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선생님이 부친상을 당하셔서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알고 보니 얼마 전 공부를 마치시고 돌아온 N선생님이 우리 동네로 이사를 하셔서 함께 갈 수 있었다. 거의 2년 만에 다시 보는 건데 처음 발령 받고 같은 동네에서 3년을 지낸데다 평소 언니 노릇을 잘해주셨던 분이라서 떨어져 지낸 시간이 무색할 만큼 반가웠다. 워낙에 공부 욕심이 남달랐던 분이었고 쉼 없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던 분이라 내겐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는데 다소 헬쓱해지긴 했어도 눈빛에선 여유가 느껴졌다.

 오가는 길이 꽤 멀어서 선생님과 그간에 모아두었던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2년이라는 긴 시간, 땅 넓은 미국이니만큼 추억도 많을 것이었다. 재밌는 것은 우리가 아무리 공부나 학교에 관련된 이야길 나눠도 뒷좌석에 타고 계셨던 N선생님의 어머니는 오로지 딸내미의 결혼에 대한 관심으로 쏠려 계신다는 것. “아이구~ 서른 넘긴 딸이 둘인데 남자를 어디 가서 사올 수 있는 거면 내가 사오기라도 할텐데. 선생님도 가셔야 할 것 아니에요?” “크크큭! 어머님도 걱정이 많으시겠어요. 근데 이 동네는 약을 쳤는지 당최 남자라곤 씨가 말랐답니다.” N선생님과 어머니는 파안대소를 하셨지만 올해 쥐띠인 N선생님이 처음에 미국으로 떠난다고 했을 때 우리는 은근히 기대했더랬다. 인연을 만나려고 태평양을 건너는 게야. 고럼고럼.

 그러나 우리의 N선생님은 우리의 기대를 배반한 채 빈 손(?)으로 돌아오셨다. 대신에 어학에 대한 실력과 열정만큼은 머리와 가슴 속에 꽉 채워오셨다.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시고도 다시 우리 대학원에 오고 싶다는 의사를 비치셨다. 여러 가지 시스템 상 낡아빠지고 시대착오적인 부분은 마음에 안 들지만 교사이니만큼 배울 수 있고 얻을 수 있는 부분이 꼭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문학 관련 수업만 편식했고, 문학 담당 교수님이 지도교수님이고, 그러나 아직 논문 주제는 삼천포로 기약 없는 여행을 떠나버린 나의 솔직한 현실을 이야기했다. 원체 자기가 좋아하는 것 아니면 관심도, 욕심도 없는 나이기에 N선생님은 별 얘기를 안 하셨지만 교육 쪽으로 논문을 쓰지 않으리라는 것에 대해선 살짝 의아해하시는 것 같았다. 나의 불투명한 정체와 애매모호한 정체성에 대해선 일찍이 소문이 자자했기 때문에 속으론 아마 그러려니 하셨을 듯.

 장례식장에 도착해 다 큰 J선생님이 훌쩍이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안 좋았다. 너무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거라서 다들 경황이 없어보였다. 직원체육 날이면 직접 순대도 만드시고 고기도 구워주시던, 참으로 홍익인간 오지랖을 널리 실천하시던 좋은 분이신데 눈동자가 빨개져서 울먹이시는 게 생소하고도 안쓰러웠다. 다 자란 어른 남자도 우는구나. 상주 노릇이 참 힘들다는데 덩치 큰 우리 오빠는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절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우리 부모님도 별 일 없이 건강하셔야 할 텐데. 그간 많은 장례식장을 다녀봤지만 젊은 남자가 우는 모습을 보니 잠깐이나마 온갖 상념이 다 들더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N선생님과의 수다로 많은 칼로리를 소모시킨 나는 참으로 맛나게도 밥과 국과 떡을 먹어치웠다. 우리 곁에서 사이다 반 컵 이외에는 아무것도 들지 못하던 J선생님을 보니 왠지 조금 죄송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W선생님도 합류하셨다. 말 붙이기 힘든 인상이라 아이들도 되게 무서워하곤 했는데 나는 대체로 그런 분들을 보면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기가 힘들다. 나하고 상대해봤자 본전도 못 건진다고 추켜세워 주시지만 사실은 ‘말 많은 곰과’에 속하는 나를 마냥 봐주시기만 하는 분이다. W선생님은 ‘말 없는 곰과’에 속하기 때문에 여우와는 잘 맞지 않는 반면 자신과는 달리 조잘대는 곰들에 대해 호기심이 많으시다. 선생님은 정말 맛있는 순대를 사주시겠다고 했고 나는 그 정말 맛있다는 순대를 위해 아침부터 위를 비워놓고 있겠노라고, N선생님의 연수가 끝남과 동시에 연락을 드리기로 했다. 그다지 잦은 이동이 없는데다 서로 알음알음하다 보면 각종 행사마다 어차피 마주칠 수밖에 없는 지역 특성 때문에 마냥 까불어대는 나의 이미지도 쇄신이 필요할 때가 오리라. W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옮겨 다니다 보면 웬수댕이를 만나게 되는 곤란한 경우도 생긴다고. 왜 아니겠는가. 나는 아니어도 상대는 나를 보는 순간 치를 떨지도 모르는데. 아휴. 차카게 살아야지.

