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턴 록
그레이엄 그린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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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레이엄 그린이 쓴 책이라면 내용과 관계없이 일단 주목을 끈다. 더구나 이 책은 먼저 읽은 독자들의 호응이 잇달아 저절로 큰 기대를 품게 만들었다. 그래 <브라이턴 록>이 내가 읽은 최고의 그린이었던 <권력과 영광>을 어쩌면 능가할지도 모른다, 라는 이스트를 살포하게 했을 수도 있다. 물론 <권력과 영광>도 오래 전에 읽어 스토리마저 가물가물한 터라 정확한 비교라고 하기 어렵지만 하여튼 그만큼 기대가 컸다는 뜻이다. 그리고 기대가 컸던 만큼 지금의 실망 역시 설악산 울산바위 만하다.
  작품은 전형적인 탐정소설이다. 그러나 책을 소개하는 모든 사이트에서, 탐정소설의 형식을 취하기는 했지만 그것보다 악의 본성을 탐구했다거나, 가톨릭 교리와 신앙에 대한 물음을 담아낸 종교문학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애초에 종교적 소양이 없는 나는, 주인공인줄 알았던 찰스 “헤일은 브라이턴에 온 지 세 시간도 안 되어서 그들이 자기를 죽일 생각이란 것을 알았다.”라는 첫 문장을 읽는 순간부터 종교는 개뿔, 작정하고 범죄, 스릴러 소설로 읽기로 작정을 해버렸다.
  이 헤일이라는 작자는, 1부에 국한해서 말하자면, 어린 시절에 길모퉁이의 신문판매원에서 시작해 판매부수 1만 부의 조그만 지방 신문사에서 주급 30실링을 받는 기자를 했다가, 셰필드에서 5년을 보낸 후 급여가 좋은 메신저 신문사에 입사해 오늘에 이른 사람이다. 메신저 사는 ‘콜리 키버’라는 가상의 인물을 설정해 1면에 키버의 사진을 실은 후, 키버가 어느 고장에 나타날 것임을 알려준다. 콜리 키버는 진짜로 해당 지역을 돌아다니며 메신저 사의 카드를 숨겨두는데, 카드를 찾은 사람에게 신문사는 10실링을 지불하는 일종의 보물찾기 게임과 유사하다. 근데 손에 메신저 신문을 한 부 들고 키버에게 “당신은 콜리 키버 씨입니다. 나는 일간 메신저 상을 요구합니다.”라고 말하면 매우 큰 상금을 받을 수도 있는 영업전략. 사건이 벌어질 당시의 콜리 키버로 분장하고 다니는 인물이 바로 찰스 헤일이고, 그가 카드를 뿌려야 하는 곳이 브라이턴, 요즘 교통수단으로 런던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영국 굴지의 해안 휴양도시다.
  그런데 분량이 가장 많기는 하지만 1부가 끝나기도 전에 글쎄 이 찰스 헤일 씨가 살해당하고 만다. 엉뚱하게 사인은 심장 질환에 의한 자연사. 나중에 밝혀지는 진실은 붉은 색과 하얀 색이 마치 이발소 표시, 꽈배기처럼 돌돌 말린 ‘브라이턴 록’이란 이름의 막대사탕을 억지로 목에 쑤셔 넣어 질식사 시키려 하다가 기가 막힌 피해자의 심장이 먼저 오작동을 일으켜 사망에 이른 살인사건이다. 일과 중 빈 시간에 술집에서 헤일 씨를 ‘프레드’라고 호칭하는 한 열일곱 살이나 먹었을까 싶은 소년이 등장해 아는 척을 하기에 카드와 신문을 주고 10실링이 아니라 10기니를 받을 수 있는 행운을 제의했지만 소년은 이를 거절한 후 빈 잔을 바닥에 떨어뜨려 깨트리고 술집에서 나가는 순간 ‘그들이’ 자기를 죽일 생각이란 것을 깨닫는다. 이 장면에서 중요한 건 행위가 아니라 ‘17세 소년’이었다. 물론 책을 읽을 당시엔 10대 나이라는 장벽에 가려 그냥 ‘행인 1’ 정도의 등장인물인 줄 알았다.
  조금 후 거리를 지날 때 행상이 여러 물건을 사라고 하는 좌판 안에 면도날이 들어 있는 것을 본 헤일 씨는, 얇은 상처와 예리한 고통을 떠올리고, ‘카이트’가 죽은 것이 그런 식이었다는데, 이것 역시 간략하게 딱 한 줄로 처리하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처음으로 누군가의 죽음이 실제적으로 등장한 일이니 독자 입장에선 일단 기억을 해두는 수밖에 없다.

 

