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라트 선생 또는 어느 폭군의 종말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하인리히 만 지음, 모명숙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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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인리히 만은 자신보다 20세기 중반까지 독일 문학을 대표했던 토마스 만의 친형으로 더욱 유명하다. 엄격하고 철학적인 작품을 썼고 자기도 이와 비슷한 성격/성품을 지닌 토마스 만과 대조적으로 라틴 아메리카 출신의 어머니를 닮아 개방적이고 활달하고 적극적 의사소통을 했던 하인리히 만은 살면서 자주 동생 토마스와 의견충돌을 일으켰고, 그보다는 약간 적은 회수로 의절을 했다가 화해를 반복한다. 그러나 이건 형제들의 일일 뿐, 토마스의 자식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전형적 독일인인 친아버지보다 큰아버지 하인리히를 더 좋아해 더 따랐다 한다. 그들이 성인이 되어 미국으로 건너가 살던 때도. 그는 1920년대 후반에 베를린에서 거주하며 공산주의에 경도되어 정치에까지 참여하는 바, 오스트리아 출신의 콧수염난 아마추어 화가가 독일의 권력을 쥐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프랑스로 망명한다. 망명 프랑스에서 독일인민전선 준비위원회 의장과 사회민주당 명예총재를 역임하면서 대표작이라고 일컫는 <앙리 4세>를 출간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미국으로 거주를 옮긴다. 공산주의자에 가까웠던 하인리히 만은 미국에 거주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949년에 동독 정부로부터 예술 및 문학 1급 훈장을 받고 50년에 동독으로 귀국하려 했으나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에서 79세를 보름 앞두고 사망, 11년 후인 1961년에 그의 흰 뼈가 함에 담겨 동베를린 행 비행기에 오른다. 우리나라 말로 번역해 읽을 수 있는 책은 낭트칙령을 선포하여 종교전쟁을 끝낸 부르봉 왕가의 시조를 다룬 대표작 <앙리 4세>와 오늘 독후감을 쓰고 있는 <운라트 선생 또는 어느 폭군의 종말> 딱 두 편이다.


​  <운라트 선생 또는 어느 폭군의 종말>의 주인공인 운라트 선생의 진짜 이름은 라트”Raat”다. 네덜란드 말로 벌집이라는 뜻이 있는 걸로 봐서 조상이 양봉을 했던 건 아닐까 싶다. 라트 박사는 김나지움에서 만25년간 라틴어와 그리스어, 그리고 문학을 가르치고 작품을 시작하는 시점엔 26년째 10학년, 우리나라로 치면 고등학교 1학년 담임을 맡고 있다. 이이가 젊은 시절에 한 과부를 알고 지냈는데, 과부가 선생이 먼 곳까지 유학 가서 공부를 해 학위를 받을 때까지 모든 학비와 생활비를 대주었단다. 그래 선생은 급여가 그리 많지 않은 김나지움에 직장을 얻자마자 곧바로 과부에게 청혼해 혼인을 해 아들 하나를 두었다. 지금은 과부가 죽고도 많은 세월이 지났으며, 하나 있는 아들은 선생보다 결코 더 잘 생기지도 않은 데다가 눈 한쪽을 잃어버렸다. 아들이 대학시절에 좋지 못한 사교모임에서 많은 재산을 탕진하고 점잖지 못한 여성들과 노느라고 대학졸업 국가고시에 최하 네 번의 고배를 마신 후에, 더 이상 열을 받으며 노후를 지낼 수 없는 라트 선생은 호적에서 아들 이름을 파버렸다. 그래서 지금은 홀아비 신세로 엄한 하녀의 눈치를 보면서 홀로 살고 있다.

