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백제 유민 이야기
지배선 지음 / 혜안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고선지, 이정기...모두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인물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모두 고구려 유민으로서 당(唐)에서 크게 이름을 떨쳤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통점을 꼽자면 이들에 대한 연구가 한 사람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이다.『유럽 문명의 아버지 고선지 평전』과『중국 속 고구려 왕국, 제』를 쓴 지배선이 그러한데 중국 중세사 전공자로도 유명한 저자의 또 다른 연구성과가 바로 이 책『고구려  · 백제 유민 이야기』이다. 저자가 1999년 안식년으로 미국 인디아나 대학에 갔을때 그 곳의 크리스토퍼 I. 베크위스 교수를 만나게 되었고 한국에서는 왜 고선지, 흑치상지에 대한 연구가 없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인으로서 부끄러운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실제 고선지나 흑치상지에 대한 연구성과가 국내에서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정기 일가나 왕모중, 왕사례 등을 비롯해서 고구려 · 백제 유민에 대한 포괄적이고도 다양한 연구성과는 대부분 저자에 의해 진행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이 책이 의미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총  6장으로 이뤄져 있으며 당연히 6명의 고구려 · 백제 유민에 대해 적고 있다. 고구려 유민 왕모중, 연남생, 연헌성, 연남산과 백제 유민 흑치상지와 흑치준에 대해 적고 있는데 전체적인 구성은 비슷하다. 일단 가장 주된 사료는 중국에서 발견된 묘비명이며 그것과 각종 문헌을 통해서 각 유민들의 행적을 소개하고 있다. 고구려, 백제 멸망 이후 당에서의 입관과 각종 전공을 통한 승승장구, 그리고 대부분의 인물들이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까지를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고구려, 백제 멸망 이후 각지로 뿔뿔히 흩어진 유민들을 통해 당시 사회상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할 수 있다.

특히 주인장은 왕모중과 흑치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 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잘 알게 되었다.

노예의 신분으로서 임치왕 이융기의 최측근이 되어 현종의 CEO로 활약했던 왕모중. 당에 의해 고구려가 멸망하고 수많은 고구려인들이 당으로 들어갔는데 개중에는 노예의 신분으로 하락한 사람들이 많았다. 왕모중이 그러했는데 왕모중과 더불어 고구려인으로 보이는 이의덕이라는 인물 또한 노예 출신으로서 이융기의 경호원으로 활약했다. 이 두 사람은 현종의 즉위에 절대적인 공헌을 한 인물들로서 특히 왕모중은 현종이 어렸을 때부터 함께 생활하면서 현종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었던 인물이다. 저자는 왕모중이 현종의 최고 CEO로서 '개원지치'는 실상 고구려인 왕모중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실제 각종 문헌은 왕모중이 국가의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예외없이 공정하였다는 사실과 정예 기병 만기(萬騎)의 지휘자이자 황실 마굿간을 관리하는 등 권력의 핵심인물이라는 사실을 그대로 알려주고 있다. 그러한 권력의 획득으로 인해 왕모중은 현종으로부터 총애를 독차지하였고 현종은 왕모중의 대소사까지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왕모중의 두 부인은 국부인(國夫人)으로 임명되었고 어린아이는 5품의 벼슬을 제수받고 늘 황태자와 놀았으니 환관 양사욱 · 고력사는 이를 늘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런 대단한 왕모중이었지만 권력에 대한 끝없는 탐욕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위대한 고구려의 부활 때문이었는지 왕모중은 반역을 꾀하다가 허무하게 세상을 떴다.

저자는 왕모중이 반역에 성공하여 당 조정이 구조조정되었다면 더 강력한 세계국가가 출현했을 것이라고 한다. 당시 왕모중의 능력은 상당히 출중했을 뿐만 아니라 당 현종 재위시 활약했던 유능한 장군들 가운데 상당수가 고구려와 백제 유민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에드윈 플리블랭크라는 학자는 현종이 왕모중과 같은 탁월한 인물의 재능을 이용한 후 지체하지 않고 처리했기 때문에 장기간 집권하면서 권력을 안정화할 수 있었다고도 했다. 왕모중이 살았더라면, 반역이 성공했더라면 저자의 생각처럼 또 다른 세계국가가 등장했을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뛰어난 능력으로 당의 권력을 좌지우지했던 왕모중 같은 인물도 결국은 고구려 유민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당나라를 구성하는 민족 자체가 선비족이기는 하지만 한족 중화국가 체제를 갖추고 있었던만큼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고구려 출신을 포용력있게 흡수하기는 버거웠을 것이다. 현종이 자신의 황제권력이 도전받으리라는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을 것이다.

