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단군 부여
동북아역사재단 엮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고조선-단군-부여를 소개하는 좀 짫은 개설서. 언제나 그렇지만 고조선이나 단군에 대한 관심을 지대하지만, 그 초기정치체가 있었던 시간적 거리를 생각하면 고고학적 유물 유적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그게 나에게는 상당히 어렵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가 남긴 기록도 없는지라 고대 어떤 정치체보다 그들의 실체를 파악하기 힘들기도 하다.  이전에 송호정교수의 글에서 읽어서 대략 얻었던 고조선에 대한 이야기. 그러니까 기원전10세기경을 고조선이라는 정치체의 출현을 상정하고, 선진문헌인 관자에서 등장하는 점을 들어 최소한 기원전 7세기경에는 고조선이라는 정치체가 등장하였고, 기원전4~5세기경에는 연나라 진개에 의하여 밀려나갔다는 점. 그리고 위만조선의 성립과 멸망까지를 살펴볼 수 있다는 사실만 다시 되새길 수 있었다. 나머지 글은 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개설서라고 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어려움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송호정 교수는 글을 쉽고 재미있게는 못쓰는 것 같다. 학자로서 아주 필요한 재능은 아니긴 하겠지만, 노중국 교수의 연구서는 일반사람들이 쉽게 읽지 못하고 이해도 어렵지만서도 재미있게 읽 다는 점에서는 아쉽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확실히 느낀건데 어떤 역사적 사실보다는 어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인식이 어떠하였는지 더 관심이 가는 것 같다. 단군신화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자못 흥미로웠다.  일연의 삼국유사, 이승휴의 제왕운기에서 단군신화를 소개한 이후로, 조선 초기 유학자인 권근은 응제시에서는 단군의 이야기 중 비합리적인 요소를 최대한 해소하였고, 그리고 한백겸 동국지리지에 이르러서는 남자남 북자북이라는 인식으로 단군이 민족원 근원으로 귀일하는 것에 의문을 가하기도 하였다.

 

부여사에 대해서는 우리 한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기원전 2세기경에 건국된 부여는 이후에 고구려-백제라는 정치체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중국사서에는 고구려와 백제를 부여의 별종으로 여기기도 했다는 점. 백제는 개로왕때 북위에 보낸 서신에서 자신들과 고구려가 부여에서 나왔음을 밝히기도 하였고, 성왕은 수도를 이전하며 남부여로 바꾸기도 하는 등, 그들의 정체성을 부여에서 찾았다. 그런만큼 부여에 대한 관심을 커야겠지만서도, 그들이 만주지역에 근거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실질적으로 시간적으로 그렇지만 공간적으로도 먼 나라였다. 그랬기에 많이 낯설었 던 것 같다.   고구려의 건국신화에 가려졌던 부여의 동명신화와, 그들이 3세기까지 고구려와 백제 신라와 함께 병존하였던 정치체임을 인지하게 되었다.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나온 <부여사와 그 주변들>을 읽어 볼까 한다.

 

여튼... 아무리 관심이 가더라도 고조선과 부여의 이야기는 많이 낯설고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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