  오랜 세월 누구와의 교류도 없이 오직 라틴어와 그리스어, 그리고 고전문학만 연구하면서 홀로 지내다 보니 라트 박사의 삶은 외골수로 치달아 현재 관심이 있는 것은 첫째가 호메로스의 작품에 나오는 불변화 품사에 관한 논문 작성과, 자기 학급의 문제아 세 명에게 앞으로 남은 인생 전부를 망칠 수 있도록 “포박”하는 일이다. 김나지움 10학년. 이들 가운데 세 명의 문제아를 소개하자면 키젤라크, 폰 에르춤 백작, 그리고 가장 경멸해 마지않는 로만이다. 폰 에르춤은 공부 머리가 아예 없고, 로만은 학업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채 수업시간과 상관없이 다른 책들만 파는 학생으로 벌써 두 학년을 꿇어 다른 아이들보다 나이가 많아 열일곱 살이다. 두 명은 하여튼 성적이 안 되어 유급을 한 반면에 키젤라크는 축제 때 라트 선생의 별명을 큰 소리로 외치는 바람에 괘씸죄에 걸렸다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별명? 그렇다. 사내아이들, 젊은 수컷들의 몸과 뇌에서 자동 지시하는 일들, 욕구를 좇고, 소동을 일으키고, 주먹질을 하고, 다치게 하고, 못된 장난을 치고, 쓸데없는 객기와 남아도는 힘을 헛되게 써버리는 일에 점령된 사춘기 소년들의 정글. 이들은 인생이 허여한 몇 년 안 되는 동안의 특권으로 교사들에게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지어준다. 나도 아직 고교 시절 교사들의 별명을 몇 개 잊지 않고 있다. 개밥그릇, 혼수상태, (어느 학교나 빠지지 않고 있는) 미친개, 멍게 등등. 이들은 라트 선생에게 선생의 이름을 아주 약간 바꾸어 운라트Unrat라는 별호를 지어주었다. 오물rubbish라는 뜻이다.

  그런데 운라트 선생이 자기 별명에 유독 발광을 하는 것은, 25년 동안 자신이 가르쳤던 5만 명의 시민 전부가 자신을 똑같이 오물이라는 뜻의 아름답지 아니한 수준을 넘어 경멸스러운 별명으로 부르는 일이다. 가뜩이나 편협하고 편집광 적이고, 외고집인 선생은 선생이 듣고 있다는 걸 아는지 마는지는 다음으로 하고 학생 누군가가 자신의 가청권 안에서 자신을 ‘운라트’라고 호칭을 하면 뺑, 돌아버린다. 그리하여 누가 선생의 모습으로 보면 겁을 먹었으면서도 복수심에 불타는 눈빛을 한 57세의 노인(1905년 작품으로 당시 57세면 상 할아버지였다)한테, 학생들의 주름진 외투들 속에 혹시라도 단도가 숨겨져 있는 게 아닌지 엿보는 떳떳하지 못한 폭군의 눈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다. 작품의 제목에 나오는 “어느 폭군”이 김나지움 안에서의 운라트 선생을 일컫는다. 폭군이라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지? 천만의 말씀. 역대의 폭군은 인생 전체를 통틀어 암살이나 테러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 속에서 살았다. 원래 폭군tyrant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었다. 다수의 우둔한 군중에 의한 민주주의가 저지르는 만행을 극복하기 위해 독재정이 출발했던 것과 비슷하다. 독재정의 우두머리에 한 미친 작자가 앉아버리면 그게 폭군이 되는 거고, 민중들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도편추방이란 조금은 어이없는 제도를 또 장만했던 거 아닌가 말이지. 운라트 선생은 그러나 바람직한 폭군이 아니라 로마 시대의 티베리우스, 칼리굴라, 네로, 콤모두스 같아서 적어도 매년 한 명 이상은 자신을 오물이라고 공개적으로 부른 학생을 처단해야 만족하고, 한 해를 보람있게 보냈다, 라는 소감을 남겼다.


