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들을 뒤적이다가 책장을 보니 생뚱맞은 책 몇 권이 눈에 띄었다. ‘경제기사는 돈이다.’, ‘돈의 비밀’, ‘우울한 경제학자의 유쾌한 에세이’ 등등의 책이었는데 내가 이런 책을 샀을 턱은 없고 가만 생각해보니 장가가기 전, 오빠가 구입한 책들이었다. 사춘기 무렵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해가면서 폼 잡던 모습을 떠올리면 그렇게 팍팍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군 제대와 동시에 ‘모든 역사는 일요일에 이루어진다’며 말수는 더 적어지고 눈빛은 더 비장해졌더랬다. 그런 오빠의 모습을 바라보는 게 때론 든든하고, 때론 쓸쓸했던 것 같다.

 사람이 낭만을 잃지 않고 사는 일이 생각보다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아이들이야 워낙에 영악해지고 시니컬해져서 나보다 더 사막하구나 싶을 때도 많지만. S양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언니는 누군가가 언니의 비밀을 퍼뜨리고 다니면 어떨 것 같아?” “그야, 당연히 기분 나쁘지. 이런 배신자! 걔랑은 안 놀거야.” “그래? 그 비밀이 사실이 아닌 것처럼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처음부터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머릿속이 갑자기 복잡해지기 시작하면서 한동안 할 말을 잃었다. 참하고 반듯하여 칭찬을 먹고 사는 S양이 그럴진대 다른 아이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 듯.

 세상의 차가운 룰에 일찌감치 길들여진 근래의 아이들 외에 내 또래 80년생을 비롯하여 다소 애매한 감수성의 세대가 있는 것 같다. 별 헤는 밤과 돈 세는 밤의 갭이라고 할까.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을 읊조리던 열다섯의 촉촉했던 청춘은, 통장 하나에 아파트와 통장 하나에 교육비와 통장 하나에 노후자금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달리고 또 달리는 것이다. 독서행위 그 자체라는 순수한 동기로 '데미안‘과 ’독일인의 사랑‘을 마음으로 읽었던 십대의 감성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채, 잠재된 낭만을 억누르고 배반하는 삶. 별로 새삼스러울 것 없는 현실이고 형이하학적 일상이 주는 만족감에 길들여지고 나면 그만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온 역사처럼 책꽂이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책들의 눈길에 조금 씁쓸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별의 비밀이 더 이상 돈의 비밀만큼 호기심을 끌지도, 중요하지도 않다는 것. 비교적 낭만이 남아 있던 어린 시절을 보낸 우리 세대는 시시각각 더해가는 냉정한 현실을 받아들이긴 하면서도 그 야무진 포즈에 있어서만큼은 96년생 S양의 발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나처럼 도시의 세련된 타산에 영원히 적응하기 힘들게끔 타고난 얼치기들은 가능한 한 보폭을 줄이고 부대낌을 최소화하며 소심하게 움직이는 수밖에. 어린 마음을 설레게 했던 밤하늘의 All Twinkle Magic은 더 이상 Automatic Teller Machine의 24시간 불빛만큼 관심을 끌지 못한다. 과거 어느 시절에인가 유전자 속에 새겨진 채 틈만 나면 형형한 별빛처럼 스멀대는 감성, 그 감당불가의 감성으로 인해 현실 속에서는 어딘가 늘 어설프고 어정쩡할 수밖에 없는 내 또래의, 나를 닮은 젊음들. 이른 세대의 동지애든, 어린 세대의 자기애든, 그 어느 편으로도 완벽히 기울지 못하는 낀 또래의 양가감정은 나만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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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1-28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또래 80년생을 비롯하여"- 이 부분에서 확실하게 세대차이를 느끼고 있는 중...
(아울러. 낭만이 사라진지는 이미 오래되버린지라.. 서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들도 역시나 돈과 경제 혹은 부동산에 관련된 책들이고, 모든 학문 또한 앞에 "순수"가 붙어버리면 배굷는다는 인식이 강하게 풍기는 사회구조상 이리도 모질게 변해버린게 아닐까 라고 생각 중.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구석에 낭만의 불꽃이 켜져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 아닐까 생각 중..
-도라지 위스키에 나름대로 차려입은 마담에게 실없는 농담 던지면서 메피스토가-

깐따삐야 2008-01-28 18:50   좋아요 0 | URL
그래도 90~99 학번 안에는 들어가시는 거죠? 아닌가. -_-a
이 곳이야 책 읽는 낭만알라디너들이 숱하지만 밖은 참 다른 것 같아요.
산삼주도 아니구 도라지 위스키는 뭔가요? 대낮에 지금 마담이랑 노시는 거여요? 마님하고 주니어한테 일러야겠다. =333

Mephistopheles 2008-01-28 19:32   좋아요 0 | URL
더더욱 세대차이를 느끼게 하는 답글...
최백호씨의 "낭만에 대하여"란 탱고풍의 가요 가사라는 것...

이매지 2008-01-28 20:01   좋아요 0 | URL
전 80년대생이지만 도라지 위스키 알아요 ㅎㅎㅎ
메피님 너무 세대차이 느끼지 마세요 ㅎ

낭만을 잃지 않고 사는 건 정말 너무 힘든 것 같아요.
요새는 어릴 때부터 계속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지라
너무 팍팍하게 자라는 것 같아요.
뭐 저도 통장하나와 아파트 하나 뭐 이런걸 위해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있는 거지만요. 쩝.

웽스북스 2008-01-28 20:24   좋아요 0 | URL
난 80년대생이고 낭만에 대하여를 알지만 도라지 위스키를 몰랐어요
(가사를 몰라서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나나나나나나나나~ 이렇게 불렀다는 거 ㅋㅋㅋ)

깐따삐야 2008-01-29 00:45   좋아요 0 | URL
메피님- 오오... 그랬군아. 몰랐어염. 최백호 아저씨는 아는데.

