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으로 보는 중국사 - 세계전쟁사 002
크리스 피어스 지음, 황보종우 옮김 / 수막새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전쟁으로 보는 한국사』에 이은 두번째 시리즈물이다. 영국의 오스프리 출판사(Osprey Publishing)에서 기획한 Men-at-Arms 시리즈 가운데 크리스 피어스가 집필한『Ancient Chinese Armies 1500~200 BC』,『Imperial Chinese Armies (1), 200~589』,『Imperial Chinese Armies (2), 590~1260』,『Medieval Chinese Armies 1260~1520』,『Late Imperial Chinese Armies 1520~1840』을 합권한 것으로서 전쟁을 통해 방대한 중국사를 재해석하고 있었다.『전쟁으로 보는 한국사』가 특정 테마를 통해서 몇몇 전투를 파악한 것과는 분명히 다른 구성으로서 내용면에서 더 많은 것들을 담고 있었다. 또한『전쟁으로 보는 한국사』에서는 특정 전투를 자세하게 분석하고 있기 때문에 가상으로 만든 전쟁 현황도라든가, 그 당시의 상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었는 반면, 이 책에서는 그런 것은 없지만 당시의 군사 분야에 대해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끔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이런 연구 성과가 가능한 것은 아무래도 그만큼 자세한 문헌과 고고자료가 있었기에 그렇다고 생각하니 내심 부러운 점이 없지 않았다. 분명 우리도 그런 자료들이 축적되어 있는 상태라면 이러한 전쟁사 관련 연구서적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이 절로 들었다.

각 장은 그 당시의 상황, 일반적인 역사 서술, 군대의 규모 및 조직 · 운영방식이나 훈련상황, 주요 전투 등의 순서에 따라 서술되어 있었기에 각 시대의 전쟁 · 군사 분야에 대해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특히 각 시대마다 그 당시 군인들의 복장을 묘사한 그림들이 있어 이해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그림들이 단순한 상상도가 아니라 치밀하게 계획하여 그려진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종종 책에서 고구려 기마병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들을 보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책에서 그 그림들이 어떤 것을 기반으로 그려졌고, 어떤 모습을 그려낸 것인지 설명한 것을 보지는 못 했을 것이다. (혹시 그러한 책이 있다면 죄송하다) 본문이 끝나고 뒷장을 보면 저자가 각 그림마다 어떤 자료를 기초로 그렸고, 그 그림에 나오는 모습이 어떠어떠한 것이다, 라는 설명을 덧붙이고 있어 그 점이 특이했다. 물론 이러한 설명도 앞에서 언급했듯이 관련 문헌자료나 고고자료가 충분하기에 여러 가지를 활용할 수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도 최근 적지 않은 고고자료의 발견으로 단지 고분벽화(고구려)만을 인용하는 수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으므로 이런 부분들을 잘 활용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인 내용을 보면 우선 주인장이 잘 몰랐던 중국 군사사에 대해 잘 알려주고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저자는 다양한 문헌과(심지어 『죽서기년』까지도 충분히 활용하고 있었다) 고고자료를 섭렵했으며 그것들을 통해서 막힘없이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런 특정 테마를 갖고 중국사를 서술한 책들이 많지 않기에, 이런 부분들은 일반 개설서나 개론서에서는 얻기 힘든 것들이 사실이다. 예를 들면 갑골문에 기록된 상나라의 네가지 병종(馬-전차, 射-궁수, 殳-근접전 전담부대, 近衛兵)이라든가, 서주 시절 동원 가능한 군대는 전차 3,000대와 3만명의 보병이었다는 사실 등, 막연한 중국의 군사력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사실들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단순히 무기나 부대의 규모 및 조직 등에만 국한하지 않고 당시의 사상이나 전략 · 전술, 병법서 등에 대해서도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었다. 심지어 강희제가 병법서를 두고 '물과 불, 행운의 전조와 날씨에 대한 허튼 소리로 가득 차 있을 뿐 아니라 그마저도 서로 모순되는 내용뿐'이라고 폄하하며 '병법서는 무시하고 대신 정신력과 치밀한 작전계획에 의지하라'고 했다는 내용까지 적어두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덧붙이자면 저자의 중국사를 보는 시각이었다. 저자는 첫째, 중국의 역사를 통일과 분열의 순환으로 이해하였고 둘째, 농경민족과 유목민족 간의 끊임없는 전쟁과 동맹의 과정으로 파악하였다. 여기까지는 뭐 널리 알려진 것이니 넘어갔다. 셋째, 저자는 통일과 분열의 과정에서 자주 일어난 농민군 봉기를 중시했다. 이 부분은 조금 참신했는데 심지어 원, 명, 청시대에는 일반 농민군의 수준이 때로는 정규군의 그것보다 우수했다고까지 했는데 그 부분은 조금 충격이었다. 농민 봉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지배층을 뒤흔들만큼 대단했으며, 항상 농민은 잠재적인 위협을 안고 있는(언제라도 병력으로 환산 가능한) 존재였다는 사실, 그리고 사대부와 같은 지도층은 농민 봉기군보다 이족(夷族) 군대를 더 환영했다는 사실 등은 상당히 흥미롭게 살펴봤다. 암튼 기존에 주인장이 갖고 있던 생각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주었고, 그만큼 재미있기도 하였다. 중국 전쟁사에 대해 확실하게 알고 싶다면 이보다 더 좋은 책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안에 담겨져 있는 내용들은 충분히 훌륭했다. 차후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의 책이 나오리라는 기대를 하면서 책장을 한장한장 넘겼다.