​  하여간 작품 속의 해에 걸려든 문제아 세 명 가운데서도 가장 골치 아프고, 그래서 반드시 처단해야 하는 학생으로 선생은 로만을 선택했다. 실러의 시 <오를레앙의 처녀>에 관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고, 그게 있을 수 있는지도 상상 못할 문제에 관하여 에세이를 쓰라는 시험을 치루는데, 가장 빨리 시험 노트를 메운 다음 태연하게 다른 책을 보고 있던 로만을 선생은 교실 밖으로 내보낸다. 이후에 작문 노트를 들춰보니 로만이 지은 야릇한 시 <고귀한 여배우 프륄리히 양에게 바치는 경의>가 적혀 있다. 이 가운데 한 귀절.


​  그대는 뼛속까지 타락했소.

  그렇지만 그대는 위대한 예술가요.

  그리고 그대가 일단 산욕産褥에 든다면


​  선생의 문제는, 아이들이 고등학생이라는 걸 간과한다는 거다. 내가 아직도 어처구니없어 하는 담임교사 한 분이 있는데,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음악과목에 열성이던 홍XX 선생으로, 이이가 하루는 가르치다가 뭣 때문에 열을 잔뜩 받았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겨우 열 살 백이 아이들 80명을 앞에 두고 “내가 왜 <사운드 오브 뮤직>을 여섯 번이나 봤는지 알아?”라고 절규하던 장면이다. 틀림없이 선생은 꼬맹이들을 자기 수준으로 올려놓았던지 아니면 자기가 열 살 수준으로 스스로 내려갔던 터이다. 운라트 선생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하나, 가장 위협적인 문제아, 결코 ‘운라트’라고 부르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경멸하고 있음을 내비치는 아이. 예를 들어 수업시간에 벌떡 일어나, “선생님 더 이상 못 참겠습니다. 여기에 오물(운라트) 냄새가 지독하게 난단 말입니다.” 라고 발언하는 식으로.

  이리하여 선생은 오랜만에 저녁시간에 길거리에 나서 극장에도 가보고, 직업소개소라고 생각했지만 엉뚱하게 ‘선원 알선인’ 사무실에도 들어가 하계공연 입장권도 요구해보고, 카페 센트럴에 몇 년 만에 가보기도 하고, 심지어 저녁 식사중인 제화기능장 린트플라이슈의 집에 방문해 필요하지 않은 장화를 맞추면서 어디 가면 여배우 프륄리히 양을 만날 수 있는지 묻기도 한다. 왜? 프륄리히 양이 누군지 알아야 문제아 로만을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러다가 부두 노동자 두 명을 우연히 발견하고 그들을 따라 가게 되는데, 이들은 얼핏 보기엔 가정집 같은 술집 “푸른 천사”로 들어간다. 선생도 이들을 좇아 입구에서 프륄리히 양이 여기에 있는지 물어봤는데, 빙고, 드디어 찾았다. 이곳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것. 그리하여 선생은 평소라면 출입할 생각도 하지 않을 하층계층 사람들 전용 술집에 용감하게 입성해 참으로 어여쁘게 생긴 프륄리히 양을 눈으로 보는 순간, 누군가 급하게 출입구 쪽으로 뛰어나가는 것도 발견하니, 바로 자신의 타겟인 문제아 3인방이었다.

  집에 돌아온 운라트 선생. 이젠 호메로스의 작품에 나오는 불변화 품사에 관한 생각을 더 이상 할 수 없다. 두 명 때문에. 로만과 프륄리히. 이후 어떻게 될까? 통 크게 알려드린다. 57세의 운라트 선생, 프륄리히한테 꽂혀버린다. 여배우에게 바칠 최고급 샴페인과 꽃을 위해 처음엔 조금씩 돈을 낭비하다가 당연히 점점 규모가 커져 버린다. 하지만 정작 로만이 사랑했던 여인은 프륄리히가 아니라 도라 브레드포트 여사였던 것이고, 브레드포트 여사가 불과 얼마 전에 출산을 해 산욕 운운하는 시를 썼는데 감히 여신과 같은 도라 브레드포트 여사의 이름을 내놓고 쓰기 힘들어 여배우 프륄리히의 이름을 빌렸을 뿐이었던 거다. 세상이 뭐 다 그렇지. 그러나, 아직 스토리는 반이 넘게 남았다. 운라트 선생이 언제, 어떻게 종말을 맞을지는 당연히 안 알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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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2-12-08 1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 책이 재밌는 거예요, 골드문트님이 재미있게 쓰신 거예요? 별명이 오물이라니 좀 불쌍하기도 ㅎㅎ