이매지님- 앗! 이매지님은 도라지 위스키를 아신다! 요즘 그렇죠? 할랑하게 살다보면 막 치이게 되니 긴장을 안 할 수가 없어요. 독서실은 참 외로운 곳인데... 그래도 열심히 하셔요.^^

웬디양님- 한 술 더 뜨네. 미쵸미쵸! ㅋㅋ

깐따삐야 2008-01-29 00:47   좋아요 0 | URL
살청님- 어디서 구라를! 그것도 재미도 없는 구라를? =333

깐따삐야 2008-01-29 01:02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저는 낭만고양이로 응수하리다요!

웽스북스 2008-01-29 01:36   좋아요 0 | URL
그럼 난 낭랑18세를 개사한 낭만 29세? 막이러고 ㅋㅋㅋ

깐따삐야 2008-01-29 01:44   좋아요 0 | URL
아! 정말 맥주 마시면서 노래 땡기고프다. (오... 과거 전력 나온다. ㅋㅋ)

Mephistopheles 2008-01-29 01:57   좋아요 0 | URL
사실 여기서 저처럼 구슬프게 "낭만에 대하여"를 부를 사람은 아마도 없을 껍니다.=3=3=3=3

마노아 2008-01-29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 때 국군장병 아저씨(!)께 위문편지 쓰고 답장을 받았는데, 다시 답장 보내면서 윤동주의 '별헤는 밤'을 써서 보냈어요. 그랬더니 더 이상 답장이 안 왔어요. 상처였다구요. 흑....ㅜ.ㅜ

깐따삐야 2008-01-29 01:26   좋아요 0 | URL
시만 보내지 마시고 사진을 함께 동봉하셨으면 당근 답장 받으셨을텐뎅~ ^^
별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있었나 보네요. 어릴 때 딱지 놀이를 하다가 별 갯수가 모자라서 가방을 들어줘야 했다던가 하는... ㅋㅋ

깐따삐야 2008-01-29 01:37   좋아요 0 | URL
우앗! '국인 위문편지'란 제목만 빼곤 넘흐 좋아요오! ㅋㅋㅋㅋ


깐따삐야 2008-01-29 01:44   좋아요 0 | URL
군대 안 다녀오셨어요? 어쩐지... 중얼중얼...

깐따삐야 2008-01-29 01:51   좋아요 0 | URL
하긴 제가 나라였어도 살청님은 그냥 집으로 보내드렸을 것 같아요. 이거야 원. 국민들이 발 뻗고 잠을 잘 수가 있나. ㅋㅋㅋㅋ

순오기 2008-01-29 01:54   좋아요 0 | URL
ㅎㅎ 난, 위문편지에 모윤숙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라는 시를 인용했는데, 담임샘이 부르시더니 고치라고 했어요~ㅎㅎㅎ그때 난, 정말 순수했었나봐! ㅋㅋㅋ
데미안, 독일인의 사랑을 읽던 그 시절이 좋았어요.ㅠㅠ

깐따삐야 2008-01-29 01:57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순오기님 덕분에 야밤에 찰리 브라운 포즈로 확 얼굴 제껴가며 웃었습니당. (독일인의 사랑은 가장 아름다운 책 중의 하나에요.^^)

가만 보니 사진이 우째 아오지 탄광을 배경으로 찍으신 것 같아요. 컴컴허니... ㅋ


Mephistopheles 2008-01-29 01:58   좋아요 0 | URL
군대는 저도 안갔습니다..신검받으러 갔더니 군의관이 늬 눈은 장식이냐..니가 군에 가면 분명 아군 쏴버릴꺼다..옛다 면제...라더군요.
(살청님의 경우...북에서 귀순용사도 전방에 세우는구나 할지도 모릅니다..)

Mephistopheles 2008-01-29 02:02   좋아요 0 | URL
특수임무...는 제가 90년대 중반 여후배들에게 잘 써먹었던 수법이였습니다.
선배는 왜 군대 안갔어요.../미안해 나 내년까지 그 이유 말못해..라면서..키득키득..

마노아 2008-01-29 02:21   좋아요 0 | URL
문제는 제가 증명사진도 같이 보냈다는 거죠. 사진 보고서 급 실망했나봐요..;;;;

깐따삐야 2008-01-29 02:27   좋아요 0 | URL
아, 정말 야양청스 남성멤버들 확 갈아버리고 싶으당. ㅠㅠ

교복 입고 찍은 사진이라 그래요. 비키니였어야 하는뎅. ㅋㅋ

Mephistopheles 2008-01-29 02:36   좋아요 0 | URL
깐따삐야님..무섭습니다...믹서기로 갈다니..한니발 렙터도 아니고...

깐따삐야 2008-01-29 02:44   좋아요 0 | URL
살청님- 그냥 솔직히 졸리니까 잔다고 하세요. 사람이 말이야...

메피님- '갈아만든 야양청스' 해갖구 방문판매 들어가야겠당. ㅋㅋ

깐따삐야 2008-01-29 03:07   좋아요 0 | URL
다리도 안 모으고 졸고 있었던 거 다 알거든요? 흥!

웽스북스 2008-01-29 09:46   좋아요 0 | URL
깐따님 우리 어떻게, 공개모집 공고라도 내볼까요? ㅋㅋ

Mephistopheles 2008-01-29 11:12   좋아요 0 | URL
교주가 더 이상 남성교인모집을 금지시킨걸로 알고 있습니다. 여성이라면 언제나 환영이라고도 합니다.