  이어 등장하는 ‘릴리’라 불리는 여자. 나중에 거리에서 헤일을 다시 만나 진짜 이름이 아이다 아널드라고 알려준다. 아이다는 헤일 씨와 택시를 타고 펠리스 잔교 쪽으로 달리면서 뒷자리에 앉아 초면에 진한 키스를 열심히 나눈다. 헤일은 눈치도 채지 못했지만, 택시를 뒤따르는 25년형 모리스 자동차를 헤일이 눈여겨보고 있는 걸, 아이다는 그 와중에도 알고 있었다. 아이다 아널드가 이 책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이며 맡은 배역이 아마추어 탐정인 것은 헤일 씨가 영원히 알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할 운명이긴 하지만. 잔교 입구 보도에 내린 커플. 진하게 키스를 하는 바람에 엉망이 된 얼굴을 고치러 유료화장실에 들른 아이다가 6분을 쓰고 화장실에서 나와 헤일 씨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 시간이 13:30. 아이다는 헤일의 메모 한 장을 얻는다. 브라이턴 4시 경주, 블랙보이. 유명한 브라이턴 경마에 블랙보이한테 걸라는 뜻이다. 아이다는 정말로 경주에 블랙보이에 많은 돈을 걸어 열 배의 배당을 받는데, 이건 아이다에게 아무 소득도 없이 많은 돈을 펑펑 써가며 헤일 씨 사망 사건에 집요하게 매달리게 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조연 로즈. 헤일 씨의 직업은 카드를 숨기는 일이다. 살인사건을 지휘하고 있는 17세 소년 핑키는 거구의 스파이서에게 헤일 씨의 행적을 위장하기 위해 대신 카드를 숨기게 하는데, 로즈가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스노 식당의 로즈 담당 테이블보 아래에도 한 장을 둔다. 이게 결정적 실패. 로즈는 그날이 취직 첫날이었고 누구보다 기억력이 좋은 16세 아가씨라 정확하게 스파이서의 얼굴과 체구와 목소리를 기억한다. 냉혹한 소년 핑키는 살인사건이 들통나지 않기 위해 얼굴을 들켜버린 스파이서를 2층 난간에서 떨어져 죽은 실족사로 위장하고, 로즈마저 죽이면 하필 핑키 근처에서만 살인사건이 나는 모양새라 최악의 경우에 로즈가 법정에서 진술하지 못하게(우리나라 형사소송법 148조에도 있다. 정경심의 사모펀드 및 자녀 입시비리 등의 재판 참조) 무리수를 둬가며 결혼해버린다.
  문제는 17세 소년 핑키. 면도날로 겁만 주려고 했다가 그만 목에 깊은 상처를 입어 죽은 카이트의 수하에서 일하다가, 이제 작은 조직의 보스에 앉은 독종. 카이트와 함께 브라이턴 지역의 두 명의 맹주 가운데 한 명인 콜레오니와는 애초에 상대가 안 되는 범죄 방면의 지적 능력밖에 보유하지 못해 조직은 점점 거덜이 나고, 자신의 수하도 직접 죽이거나 내쫓거나 해가며 스스로 폭망의 길을 걷는 애송이. 이 아이는 당연히 불행한 유년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 토요일 밤마다 아이가 보고 있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부모가 해치웠던 번식을 위한 행위예술이 가장 깊숙한 상처로 남아 있다. 그러면서 가톨릭교도다운 선과 악의 갈등도 조금 보여주는데 이것을 가지고 선악의 본성을 탐구한다고 하면 조금 오버같다.
  하여튼 아이다 아널드, 릴리는 단 한 번, 그것도 짧은 시간만 로즈와의 만남을 통해 헤일 씨 아닌 인물이 카드를 스노 식당에 두고 간 것만을 두고 그가 살해당했다고 확신한다. 여기에 경마를 통해 벌어들인 거액으로 지역의 거물 콜레오니 씨가 묵는 호텔의 더블 방에 묵으면서 사건을 해결한다.

 

  내가 이 책을 의미 있게 읽은 독자들과 다를 수 있는 의견은, <브라이턴 록>이 사건 해결의 과정을 그린 탐정소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점. 작가의 시선은 아마추어 탐정에 비해 월등하게 많은 분량을 악당 핑키의 행위와 사고를 설명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보스를 잃은 복수로 찰스 헤일을 죽이고, 이 범죄의 은닉을 위해 또 다른 사람을 죽이고, 애정 없이 무리한 결혼을 하지만 부모의 행위로 각인된 섹스에 관한 거부감 등등, 이 작품은 범죄소설의 외연을 한 심리소설에 가깝지 않은가 싶었다는 점. 간혹 이해하지 못할 행동과 어리석은 장면 등은 악당 핑키의 어린 나이로 퉁 칠 수 있을 것이라고 꼼수를 부리지 않았을까, 하는 심정마저 들었다.
  핑키의 심리적 갈등으로 인해 많은 평론가들이 이 작품의 진정한 가치라고 하는 악의 본성을 찾는 일이라 하지 않았을까.(하필이면 악의 본성을 찾는 진짜 작품 <나는 고백한다>를 올 초에 읽어버렸다.) 이 작품에서도 악의 본성을 찾았을까? 아니, 아니. 난 이 작품은 애초에 영화로 만들기 위해 1930년대 수준의 독자로부터 재미를 끌어낼 수 있는 온갖 장면을 배열한 대중소설로 봤다. 아마추어 탐정 아이다 아널드가 사건을 분석하는 과정이 너무 축소되는 바람에 추리소설이라도 그리 잘 쓴 추리소설은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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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7-15 09: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읽고 있는데 저도 읽으면서 악의 본성 운운하는 건 너무 과장됐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게 그렇게 악에 대한 얘기인가 싶고 말이지요. 저는 아직 끝에 조금 남았는데, 아, 브라이턴 록 막대사탕 스포 당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물론 제가 읽은 부분에서 복선이 깔리긴 햇었지만요.

저는 이 소년 때문에-자신이 저지른 죄에 자꾸 함몰당하는- 스트레스 받으면서 재미있게 읽고 있기는 합니다. 아직 남았으니 마저 읽으러 가볼게요. 슝-

Falstaff 2021-07-15 09:50   좋아요 2 | URL
막대사탕은 진짜 덜 중요한 일이더군요.
진짜는 핑키의 심경변화를 쫓아가는 건데, 좌충우돌 본인은 무지하게 뇌를 굴리지만 이미 17세를 살아본 남자가 보기엔 어리석어서 영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다락방 님이 무셔, 무셔 하시는 황산H2SO4를 포함해서요. 그것도 어차피 무대에 등장을 했으니 사용을 해야 할 텐데, 오, 노노, 그린 선생이 좀 오버를 했는지 작위적인 느낌이....
하여튼 재미나게 읽는 게 장땡입니다. 괜히 제 독후감때문에 재미 떨어지면 안 됩니다. 책이야 읽는 사람마다 느낌이 다 다른 거니까요. ㅎㅎㅎ

새파랑 2021-07-15 09: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추리소설 보다는 왜 핑키와 로즈가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에 대해 포커스를 맞추고 읽었어요 😊 그래서그런지 좋았습니다. 영화 시나리오 같은 느낌을 받긴 받았어요 😊

Falstaff 2021-07-15 09:53   좋아요 2 | URL
ㅋㅋㅋ 이래서 범죄 추리 소설은 다 읽은 사람들끼리 비밀 방이라도 만들어 이야기를 하게 해야 한다니까요. 여기다 다 말해버릴 수도 없고요. ㅋㅋㅋㅋㅋ

전 핑키의 생각을 쫓아가다가 바로 그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았답니다. 물론 그린 선생은 핑키의 즉흥적 결정과 구상유취한 행동들 때문에 나이를 17세로 한정했는지 모르지만... 아니, 그렇게 만들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지만 말입니다.

