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의 이념과 사상 - 보수주의.자유주의.민족주의.급진주의
강정인 외 지음 / 후마니타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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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책은 보수주의, 자유주의, 민족주의, 급진주의라는 4개의 이념을 한국의 민주화라는 축으로 각축 대립하여 전개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각 저자가 하나의 이념을 맡아서 그 전개과정을 살핀다. 보수주의, 자유주의, 민족주의, 급진주의는 서구의 이념을 받아들인 것인데, 대표저자인 강정인은 서문에서 이 4대 이념의 한국적 변용과정을 서구와 다른 예외적 일탈이 아니라, 또 하나의 유의미한 사실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상 서구의 보수주의, 자유주의, 민족주의, 급진주의 역시 단 하나의 모델로 제시될 수 있지는 않다. 프랑스와 독일이 서로 다른 역사를 만들어 나간 것과 같이 당시의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이념들 역시 해결해야할 당면과제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이후 남한만의 단독정부수립과 지금에 이르기까지 당시의 시대적 과제에 직면하여 이 4개의 이념들이 펼쳐가고 수렴되는 모습은 매우 흥미롭다.

 

개인적으로는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를 다룬 편이 흥미로웠다. 할애된 분량 역시 다른 이념(민족주의, 급진주의)에 할애된 분량보다도 많다. 보수주의는 대표저자인 강정인에 의해서 서술되었는데, 기본적으로 서구에서 통용되는 보수주의의 정의를 다루고 그 이후 한국에서 전개된 보수주의의 양상과 전개과정을 다루는데, 저자에 따르면 한국의 보수주의는 이차적이고 정치적/위상적인 성격을 가지며 철학적인 내용 자체는 빈약하다는 평이다. 보수주의의 철학적인 정의는 에드먼드 버크가 내린 ‘보수주의의 정의’와 거의 겹친다. 라고 하지만, 이 글에서는 깊게 다루지는 않는다. 보수주의의 간략한 정의로 ‘평등에 대한 회의, 권위에 대한 존중, 기존 질서에 대하여 심리적이나 물질적으로 지지하는 경향’라고 한다(책이 없는 상태에서 쓰므로 정확하지 않다). 하여튼 흥미로운 점은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라고 하는 지향을 가진?]한국의 보수주의 세력들은 아직 오지 않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급진적인 이념과 사상에 대하여 보수화 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한국의 보수주의 세력들은 자신들이 이루고자 했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크게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하여 반공을 해야 하며, 일정 제약을 가할 수 있다는 논리에서 종국(?)에는 자유민주주의는 반공이라는 도식이 만들어지기에 이르렀다.

 

한국 보수주의 세력은 자유민주주의의 정착과 한국적 변용과정을 진지하게 고민했다기 보다 자신들이 온존할 수 있는 구질서의 유지를 위해 권위주의적 정부를 세웠고, 자신들이 표면적으로 내세운[아마 해방사적 진보성에 따른 결과 일 것인]자유민주주의를 제약하는 것에 대한 정당화로서 반공주의와 발전주의로 내세웠던 것이다. 이는 진정으로 자유민주주의의 안착과 한국적 발전을 위했다고 어려워 보인다. 그리고 이런 보수주의 세력들은 87년을 기점으로 하여 평화적 정권교체에 따른 김대중-노무현 정권 이후에야 기본적인 민주질서를 받아들이고, 그 질서 내의 규칙을 활용하기에 이르렀고,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권이라는 보수정부를 재창출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여전히 그들 보수주의 세력이 민주적 질서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고(단지 정권 재창출을 위한 유효한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실질적 민주화를 이루고자 하는지는 의심스럽다.

 

자유주의는 남한의 단독정부에서 지배이념으로 선언되었으나, 이후에 보수주의 세력의 권위주의적 정부에 저항하는 저항이념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북쪽의 공산정권과 내부의 급진주의에 대하여는 일정정도 보수화가 진행되면서 보수주의와 수렴되는 경향도 엿보인다. <자유주의>편을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할 것이냐 통일된 하나의 정부를 세울 것인가에 대한 의견대립에서 자유주의 세력이 일단 민주화된 국가를 선건설하고, 후에 통일해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이승만을 위시한 당시 반공세력과 결탁한 것을 두고 비난하는 것은 너무 민족주의적인 입장에서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저자(하상복)가 크게 그에 대한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당시의 입장을 방어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 선택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크다고 생각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 선택이 반민족적 이였다라고 하기에는 조금 과하다라는 생각에는 이르렀다. 여튼 자유주의세력이 남한만의 단정수립 이후에 이승만 세력의 반민주적 흐름에 저항한 것을 보면 그들과 온전히 의견을 같이 한 것은 아니며, 분명히 그들과는 구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민주주의와 법치, 자유주의 세력들이 회복하고자 했던 헌정주의가 지금 현실에 와서는 민주주의의 장애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을 언급한 것이다. 그 내용은 민주적 결정들[선거로 선출된 의원들의 합의로 결정된 사안]을 민주적으로 선출되지 않은 사법부가 판단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 한 것인데, 저자는 그것이 사법부의 과잉에 따른 문제이기 보다는 민주공간에서의 ‘정치’의 부재 혹은 부족(?)을 이야기 한다. 합의와 타협을 이끌어 내야한 정치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탓이란 것이다. 오히려 법치는 민주적 절차에 따른 결정이 무조건 옳다고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장애물이 아닌]제어 장치로서 기능하기에 오히려 더 필요한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 듯하다. 후에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에 대한 관계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이고, 이것은 차후에 내가 더 알아보고 공부해야할 것 같다.

 

<민족주의>편은 크게 인상 깊었던 지점은 없었고... <급진주의>편에서는 그들이 실질적인 사회 대안이 되지는 못했지만, 기존의 권력의 일탈의 한계를 설정 지었다는 면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87년 기점으로 직선제 쟁취라는 모든(?) 세력과 이념이 납득하고 연대를 할 수 있을 만한 주장이 이루어지고 나서는 급격하게 그 노선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급진주의도 마찬가지였고, 그 과격함(??)은 여러 세력이나 일반대중들에게도 꺼림칙한 면이 있었을 것이고, 그들 역시 변화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면이 컸다. 너무 안으로 매몰된 측면이 큰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하나의 혁명으로 모든 것이 달라 질 수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편의주의적 발상인가 싶다. 한방에 다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녹록치 않다는 걸 분명히 보여준다. 여튼 그 급진주의 세력 내부에서도 민주화 이후에 대한 적응을 통해서 국회 원내 진출을 쟁취(?)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작년에 벌어진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은 아주 협소해져버렸고, 그렇기에 지금의 현 보수 세력에 자극을 주고 한계를 설정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급진주의 세력에는 운명의 기로에 서있는 듯 보인다. 그 공간 자체가 완전히 소멸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요즘 들어 보기에 나의 지향은 보수에 가까우며, 급격한 변화는 바라지 않는다. 정치적 지향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급진주의(내에도 여러 입장이 있겠지만)가 보여주는 지향에는 동조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보인다. 하지만 진보와 보수라는 두 입장이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어야 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입장에 있는 나로서는 그러한 현 상황이 우려스럽다. 현재 자유주의 세력은 이미 보수화가 많이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고, 그렇기에 예전에 저항이념으로의 성격을 수행하기에는 어렵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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