깐따삐야 2008-01-29 19:28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 남자 없던데. 남자의 탈을 쓴 여자들만 우글거리던데. -_-
아무래도 그래24나 교복문고를 뚫어봐야 할 듯? ㅋㅋ
 

 언젠가 직접 시를 지어드릴 날이 온다면 좋겠지만 지금은 이것으로 대신합니다. 각자 떠오르는 이미지에 따라 퍼뜩 생각나는 시들을 찾아봤어요. 제 마음에 꼬옥 드는 시조를 선물해 주신 살청님께 특별히 감사드려요.^^;

 

For 살청님

나는 이 푸르름이 싫어

- 이성복

봄, 햇빛 오는 쪽으로
모가지 기울이면
눈가에 맺히는 푸르름
나는 파스텔 색으로 오는
이 푸르름이 싫어
고개 흔들어 떨어내네
자꾸자꾸 떨어내다 보면
내 몸 걸친 것 하나 없어
추운 모래밭 인어 같았네

 

For 메피님



- 이수익

한 마리의 새가
공중을 높이 날기 위해서는
바람 속에 부대끼며 뿌려야 할
수많은 열량이 그 가슴에
늘 충전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보라, 나뭇가지 위에 앉은 새들은
노래로써 그들의 평화를 구가하지만
그 조그만 몸의 내부의 장기들은
모터처럼 계속 움직이면서
순간의 非常離陸을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오, 하얀 달걀처럼 따스한 네 몸이 품어야 하는
깃털 속의 슬픈 두근거림이여.

* 非常離陸 : 비상이륙

 

For 웬디양님

날랜 사랑

- 고재종

얼음 풀린 냇가
세찬 여울물 차고 오르는
은피라미떼 보아라
산란기 맞아
얼마나 좋으면
혼인색으로 몸단장까지 하고서
좀더 맑고 푸른 상류로
발딱발딱 배 뒤집어 차고 오르는
저 날씬한 은백의 유탄에
봄햇발 튀는구나

오호, 흐린 세월의 늪 헤쳐
깨끗한 사랑 하나 닦아 세울
날랜 연인아 연인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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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1-28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의 제 상태를 새로 비유한다면..전 닭둘기에요..감량이 필수에요 날기 위해서라면..ㅋㅋ

깐따삐야 2008-01-28 01:25   좋아요 0 | URL
제 눈에 비친 메피님은 항시 비상이륙을 대비하고 있는 한 마리의 육중한 독수리? ㅋㅋ

웽스북스 2008-01-28 01:33   좋아요 0 | URL
전 뛰기 위해서도 감량이 필요한 상태 -_- ㅋㅋ

깐따삐야 2008-01-28 01:35   좋아요 0 | URL
시로만 보면 모래밭 인어인 살청님이 가장 무거워 보이지 않아요?
나 잘했죠? ㅋㅋ

Mephistopheles 2008-01-28 01:50   좋아요 0 | URL
독수리...라니...전 대머리 아니어요.

웽스북스 2008-01-28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살청님 시 정말 잘 어울려요! 내 시보다 더 공감하면서 읽었어요
날랜 사랑보다는 날래 사랑이 어떨까요? ㅋㅋ (날래 사랑하라우! 뭐 이런거? ㅋㅋ)

암튼 깐따삐야님의 세심함이 느껴지는 시선물들!~ 고마워용 (모르고 잘뻔했어요)

깐따삐야 2008-01-28 01:34   좋아요 0 | URL
우리 웬디양님은 은피라미처럼 날렵하게 반짝이는 깨끗한 사람~! ^^

Mephistopheles 2008-01-28 03:01   좋아요 0 | URL
아 글자 두개 바꿈으로써 사랑에 주체사상이 확실히 심어져버리는군요.

깐따삐야 2008-01-28 18:28   좋아요 0 | URL
날래 사랑하자우! -_-a

해적오리 2008-01-28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아양청스교도가 되기 위해선 체력과 더불어 시/시조를 잘 알아야 하는 거군요...흠...점점 더 입교가 어려워보입니다만...해적의 특기가 사이비교도가 되는 거거든요..
저희 회사 사람은 제가 쳔주교 신자라 아는 사람도 있고, 개신교 다닌다 아는 사람도 있고, 절에 다닌다 아는 사람도 있고 다덜 좋을대로 생각하지요...거기다 이젠 아양청스교까지??? 근데 아양청스교가 젤 어려운 거 같아요. ^^;

깐따삐야 2008-01-28 18:26   좋아요 0 | URL
오... 아양청스도 귀여운데요. 내가 닉넴을 깐따삐아로 바꾸면 되는 건가요? ㅋㅋ

이리스 2008-01-29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양이고 야앙이고간에.. 이분들이 정말.. ㅋㅋ 너무들 자알 노신다. 부러워라~

깐따삐야 2008-01-29 01:01   좋아요 0 | URL
감사.^^ 근데... 잘들 논다~ 잘들 놀아~ 로 들려요. 어째. ㅋㅋㅋㅋ

이리스 2008-01-29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부러워서 그러는거에효.. 아하히히호호호옹

깐따삐야 2008-01-29 01:29   좋아요 0 | URL
하긴 무한도전팀 이래로 이렇게 모이기도 힘든 멤버들이에요. 하나같이 2%쯤 결핍된 무리들. ㅋㅋ

순오기 2008-01-29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님, 저 돌아왔어요~ 집으로! ^^
몇년 전 사회교육원에서 고재종시인하테 시강의 들었어요. 저를 '당진댁'이라 부르죠. 부인이 내 중학 2년후배거든요. 아~난 정말 마당발이야! 광주에서 고향후배를 만날줄이야.
어머니독서회에서 하반기에 고재종시인 모셔다 강연 들을 계획 세우고 있답니다.
야양청스교 다섯번째 순5기도 시 한수 주시와용~~~~~~~ㅠㅠ

깐따삐야 2008-01-29 01:49   좋아요 0 | URL
어므낫! 컴백을 와빵 환영합니다아. 순오기님! 제가 고향이 충남 스산이어요. 스산.^^ 그나저나 고재종 시인을 갠적으로 아신단 말여요? 오... 학부 교양국어 시간에 고재종 시인의 시들을 가지고 토론, 발표한 적이 있었어요. 어머니독서회는 어머니가 되어야만 가입 가능하겠지요? ㅠㅠ
우리 순5기님께도 시 한 수 드려야겠어염.(근데 마노아님이랑만 놀아주시궁~)

