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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아의 빛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51
라몬 델 바예-인클란 지음, 김선욱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11월
평점 :
처음 들어보는 작가. Ramon Maria del Valle-Inclan, 1866~1936. 이 양반이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비야누에바 데 아로사의 지식인 계급 가정에서 태어나,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 자제들이 자주 그랬듯이 부모의 뜻을 따르느라 법과대학에 진학했지만 결국 사주팔자를 따라 나중에 아버지가 죽자마자 1890년, 스물네 살에 공부를 때려치우고 마드리드로 가서 콩트와 비평서 등을 출판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1892년에 (겨우 일 년 동안이지만) 멕시코로 건너가서 기자 생활도 하고 그랬는데, 짧은 멕시코 생활에서 바예-인클란은 자신의 작품 활동에 영향을 줄 모더니즘을 경험한다. 바예-인클란은 원래 전통적인 보수주의 세계관을 지니고 있었고, 당시 마드리드엔 부르주아 일상극 열풍이 불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새로운 사조의 문학은 바예-인클란에겐 큰 전환점이 되었으리라. 실제로 이후 이이의 작품엔 모더니즘 성향이 내재되어, 쾌락적인 에로티즘, 종교적 상징주의, 관능과 결부된 이교주의, 미술적 표현과 신비주의적인 요소 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옮긴이 김선욱은 해설에 쓰고 있다.
이 책 《보헤미아의 빛》은 1920년에 잡지 연재하여 24년에 출판한 표제작과 1919년에 발표한 <성스러운 말씀>, 1922년에 출간한 <은빛 얼굴>, 이렇게 세 편을 싣고 있는 희곡집으로, 바예-인클란 스스로 창안한 “에스페르펜토”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역자해설에 의하면 에스페르펜토를 스페인 한림원은 “첫째, 단정치 못하고 빈약한 외양의 추한 사람이나 사물을 지칭하는 것이고, 둘째는 엉뚱하고 불합리한 것”을 의미한다고 했으며, “바예-인클란의 새로운 미학에 대한 총칭으로 비극적인 것과 그로테스크한 것의 변증법적 조합”이라고 괜히 어렵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내 솔직한 의견을 말하자면, 여기서 변증법이 왜 나와? 그냥 “비극과 그로테스크의 동침”이라 하면 딱 이해가 안 되나?
라몬 델 바예-인클란은 스페인의 대표적인 98세대 작가다. 스페인 문학을 읽다보면 흔하게 “98세대”가 등장한다. 1898년을 의미하는 것으로 어떤 일이 있었느냐 하면, 독립운동이 일어난 쿠바를 진압하기 위해 스페인에서 군대를 보냈다가 쿠바 독립을 지원한 미국하고 전쟁이 붙어 쌍코피가 터지는 바람에 마지막 식민지 쿠바와 필리핀까지 모두 내주게 되어 이후 스페인은 식민지를 모두 상실하게 되어버린 사건이다. 스페인은 특히 라틴 아메리카에 수많은 식민지를 가지고 있어 그곳에서 들어오는 재화가 넘쳐흘러 유럽의 다른 국가들과 달리 산업혁명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았던 나라다. 그런데 이제 마지막 식민지까지 잃어버리니 이후 스페인은 유럽국가 가운데서 힘없고, 돈도 없고, 그저 가진 것이라고는 높은 영아사망률이라는 그림자가 있긴 하지만, ①사랑이 넘치는 나라라서 끔찍하게 높은 인구증가율과 ②굴뚝 공장이 없으니 청정한 물과 공기밖에 없었다. 여기에 하나만 더 꼽으라면 중세 시대에 머물러 있는 국민의 가톨릭 종교관. 이러니 당대의 스페인을 그대로 묘사만 해도 바예-인클란이 주창한 에스페르펜토가 구현이 되지는 않았을까.
이런 와중에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1년이 지난 1915년, 바예-인클란은 전통적으로 독일과 깊은 유대관계를 맺어왔던 스페인 주류들과 단절을 선언했다는 것. 이건 당연히, 위에서 말한 98 세대답게 갈수록 쭈그러지던 스페인의 역사, 사회적 위기 상황에서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모색하는 계기가 되어 작가 자신이 “급진적 진보주의로 전향해, 유산계급, 군대, 성직자 계층이 주도하는 자본주의를 반대하고 노동 계층의 투쟁과 무정부주의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다.”고 해설에 씌어있다. 이런 정치의식은 고스란히 책에 담긴 세 편의 희곡에 반영되어 있어, 세 작품 모두 정치적 공연을 위한 작품이라 한다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이 책을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는 하나의 장애를 넘어야 하리라. 작품들의 무대는 모두 작가의 고향인 스페인 북서부, 포르투갈과 가까운 국경지대이며, 차승원과 유해진이 민박집을 하는 바람에 널리 알려졌으나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가톨릭 신자들이 평생 한 번 걷고 싶어하는 산티아고 순례 길의 마지막 도착지 산티아고를 주도로 하는 갈리시아 지방이다. 그래 주인공이 아닌 무지렁이 촌사람이 등장인물인 경우엔 전라도 사투리로 번역을 했지만 그건 그냥 넘어가더라도, 지역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관용구를 어떻게 번역했는지, 역자는 과하게 친절하게 설명해주어 시도 때도 없이 무수한 각주를 읽어야 한다는 거. 그거 읽다가 정작 스토리는 놓쳐버리는 일이 정말로 생긴다. 만약 우리말 관용구 ‘언 발에 오줌 누기’를 스페인어로 번역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는. 이런 딜레마의 전도顚倒를 숱하게 경험해야 한다는 말씀.
