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부 시절, 희곡을 가르치셨던 교수님은 본인의 작달막한 신장 때문인지 너무나도 인간의 내실을 강조, 또 강조하셨기에 더욱더 그 작달막한 키가 애처로워 보였던 분이었다.
그냥 너털웃음이라도 지으면서 기왕이면 다홍치마,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 라고 가증을 떨었다면 비교적 순진했던 나는 그 분의 겉모습 어디에서라도 용케 서너 가지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으리라. 여하튼 그 분의 사랑공식은 이러했다.
Like + @
하지만 그 플러스알파의 정체는 제각기 다르거나,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옳다. 나는 피스타치오아몬드와 윤대녕의 단편들을 좋아하지만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은 그것들과는 비할 데 없이 특별한 것이다. 알파 속에 그의 자상한 미소라든가, 솔직한 말투라든가, 부드러운 성정... 갖가지 것을 대입시켜 보지만 역시 하나로는 부족해. 뭔가 총체적인 것이다. +@의 정체는. 그의 주변을 에두르고 있는 일종의 분위기나 이미지, 아우라일수도 있겠지.
#
안느 소피의 언행은 예측이 불가능했다.
단 하나, 내가 그녀에게서 예상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면, 그것은 그녀가 나를 데리고 나가 함께 밤을 보내고 나면 새벽마다 자기의 가장 소중한 소망을 밝히곤 한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밝힌 가장 소중한 소망은 동네 아이들을 위해 잼을 만들면서 시간을 보내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 장 자끄 상뻬, ‘속 깊은 이성 친구’ 중에서
종이의 질이 좋으면서, 삽화가 많고, 두께가 얇은 책은 잘 구입하지 않는 편이다. 속 빈 강정이라는 편견 때문일 거다. 그런데 ‘속 깊은 이성 친구’는 저 세 가지 조건을 다 갖추고 있지만 서점에 서서 아주 재미있게 끝까지 다 읽고 난 다음 누군가가 생각나서 선물을 할까 하고 샀었다. 이 책을 받아보았던 커플은 몇 년 전 결혼을 해서 조용히 살고 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보통의 연인들이 겪는 몇 차례의 우여곡절을 치렀다. 전투와 휴전을 수없이 반복하던 그들이 언제쯤부터인가, 적당히 서로를 내버려두고 적당히 서로를 참견하게 되더니 결국은 조용하고 의뭉스럽게도 혼사를 치러냈다. 당시의 나는 두둑한 용돈을 받게 되어 그들이 결혼한 것이 마냥 기뻤다.
나만이 진실에 목말라 있다는 것은 오만인 것 같다. 누구나 상대의 작은 변화에 놀라워하고 신실한 마음 씀씀이에 기뻐할 줄 안다. 단지 사람이란 너무나 약해서 상대가 나보다 더 의지가 강하다면, 하고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뭐든 '한결같이' '변함없는' 것이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것 대신 넘겨짚고, 궁리하고, 아파하고, 절망한다. 결국 감정의 파도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에 지쳐 아무것도 뜨겁고 선명하게 느낄 수 없게 되면, 이젠 늙었다고 선포하거나 원래 자신은 냉정한 인간이었음을 깨닫는 척 한다. 정직해질 자신이 없는 것이다. 간단한 결론에 비해 언제나 과정 중에 궁리했던 리스트가 훨씬 더 장황하기 마련이고.
궁금하면 물어볼 것. 왜 그래? 뭘 바라지? 사심 없이 똑바로 묻고, 돌아오는 대답에 잡념의 티를 얹지 말 것. 성실하고 정직하게 사랑을 하는 사람은 포즈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단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