순오기 2008-01-29 13:40   좋아요 0 | URL
어므낫, 스산이구나 스산~~ (우리 아버지 외가였고, 지금은 제 고모가 살아요. 작년 여름에 다녀왔죠.) 고재종 시인이 저를 잘 알죠~~ㅎㅎㅎ '당진댁'이라면 꺼벅 죽는...지금 광주에 살거든요. 가끔 전화통화도 하는 사이!^^ 예전에 출판기념회에서 그 부부랑 같이 찍은 사진이 있는데, 뒤적뒤적...
어머니독서회 자격요건~~~~~~예비어머니도 받아줄까요? ㅎㅎ
마노님이랑 너무 많이 놀고 왔어요. ㅎㅎ 담엔 청주로 갈가요?~~~~~쑝~~~~~

깐따삐야 2008-01-29 02:23   좋아요 0 | URL
충청도 츠자들이 역시 인간성이 쵝오라니깐요. ㅋㅋ
오옹... '날랜 사랑'이라는 시집을 아주 애호하는 어여쁜(?) 독자가 있다고 좀 전해주세요.^^
재밌으셨겠다. 다음엔 청주에서의 입담을 기대하겠어염.^^

순오기 2008-01-29 13:41   좋아요 0 | URL
흐흐~ 입답하면, 청주의 내 친구 C일보 기자랑 8시간 수다로 밤을 쪼갠 전설이 있지요. 아직 요 시간을 경신하지 못했지만, 깐따님과 함께라면 경신가능할듯...
 


물고기가 뛰노는 달 / 위네바고 족

너구리 달 / 수우 족

홀로 걷는 달 / 체로키 족

기러기가 돌아오는 달 / 오마하 족

삼나무에 꽃바람 부는 달 / 테와 푸에블로 족

새순이 돋는 달 / 키오와 족

( 2月 - 인디언 달력 ) 
 

 새벽 두 시.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차를 한 잔 끓여 마셨다. 남이 써놓은 논문 첫 페이지를 채 읽어내지 못하고 수첩에 내일 할 일들을 적어보았다. 모레는 수강신청을 해야겠구나. 그새 2월이 코앞이구나. 2월, 6월, 11월이 없는 달력을 갖고 싶단 생각을 할 정도로 내가 버거워하는 첫 번째 달. 불을 끄고 도로 침대에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문득 이 시간, 컵라면을 같이 먹어줄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슬리퍼를 찍찍 끌고 집 근처 편의점에 나가서는 컵라면 두 개에 뜨거운 물을 부어놓고 그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다. 유리문 너머로 드문드문 불 켜진 아파트나 인적 없는 거리를 내다보는 동안 적적하고도 아늑한 마음이 되어봤으면. 아무 일도 없는 일요일의 어느 새벽. 편의점과 컵라면과 얼굴 없는 누군가를 그리다가 잠이 들었다. 홀로 걷는 나의 발 아래로는 물고기와 너구리가 뛰놀고, 그러는 사이 먼 하늘 날았던 기러기가 돌아오고 삼나무엔 꽃바람이 불어와 새순이 돋아나려는가 보다. 잠들기 전 꿈꾸는 인디언 달력 속의 2월은 벌써 봄을 준비하는 설렘으로 가득했다.

 고마웠던 것, 서운했던 것들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다가 부지불식간에 정들어버리고 마는 게 사람이란 생각. 어떻게 그 사람이 그럴 수 있지, 라고 섭섭해 하다가도 산에 오르며 딱 다섯 걸음씩만 나를 앞지르며 기다려주는 모습에 마음 한 귀퉁이가 뭉클해지기도 한다. 사람은 죄다 이기적이야, 라고 체념하고 있던 찰나 미지근해질까봐서 생수병을 신문지로 돌돌 말아오는 배려에 쉽게 마음 한 자락을 내주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감정의 시소타기를 몇 차례 거치며 시간의 세례를 입는 동안 당신과 나 사이에 말 없는 공감, 침묵 속의 배려들이 하나, 둘 씩 늘어나고 그러는 사이 조금씩 정이 드는 것이겠지. 과거에는 선명하지 않은 감정에 대해 섣불리 회의적이었고 우울질이 많은 성품 탓에 결국 좋지 않은 쪽으로 판단이 기울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짭짤하고 단단한 껍질 속 담백하고 보드라운 속살처럼 사람 감정의 간장게장스러운 속성에 대해 인정하게 된다. 등을 돌리면서도 마음은 돌리지 못해 아파하고, 마음은 돌아섰지만 등을 보일 수는 없어 갈등하던 순간들 속에서 그토록 마지않았던 선명한 감정 이면의 진짜 내 모습을 본다. 내가 딱 부러지면 부러질수록 딱, 딱,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아프게 잘려나가던 시간들. 어둡고 고요한 숲 속, 나무 삭정이가 꺾여나가는 울림처럼 머릿속과 손끝에 아리게 메아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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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1-27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왕이면 "봄날의 곰..."처럼 버너하고 냄비 들고와 동네 놀이터에서 직접 라면 끓여주는 남자를 만나시길...^^

깐따삐야 2008-01-27 22:54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저는 계란 두 개와 대파를 손에 들고 놀이터로 달려갈 거예욧! ^^

Mephistopheles 2008-01-27 23:46   좋아요 0 | URL
설마 썰지 않은 대파를 들고 나가겠다는 것?

깐따삐야 2008-01-27 23:49   좋아요 0 | URL
도리도리! 소중한 그이 앞에서 손으로 대파를 우악스럽게 찢어대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어요. 이쁘게 썰어서 가지고 갈 거여요. 파송송 계란탁! 므흣.

