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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과 메이지의 시대 - 무엇이 조선과 일본의 운명을 결정했나
신명호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조선과 일본의 두나라의 최정상의 군주인 고종과 메이지를 중심으로 각 사회의 정치상황을 교차하며 보여주면서 대한제국이 일본에 의하여 병합당하기 까지의 과정을 풍부하게 제시하여 주고 있다. 을사조약이 체결되기 전에 이토가 고종에게 내알현 하는 장면이 처음에 나오는데, 참 그 장면이 너무 서늘했다. 이제 쓸 수 있는 수가 없는 고종 앞에서 이토의 언사는 매우 날카로웠다. 당시에 어조는 어찌했을지 모르나 내용만은 틀림없이 그랬다. 풍전등화의 대한제국과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강점당한 우리의 암울한 역사가 한번에 연상이 되어 버린 탓에 더 그렇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장면을 이야기하는 것을 끝내면서 저자는 어째서 메이지 천황의 특사인 이토에게 협박까지 받아버리는 수준으로 전락했는가 하며 대체 어쩌다가 보호국화 되어버렸는지는 되물으며 끝내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 내린 한가지 결론은 메이지와는 달리 고종은 반개혁세력들을 확고하게 제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메이지는 1968년 대정봉환을 통해서 실질적인 통치권을 돌려 받게 되었다. 그와 함께 폐번치현도 이루어졌는데, 그로 인하여 번에 봉직하던 사무라이가 대량으로 실업자가 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메이지 천황과 유신을 주도한 세력들은 이 커다란 불만세력을 제어해야하는 정치적 과제가 있었다. 이들에게 들어가는 연금도 당시 정부의 재정에 큰 부담을 안겨 주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는 가운데 서양 열강에 대응하여 군사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징병제가 필요했지만, 사무라이 집단들은 자신의 군사적 특권을 해한다는 생각에 반발을 했다. 아마 고대 중국에서처럼 전쟁에 참여하는 것 자체를 특권이라고 여겼던 것과 같은 듯 하다. 이건 고대 그리스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고. 여튼 이런 반발에도 불구하고 패도령등 사무라이를 제어하는 조치를 취하고, 결국에는 징병제를 관철시킨다. 그리고 당시 유신의 주도세력 중 가장 유력한 츠슈번과 사쓰마번외에 다소 소외된 정치세력들이 획책한(?) 자유민권운동을 본인들이 납득할만한 수준으로 체제내에 흡수하는데 성공했다.
반면 고종은 어떠하였나? 흥선대원군의 그늘에서 10년동안 있다가 친정을 시작한 이후에도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은 정적으로 존재 하였다. 내치가 안정되지 못하면 외교에서도 효과적인 수준의 정책이 나올 수 없다.
구문명에서 신문명으로 전환되는 지점에서 필요한 생각과 행동이라는 쉽게 구할 수는 없는 것은 동의한다.
기존에 중국, 당시 청나라를 정점으로 하는 책봉조공체제안에서 군사적인 평화에 있었던 것이 서양 열강에 의해서 균열을 가해지고, 그것을 일본이 와장창 깨어버림으로써 당시 조선의 고종이 기반하고 있던 정치 문화적 지형이 무너지고 그에 따라 고종은 혼돈 그 자체 였을 것이다. 그런 대세적인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역시 최종적으로 고종이 지도자라는 역활을 만족할만하게 수행하지 못했던 것이 가장 조선. 대한제국의 실패의 이유로 가장 크다. 근대적인 개혁이야 일본의 압박과 청국이 서양열강에 무력으로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필요성을 조금씩 느껴가고 있었으리라 생각되고, 중요한 것은 그 개혁이 진행되는 과정에 있다.
언제나 새로운 변화에는 기존의 기득권 세력들에 강력한 반발이 있기 마련이고, 당시 일본에서는 사무라이의 반란에 의한 서남전쟁으로, 조선에서는 흥선대원군을 중심으로 이재선을 내세워 고종을 폐위 시키려고 한 시도로 나타났다. 이를 보면 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체제는 물론이고 군주 본인도 위협할만한 수준의 반발이 예상되는 것이다. 이러한 반발을 일본은 훌룡하게 제어하였고, 당시 강대국으로 우뚝 섰다. 하지만 그렇다고 고종이 그러한 시도 자체를 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풍전등화 상태에 있는 나라의 군주로서는 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고종이 성공적으로 개혁을 이루어 내어서 누구에게 침탈당하지 않고 독립국인 상태로 유지했다면 지금의 우리가 사는 사회는 어찌되었을까? 민주주주의 사회로 진행되었을까? 여하튼 고종은 한일합병 이후에 이태왕으로 격하되었고 1919년에 죽는다. 이를 계기로 당해년 3월 1일에 3.1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는데 이 이후로 복벽주의는 독립운동의 흐름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마지막에 저자가 고종의 죽음을 이야기 하며 그때의 역사는 우리 민족에 암울한 역사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군주제의 종말과 민주주의의 도입라는 측면도 가지고 있다고 평했다. 어느정도 동의한다. 그런데 그 이후에 우리 선조들이 겪었던 고난을 생각하면.... 단순히 그렇게 평하고 끝낼 일은 아니다. 별 세개를 준 이유 중 하나가 이 마지막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하나는 당시 고종이나 이토등의 심정을 이야기 하면서 아마 고종은 이토의 그 발언에 스산 했을 것이다. 라는 서술 보다는 고종은 이토의 그 말을 들으며 스산함을 느꼈다... 라는 식의 서술방식은 정말 마음에 안들었다[위 예시를 든건 책 속의 구절을 그대로 인용한 것은 아니다.]. 그 덕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