잠자냥 2021-07-15 09: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브라이턴 록 울산바위 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핑키와-로즈-아이다 이 세 사람의 심리를 좇으며 읽는 재미가 컸습니다. 애초에 범죄소설로 읽기엔 무리가 있어서(그 재미는 포기), 특히 로즈와 아이다가 서로 생각하는 선한 행위에 대한 정의가 매우 다르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핑키는... 어쩌면 폴스타프 님의 말씀처럼 그레이엄 그린이 이해하지 못할 행동이나 어리석은 장면을 어린 나이로 퉁치려는 수도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리기때문에 그 부모의 섹스에서 받은 상처를 쉽게 벗어나지 못했던 건 아닐까 싶어요(전 이게 핑키를 괴롭힌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제가 될 뻔했던 아이가 악당의 삶을 살아가게 된). 핑키한테서 어떤 면에선 위스키 사제의 면이 엿보이기도 했습니다.

Falstaff 2021-07-15 10:20   좋아요 4 | URL
ㅎㅎㅎ 독후감 쓰면서 제일 눈치가 보이던 분이 잠자냥 님이었습니다.
아, 책은 맘에 안 드는데, 이걸 좋다고 하시니 여차하면 귀싸대기 맞겠구나, 싶었지만!!! 그래도 걍 할 말 하겠다, 해서 써놓고,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미리 100자평으로 간도 보고, 흐흐흐.... 이거 갈수록 눈치만 늘어서 큰일입니다.
아, 하여튼 제가 읽기엔 핑키와 로즈는 넘 유치하고, 아이다는 성격 설정에 좀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싶었답니다. (종교는 몰겄습니다. 저는 지옥 한 자리 예약해놓았어요. ㅋㅋㅋ)
그러니까 문제는 작품하고 독자의 합입니다. 에휴....

잠자냥 2021-07-15 10:57   좋아요 4 | URL
아이고 뭐 제 눈치를 보고 그러십니까! *찰싹*
서로 다른 평도 나오고 그래야 말이 되는 세상이죠? *찰싹*
앞으로도 눈치 보지 마시고 좍좍 써주세요! *찰싹* ㅋㅋㅋㅋㅋㅋㅋㅋ

폴스타프 님한테 핑키 정말 유치해 보였을 거 같긴 해요 ㅋㅋㅋㅋㅋㅋㅋ 뭔가 똥폼 잡는 애송이 새끼? ㅋㅋㅋㅋㅋㅋ 로즈는 세상 물정 정말 모르는 답답한 소녀고, 아이다는 이런 여자 주변에 있으면 저는 고구마 백 개 먹는 기분들 거 같긴 해요. ㅎㅎ

암튼 눈치 풀고 오늘 점심 맛나게 드십시오. *찰싹찰싹찰싹* 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7-15 13:03   좋아요 3 | URL
급식 먹고 왔습니다. 냉우동? ㅎㅎㅎ 처음 먹어봅니다.
냉우동 먹으면서 자꾸 뺨따구가 간질간질 하더니 그 시간에 누군가 귀싸대기를 날리고 계셨군요. ㅋㅋㅋㅋㅋㅋㅋ

서울이나 수도권 사시는 분들 아무쪼록 건강 조심하세요.
어제 울 삼실에서 확진자 나와서 코비드19 검사, 콧구멍 찔리고 왔습니다. 음성, 네거티브라네요. 다행이지만 은근히 서운한 건 왠지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제 왼쪽 콧구멍도 이젠 동정을 잃었습니다. 흑흑흑흑......

붕붕툐툐 2021-07-15 20:44   좋아요 2 | URL
ㅋㅋㅋ여기가 *찰싹*의 근원지군요~ 두 분 덕에 한참 웃었습니다!!ㅎㅎ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알랭 레몽 지음, 김화영 옮김 / 비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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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6년 프랑스 노르망디의 모르탱에서 딸 다섯, 아들 다섯, 합이 십 남매 가운데 중간쯤 태어난 작가 알렝 레몽의 자전적, 회고 형식을 띈 짧은 소설이며 대강 150쪽 정도의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과, 또 다른 자전적, 회고적 기록이며 역시 150쪽 가량의 또 다른 짧은 소설, <한 젊은이가 지나갔다>, 두 중편 소설을 묶은 책.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는 옛 속담이 딱 어울리는 집안이지만, 사실 실제로 십 남매를 둔 가족을 염두에 두면 집은 부유하지 않지만 아이들 다 똑똑한 편이고, 하나 빼고는 모두 건강하게 자라서 자기 밥벌이 하고, 웬만한 아이들은 전부 우등으로 학교 등록금 면제받고, 아 정말 이 정도면 된 거 아냐? 레몽이 열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그때부터 10년이 지나서 어머니까지 여윈 삶. 열 남매 가운데 오직 하나만 조울증이 심각해져 강에 빠져 죽는 비극을 당했다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하나가 좀 아쉽지, 냉정하게 봐서 괜찮은 집구석이다. 보라, 1960년대까지 인류의 평균 수명이 얼마나 됐는지. 스물다섯 살에 천애고아가 됐다고 궁상을 떨 필요가 있을까?
 천만의 말씀.
 한반도의 남쪽에서만 약 4,500만 명이 산다. 이건 적어도 4,500만 권의 소설책 또는 소설을 쓸 수 있는 스토리가 걸어 다닌다는 뜻이며, 세계적으로는 무려 60억 권의 소설책을 쓸 수 있는 재료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각 개인이 자신들 마음속에 담아 평생을 짊어지고, 견뎌내고, 맛보고, 후회하고, 아파하고, 즐거워하고, 웃음 짓는, 오직 자기만의 경험과 추억과 그것들의 확대(또는 축소) 재생산한 현재의 감정이다.