이게다예요 2008-01-27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의점에서 컵라면 두 개에 뜨거운 물을 부어놓고 그 사람을 기다리는 일은 드라마에서만 나옵디다. 아니 그들은 안 기다려도 우연히 잘 마주치더군요, 쩝. ^^

깐따삐야 2008-01-27 23:27   좋아요 0 | URL
쿵! 저는 적어도 이게다예요님만큼은 맞장구를 쳐주실 줄 알았는데... -_-
근데 새벽 두 시에 편의점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남자는 복면강도일지도? ㅋㅋ

웽스북스 2008-01-28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2월은 28일만 일하고 월급 똑같이 받아서 좋아해요
(방학 있는 선생님 앞에서 자랑 하고는 ;; -_-)

깐따삐야 2008-01-28 00:27   좋아요 0 | URL
오... 그러고보니 그러네요? 이래서 내가 엄마한테 혼나는 거예욤. -_-
 

  동료 선생님이 부친상을 당하셔서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알고 보니 얼마 전 공부를 마치시고 돌아온 N선생님이 우리 동네로 이사를 하셔서 함께 갈 수 있었다. 거의 2년 만에 다시 보는 건데 처음 발령 받고 같은 동네에서 3년을 지낸데다 평소 언니 노릇을 잘해주셨던 분이라서 떨어져 지낸 시간이 무색할 만큼 반가웠다. 워낙에 공부 욕심이 남달랐던 분이었고 쉼 없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던 분이라 내겐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는데 다소 헬쓱해지긴 했어도 눈빛에선 여유가 느껴졌다.

 오가는 길이 꽤 멀어서 선생님과 그간에 모아두었던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2년이라는 긴 시간, 땅 넓은 미국이니만큼 추억도 많을 것이었다. 재밌는 것은 우리가 아무리 공부나 학교에 관련된 이야길 나눠도 뒷좌석에 타고 계셨던 N선생님의 어머니는 오로지 딸내미의 결혼에 대한 관심으로 쏠려 계신다는 것. “아이구~ 서른 넘긴 딸이 둘인데 남자를 어디 가서 사올 수 있는 거면 내가 사오기라도 할텐데. 선생님도 가셔야 할 것 아니에요?” “크크큭! 어머님도 걱정이 많으시겠어요. 근데 이 동네는 약을 쳤는지 당최 남자라곤 씨가 말랐답니다.” N선생님과 어머니는 파안대소를 하셨지만 올해 쥐띠인 N선생님이 처음에 미국으로 떠난다고 했을 때 우리는 은근히 기대했더랬다. 인연을 만나려고 태평양을 건너는 게야. 고럼고럼.

 그러나 우리의 N선생님은 우리의 기대를 배반한 채 빈 손(?)으로 돌아오셨다. 대신에 어학에 대한 실력과 열정만큼은 머리와 가슴 속에 꽉 채워오셨다.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시고도 다시 우리 대학원에 오고 싶다는 의사를 비치셨다. 여러 가지 시스템 상 낡아빠지고 시대착오적인 부분은 마음에 안 들지만 교사이니만큼 배울 수 있고 얻을 수 있는 부분이 꼭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문학 관련 수업만 편식했고, 문학 담당 교수님이 지도교수님이고, 그러나 아직 논문 주제는 삼천포로 기약 없는 여행을 떠나버린 나의 솔직한 현실을 이야기했다. 원체 자기가 좋아하는 것 아니면 관심도, 욕심도 없는 나이기에 N선생님은 별 얘기를 안 하셨지만 교육 쪽으로 논문을 쓰지 않으리라는 것에 대해선 살짝 의아해하시는 것 같았다. 나의 불투명한 정체와 애매모호한 정체성에 대해선 일찍이 소문이 자자했기 때문에 속으론 아마 그러려니 하셨을 듯.

 장례식장에 도착해 다 큰 J선생님이 훌쩍이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안 좋았다. 너무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거라서 다들 경황이 없어보였다. 직원체육 날이면 직접 순대도 만드시고 고기도 구워주시던, 참으로 홍익인간 오지랖을 널리 실천하시던 좋은 분이신데 눈동자가 빨개져서 울먹이시는 게 생소하고도 안쓰러웠다. 다 자란 어른 남자도 우는구나. 상주 노릇이 참 힘들다는데 덩치 큰 우리 오빠는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절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우리 부모님도 별 일 없이 건강하셔야 할 텐데. 그간 많은 장례식장을 다녀봤지만 젊은 남자가 우는 모습을 보니 잠깐이나마 온갖 상념이 다 들더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N선생님과의 수다로 많은 칼로리를 소모시킨 나는 참으로 맛나게도 밥과 국과 떡을 먹어치웠다. 우리 곁에서 사이다 반 컵 이외에는 아무것도 들지 못하던 J선생님을 보니 왠지 조금 죄송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W선생님도 합류하셨다. 말 붙이기 힘든 인상이라 아이들도 되게 무서워하곤 했는데 나는 대체로 그런 분들을 보면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기가 힘들다. 나하고 상대해봤자 본전도 못 건진다고 추켜세워 주시지만 사실은 ‘말 많은 곰과’에 속하는 나를 마냥 봐주시기만 하는 분이다. W선생님은 ‘말 없는 곰과’에 속하기 때문에 여우와는 잘 맞지 않는 반면 자신과는 달리 조잘대는 곰들에 대해 호기심이 많으시다. 선생님은 정말 맛있는 순대를 사주시겠다고 했고 나는 그 정말 맛있다는 순대를 위해 아침부터 위를 비워놓고 있겠노라고, N선생님의 연수가 끝남과 동시에 연락을 드리기로 했다. 그다지 잦은 이동이 없는데다 서로 알음알음하다 보면 각종 행사마다 어차피 마주칠 수밖에 없는 지역 특성 때문에 마냥 까불어대는 나의 이미지도 쇄신이 필요할 때가 오리라. W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옮겨 다니다 보면 웬수댕이를 만나게 되는 곤란한 경우도 생긴다고. 왜 아니겠는가. 나는 아니어도 상대는 나를 보는 순간 치를 떨지도 모르는데. 아휴. 차카게 살아야지.

