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주어는 무엇인가 - 헌법 묵상, 제1조
이국운 지음 / 김영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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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200쪽에 되지 못하는 소책자다.  하지만 내용은 아주 넘치는 듯 하다. 부제에서도 바로 알 수 있듯  이 책은 우리들이 알고 있고 외쳤던 헌법 1조를 읽고 있다.  (헌)법학적인 지식은 거의 제로에 가깝기에 저자가 푸는 해석이 어느정도 틀에 벗어난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피가 끓는 느낌이 드는 걸 봐서는 기존의 해석과는 많이 벗어난 것은 아닐까?

 저자는, 헌법은 시민들의 공유된 말이라고 한다.   숨차기로 유명한 헌법 전문은 그 헌법의 주어를 ‘우리 대한국민’이라고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 생략된 주어를 담아  헌법 1조를 읽는다면 그 의미는 한층 더 강해지고 헌법 1조에 대한  다소의 오해도 풀린다.  이전의 왕조의 왕에게 말한다면 그것은 민주의 선언 일것이며,  일제강점기의 일제에게 말한다면  그것은 해방의 선언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동료 시민들에게는?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비유컨대 헌법 1조의 첫 문장은 결코 자유의 이름으로 왕이 되려는 욕망을 체현하려는 주권자들의 자기 현시로 해석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그것은 왕이 되려는 욕망을 결연히 꺽어버리고 동료 대한국민을 자유의 존재로 인정하는 동시에, 그와의 평등,즉 자유인의 동등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그 평등을 적극적으로 실현하려는 다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p.77)”

그렇다. 그것은 동료시민들에게 자유를 선사하고 그런 자유의 존재임을 인정하고 이러한 요청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하여  적극적으로 동등함을 실현하라 요구 하는 것이다.  이러한 요구가 헌법에 담긴 것이며, 그것을 저자는 헌정권력이라 말한다. 

아마 주권이라는 개념을 쓰지 않는 것은 그 개념이 역사적 형성 과정에서 본질적으로 배태된 위험성 때문 일 것이다. 그것은 종교전쟁이라는 진리의 투쟁을 끝내고  비상사태를 선포한뒤 모두 물리적 폭력의 권한을 독점한 것인데,  그렇게 진리의 투쟁의 끊음에서 출발했던 그 개념은 오히려 진리의 검열관이 되어  스스로가 비상사태를 선포 하는 등의 위험성이 생긴 것이다.

이 헌법 1조를 저자를 통해 다시 읽으면서,  이전에 계획했던 헌법 읽기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꼭 시작해야 할 일이라 다시 한번 느낀 것이다. 그리고 헌법 읽기를 통하여  동료 시민들을 생각하는 것도 필요하고.  알라디너 중 한분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면 성차별주의자라 하였는데, 그렇다면 글을 쓰는 본인은 성차별주의자 일 것이다. 원래 성향이 그런 것이겠지만 10년의 세월이 먹고사니즘과 그곳에서 스며든 사회적 관습이 나를 보수화 시켜버린 것이 구할 이상이 될 것이다.  10여년 전에 읽었던 첫 번째 책인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을 다시 읽을까 하다  그냥 헌법을 읽으며  동료시민와의 연대를 생각해보는 것을 시작점으로 삼기로 했다.  너무 우회하나 싶지만  최전선에 있는 글을 읽기에는 틀림없이  불편해 페이지를 넘기지 못할 것 같다.

적고 보니 저자의 생각도 제대로 못 따라간 것 같긴하지만  다시 헌법 읽기를 시작하기로 다짐을 했으나 아주 소득 없는 읽기는 아닐 것이다.

 에필로그에 적힌 이 책의 헌사를 보니 마음이 살짝 울컥했다. 맨 앞에 헌사를 놓는 것도 좋지만 뒤에 헌사를 놓는 것도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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