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가 뛰노는 달 / 위네바고 족

너구리 달 / 수우 족

홀로 걷는 달 / 체로키 족

기러기가 돌아오는 달 / 오마하 족

삼나무에 꽃바람 부는 달 / 테와 푸에블로 족

새순이 돋는 달 / 키오와 족

( 2月 - 인디언 달력 ) 
 

 새벽 두 시.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차를 한 잔 끓여 마셨다. 남이 써놓은 논문 첫 페이지를 채 읽어내지 못하고 수첩에 내일 할 일들을 적어보았다. 모레는 수강신청을 해야겠구나. 그새 2월이 코앞이구나. 2월, 6월, 11월이 없는 달력을 갖고 싶단 생각을 할 정도로 내가 버거워하는 첫 번째 달. 불을 끄고 도로 침대에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문득 이 시간, 컵라면을 같이 먹어줄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슬리퍼를 찍찍 끌고 집 근처 편의점에 나가서는 컵라면 두 개에 뜨거운 물을 부어놓고 그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다. 유리문 너머로 드문드문 불 켜진 아파트나 인적 없는 거리를 내다보는 동안 적적하고도 아늑한 마음이 되어봤으면. 아무 일도 없는 일요일의 어느 새벽. 편의점과 컵라면과 얼굴 없는 누군가를 그리다가 잠이 들었다. 홀로 걷는 나의 발 아래로는 물고기와 너구리가 뛰놀고, 그러는 사이 먼 하늘 날았던 기러기가 돌아오고 삼나무엔 꽃바람이 불어와 새순이 돋아나려는가 보다. 잠들기 전 꿈꾸는 인디언 달력 속의 2월은 벌써 봄을 준비하는 설렘으로 가득했다.

 고마웠던 것, 서운했던 것들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다가 부지불식간에 정들어버리고 마는 게 사람이란 생각. 어떻게 그 사람이 그럴 수 있지, 라고 섭섭해 하다가도 산에 오르며 딱 다섯 걸음씩만 나를 앞지르며 기다려주는 모습에 마음 한 귀퉁이가 뭉클해지기도 한다. 사람은 죄다 이기적이야, 라고 체념하고 있던 찰나 미지근해질까봐서 생수병을 신문지로 돌돌 말아오는 배려에 쉽게 마음 한 자락을 내주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감정의 시소타기를 몇 차례 거치며 시간의 세례를 입는 동안 당신과 나 사이에 말 없는 공감, 침묵 속의 배려들이 하나, 둘 씩 늘어나고 그러는 사이 조금씩 정이 드는 것이겠지. 과거에는 선명하지 않은 감정에 대해 섣불리 회의적이었고 우울질이 많은 성품 탓에 결국 좋지 않은 쪽으로 판단이 기울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짭짤하고 단단한 껍질 속 담백하고 보드라운 속살처럼 사람 감정의 간장게장스러운 속성에 대해 인정하게 된다. 등을 돌리면서도 마음은 돌리지 못해 아파하고, 마음은 돌아섰지만 등을 보일 수는 없어 갈등하던 순간들 속에서 그토록 마지않았던 선명한 감정 이면의 진짜 내 모습을 본다. 내가 딱 부러지면 부러질수록 딱, 딱,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아프게 잘려나가던 시간들. 어둡고 고요한 숲 속, 나무 삭정이가 꺾여나가는 울림처럼 머릿속과 손끝에 아리게 메아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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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1-27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왕이면 "봄날의 곰..."처럼 버너하고 냄비 들고와 동네 놀이터에서 직접 라면 끓여주는 남자를 만나시길...^^

깐따삐야 2008-01-27 22:54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저는 계란 두 개와 대파를 손에 들고 놀이터로 달려갈 거예욧! ^^

Mephistopheles 2008-01-27 23:46   좋아요 0 | URL
설마 썰지 않은 대파를 들고 나가겠다는 것?

깐따삐야 2008-01-27 23:49   좋아요 0 | URL
도리도리! 소중한 그이 앞에서 손으로 대파를 우악스럽게 찢어대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어요. 이쁘게 썰어서 가지고 갈 거여요. 파송송 계란탁! 므흣.

이게다예요 2008-01-27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의점에서 컵라면 두 개에 뜨거운 물을 부어놓고 그 사람을 기다리는 일은 드라마에서만 나옵디다. 아니 그들은 안 기다려도 우연히 잘 마주치더군요, 쩝. ^^

깐따삐야 2008-01-27 23:27   좋아요 0 | URL
쿵! 저는 적어도 이게다예요님만큼은 맞장구를 쳐주실 줄 알았는데... -_-
근데 새벽 두 시에 편의점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남자는 복면강도일지도? ㅋㅋ

웽스북스 2008-01-28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2월은 28일만 일하고 월급 똑같이 받아서 좋아해요
(방학 있는 선생님 앞에서 자랑 하고는 ;; -_-)

깐따삐야 2008-01-28 00:27   좋아요 0 | URL
오... 그러고보니 그러네요? 이래서 내가 엄마한테 혼나는 거예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