 J선생님의 눈물은 아직도 눈에 선하지만 여럿이 일부러 모이기 힘든 상황에서 오늘 보고 싶은 얼굴들을 봐서 반가웠다. 혼자 뚝 떨어져 나와 있는 상황이라서 들려오는 학교의 현실이 다소 낯설 때도 있기에 일 년 후 돌아가면 과연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까, 조금 겁이 나기도 했다. 엄마는 나머지는 하늘에 맡기고 네 마음대로 되는 부분만 신경 쓰고 노력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참 일리가 있단 생각이 들면서도 요놈의 잔망스런 성품 탓에 오늘도 심란하구나. 다만 그런 생각은 든다. N선생님처럼 성실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 것. 어머니는 선생님의 결혼 문제로 걱정하시지만 책임감도 강하고 두루두루 인정받는 딸에 대해 그 자부심 또한 남다르시리라. 그리고 W선생님처럼 때로는 말 없는 곰이 될 필요도 있다는 것. 나의 좋은 면을 보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사람들도 많지만 세상이 꼭 그렇지만은 않을 테니까. 아직 여러모로 미성숙한 나에게 선배 선생님들은 다양한 면에서 훌륭한 거울이 된다. 나머지 몫은 나에게 달린 것이고 영 자신은 없지만 언젠가는 엄마의 지청구를 여유 있는 웃음으로 갈무리할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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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1-26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똑같이 태평양을 건넜지만 인연을 만나 눌러 앉아버린 우리 누나와는 정반대시군요..^^
2.언젠간 그 곰가죽 등쪽에 지퍼자국이 생기며 주아악 얼었을 땐 손으로 입을 가리고 킥킥 웃는 여우를 목격할 날이 있을까요??
3.어쩌면 그럴 일(2반)은 절대 불가능하다에 200원을 걸고 싶어진다는...=3=3=3=3

깐따삐야 2008-01-27 00:06   좋아요 0 | URL
1. 아... 그러셨군요! N선생님도 아예 그러시는 것도 나쁘진 않았으련만.
2. 헉!! 메피님이 그렇다는 말씀이지요? ㅋㅋ
3. 쓰면서도 자신은 없었어요. 그래서 '될 것이다'를 '되었으면 참 좋겠다'로 바꿨어요. 이제 시원하십니까? -_-

Mephistopheles 2008-01-27 00:24   좋아요 0 | URL
생식을 하며 지리산 한달 특훈을 거치면 곰가죽을 뒤집어 쓴 여우로 환골탈퇴할지도 모릅니다..^^

깐따삐야 2008-01-27 00:33   좋아요 0 | URL
생식에 지리산이라니. 그냥 우리 말 많은 곰탱이로 삽시다! ㅋㅋ

웽스북스 2008-01-27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우리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는 R도 남자 구해오라고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데

깐따삐야 2008-01-27 00:08   좋아요 0 | URL
그러게. 거기 눌러 좀 살아주면 우리가 여행도 가보고 말이지요. ㅋㅋ

Mephistopheles 2008-01-27 11:57   좋아요 0 | URL
그럼...이탈리아로 유학을 가야 하는데...

비로그인 2008-01-27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하^^ 깐따비야님하고 메피님때문에 오랜만에 웃어봅니다. 크크 ^^

깐따삐야 2008-01-27 15:54   좋아요 0 | URL
염불보다 잿밥에 더 관심 많은 야양청스입니당. 호호.^^
 

#

 학부 시절, 희곡을 가르치셨던 교수님은 본인의 작달막한 신장 때문인지 너무나도 인간의 내실을 강조, 또 강조하셨기에 더욱더 그 작달막한 키가 애처로워 보였던 분이었다.

 그냥 너털웃음이라도 지으면서 기왕이면 다홍치마,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 라고 가증을 떨었다면 비교적 순진했던 나는 그 분의 겉모습 어디에서라도 용케 서너 가지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으리라. 여하튼 그 분의 사랑공식은 이러했다. 

 Like + @

 하지만 그 플러스알파의 정체는 제각기 다르거나,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옳다. 나는 피스타치오아몬드와 윤대녕의 단편들을 좋아하지만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은 그것들과는 비할 데 없이 특별한 것이다. 알파 속에 그의 자상한 미소라든가, 솔직한 말투라든가, 부드러운 성정... 갖가지 것을 대입시켜 보지만 역시 하나로는 부족해. 뭔가 총체적인 것이다. +@의 정체는. 그의 주변을 에두르고 있는 일종의 분위기나 이미지, 아우라일수도 있겠지.


#

안느 소피의 언행은 예측이 불가능했다.
단 하나, 내가 그녀에게서 예상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면, 그것은 그녀가 나를 데리고 나가 함께 밤을 보내고 나면 새벽마다 자기의 가장 소중한 소망을 밝히곤 한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밝힌 가장 소중한 소망은 동네 아이들을 위해 잼을 만들면서 시간을 보내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 장 자끄 상뻬, ‘속 깊은 이성 친구’ 중에서 

  종이의 질이 좋으면서, 삽화가 많고, 두께가 얇은 책은 잘 구입하지 않는 편이다. 속 빈 강정이라는 편견 때문일 거다. 그런데 ‘속 깊은 이성 친구’는 저 세 가지 조건을 다 갖추고 있지만 서점에 서서 아주 재미있게 끝까지 다 읽고 난 다음 누군가가 생각나서 선물을 할까 하고 샀었다. 이 책을 받아보았던 커플은 몇 년 전 결혼을 해서 조용히 살고 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보통의 연인들이 겪는 몇 차례의 우여곡절을 치렀다. 전투와 휴전을 수없이 반복하던 그들이 언제쯤부터인가, 적당히 서로를 내버려두고 적당히 서로를 참견하게 되더니 결국은 조용하고 의뭉스럽게도 혼사를 치러냈다. 당시의 나는 두둑한 용돈을 받게 되어 그들이 결혼한 것이 마냥 기뻤다.

