넷 서점 사이에서 적지 않은 광고가 났었다. 당연히 주인장도 출간되자마자 덜컥 사서 읽어봤다.
저자는 일단 고구려의 중장기병에 대한 오해로 운을 떼고 있다. 중장기병이 널리 알려진 것처럼 그리 강력한 병종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중장기병에 대한 진실과 오해가 널리 회자되고 있는만큼 다소 진부한 소재가 아니었나 싶었다(물론 한번쯤은 짚고 넘어갔어야 했지). 오히려 중장기병이 왜 그 당시에 갑자기 주목받으며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었는지를 전쟁史적인 관점에서 다뤄줬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저자는 고구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를법한 중장기병을 언급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글을 써야할지를 암시하는 듯 했다. '기존의 상식을 뒤엎어버리겠다'는 식의 암시를 말이다.
책의 제목만 주욱 봐도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이번 책에서 고구려와 유목세계의 관계, 고구려의 유목국가적 요소에 주목해 글을 써내려가고 있었다. 선비족과의 지루한 공존과 대립, 삼연과의 관계와 북위와의 대립구도, 돌궐과의 관계 및 수-당과의 전쟁 등 일관되게 유목세계와의 관계를 정립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유목세계가 갖는 기병군단의 위력을 고구려와 등치시켜 소개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아니나다를까 저자는 자신이 특히 많이 참고한 책을 머리말에 소개하고 있었는데 노태돈 선생님의『고구려사 연구』와 부락성의『중국통사(상)』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목세계를 다룬 책들이었다. 잠깐 소개하자면 이재성의『고대 동몽고사 연구』, 지배선의『중국동북아세아사 연구-모용왕국사』, 스기야마 마사아키의『유목민이 본 세계사』, 잭 워터포드의『칭기즈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르네 그루쎄의『유라시아 유목제국사』등이 그러하다.
하지만 여기서 저자는 중대한 실수를 한 듯 싶었다. 예전에 지배선 선생님의『고구려 · 백제유민 이야기』를 보면서도 느꼈듯이 저자는 고구려를 유목국가로 인식하고 있는 듯 했다. 김용만 선생님의『고구려의 발견』에서 '정착형 기마민족'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고구려는 다양한 족속과 다양한 생업경제를 보유한 민족이 살고 있는 국가였다. 즉, 고구려에 있어 유목국가적 요소는 전부가 아닌 일부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저자는 마치 유목국가적인 요소가 고구려의 전부인양 언급하고 있다. 고구려가 농경을 중시한다고, 혹은 장창으로 무장한 대기병용 보병부대가 존재한다고 해서 고구려의 역사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고구려에는 기병만 있었던 것도 아니며 반드시 유목세력과의 관계성만 강조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다소 기울어진 시각으로 고구려사를 바라본 것이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고구려의 초기 경제활동이 약탈경제였다는 것은 주인장도 인정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자연환경 속에서 고구려인들은 생존해야만 했고, 그러기 위해서 강하게 체력을 기르고 전투기술을 연마하며 잦은 전투 속에서 살아남았던 것이다. 하지만 고구려인들은 평생을 그렇게 살지 않았다. 그리스뿐만 아니라 페르시아까지 벌벌 떨게 만들었던 강력한 군사강국 스파르타와 고구려인은 다르다. 스파르타가 아무리 그리스 문화의 패자라 하더라도 일개 도시국가에 불과했다면 고구려는 훗날 제국으로 발돋움한 국가였다. 유목국가와 같은 약탈경제와 상업활동으로만 국가가 운영되기 힘들다는 소리다. 늘어난 인구와 정착문명을 통해서 고구려는 국경을 유지 혹은 확대하며 영토를 보존해야만 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 고구려에 있어 농경의 중요성을 제외시킨다는 것은 안 될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그 부분을 거의 고려치 않았다.
3세기 관구검의 침입을 받아 도성이 초토화되고 4세기 모용씨의 전연에게 다시금 도성이 초토화된다. 그 원인을 저자는 고구려 문명의 원시성에서 찾고 있다. 다시 말해 유목국가적 요소의 하나로서 도시, 성곽, 정착형 경제기반 등이 고구려에 부족했기에 금새 힘을 회복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정말 사실일까? 하지만 그 말은 유목세력은 거대한 성곽도시나 도성을 갖추지 못 했다는 잘못된(?) 상식에 근거한 듯한 단정적인 주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저자는 고구려의 산성을 농성장이 아닌 기병의 격납고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산성을 기병이 운용되는데 필수적인 요소로 본 것이었다. 공성전이 아닌. 그러면서도 저자는 뒷부분에 안시성 전투를 언급하면서 공성전의 중요성을 다루고 있었다. 아이러니 아닌가. 공성전은 기본적으로 보병이 주축이 되어 진행되는 전쟁 방식이며 기병은 공성전에서 보조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로마 보병군단의 포위 섬멸전과 공성전이 가장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너무 기병과 유목세계적 요소만 강조한 듯 싶어 아쉽다.