 1960년대 말의 어느 날, 정말 하루도 빼지 않고 통행금지 사이렌과 동시에 문간에 달린 벨이 울리던 한 가족이 있었다. 그때 할머니는 벨을 ‘요비링’이라 불렀는데 아무도 ‘요비링’의 어원을 알지 못했다. ‘씨유깽’은 ‘See you again'이란 건 1970년대나 돼야 알 수 있었지만 결국 ’요비링‘은 알지 못했다. 통금 사이렌과 거의 동시에 대문을 열면 어김없이 마당 안쪽으로 푹 쓰러지던 거구의 남자, 바로 내 아버지 ’이주사‘였던 거다. 형과 내가 180cm가 넘는 장신의 아버지를 억지로 끌고 현관으로 들어가면 팔짱을 끼고 기다리던 정여사의 본격적인 따발총 잔소리가 시작됐다. 어찌 그리 하루도 빼지 않고 날마다, 날마다, 그리고 날마다. 형과 나는 우울하게 벽에 기대서서 퍼질러 자빠져계신 아버지를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세상의 어느 자식새끼가 부모가 싸우는 걸 보고 행복해 숨이 넘어가겠는가. 드디어 긴 한숨을 쉬며 잔소리, 사실은 일찌감치 과부가 될까 두려워 술 좀 작작 마시라는 훈계이었겠지만 집안의 세 남자는 훈계의 말씀이 언제나 너무나도 귀가 따갑고 지겨웠던 건데, 귀 따갑고 지겨운 잔소리를 다 마치고 정여사가 팔짱을 풀고 방에 들어가기 위해 방문을 여는 순간, 형편없이 널부러져 있던 이주사께선 여지없이 거의 말똥말똥한 눈길을 한 채 고개를 번쩍 들고 아들들에게 말했다.
 “네 어미 들어갔니?”
 정말 날마다, 날마다. 이주사의 시체놀이에 이은 정여사의 울고불고 난리굿이 지겨워 미칠 것 같던 어느 겨울밤, 이주사께선 웬일인지 조금 꼬부라진 혀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진짜로 내가 내일도 술 마시고 오면 개다, 개. 사람이 아니고 개다, 개!”
 다음날 뉘엿뉘엿 해가 지자, 어느 때보다 일찍 퇴근해 집에 도착한 정여사는 서둘러 저녁을 자시고 목욕재개하고, 세상에나, 짧은 세월 살면서 처음 봤는데, 화장대 앞에 앉아 색조 가득한 화장을 하는 게 아니냔 말이지. 밤이 깊어가고 외출할 일도 분명 없는데, 깜짝 놀랄 일이 아닐 수 있겠느냐 이거다. 통통한 몸 여기저기에 화장수까지 뿌려가며 즐거워하던 모습을 근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러나 시계바늘은 정여사의 바람과 달리 그냥 돌아가기만 했고, 9시가 넘더니, 10시, 지국총지국총어사와 흘러 흘러, 어느덧 11시가 넘어 조금만 지나면 내일이 도착할 시간,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라던, 세상 초유의 정여사 지시를 무시하고 뜬 눈으로 어떻게 사건이 진행될까를 주시하는 형제의 눈은 더욱 또랑또랑해져만 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드디어 요비링이 요란하게 울리고 우린 방문을 아주 조금 연 채, 부부가 일기 필마에 올라 장창을 옆구리에 끼는 모습을 우울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을 걸로 알았다.
 “누구세요!”
 현관문을 열고 대문을 향해 날카로운 메조소프라노의 목소리가 관통했다. 괜히 내 뒷덜미가 찔끔해질 정도의 싸늘한 기운을 누구나가 느낄 수 있었으리라. 대문 앞에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당연하지. 문만 열었다 하면 마당 방향으로 철푸덕, 쓰러질 이주사임이 틀림없으니까.
 “누구세요!”
 정여사의 피치카토 샤우팅이 한 번 더 형제의 귀에 들렸다.
 잠시 후, 대문 밖에서 이주사의 목소리가 분명한, 영장류의 목소리로 내는 의성어가 틀림없는, 다음과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멍멍멍, 멍, 멍”
 이 이야기는 정여사가 웃음을 참지 못해 결국 해피 엔드로 막을 내린다. 아주 잠깐 해피 했지만.


 그리고 불과 몇 년 후, 나는 다시는 이주사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다. 내 나이 만 열두 살이 되자마자. 어떠셔? 이런 에피소드에서 보듯이 익살맞은 육척장신의, 당시 변웅전 아나운서보다 잘 생긴 아버지, 곧이어 불어 닥친 풍비박산, 죽을똥살똥 난장판에다가 고생바가지, 국민훈장 동백장 서훈, 기타 등등, 기타 등등. 한 편의 소설 쓸 수 있겠지? 내 집안만 그런 거 아니다. 당신들도 이하동문인 거, 내가 안다.
 내가 알고 있는 누구나에게도, 그가 만일 나와 마음속에 있는, 아니, 마음속에 든 응어리에 대해 이야기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에게 부모란 존재는 짐, 그리움(사실 나는 이주사, 정여사가 별로 그립지 않다), 쓸쓸함 비슷한 존재였다. 일반적인 얘긴 하지 말자. 당신이 받은 사랑, 누구나 받았고(물론 전혀 못 받았거나 아주 조금만 받은 사람도 있지만), 듣는 사람한테 별로 감동주지 못한다. 내가 냉정해서 그렇다고? 오케이. 상당부분 인정. 하지만 어쩌랴, 난 부모, 그것도 이미 돌아간 부모를 향한 사랑(진짜 헛된 사랑. 물론 전적으로 사적인 고백)과 그들로부터 받은 것들에 대한 그리움, 감동, 여전한(죽은 또는 늙은 부모의) 사랑, 안타까움 같은 것들에 대해 읽으면, 한 순간 마음이 찡하긴 하지만 곧바로 에이 썅, 하고 만다. “너만 그래?” 그런 건 하나도 특별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건, 자신 가슴 속의 응어리를 잘 쓴 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이, 문학작품이 징글징글하고, 무섭고, 위대한 거다.
 바로 그 글쓰기의 징글징글함, 무서움, 그리고 위대함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의 앞 글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을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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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4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14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1-07-14 16:5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의 인생 이야기는 왠지 뭉클하네요 ㅜㅜ 누구나 소설을 쓸 수 있는 사연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것 같아요. 이 책은 제목이 너무 좋네요 👍

Falstaff 2021-07-14 16:55   좋아요 5 | URL
윽. 뭉클하시면 안 됩니다. 재미있으라고 쓴 글인데요. ㅋㅋㅋㅋ

잠자냥 2021-07-14 16:53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멍멍멍에서 빵 터집니다. ㅎㅎ