 나만이 진실에 목말라 있다는 것은 오만인 것 같다. 누구나 상대의 작은 변화에 놀라워하고 신실한 마음 씀씀이에 기뻐할 줄 안다. 단지 사람이란 너무나 약해서 상대가 나보다 더 의지가 강하다면, 하고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뭐든 '한결같이' '변함없는' 것이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것 대신 넘겨짚고, 궁리하고, 아파하고, 절망한다. 결국 감정의 파도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에 지쳐 아무것도 뜨겁고 선명하게 느낄 수 없게 되면, 이젠 늙었다고 선포하거나 원래 자신은 냉정한 인간이었음을 깨닫는 척 한다. 정직해질 자신이 없는 것이다. 간단한 결론에 비해 언제나 과정 중에 궁리했던 리스트가 훨씬 더 장황하기 마련이고.

 궁금하면 물어볼 것. 왜 그래? 뭘 바라지? 사심 없이 똑바로 묻고, 돌아오는 대답에 잡념의 티를 얹지 말 것. 성실하고 정직하게 사랑을 하는 사람은 포즈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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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1-26 0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 자끄 상뼤라면.."꼬마 니꼴라" 그림 그린 사람과 동일인물이군요..
글도 썼구나...글도..

Mephistopheles 2008-01-26 02:32   좋아요 0 | URL
어느 분이 이 이미지가 어쩌며 저와 가장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그 댓글을 보고 들켰다..했다죠..ㅋㅋ

깐따삐야 2008-01-26 02:33   좋아요 0 | URL
그쵸.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오래된 책인데 가끔씩 꺼내 읽어요.
메피님 이미지는 음치소녀가 눈 감고 계~속 발성연습하는 것 같아요. ㅋㅋ

Mephistopheles 2008-01-26 02:36   좋아요 0 | URL
으흐흐..저 애니를 본 사람들은 저 표정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알 껍니다..ㅋㅋㅋㅋㅋㅋ 만화영화 제목은 "정글은 언제나 맑은 뒤 흐림" 실체를 확인해 BOA요..ㅋㅋ

Mephistopheles 2008-01-26 02:56   좋아요 0 | URL
프로필 올라갑니다..
가구라(神楽 - 카구라)
11월 3일생, 155cm, 40kg. 나이는 13에서 14세 정도.
히로인. 우주 최강의 전투 종족 중 하나인 "야토"족의 생존자.
중국인 같은 느낌이 나며 어미에 "~해"를 붙이는 버릇이 있다.
야토족의 특성 때문에 햇빛에 약해 항상 양산을 쓰고 다니며, 그래서 드물게 뽀얀 피부.
뽀얀 피부에 귀여운 외모로 겉만 보면 귀엽기 짝이 없는 미소녀지만,
정작 하는 짓은 깡패. 양산 끝에는 총이 내장돼 있고 어마어마한 괴력을 자랑한다.

다시마 초절임을 광적으로 좋아하며 긴토키 말마따나 "대형 위장 봉지"
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식욕을 가졌다.
그 식욕은 fate의 세이버가 한 수 접고 넘어갈 정도...

오 마이 갓........푸하하하핫

깐따삐야 2008-01-26 02:58   좋아요 0 | URL
고 녀석이 왜 저한테 고따구 별명을 지어줬는지 납득이 간다는. -_-
납득이 가지 말아야 하는데 굉장히 납득이 가고 난리라서 황당하네염.

순오기 2008-01-26 06:30   좋아요 0 | URL
장 자크 상뻬는 우리 애들이랑 저랑 엄청 줗아해요. 니콜라 시리즈는 정말 재미있죠? ㅋㅋㅋ 돌아온 니콜라는 한 수 더 뜨고요!
깐따님 별명 묻는 항목에 나온 '가구라'가 무언지 모른다고 다른 걸 골랐었는데, 이런 거였군요. 감솨~~~~^^

웽스북스 2008-01-26 22:16   좋아요 0 | URL
흐흐 가구라....^_^
그러니까 우리 깐따님이 미소녀이신거죠?

흠흠, 실은 저 '손예진' 검증하기 위해서
깐따님 사진 찾아서 막 이리 훑어보고 저리 훑어보고 했었어요
저 그 문제 맞힌 거 알죠? ㅋㅋ

깐따삐야 2008-01-26 23:41   좋아요 0 | URL
식성으로 볼 때 米(쌀 미) 소녀 아닐까나. -_-

Mephistopheles 2008-01-26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댓글을 못 볼줄 알았죠 깐따삐야님...크크크크

깐따삐야 2008-01-26 02:59   좋아요 0 | URL
주무시러 간 줄 알고 괜히 '가구라'인 것만 한번 더 상기시킬까봐 잽싸게 삭제조치 했는데...이론이론. 그래도 자아성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해요. -_-

Mephistopheles 2008-01-26 03:07   좋아요 0 | URL
그래도 미소녀라잖아요...이미지를 보니 미소녀 맞긴 하더군요..
전 내일의 여유 때문에 좀 늦게 잘 예정입니다. 4시에도 깨어있을 듯..

깐따삐야 2008-01-26 03:12   좋아요 0 | URL
미소녀...-_-a 40킬로그램은 완전 부럽네요.
메피님은 항상 긴장모드세요? 체력이에요? 정신력이에요? 대단하셔. 증말.

웽스북스 2008-01-26 22:16   좋아요 0 | URL
체력이에요 정신력이에요? 22222

Mephistopheles 2008-01-27 00:02   좋아요 0 | URL
"다정도 병인양하여 잠못들어 하노라.." 이게 딱 접니다.