더불어 이 책에서 주인장이 관심있게 본 부분은 중국사를 중심으로 봤을때 그와 연관된 다른 민족과의 전투는 어떻게 해석했을까, 하는 부분이었다. 특히 고구려를 비롯한 역대 한국 왕조와 중국 왕조간의 대립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수 · 당 전쟁사 분야에서 고구려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못 했다. 뭐 그 이전의 고구려와 중국 왕조들과의 전쟁은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분명 한나라 시절 흉노가 가장 적대적이면서도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것처럼, 수 · 당에게는 고구려가 그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언급이 없다는 사실은 저자가 고구려사에 대해 무지하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언급을 안 했거나, 관련 지식이 일천했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수 · 당 시대의 주요 전투로 저자가 뽑은 것은 총 6개였다. 당고조 이연이 태원에서 거병한 이후 장안으로 진격하는 도중 송노생이 이끄는 수나라 군대와 싸워 승리한 곽읍 전투(617년), 설인귀가 이끄는 당군 10만이 토번군 20만과 싸워 패한 대비천 전투(670년), 측천무후 시절, 이경업의 반란을 진압한 고우 전투(685년), 토번이 일찍이 장악하고 있던 석보성을 두고 벌어진 공성전(745~749년), 안록산을 막기 위해 출격한 가서한의 패배로 끝난 동관 전투(756년), 거란 황제를 맞아 후진의 군대가 승리한 정현 전투(945년) 이렇게 6개 전투였는데 중요성이나 당시 미쳤던 영향에서 봤을때 고 · 수, 고 · 당 전쟁에 미칠만한 것들은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는 일언반구 없었다. 물론 관련 내용이 약 2페이지에 걸쳐 있었지만 살수대첩이나 요동성 전투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고, 단지 '이때 고구려 영양왕이 항복할 뜻을 전하자 수나라 원정군은 철수할 명분을 얻어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돌아갔다'라고 적고 말았다. 또한 고 · 당 전쟁은 신라와 고구려의 분쟁에 당이 개입했다고 표현하였고 '요동의 안시성 부근에서 고구려군을 격파하는 대승을 올렸으나 끝내 안시성을 함락시키지 못했다'라고 적고 있을 뿐이었다. 당시 당나라 군사정책의 최우선 목표가 고구려였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오히려 이를 가볍게 적고 있다는 점이 주인장은 조금 의아스럽기까지 했다.

이런 것들은 그 뒤에 마찬가지였다. 요 · 금 시대를 언급한 부분에서는 발해와의 전투는 뭐 그렇다치고, 고려와의 항쟁 부분도 전혀 언급이 안 되어 있었다. 기 백만에 달하는 엄청난 대군을 쏟아붓고도 동방의 작은 나라를 함락시키지 못 했던 역사는 이 책의 주제와 맞지 않아서였을까? 원 시대도 마찬가지였다. 고려와의 50여년에 달하는 전쟁 중 주요 전투로 꼽힐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이 놀랄 뿐이었다. 그나마 뒷부분으로 가면 '평양성 전투(1593년)'가 기록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조승훈이 대패한 1차 평양성 전투는 언급이 없었고 이여송의 승전만 적고 있었다. 그것도 조선군이나 의병들의 전과는 생략한 채 말이었다. 여기까지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책에서도 역시 저자의 주관이 지극히 많이 개입되어 몇몇 내용에 있어서 변별력이 부족했다는 것을 절감할 수 있었다. 아직까지 외국 학자들의 눈에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방벽에 가려져 한국이라는 나라는 주요 관심 대상 밖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앞서 계속 언급했듯이, 분명 중국 군사사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책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자세한 도판과 포괄적인 서술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인만큼 기대하고 이 책을 읽었던 분들, 특히 1권을 보고 당연히 2권을 집었던 분들이라면 후회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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