그나저나 역자 후기는 안 읽으셨죠? ㅋㅋㅋㅋ


Falstaff 2021-07-14 16:57   좋아요 7 | URL
역자 후기를 김화영이 썼잖아요.
진짜 명문입니다. 빛나는 아우라. 아름다운 문장들로 잘난 척하고, 삽질하고, 독자를 우습게 보는 우리나라 최고 불문학자의 드높은 명성에 조금도 꿀리지 않습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전화해봤더니 계속 그렇게 살겠답니다. ㅋㅋㅋㅋ

청아 2021-07-14 17:3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의 재치와 유머의 출처는 아버님 DNA였네요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7-14 17:48   좋아요 6 | URL
ㅎㅎㅎ 좋은 건 제가 개발한 거고요, 못된 건 물려받았습지요. ㅋㅋㅋㅋㅋ

페넬로페 2021-07-14 17:5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정말 60억권의 사연들이 이 세상을 메우고 있는것 같아요. 글의 내용은 좀 슬프고 뭉클한데 일을때 제 얼굴의 미소는 무엇일까요! 소설쓰셔도 될것 같습니다.
강추합니다^^

Falstaff 2021-07-14 18:45   좋아요 4 | URL
ㅎㅎㅎ 재미있으셨으면 만족입니다. 즐겁게 읽으신 거 같아서 기분 좋습니다. ^^

coolcat329 2021-07-14 18:1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 알콜 유전자는 아버지께 받으셨군요 ㅎㅎ
개인적인 에피소드의 재미있는 글이지만 결론은 문학의 힘! 동감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불륜을 이해하기 시작했거든요. 천하에 추잡한 것들이라 생각했는데 이젠 그들의 사랑이 로맨스로도 보입니다. 이게 문학의 무서운 힘 아닐까요?

Falstaff 2021-07-14 18:50   좋아요 5 | URL
크, 확실한 건 알코올 유전자, 이거 물려 받은 거 맞습니다.
제가 연락하고 사는 친척들이 6촌 더하기 한 명의 팔촌, 누이들 형제들인데 초상나서 한 번 모이면, 으아.... 대단합니다.
아이고, 불륜까지 넘어가시면 곤란합니다만 어차피 문학사상 가장 뛰어난 미인 안나 카레리나도 결국 배나온 대머리 브론스키 백작하고 불륜을 저지르니 뭐라 특별하게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제 주위 분들에겐 그런 사주팔자가 없으시기를 간절히 바라올밖에요. ㅋㅋㅋㅋ

페넬로페 2021-07-14 19:19   좋아요 4 | URL
저도 책을 읽다보니 자꾸 사람들이 이해가 되어 큰일입니다~~폴스타프님, 맨날 먹고 책만 읽는 사람들은 그런 재주들이 없는 사람들입니다요^^

Falstaff 2021-07-14 19:53   좋아요 3 | URL
ㅋㅋㅋ 암요, 제가 잘 압니다. ^^

- 2021-07-14 19: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아, 그렇군요. 그런거군요! 일반적인 얘기를 특별하게 느끼게 하는 힘이 있는 독후의 감..생생히 읽고 갑니다. 멍멍!

Falstaff 2021-07-14 19:54   좋아요 3 | URL
아오, 그러니까 제 말씀에 동의하신다는 말씀이지요? ㅋㅋㅋㅋ
이 맛에 북플 한다니까요!!!

- 2021-07-14 20:29   좋아요 3 | URL
물론이죠. 동의하고. 웃프기도 하고. 내가 참 사람을 싫어하면서도 좋아하는 구나 싶고. 이맛에 하는 북플에도 동의요 ㅎㅎ

붕붕툐툐 2021-07-14 21: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짜 너무 잼나서 어떡해용? 진짜 폴스타프님 가족 얘기 소설로 꼭 쓰셨음 좋겠어요. 그럼 제가 ‘다들 이런데 이걸 꼭 책으로 내야했어? A~ㅅ ㅅ ㅑㅇ‘ 말하면서 가슴 뭉클, 눈물 글썽 할게욤~🙆

Falstaff 2021-07-14 21:28   좋아요 2 | URL
ㅎㅎㅎ 재미있었다고 하시니 기쁩니다!
복 받으실 거예요! ㅋㅋㅋㅋ
 
위비왕 20세기 프랑스 희곡선 5
알프레드 쟈리 지음, 장혜영 옮김 / 연극과인간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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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873년 프랑스 마옌 주 라발에서 태어나 겨우 서른네 살이던 1907년에 파리에서 결핵성 뇌막염으로 생을 마감한 알프레드 자리. 너무 짧게 살다 가서, 아니면 내가 아는 바가 적어서 그런지 크게 성과를 냈다고 하기는 좀 힘들겠다. 열다섯 살이던 1888년에 자리는 렌 고등학교에 입학해, 청소년들이 보기엔 참으로 기발한 인물을 만나게 되니 물리를 가르치던 에베르Hébert 선생이었다. 이 선생을 학생들은 차마 그대로 부를 수 없어 Hébe 또는 Eébe라고 불렀다.
  자리의 학교 선배 가운데 샤를르 모렝이란 학생이 1885년에 이 에베르 선생을 폴란드의 왕으로 변모시켜 <폴란드인>이란 작품을 구상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 샤를르의 동생 앙리가 자리와 동급생으로 입학하고, 자리의 글 솜씨를 알게 되자 형의 초고를 보여준다. 자리는 Hébe 또는 Eébe를 위뷔Ubu로 다시 바꾸어 <오쟁이진 위비>의 초본을 쓰고, 이게 몇 번의 변신을 거쳐 <위뷔 왕>이란 희곡으로 탄생한다.
  프랑수아 라블레가 쓴 <가르강튀아>는 “고매한 술꾼 그리고 고귀한 매독 환자 여러분”한테 헌정한 작품이다. <위뷔 왕>을 읽어보면 저절로 <가르강튀아>를 연상할 수 있을 정도로, 과장은 현저히 덜 하더라도, “배설과 돈, 성과 관계된 표현, 물욕, 식욕, 성욕에 관한 노골적인 묘사가 등장한다.”(역자 해설) 동시에 셰익스피어에 대해서도 상당한 부채를 지고 있다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된다. 이렇게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셰익스피어 비극/사극의 구성과 라블레의 희극성을 합해놓은 짬뽕밥의 결과는, 내용의 비극성보다 표현의 희극으로 향하는 것 같다.