치니 2008-01-26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바야흐로 깐따삐야님이 포즈에 신경쓰지 않고 사랑해 줄 그이만 나타나면 되는군요. 히힛.

웽스북스 2008-01-26 22:17   좋아요 0 | URL
내가 남자였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 깐따삐야님을 꼬셨을텐데 말이죠 ㅋㅋㅋㅋ

깐따삐야 2008-01-26 23:44   좋아요 0 | URL
치니님- 지금 우리 그이 말씀하시는 거여요? 어므낫. ㅋㅋ

웬디양님- 아휴, 왜 여자로 태어난 거여요오? 근데 말이지요. 나 꼬시는 데에는 사실 그렇게 수단과 방법이 많이 필요하지 않아요. -_-a

비로그인 2008-01-26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많은 댓글 읽지 않게 미리 와서 댓글달고 가는거였는데요.

순오기 2008-01-26 10:05   좋아요 0 | URL
ㅎㅎㅎ 승연님, 난 댓글 읽는게 더 재밌던데....깐따님한테 혼날라 튀어야지 서울로!

웽스북스 2008-01-26 22:16   좋아요 0 | URL
저도 댓글 정독했어요 ㅋㅋ

깐따삐야 2008-01-26 23:45   좋아요 0 | URL
승연님- 아직 잘 모르셔서 그렇지 이건 몇 개 안 되는 거여요. ㅋㅋ

순오기님- 흥! 너무하세욧.

웬디양님- 역시 복습도 잘하는 야양청스.^^

오다가다 2008-01-26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다가다 님의 글을 자주 읽고 많이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최근 이명박 발 일명 '영어교육사태'의 심각한 뉴스를 접하자니,
갑자기 현직 영어교사이시고(지금은 잠시 중단 중이더라도) 늘 균형잡힌 세계관을 견지하고 계시는 님의 의견이 궁금해졌습니다. 새 정권은 원어민교사의 충당은 정부가 모두 책임을 질테니 무조건 '나를따르라'라고 밀어부칠 모양인데, 원어민교사의 효과 그리고 영어로하는 영어수업의 가능성, 실상, 예상 등등에 대하여 님의 생생한 의견이 담긴 페이퍼를 하나 부탁해도 될런지요. 저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급박한 현실의 상황판단에 소중하게 역할하리라 감히 생각하고 기대가 돼서 드리는 부탁입니다. 실례가 됐더라도 너그러이 용서하시길..

깐따삐야 2008-01-26 23:47   좋아요 0 | URL
실례라니요.. 이명박 당선인 및 인수위원회가 백년대계라는 교육문제를 청계천 복원사업 정도로 여기는 것 같다는 어떤 선생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영어교사가 보다 실제적인 영어구사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 영어 수업을 영어로 진행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동의합니다. 여러 가지 여건 상 몰아붙이기 식으로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바람직한 원칙이라면 시일을 두고서라도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야겠지요.

한편으론 현재 대한민국 공무원으로서 어떤 의견을 갖고 있다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가에 대해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때일수록 더욱 기본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단 공부할 수 있는 혜택을 얻었으니 열심히 공부해야 할 것이고 보다 자연스런 회화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나름의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조삼모사로 바뀌는 교육정책이 어제 오늘 일도 아닌 바. 교사로서 저 스스로에 대한 신뢰마저 흔들린다면 더욱 부끄러울 것 같기도 하구요.

충분한 답변이 되어드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들러주시고 좋은 말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Mephistopheles 2008-01-27 00:07   좋아요 0 | URL
차기정부 인수위들의 행동을 보면....선두따라 우르르 몰려다니는 레밍이라는 쥐떼가 생각난다는...

chika 2008-01-26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뜬금없이 못참고..)메피스토님, 저 정글은 언제나 맑음(은 뒤 흐림,이 원제예요? 전 맑음까지로만 알았는데요;;;) 보고 싶어 죽겠는데 도무지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ㅠ.ㅠ
울 직원이 대따 엽기적이고 재밌다고 하던데...흑~
** 깐따삐야님, 이따구 댓글만 달고 가서 죄송하오옵~ 너그러이 이해해주시오오옵~ ^^;;;

깐따삐야 2008-01-26 23:48   좋아요 0 | URL
죄송하긴요. 저는 '언제나 맑음'입니당. 바보 같으다. ㅋㅋ

Mephistopheles 2008-01-27 00:08   좋아요 0 | URL
맑은 뒤 흐림이 맞습니다. 주인공 하레 가 맑음이고 쿠우가 흐림이니까요..
하레(파란머리 남자주인공) 쿠우(분홍머리 여자주인공) 대따 엽기적은 아니고요...존X 엽기적입니다..암튼 후딱 깨요...^^ 주제가도 퐌따스틱 하고요..근데 치카님...여기 깐따삐야님 서재에요..ㅋㅋㅋㅋ

다락방 2008-01-26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나는 언어의 신뢰성이라는 문제에 대해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된다. 낸시를 만났을 때, 나는 그녀에게 홀딱 반해서 이런 말을 되뇌곤 했다. <이런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 그녀가 가혹하다 할 만큼 홀연히 나를 버리고 떠났을 때, 나는 <이런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라고 되뇌다가, 예전에도 내가 그와 똑같은 말을 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장 자끄 상뻬,『속 깊은 이성친구』中(p.34)-

깐따삐야 2008-01-26 23:49   좋아요 0 | URL
저도 참 공감했던 페이지에요. 콩꺼풀이 벗겨진 이후, 또는 욕심이 더 많아진 이후, 처음의 그와 지금의 그 사이에서 갸우뚱해지던.^^;

라로 2008-01-26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 읽다가 댓글 달아야지 하던 내용을 잊어버렸따요~.>.<

깐따삐야 2008-01-26 23:50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저도 가끔 그런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