 J선생님의 눈물은 아직도 눈에 선하지만 여럿이 일부러 모이기 힘든 상황에서 오늘 보고 싶은 얼굴들을 봐서 반가웠다. 혼자 뚝 떨어져 나와 있는 상황이라서 들려오는 학교의 현실이 다소 낯설 때도 있기에 일 년 후 돌아가면 과연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까, 조금 겁이 나기도 했다. 엄마는 나머지는 하늘에 맡기고 네 마음대로 되는 부분만 신경 쓰고 노력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참 일리가 있단 생각이 들면서도 요놈의 잔망스런 성품 탓에 오늘도 심란하구나. 다만 그런 생각은 든다. N선생님처럼 성실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 것. 어머니는 선생님의 결혼 문제로 걱정하시지만 책임감도 강하고 두루두루 인정받는 딸에 대해 그 자부심 또한 남다르시리라. 그리고 W선생님처럼 때로는 말 없는 곰이 될 필요도 있다는 것. 나의 좋은 면을 보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사람들도 많지만 세상이 꼭 그렇지만은 않을 테니까. 아직 여러모로 미성숙한 나에게 선배 선생님들은 다양한 면에서 훌륭한 거울이 된다. 나머지 몫은 나에게 달린 것이고 영 자신은 없지만 언젠가는 엄마의 지청구를 여유 있는 웃음으로 갈무리할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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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1-26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똑같이 태평양을 건넜지만 인연을 만나 눌러 앉아버린 우리 누나와는 정반대시군요..^^
2.언젠간 그 곰가죽 등쪽에 지퍼자국이 생기며 주아악 얼었을 땐 손으로 입을 가리고 킥킥 웃는 여우를 목격할 날이 있을까요??
3.어쩌면 그럴 일(2반)은 절대 불가능하다에 200원을 걸고 싶어진다는...=3=3=3=3

깐따삐야 2008-01-27 00:06   좋아요 0 | URL
1. 아... 그러셨군요! N선생님도 아예 그러시는 것도 나쁘진 않았으련만.
2. 헉!! 메피님이 그렇다는 말씀이지요? ㅋㅋ
3. 쓰면서도 자신은 없었어요. 그래서 '될 것이다'를 '되었으면 참 좋겠다'로 바꿨어요. 이제 시원하십니까? -_-

Mephistopheles 2008-01-27 00:24   좋아요 0 | URL
생식을 하며 지리산 한달 특훈을 거치면 곰가죽을 뒤집어 쓴 여우로 환골탈퇴할지도 모릅니다..^^

깐따삐야 2008-01-27 00:33   좋아요 0 | URL
생식에 지리산이라니. 그냥 우리 말 많은 곰탱이로 삽시다! ㅋㅋ

웽스북스 2008-01-27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우리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는 R도 남자 구해오라고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데

깐따삐야 2008-01-27 00:08   좋아요 0 | URL
그러게. 거기 눌러 좀 살아주면 우리가 여행도 가보고 말이지요. ㅋㅋ

Mephistopheles 2008-01-27 11:57   좋아요 0 | URL
그럼...이탈리아로 유학을 가야 하는데...

비로그인 2008-01-27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하^^ 깐따비야님하고 메피님때문에 오랜만에 웃어봅니다. 크크 ^^

깐따삐야 2008-01-27 15:54   좋아요 0 | URL
염불보다 잿밥에 더 관심 많은 야양청스입니당. 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