 

  폴란드의 방세즐라스 왕에 의하여 백작의 품계를 받은 다음 날, 위뷔 아범은 아내 위뷔 어멈과 자신을 따르는 보르뒤르 대장, 지롱, 필, 코티스 등을 규합하여, 다음날 백작 취임 기념 열병식에 위뷔 백작을 그토록 신임해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고 참석해 자리를 빛내준 방세즐라스 왕과 세 아들 가운데 열네 살 먹은 막내 부그르라스 왕자를 뺀 두 왕자를 시해하고 왕관을 쓴다(역자는 믿는 도끼가 되어 왕의 발등을 찍은 맥베스와 닮았다고 해설에서 말한다). 취임하자마자 국고를 털어 국민에게 창고와 궁전을 열고 음식과 금을 내주어 인기를 끈 위뷔 왕은, 바로 다음 날부터 세금을 두 배, 며칠 있다가 세 배 늘려 착취를 일삼는 한편, 이제 사냥을 끝낸 뒤라 충성했던 사냥개 보르뒤르 대장을 지하 감옥에 유폐해버린다. 동시에 온갖 귀족, 법관, 세무관리 등을 눈에 띄기만 하면 사형에 처해버리는 폭정을 펼쳐 인심을 잃기 시작하는데, 와중에 보르뒤르 대장이 탈옥해 러시아로 건너가 폴란드의 하나 남은 적통 왕자 부그르라스를 왕위에 오르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그리하여 러시아의 알렉시스 황제는 군대를 이끌어 폴란드로 침공해 위뷔 왕과 전투를 벌이고, 궁전에서는 부그르라스 왕자가 위뷔 어멈을 내쫓고 왕위를 회복한다. 죽을 고생을 하다가 겨우 목숨을 건진 위뷔 왕은 북해에서 배를 얻어타고 (햄릿이 사는) 덴마크의 엘시뇨 성으로 떠난다는 내용.
  이 작품은 사실 내용보다 위뷔 아범, 위뷔 왕의 행위와 사용하는 언어, 시시때때로 변하는 임기응변과 비겁한 성격, 이를 다 합해 극을 희극으로 몰아가는 <헨리 4세>의 조연 폴스타프 닮은 행동이나, 숨을 한 번 죽인 가르강튀아 같은 모습을 보는 것이 진짜인데, 거 이상하지, 비극에 비해서 희극은 진짜 공연을 보는 것이 더 좋더라는 말씀. 물론 번역 작품의 경우에 그렇다는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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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7-13 10:0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이 작품은 폴스타프 님 같은 ˝고매한 술꾼˝을 위한 작품이군요! 저도 고매한 술꾼 단계에 올라가면 읽어보겠습니다. 아직은 비루한 술꾼이라... ㅋㅋ

Falstaff 2021-07-13 10:43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 프랑스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읽을 필요가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술꾼은 고매합지요. ㅋㅋㅋㅋㅋ

stella.K 2021-07-13 11: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글치 않아도 궁금했는데 여쭤 보기도 뭐하고
이제야 알았네요. 어디서 많이 들어보긴 했는데.ㅋ
웬지 제목이 술 안주가 생각이나는 제목입니다.ㅋㅋ

Falstaff 2021-07-13 12:48   좋아요 1 | URL
아, 이 작품을 궁금해 하시는 분도 계시네요.
진짜 읽어보면 뭘 풍자했는지 몰라서 정신 사납습니다. ㅋㅋㅋ
데친.... 미나리에 삼겹살 올려서 말입니까? ㅋㅋㅋ 너무 더워서요.

stella.K 2021-07-13 13:24   좋아요 1 | URL
아, 아뇨. 폴스타프라는 이름 말이어요.ㅠ
그래도 별점은 네 개를 주셨으믄서...ㅋㅋ

Falstaff 2021-07-13 13:46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그렇군요.
희극을 가지고 노는 게 재미있었습니다. 그랴 보너스로 별 하나 더 주었습지요. ^^
 
레베카 (초판 출간 80주년 기념판)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이상원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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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참. 아 글쎄 누가 레베카가 죽었다고 그래요? 레베카는 영국 또는 세상 어느 구석에서 리모컨으로 맨덜리 장원을 조종하고 있거나, 아니면 드 윈터 가문에 의하여 저 지하 깊은 모종의 곳에 유폐되어 있거나, 하여튼 둘 중에 하나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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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1-07-12 21:5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와, 레베카에 대한 절묘한 생각이십니다.
정말 그런거 같아요~~
저는 레베카의 망령이 씌여있는 덴버스 부인을 노래한 옥주현 뮤지컬 배우가 넘 강렬하게 남아 있어요^^
책으로도 어서 읽어봐야겠어요**

Falstaff 2021-07-12 21:45   좋아요 5 | URL
앗, 뮤지컬로도 만들었군요! 흠... 괜찮겠는데요. ^^

붕붕툐툐 2021-07-12 21:28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어제 강남역 2번 출구에서 레베카 본 거 같아요! 막 이래~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7-12 21:45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주머니 속의 송곳 같은 툐툐님!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7-12 21:3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크- 별 다섯!!!!!

Falstaff 2021-07-12 21:46   좋아요 5 | URL
오, 정말 오랜만에 독자 뒤통수 후려 갈기는 통쾌한 작품이었습니다. 다섯 개 플러스!!

꼬마요정 2021-07-12 21:4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레베카는 드 윈터 가문에 과분한 사람이라니까요^^

Falstaff 2021-07-12 21:47   좋아요 5 | URL
ㅋㅋㅋㅋ 드 윈터 집안에서 보면 아닌 밤에 날벼락 맞은 꼴이니까 그게 그겁니다.
하여튼 레베카, 죽여주는 팜 파탈이었습니다. 아우.... 레베카하고 안 살아서 을매나 다행인지요. ㅋㅋㅋㅋㅋ

새파랑 2021-07-12 22:0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레베카는 폴스타프님 마음속에 살아 있는 듯 하네요 ~!! 저도 반전 예상 못하고 깜놀했었는데 ㅎㅎ

Falstaff 2021-07-13 08:55   좋아요 3 | URL
옙. 뒤에 가서 화들짝, 세상에... 했답니다. ㅋㅋㅋㅋ
근데 이 작품엔 착하고 용기있는 인간은 우짜 하나도 안 나온답니까?
전부 도라이 아니면 눈치보는 아부꾼, 아, 한 명 나옵니다. 산과 의사요. ㅋㅋㅋㅋ

잠자냥 2021-07-13 10:1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전 사실 화자보다 레베카가 훨씬 매력적이었어요.... 앗, 레베카가 이 먼 타국의 저마저도 리모컨으로 조종하고 있는가 봅니다!