Falstaff 2022-12-08 16:59   좋아요 1 | URL
ㅎㅎㅎ 책이 재미 있겠지요! 저야 곁가지 헛소리만 보태는 걸요.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yamoo 2022-12-08 17: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인리히 만의 작품은 좀 지루하더군요. 몇 권을 읽어봤지만 50페이지를 넘는 게 없었어요. 왤케 재미가 없던지...지금 읽으면 다를려나요??

Falstaff 2022-12-08 19:29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재미가 괜찮은 편에 듭니다. 뭐 그렇다고 명작의 반열까지 이야기하는 건 무리이긴 합니다. 이 책 말고 하인리히 만의 작품은 <앙리 4세>만 번역해 나온 걸로 아는데요, 저도 <앙리 4세>는 참 번거롭게 읽었습니다. 당사자가 들으면 기겁하겠지만 혹시 역자의 우리말 실력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닌가 지금도 궁금합니다.

yamoo 2022-12-09 16:58   좋아요 0 | URL
엔날 책들에 단편집에 보면 하이리히 만의 단편들이 꽤 실려있었어요. 영문과 수업시간에도 만의 작품을 영어판으로 읽어봤는데 재미와는 영~~

<앙리4세>는 어떤가요?

Falstaff 2022-12-10 06:11   좋아요 0 | URL
<앙리 4세>를 이렇게 얘기하면 열 받는 분 많을 텐데요, 너무 엄격한 번역이 가독성을 좀 떨어트리지 않나 싶었습니다. 헌책방에서 찾아 읽으시면 좋겠는데 굳이 비싸게 사 읽으실 필요까지는 없을 듯합니다.
 
로마제국 쇠망사 세트 - 전6권 로마제국 쇠망사
에드워드 기번 지음, 송은주 외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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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제국 쇠망사> 두번째 권은 로마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천도한 콘스탄티누스부터 동로마제국의 첫번째 황제 발렌스의 죽음까지 다루었다.

1권보다 훨씬 재미있다. 물론 이건 내 경우에 그렇다는 것. 1권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아들이자 역사상 유일하게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숫사자의 탈을 쓰고 입장해 직접 검투사 대결을 벌여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황제 콤모두스부터 시작해 콘스탄티누스의 등극까지 였는데, 콤모두스 이전 황제 가문의 내력은 조금 알고 있던 터라 무릎을 칠만큼 재미지지는 않았으며, 무엇보다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한 것에 관한 (내 입장에선) 지독하게 지루한 설명이 무려 두 장章에 걸쳐 설명하고 있어서 짜증이 났었기 때문이었다.