그러다보니 3~4세기에도 고구려가 '원시적'이라는 말을 들어야만 했던게 아니었나 싶다. 게다가 저자는 여러 전투 장면에 대해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을 정리하는데 급급해 그에 대한 여러 연구성과를 소개하지 않고 있었다. 비류수가에서 패한 동천왕의 철기에 대한 언급도 그러하거니와(동천왕의 철기도 그렇다. 이는 동시기 다른 국가보다 이른 철기의 등장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 저자는 함구하고 있다) 주필산 전투와 안시성 전투에 대한 부분도 그러했다. 물론 저자의 일관된 주장에 따라 글을 쓰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지만, 다른 연구성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이 빠져 있어 설득력이 약해진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이 책은 고구려 전쟁사에 대한 종합적인 개설서라기 보다는 저자 개인적인 저서로만 그칠 수 밖에 없지 않나 싶다.
고구려는 분명 쉼없이 전쟁을 치뤄온 국가였으며 그 전쟁을 통해서 성장하고 단련되어온 국가였다. 그렇다고 성장의 원동력에 전쟁이 전부였던 국가도 아니었다. 하지만 저자는 그 부분을 놓친 것 같았다. 마찬가지로 고구려가 초기 수렵 혹은 유목생활을 하며 약탈경제체제를 유지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멸망기까지 그러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양성이야말로 제국이 갖는 특징. 그것은 역시 고구려에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그런데 저자는 그 부분 또한 놓친 것 같았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해석에 자의적인 부분이 들어갈 수 밖에 없었고, 기존의 다양한 연구성과를 무시(?)할법한 해석도 소개되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분명 저자가 야심차게 준비해서 내놓은 책이지만 비판받을 소지가 크기에 주인장 개인적으로 아쉽다.
하지만 이 책이 그리 잘못된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먼저 주인장이 이 책에서 가장 눈여겨 본 부분은 2가지였다. 첫째는 북연을 둘러싼 북위와의 대립 과정을 굉장히 자세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의 다른 책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부분인데 저자는 북위의 실권을 쥔 풍태후와 장수태왕의 대립구도라는 설정 속에서 북연-북위-고구려의 관계를 새롭게 해석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북위의 납비 사건이 보다 잘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고구려와 북위의 국제 관계를 너무 사료 그대로 해석한 면은 좀 성급하지 않았나도 생각해 보았다(이는 훗날 최유의 안원왕 구타 사건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어쨌든, 당시 조공기사만 가득한 북위-고구려 관계사에 대해서 색다른 해석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고 생각한다. 단, 이 부분이 이 책의 근본적인 주제인 '전쟁'과 그다지 큰 연관이 없다는 것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고구려의 전마 생산과 유목민(6장) 부분은 이 책에서 주인장이 가장 주의깊게 봤던 부분인다. 온달전을 토대로 복원한 고구려 국마 관리 체제가 그러했다. 국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으며 막연히 고구려에도 국마를 생산하는 목장이 있었겠지~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고려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환경이 지나치게 달라지면서 수입산 말이 죽을 가능성이 높아졌으며 단순히 국마(전마)는 훈련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환경에 적응시키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조 송나라에서 고구려에서 말 800필을 수입해갔다는 것도 저자는 환경에 적응된 말이라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는데 이 역시 주목할만한 견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이런 부분에서 그동안 간과하고 있었던 면이 많았는데 이 책을 통해서 다시금 생각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아마 이런 해석은 저자가 고구려와 유목세계적인 요소를 강조하지 않았으면 나올 수 없었을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여러 장단점을 갖춘 이 책은 고구려 전쟁사라는 관점에서 보면 분명 의의가 있다 하겠다. 하지만 너무나 불완전한 책이 아닐 수 없다. 쉽게 이 책의 견해들을 인용하거나 받아들이는데도 꺼려질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다소 파격적인(?) 주장들을 내놓은 책인만큼 한번쯤 읽어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