Falstaff 2021-07-13 11:02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
이 책이 매력적인 건, 다 잠재적 악당들이란 겁니다. 그래 더 사람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고요. (심지어 바보 벤 마저 착하지 않더군요.) 화자는 바보, 소심의 극치, 비호감입니다. 고구마 세 개.
레베카는 가히 천재라고 할 수 있잖아요? 나쁜 방면으로. ㅋㅋㅋㅋ 세상에 이런 사람 둘이 있어서 서로가 서로를 엿먹이기 시합하면 진짜 볼 만할 거예요.
듀 모리에가 좀 더 오래 살아 레베카하고 레이첼, 두 레씨 형제들 붙여놓았으면 볼만 했을 텐데요. ㅋㅋㅋㅋ
 
보헤미아의 빛 대산세계문학총서 51
라몬 델 바예-인클란 지음, 김선욱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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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들어보는 작가. Ramon Maria del Valle-Inclan, 1866~1936. 이 양반이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비야누에바 데 아로사의 지식인 계급 가정에서 태어나,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 자제들이 자주 그랬듯이 부모의 뜻을 따르느라 법과대학에 진학했지만 결국 사주팔자를 따라 나중에 아버지가 죽자마자 1890년, 스물네 살에 공부를 때려치우고 마드리드로 가서 콩트와 비평서 등을 출판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1892년에 (겨우 일 년 동안이지만) 멕시코로 건너가서 기자 생활도 하고 그랬는데, 짧은 멕시코 생활에서 바예-인클란은 자신의 작품 활동에 영향을 줄 모더니즘을 경험한다. 바예-인클란은 원래 전통적인 보수주의 세계관을 지니고 있었고, 당시 마드리드엔 부르주아 일상극 열풍이 불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새로운 사조의 문학은 바예-인클란에겐 큰 전환점이 되었으리라. 실제로 이후 이이의 작품엔 모더니즘 성향이 내재되어, 쾌락적인 에로티즘, 종교적 상징주의, 관능과 결부된 이교주의, 미술적 표현과 신비주의적인 요소 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옮긴이 김선욱은 해설에 쓰고 있다.
  이 책 《보헤미아의 빛》은 1920년에 잡지 연재하여 24년에 출판한 표제작과 1919년에 발표한 <성스러운 말씀>, 1922년에 출간한 <은빛 얼굴>, 이렇게 세 편을 싣고 있는 희곡집으로, 바예-인클란 스스로 창안한 “에스페르펜토”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역자해설에 의하면 에스페르펜토를 스페인 한림원은 “첫째, 단정치 못하고 빈약한 외양의 추한 사람이나 사물을 지칭하는 것이고, 둘째는 엉뚱하고 불합리한 것”을 의미한다고 했으며, “바예-인클란의 새로운 미학에 대한 총칭으로 비극적인 것과 그로테스크한 것의 변증법적 조합”이라고 괜히 어렵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내 솔직한 의견을 말하자면, 여기서 변증법이 왜 나와? 그냥 “비극과 그로테스크의 동침”이라 하면 딱 이해가 안 되나?
  라몬 델 바예-인클란은 스페인의 대표적인 98세대 작가다. 스페인 문학을 읽다보면 흔하게 “98세대”가 등장한다. 1898년을 의미하는 것으로 어떤 일이 있었느냐 하면, 독립운동이 일어난 쿠바를 진압하기 위해 스페인에서 군대를 보냈다가 쿠바 독립을 지원한 미국하고 전쟁이 붙어 쌍코피가 터지는 바람에 마지막 식민지 쿠바와 필리핀까지 모두 내주게 되어 이후 스페인은 식민지를 모두 상실하게 되어버린 사건이다. 스페인은 특히 라틴 아메리카에 수많은 식민지를 가지고 있어 그곳에서 들어오는 재화가 넘쳐흘러 유럽의 다른 국가들과 달리 산업혁명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았던 나라다. 그런데 이제 마지막 식민지까지 잃어버리니 이후 스페인은 유럽국가 가운데서 힘없고, 돈도 없고, 그저 가진 것이라고는 높은 영아사망률이라는 그림자가 있긴 하지만, ①사랑이 넘치는 나라라서 끔찍하게 높은 인구증가율과 ②굴뚝 공장이 없으니 청정한 물과 공기밖에 없었다. 여기에 하나만 더 꼽으라면 중세 시대에 머물러 있는 국민의 가톨릭 종교관. 이러니 당대의 스페인을 그대로 묘사만 해도 바예-인클란이 주창한 에스페르펜토가 구현이 되지는 않았을까.
  이런 와중에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1년이 지난 1915년, 바예-인클란은 전통적으로 독일과 깊은 유대관계를 맺어왔던 스페인 주류들과 단절을 선언했다는 것. 이건 당연히, 위에서 말한 98 세대답게 갈수록 쭈그러지던 스페인의 역사, 사회적 위기 상황에서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모색하는 계기가 되어 작가 자신이 “급진적 진보주의로 전향해, 유산계급, 군대, 성직자 계층이 주도하는 자본주의를 반대하고 노동 계층의 투쟁과 무정부주의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다.”고 해설에 씌어있다. 이런 정치의식은 고스란히 책에 담긴 세 편의 희곡에 반영되어 있어, 세 작품 모두 정치적 공연을 위한 작품이라 한다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이 책을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는 하나의 장애를 넘어야 하리라. 작품들의 무대는 모두 작가의 고향인 스페인 북서부, 포르투갈과 가까운 국경지대이며, 차승원과 유해진이 민박집을 하는 바람에 널리 알려졌으나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가톨릭 신자들이 평생 한 번 걷고 싶어하는 산티아고 순례 길의 마지막 도착지 산티아고를 주도로 하는 갈리시아 지방이다. 그래 주인공이 아닌 무지렁이 촌사람이 등장인물인 경우엔 전라도 사투리로 번역을 했지만 그건 그냥 넘어가더라도, 지역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관용구를 어떻게 번역했는지, 역자는 과하게 친절하게 설명해주어 시도 때도 없이 무수한 각주를 읽어야 한다는 거. 그거 읽다가 정작 스토리는 놓쳐버리는 일이 정말로 생긴다. 만약 우리말 관용구 ‘언 발에 오줌 누기’를 스페인어로 번역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는. 이런 딜레마의 전도顚倒를 숱하게 경험해야 한다는 말씀.