  2권이라고 해도 시작하자마자 동로마제국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콘스탄티누스 황제, 오직 기독교를 공인했기 때문에 “대제great emperor”라고 불리는 이이가 콘스탄티노플을 창건하고 그곳에서 로마와 유사하지만 똑같지는 않는 정치제제를 비롯한 사회적 시스템을 설명한 후 이어서 황제의 품성과 그가 콘스탄티노플로 옮기 후에 치루었던 전투/전쟁, 세 아들에 의한 로마의 분할 통치와 내전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역사책 읽으면서 무슨 흥미진진이냐고? 모르시는 말씀. 가장 기본적인 역사의 시스템을 이루는 건 정치와 경제, 문화, 사회, 이 가운데 특히 정치와 경제 시스템이다. 하지만 나 같이 역사에 관심이 있는 보통의 독자가 제일 곤혹스러워하는 것이 바로 이 시스템 분석 역사다. 우리나라를 예를 들자면, 전혀 이야기가 될 것 같지 않은 이슈, 고려시대 토지 제도가 조선시대 제도에 영향을 준 방식 등을 논하는 김정배 선생의 책을 나는 읽어낼 자신이 없다. 반면에 누가 누굴 죽이고 왕이 됐는데, 새로 왕이 된 임금이 이를 축하하기 위한 만찬 자리에서 조카한테 칼을 맞고, 하는 식의 위진남북조 시대 사마 씨 역사 같은 건 그야말로 흥미진진하다. 친척끼리 너무 죽여대서 나중엔 좀 그만 죽였으면 하는 심정까지 든다. 진짜다. 시간 나면 한 번 찾아 읽어보시라.

  그런데 에드워드 기번은 여기에 한 술 더 뜬다. 대제라 칭하는 콘스탄티누스의 투철한 군인정신이나 새로운 도시를 개척하는 프론티어의 모습에 방점을 두는가 싶었다가, 성격적 결함이나 의심투성이, 황제의 자리에 있으면 의심이 많아질 수밖에 없겠지만 하여튼 이런 그늘진 모습까지 서슴없이 서술을 하는데, 자신의 발언에 꼬박꼬박 증거를 들이대니, 만일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자손이 아직 숨을 쉬고 있다면 기함하다가 넘어가지 않을 도리도 없겠다 싶다. 콘스탄티누스는 미천한 출신의 정실부인 미네르비나와의 사이에 장남 크리스푸스를 둔다. 일찍 홀아비가 된 그는 선대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딸인 파우스타와 재혼해 세 딸과, 콘스탄티누스 2세, 콘스탄티우스, 콘스탄스, 3형제를 더 둔다. 그리고 정치적 야심이 1도 없는 두 명의 형들에게 갈루스-율리아누스 형제, 달마티우스-한니발리아누스가 있었고, 여동생들도 결혼해 수십명의 친조카, 외조카를 두었다. 그러나 30년도 안 되는 세월이 흐르면, 이 가운데 그때까지 숨을 쉬고 있던 건 둘째 아들 콘스탄티우스와 조카 율리아누스 딱 두 명 뿐이었다. 이중에서도 가장 재능이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맏아들 크리스푸스는 불과 열일곱의 나이에 부황제로 임명해 전쟁터에 보냈더니 그야말로 신출귀몰한 작전과 중원을 휩쓰는 초절정의 검술로 연이어 승전보를 전한다. 소위 “대제”라고 하는 콘스탄티누스는 맏아들의 넘치는 인기에 졸지에 좌불안석, 자고로 세상에 태양은 오직 하나만 있어야 하는지라, 엣다 모르겠다, 대궐로 불러들여 좋은 말을 하더니 단칼에 죽여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알아두시라. 친아들이었다, 친아들.

  이왕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나온 김에 기독교 공인에 관한 이야기를 읽은 소감도 하나 꽝.