표제작 <보헤미아의 빛>에서는 ‘막스 에스트레야’라는 당대 최고의 시인이 등장하는데 맹인이다. 이이는 남부 스페인 세비야 출신의 실제 장님이자 광기의 시인인 알레한드로 사와를 극화한 인물이라고 한다. 막스는 비록 프랑스의 빅토르 위고와 비견되는 스페인 최고의 시인이지만 밝혀지지 않는 이유로 정부와 관계가 매끄럽지 않다. 그래 네 편의 연대기를 신문사에 보냈음에도 황소 아피스로부터 원고계약 해지를 통보받는 끈 떨어진 갓 신세. 여기서 ‘황소 아피스’가 무엇일까. 이게 장벽이다. 막스 에스트레야가 일하던 신문사의 편집장이란다. 내놓고 신문사 이름을 대면 검열에 걸린 우려가 있어 이렇게 돌려서 써야 했다는데 각주가 없다면 우리나라 독자들 몇이나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하여튼 이 위대한 맹인 시인이 이제 친구라기보다 객꾼이자 시인의 말대로 빌붙어 사는 ‘개dog’인 돈 라티노 데 이스팔라스와 함께 저녁때 집을 나서 몇 푼이나마 벌어 갈 요량으로 온갖 곳을 다 다니다가 술에 취해 돌아올 때까지의 하룻밤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의 12장에 소위 에스페르펜토에 대한 정의가 나온다. “오목 거울에 비친 옛 영웅들의 모습”, “스페인은 유럽 문명의 그로테스크하고 뒤틀린 형상체”, “오목 거울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것도 부조리한 것이 되어”버린다는 등. 그래서 이 작품을 표제작으로 했던 거 같다. 두 번째 <성스러운 말씀>. 후아나 라 레이나가 뇌수종에 걸린 아들을 수레에 싣고 장터마다 다니며 아이의 장대한 아랫도리를 구경시키고 돈을 받아 생활한다. 그러다 어느 날 아들을 남겨놓은 채 혼자 죽어버리는 바람에 ‘돈이 되는’ 수레와 아이를 맡아 키우겠다고 이모와 외삼촌 내외 사이에 다툼이 인다. 결국 외삼촌에게 넘어가고, 엉뚱하게 외숙모가 수레와 아이를 이용해 돈이 생기자마자 외간남자가 생기는데 그만 아이가 죽어버린다. 외삼촌 부부는 자기네 돈으로 장례를 치르기 아까워 수레에 시신을 싣고 이모네 집 앞에 방치해버린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조카 시신의 일부, 주로 얼굴과 팔을 돼지가 다 뜯어먹었는데, 이모 역시 고분고분 장례를 치러줄 수 없어 다시 동생네 집으로 수레를 끌고 간다. 결국 수레를 성당 앞에다 끌어다 놓고 장레비용을 구걸하는 이모와 외삼촌 내외. 이 와중에 외숙모는 전에 정분이 있던 남자와 수풀 속에서 거사를 치르다 사람들한테 발각되어 옷을 홀랑 벗긴 채 춤을 추는 치욕을 당한다.
마지막 작품 <은빛 얼굴>은 앞의 두 작품도 그렇지만 도무지 연극으로는 공연하지 못할 것 같은 장면(전환)과 등장하는 짐승들이 많다. 내용은 전형적인 서부극. 연극을 위한 희곡이라기보다 시나리오 같다. 몬테네그로 집안 역시 갈리시아 지방의 거대한 토지를 소유한 부르주아. 집안의 가장인 돈 후안 마누엘라는 재판을 걸어 여태 자신의 땅을 걷거나 말을 타고 가축시장으로 향하던 길을 폐쇄해버린다. 가축을 몰고 통과하려는 목동들과의 마찰을 일으키고 있던 주인공 ‘은빛 얼굴’이, 누구나 통행금지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환자의 종부성사를 하기 위해 땅을 가로지르려는 먼 친척이기도 한 수도원장의 길 역시 막아선다. 그리하여 열받은 수도원장은 몬테네그로 집안에 위탁해 온 조카이자 은빛 얼굴이 사랑하는 사벨리타를 집에 데려오고, 두 집안은 철천지원수가 되어버린다. 이의 화해를 위해 은빛 얼굴은 카드 게임에서 수도원장이 속임수를 쓰는 것을 뻔히 알고도 일부러 거금을 잃어주지만 오히려 싸움이 나고, 원장은 이후에도 돈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며칠 후 사벨리타가 성당에서 마을의 거지에게 추행을 당하려는 찰라에 은빛 얼굴의 아버지 돈 후안 마누엘라에게 납치되어 다시 몬테네그로 집으로 오게 되고, 이를 알아차린 은빛 얼굴은 아버지를 쪼개 죽이기 위해 도끼를 들고 집으로 향하는데, 복수를 위해 수도원장 역시 총을 들고 집에 와 있다.
뭐 이런 작품들. 에스페르펜토라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되고, 위에서 잠깐 말한 장벽도 있어서 읽어보시라 권하긴 힘들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작품을 발표했던 1920년대에는 전위라는 관까지 썼던 (극)작가이고 작품이다. 당연히 안토니오 부에로 바예호의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를 읽고 스페인 희곡에 관심이 생겨 선택한 책이지만, 그만큼의 감동을 느끼기는 힘들다. 우리 독자에게 동감이나 감동을 주기 위해서라기보다 세계문학의 중요한 한 지점을 차지한 작가의 대표작을 소개하기 위해 번역, 출간하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