  표제작 <보헤미아의 빛>에서는 ‘막스 에스트레야’라는 당대 최고의 시인이 등장하는데 맹인이다. 이이는 남부 스페인 세비야 출신의 실제 장님이자 광기의 시인인 알레한드로 사와를 극화한 인물이라고 한다. 막스는 비록 프랑스의 빅토르 위고와 비견되는 스페인 최고의 시인이지만 밝혀지지 않는 이유로 정부와 관계가 매끄럽지 않다. 그래 네 편의 연대기를 신문사에 보냈음에도 황소 아피스로부터 원고계약 해지를 통보받는 끈 떨어진 갓 신세. 여기서 ‘황소 아피스’가 무엇일까. 이게 장벽이다. 막스 에스트레야가 일하던 신문사의 편집장이란다. 내놓고 신문사 이름을 대면 검열에 걸린 우려가 있어 이렇게 돌려서 써야 했다는데 각주가 없다면 우리나라 독자들 몇이나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하여튼 이 위대한 맹인 시인이 이제 친구라기보다 객꾼이자 시인의 말대로 빌붙어 사는 ‘개dog’인 돈 라티노 데 이스팔라스와 함께 저녁때 집을 나서 몇 푼이나마 벌어 갈 요량으로 온갖 곳을 다 다니다가 술에 취해 돌아올 때까지의 하룻밤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의 12장에 소위 에스페르펜토에 대한 정의가 나온다. “오목 거울에 비친 옛 영웅들의 모습”, “스페인은 유럽 문명의 그로테스크하고 뒤틀린 형상체”, “오목 거울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것도 부조리한 것이 되어”버린다는 등. 그래서 이 작품을 표제작으로 했던 거 같다.  두 번째 <성스러운 말씀>. 후아나 라 레이나가 뇌수종에 걸린 아들을 수레에 싣고 장터마다 다니며 아이의 장대한 아랫도리를 구경시키고 돈을 받아 생활한다. 그러다 어느 날 아들을 남겨놓은 채 혼자 죽어버리는 바람에 ‘돈이 되는’ 수레와 아이를 맡아 키우겠다고 이모와 외삼촌 내외 사이에 다툼이 인다. 결국 외삼촌에게 넘어가고, 엉뚱하게 외숙모가 수레와 아이를 이용해 돈이 생기자마자 외간남자가 생기는데 그만 아이가 죽어버린다. 외삼촌 부부는 자기네 돈으로 장례를 치르기 아까워 수레에 시신을 싣고 이모네 집 앞에 방치해버린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조카 시신의 일부, 주로 얼굴과 팔을 돼지가 다 뜯어먹었는데, 이모 역시 고분고분 장례를 치러줄 수 없어 다시 동생네 집으로 수레를 끌고 간다. 결국 수레를 성당 앞에다 끌어다 놓고 장레비용을 구걸하는 이모와 외삼촌 내외. 이 와중에 외숙모는 전에 정분이 있던 남자와 수풀 속에서 거사를 치르다 사람들한테 발각되어 옷을 홀랑 벗긴 채 춤을 추는 치욕을 당한다.
  마지막 작품 <은빛 얼굴>은 앞의 두 작품도 그렇지만 도무지 연극으로는 공연하지 못할 것 같은 장면(전환)과 등장하는 짐승들이 많다. 내용은 전형적인 서부극. 연극을 위한 희곡이라기보다 시나리오 같다. 몬테네그로 집안 역시 갈리시아 지방의 거대한 토지를 소유한 부르주아. 집안의 가장인 돈 후안 마누엘라는 재판을 걸어 여태 자신의 땅을 걷거나 말을 타고 가축시장으로 향하던 길을 폐쇄해버린다. 가축을 몰고 통과하려는 목동들과의 마찰을 일으키고 있던 주인공 ‘은빛 얼굴’이, 누구나 통행금지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환자의 종부성사를 하기 위해 땅을 가로지르려는 먼 친척이기도 한 수도원장의 길 역시 막아선다. 그리하여 열받은 수도원장은 몬테네그로 집안에 위탁해 온 조카이자 은빛 얼굴이 사랑하는 사벨리타를 집에 데려오고, 두 집안은 철천지원수가 되어버린다. 이의 화해를 위해 은빛 얼굴은 카드 게임에서 수도원장이 속임수를 쓰는 것을 뻔히 알고도 일부러 거금을 잃어주지만 오히려 싸움이 나고, 원장은 이후에도 돈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며칠 후 사벨리타가 성당에서 마을의 거지에게 추행을 당하려는 찰라에 은빛 얼굴의 아버지 돈 후안 마누엘라에게 납치되어 다시 몬테네그로 집으로 오게 되고, 이를 알아차린 은빛 얼굴은 아버지를 쪼개 죽이기 위해 도끼를 들고 집으로 향하는데, 복수를 위해 수도원장 역시 총을 들고 집에 와 있다.

 

  뭐 이런 작품들. 에스페르펜토라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되고, 위에서 잠깐 말한 장벽도 있어서 읽어보시라 권하긴 힘들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작품을 발표했던 1920년대에는 전위라는 관까지 썼던 (극)작가이고 작품이다. 당연히 안토니오 부에로 바예호의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를 읽고 스페인 희곡에 관심이 생겨 선택한 책이지만, 그만큼의 감동을 느끼기는 힘들다. 우리 독자에게 동감이나 감동을 주기 위해서라기보다 세계문학의 중요한 한 지점을 차지한 작가의 대표작을 소개하기 위해 번역, 출간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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