  로마의 매력 가운데 하나가 다신교와 그리스로부터 물려받은 재미나고 재미난 신화, 전설, 민담, 야사野史, 기타등등. 안 그런가? 이게 다 백색 대리석으로 기막히게 조각한 숱한 신들의 경연에서 비롯했다. 이 신들은 신들의 아버지인 유피테르부터 나름대로 다, 개과dog family 동물과 비슷하게, 서열을 갖고 있어 그저 서열에만 복종하면 신도 그렇고 인간들도 그렇고 먹고 사는 데는 불편함이 없었다. 가끔 까불어대는 족속이 있어 이런 작자들이 신화를 만들어냈을 뿐. 이렇게 숱한 신이 사이좋게 잘 살고 있다가 기독교의 신, 야훼가 들어왔다. 드디어 야훼가 들어와버렸던 거였다. 사랑의 신이자 질투의 신. 종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나 말고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제일 중한 첫번째 엄명을 내린 다음, 계명을 받은 모세가 자신을 따라온 유대인들한테 가보니 잔뜩 취해서 황금 송아지한테 절을 하고 있는 걸 보자마자 질투의 불칼을 내리 꽂았던 신이, 로마 땅에 들어와 온갖 이단의 신들을 목격했으니 이제 야훼는 새롭게 할 일이 무척 많이 생겼을 수밖에. 다 때려잡아야 했을 터이니 말이지. 구약을 읽어 보시라. 야훼가 가장 참지 못하는 것이 자기 백성들이 다른 신을 섬기는 거였다. 고대 유대인들은 거의 모든 종교가 그랬듯이 자살을 허용하지 않았는데, 구약 시대에 만일 진정으로 스스로 죽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면 야훼가 보는 앞에서 다른 신을 섬기는 시늉만 하면 됐다. 곧바로 불칼을 맞아 즉사, 적어도 고통을 모르고 단칼에 갈 수 있었으니.

  못 말리는 질투를 로마의 땅 위에서도 시현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로마는 기록의 시대. 물론 전에도 기록은 했지만 구전에 의해 전해지다가 후세에 의해 기록을 한 거하고, 직접 본 사람이 기록한 거하고 같을 수가 없어서 이번엔 점잖은 체면에 직접 뛰어들지 않고 야훼의 대리인들을 통해 질투를 구현하기로 결정한다. 누구? 주교와 대주교. 아직 교황이란 말은 나오지 않았다. 주교와 대주교는 처음엔 숱한 기독교 교파끼리 지들이 더 잘났다고 서로 대가리 터지게 싸움박질을 한다. 아직 이교의 신들하고 맞짱을 뜨기엔 유피테르의 힘이 덜 빠지기도 했다.

  용감무쌍하고 유능한 군인이자 전술가이며 탁월한 학자이기도 한 율리아누스가 콘스탄티누스 다음, 다음 황제로 있을 때, 이이가 젊었을 때 그리스에 유학해 철학을 깊게 공부한 적이 있어 그리스의 종교에도 믿음이 깊었다. 그리하여 콘스탄티누스 이후 로마 황제에 의하여 적극적으로 비호받고, 돈도 받고, 땅도 받고, 건물도 받고, 귀족과 부호들한테 기독교 교회에 기부도 많이 하라고 협박도 해주는 바람에 기세등등하고 콧대도 높았던 야훼에 반대해 다시 그리스 로마의 신들을 경배하기에 이른다. 물론 당시에 벌써 기독교의 힘도 막강해져 그들을 박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유피테르 집안 사람들이나 애인들을 경배해도 저 위대한 성군 솔로몬이 했듯이 신전에 황소 2만 2천마리, 양 12만 마리를 소신 희생해 공중에 미세먼지를 분사할 수는 없었다. (이 책에는 황소 2만 2천마리는 내 의견과 같은데, 양은 120 마리라고 써 있다. 확인하기 위해 다시 구약을 꺼내긴 싫지만 내 말이 맞을 거다.)

