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개창 - 이성계와 조준.정도전의
김당택 지음 / 전남대학교출판부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요즘에 KBS 사극 <정도전>이 한창 인기를 올리고 있나 보다. 방영이후에 각종 포털사이트의 인기검색어에 과전법이나 정몽주 등등의 검색어가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것을 보면 더 실감이 난다. MBC의<기황후>의 왜곡논란 이후에 보이는 오랜만의 정통사극이라 더 관심이 큰 듯하다. 굳이 이 사극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드라마<정도전>에 대한 깊은 관심이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이 책을 읽어야 봐야겠다는 동인을 발생시킨 듯하다.

 

본 책에서는 조선의 건국을 고려 말의 정치상황을 살피면서 시작하고 있는데, 저자의 기본적인 생각은 조선의 건국을 고려 말의 대토지를 겸병한 권문세족에 대한 향리출신의 중소지주인 신흥사대부의 승리로 설명하고 있는 정설에 대해 그렇게 설명하기에는 힘들지 않냐 는 것이다. 기존의 연구에서 기존에 권문세족으로 지목된 이의 손자가 신진사대부로 지목되기도 하는 등, 그렇게 일관된 설명체계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여하튼, 이 책은 고려 말 정치상황, 그러니까 공민왕의 반원정책에서부터 시작 하는데, 이 반원정책을 실시한 당시도 그렇고 이후의 흐름을 문신과 무신과의 대결로 보고자하고 있다. 당시의 문신은 끊임없이 정방의 개혁이라던지 무신이 국토의 수호에만 힘쓰어야지, 국가의 운영에 개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공격하지만, 여전히 주도권을 쥘 수가 없었고, 그런 문신의 정치적인 불우함이 정도전이 이성계를 직접 찾아가 정치적 결합을 하게 한 이유로 꼽고 있다. 당시 이성계도 상당한 군사적 실력자임에도 불구하고, 중앙정계에서 소외되어 있다는 점도 이 결합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후에 조반사건을 계기로[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아직 이해는 안 되지만]비로소 중앙정계에 진출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 가장 흥미를 끈 것은 최영의 요동정벌의 주도한 주요 이유 중 하나가 이성계를 견제하기 위함이라는 주장이다. 당시 요동정벌군의 구성은 팔도도통사 최영의 지휘 하에 조민수의 좌군과 이성계의 우군으로 되어 있었는데, 조민수의 좌군은 서경 양광도 경상도 전라도 계림 안동등에서 징발된 군대로 편성되었으나, 이성계의 우군의 경우 안주도 동복면 강원도의 병력으로 구성된 것으로, 이성계의 우군이 징발된 지역이 훨씬 적었던 만큼 이성계 휘하 친병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고, 당시 요동을 친다는 것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생각되고 있었던 만큼, 이는 요동공격에서 이성계의 세력을 제거하기 위함 아니냐는 것이다. 최영이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고, 이성계가 그런 의도를 간파하였던, 아니던 간에 이성계로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고, 결국은 회군하고 만다.

 

이 위화도회군은 조선건국의 분수령이 된다고 저자는 평하는데, 회군이후에 우왕을 폐하고, 최영을 유배시키는 등, 실질적으로 당시 정국운영에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럴만하다. 그런데, 이성계가 회군당시에도 새로운 왕조의 개창을 마음먹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회군이후 이성계를 추대하려는 몇몇 인사에 대해 자중하라는 이야기를 하였다는 것과 이후 창왕과 공양왕까지 4년이 지나고 나서야 양위라는 방법으로 왕에 오른 것을 보면, 분명히 위화도 회군이후 정국의 주도권까지는 쥘 수 있었지만, 결정적 이였던 것은 아닌 듯하다. 그래서 이성계파(이성계와 그를 지지한 세력을 이성계파라 이 책에서는 부르고 있다.)는 선 개혁 후개창을 택하게 되는데,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사전개혁이었다. 이 사전개혁의 최종점인 과전법의 실시 이후에 조선이 개창되었다는 것을 보면 그렇다. 실질적인 고려의 지배체제의 부정이라는 측면에서도 그렇겠지만, 당시의 실권자들의 경제적 기반을 흔들기 위해서라도 그렇지 않았는가 싶기도 하다. 본 책에서는 사전개혁을 당시 민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거의 단정적으로 말하고 있지만, 당시의 민심을 얻기 위해서라도 이래저래 새로운 왕조를 개창하기 위한 중요한 프로젝트(??)가 아니었는가 싶다.

 

이 책을 읽고 이 리뷰를 작성하면서, 아주 오래전 <용의 눈물>을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거기서 이성계로 분한 김무생 선생이 왕에 오르라는 주변인들의 요구에 자택의 방에서 고뇌에 찬 모습을 연기한 것이 기억났다. 아무리 '정통'사극이라도 결국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는 것이 여기에서 드러났다.

 

조선태조가 왕위에 오른 후 공양왕을 유배시켜버리고, 김저사건이나 윤이-이초사건에서 보면 태조 이성계가 결코 드라마에서처럼 신하가 어찌 왕을 폐할 수 있느냐는 고뇌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역사를 공부하고 연구하는데 있어서 이런 문학적 상상력이 필요하기는 하겠지만, 결국 역사'학'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료비판과 거기에서 얻어지는 논리가 아닌가 한다. 이런 소리는 뭐 일개 독자일 뿐이므로 들을만한 가치는 없다. 이렇게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면서 국호를 여전히 고려라 하고, 관제도 고려대의 관제를 존속시켰다. 이러한 관제를 바꾼 것은 태종대에 이르러서라고 알고 있다. 그리고 당시의 주도세력 역시 이전의 지배세력과 크게 변화가 없다는 점에서 신진사대부설은 생각보다는 허술한 논리에 기반해 있다는 것을 드러냈다. 위에서도 언급한바와 같이 일개 독자일 뿐이므로, 신진사대부설과, 조선의 고려적 기원을 강조하는 측사이에서 과연 어는 것이 타당한지 뚜렷하게 판단할 수는 없으나, 지금 현재로 보자면 고려와 조선의 동질성을 강조하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그럼에도 자꾸 걸리는 것은 [신진사대부설을 강조하는 측에서도 그럴 것이라 생각되는데] 식민사학의 정체성이론이 연상되기 때문인 듯하다. 일단 이후에 고 정두희 교수의 <왕조의 얼굴>, 존 B. 던컨 교수의 <조선왕조의 기원>을 읽어가며 될 수 있는 한 정리해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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