흑치준은 유명한 백제 유민 명장 흑치상지의 아들이다. 이 역시 묘비명의 기록을 기준으로 살펴보고 있는데 흑치 일족에 대한 자세한 기록들이 남겨져 있어 주목된다. 먼저 주목할 사항은 흑치상지와 흑치준의 내용이 약간 다르다는 점이다. 흑치준의 증조부에 대해 흑치상지 묘비문은 '달솔 흑치덕현'으로 기록한데 대해 흑치준 묘비명은 '자사 흑치가해'로 적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송기호는 덕현은 중국식, 가해는 백제식 이름이라 하고 있고 저자는 가해는 이름이고 덕현은 자일지도 모른다고 적고 있다. 이는 흑치준의 조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이 역시 시기가 다름에 따라 생겨난 묘비문 작성에 기인한 결과로 생각한다. 일련의 내용들을 살펴보면 백제에서 이미 고위관직을 점유하면서 번영했던 흑치 일족이 당으로 건너온 이후에도 계속 번영했다는 사실이다. 낙양 종선방 거리에 흑치 일족의 저택이 있었다는 것도 그 근거 중 하나이다. 이 곳은 낙양 외성 건춘문 근처인데 흑치 일족 외에도 이정기의 손자 이사도의 저택과 연개소문의 손자 연헌성의 저택도 이 곳에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처럼 수많은 전공을 세우고 입신양명에 성공한 흑치준이었지만 그는 모함을 받아 죽은 아버지가 늘 짐처럼 걸렸던 것 같다. 저자는 흑치준이 당에 적극적으로 충성한 것은 바로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기 위한 복권운동의 일환이었다고 적고 있다. 이른 나이에 죽었다는 흑치준, 그가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고 나서야 세상을 뜰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찡하기도 했다.

저자는 각 인물들에 대해 서술하면서 다음 몇가지 공통된 인식을 견지하고 있다.

첫째, 망국의 유민들은 결국 유민일 뿐이다. 그들이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일대 영웅인 것은 틀림없지만 당 조정의 입장에서는 그 뛰어난 능력을 이용하기 좋은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왕모중과 같이 황제의 최측근으로서 진심으로 총애를 받은 경우도 있었지만 흑치상지처럼 주변 권신들의 모함으로 억울하게 죽기도 했다. 연남생은 당에 항복해 조국을 멸망시킨 전공을 세웠지만 정작 당에서 바로 관직을 받지 못 했다. 그래서 수년간 자기 수련을 거듭하다가 벼슬을 달라고 조아려 겨우 장군의 반열에 오르기도 하였다. 저자는 이러한 유민들이 죽었을때 성대한 장례를 치뤄주고 묘비명에 극찬을 더한 것도 모두 피지배층에 대한 유화책의 일환이었다고 해석하고 있다. 모두 일리 있는 말이다. 아무리 주변의 모든 국가와 족속을 정복하여 국제적 · 개방적인 세계 제국을 만들었다지만 라이벌에게까지 너그럽지는 못 했을 것이니 말이다. 실제 유민들이 누렸던 잠깐의 영광은 그에 못지 않은 아픔을 간직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둘째, 그는 고구려를 철저하게 유목국가적 시스템을 갖춘 나라로 인식하고 있었다. 남생이 아우에게 도성을 맡기고 지방 순시를 나갔던 일이라든가, 고구려 유민 출신 장군들이 기마와 활솜씨에 뛰어난 능력을 보여줬던 사실 등 몇가지 이유를 통해 고구려를 마치 선우가 지배하던 흉노와 같은 구조로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구려는 엄밀히 말해서 순수 유목국가와는 전혀 다른 국가체제를 지닌 국가였다. 물론 유목국가적 성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정착형 유목국가'라는 단어에 걸맞는 국가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아마 저자의 전공 분야가 중세 중국사, 특히 모용씨 정권에 대한 부분이어서 그러한 시각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하는데 어쨌든, 고구려에 대한 저자의 인식은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셋째, 당이 유민 출신 장군들에 대해 과도하게 잘 해주고 사후에도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것은 피지배층에 대한 그들의 기만술이었다는 것이다. 실제 고구려를 팔아먹은 것과 마찬가지인 연남생에 대해 당은 극진한 대접을 아끼지 않았는데 이는 바로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묘비명에 그들의 화려한 전공을 아끼지 않고 기록한 것 역시 당에서 활약한 유민 출신 장군들의 공적을 대내외적으로 크게 선전함으로써 당에 대한 충성심을 자랑하기 위해서라고 적고 있다. 즉, 철저하게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유민 출신 장군들에 대한 묘비명이 자세하게 남게 되었고 오늘날 우리들은 그것을 통해 당시 유민들에 대해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전체적으로 저자는 유민들이 당에서 활약했다는 사실만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그들이 그렇게 적국에서 활약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그리고 그들의 화려한 전공 뒤에 숨겨진 이면까지도 밝혀내고자 하고 있다. 특히 그는 남생에 대한 연구를 마치면서 유민사의 긍정적인 면을 보고 싶었던 애초의 생각과 달리 남생은 부정적인 행적만을 남긴 인물이었다고 평(評)했다. 그리고 고구려는 그에 의해 멸망했다고 단언하면서도 그 역시 고구려 유민사의 한 인물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있다. 다소 비주류(?)라 할 수 있는 유민사 연구에 있어 이 책이 중요한 지표를 남기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만 글을 마감하고자 한다. 다소 어렵고 지루한 문체로 이뤄진 면이 없지 않지만 인내심을 갖고 책을 읽어나간다면 우리가 몰랐던 또 다른 고구려, 백제사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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