  기독교 말고, 당시 기독교 지도자들인 주교와 대주교의 버릇을 잘못 들인 사람은 콘스탄티누스 황제 본인이다. 본인은 죽음의 침상 위에서야 겨우 세례를 받은 주제에 거의 모든 일에서 기독교를 거의 최우선하는 정책을 밀어붙인다. 그리하여 로마 제국으로부터 정식 종교로 인정받고 불과 30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정치적으로는 아직 아니지만 종교적으로는 황제마저 주교와 대주교의 아들의 위치에 앉히기에 이른다. 왜 그랬느냐 하면, 콘스탄티누스가 아니더라도 무릇 황제의 자리에 있으면 얼마나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하겠는가. 가뜩이나 바빠 죽겠는데 종교에서도 집전의 자리에 있게 되면 밥이라도 제대로 먹을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교, 대주교들은 자신들의 위세를 확장하는데 결코 게으름이 없었다. 당연하지. 유독 기독교만 그랬던 것도 아니고, 정치력 지수 political index라는 것이 있다면 대통령, 수상, 국회의원을 누르고 챔피언의 자리에 앉을 사람은 종교 지도자라고 하니까. 이것만 해도 그런데 황제가 직접 시간 날 때마다 기독교를 찬양하고 직접 미사에도 참가하고 그러니까, 수도 콘스탄티노플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로마에서도 돈 좀 있고 원로원 의원이나 의원이 될 가능성이 있는 귀족들이라고 별 수 있나? 다들 믿거나 적어도 믿는 시늉은 할 수밖에. 그이들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니 독자들이 이해하고 넘어가자. 용감한 철학자 황제 율리아누스가 다시 다신교를 주장하자 얼른 기독교를 버리고 개종하더니, 사후 요비아누스 황제가 등극하니까 또다시 개종하는 것처럼. 인생 뭐 있냐, 다 그게 그거지. 역사책 읽으면 제일 많이 느끼는 게 그거다. 인생 뭐 있어? 기독교를 안 좋아하느냐고? 아니다. 좋아하지는 않지만 싫어하지도 않는다.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나한테 믿으란 얘기만 안 하면 된다.

  율리아누스 황제를 알게 된 것이 이 책을 읽으며 진짜 좋았다. 종교 이야기 빼고. 완전하지 않은 용감한 천재. 그는 젊은 나이에 페르시아와의 전쟁 중에서 다 이긴 싸움을 하다가 창을 맞아 죽는다. 황제가, 말 위에서. 로마의 초대 황제가 될 뻔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보병 사병 출신이다. 쫄딱 망한 귀족이라 장교도 아니었다. 거기서 황제의 가문이 시작했으니 그의 후손들이 차지한 황제 자리, 여기에 등극하려면 칼부림에 능숙해야 했다. 군인 황제의 전통이 내려오며, 직접 칼을 들고 적과 싸우는 것이 미덕이라고 여겼는데, 세상에나. 다 이긴 전쟁을, 마치 신과 같은 영웅적 철학자 황제가 급사하자마자 단박에 전세 역전, 로마군은 전투에도 지고 철수하며 판판히 깨지다가 굴욕적인 평화조약을 맺어야 했으니, 황제의 손실이 얼마나 중대한 것인지 그토록 유능한 황제 스스로가 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 말이 돼? 말도 안 되니까 더욱 재미있다.

  이 책은 율리아누스 황제 이후로도 조금 더 진행해, 아시아 북동부에서 발현한 훈족에 밀려 로마를 할 수 없이 침공했던 고트족과의 싸움으로 본격적으로 로마제국이 쇠망해지기 시작할 때까지의 역사가 쓰여 있다. 흥미진진하다. 웬만한 소설책보다 훨씬 재미있다. 글쎄 이 맛에 역사책 읽는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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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2-06 17: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보다 골드문트님 리뷰가 더 재밌는건 아닐까요? ^^ 책보다 더 재밋다고 말하고 싶은데 책을 안 읽어서요. ㅠ.ㅠ

Falstaff 2022-12-06 19:32   좋아요 0 | URL
이 책 새로 가격 인하해서 다시 팔기 시작했는데도 여전히 비쌉니다. 도서관 이용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물론 안 읽으셔도 만수무강에 전혀 지장 없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으쓱으쓱..... ^^

꼬마요정 2022-12-06 21:50   좋아요 1 | URL
책 안 읽어도 제 생각엔 골드문트님 글이 훠얼씬 재밌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 권짜리 읽었는데요, 골드문트님 글이 더 재미납니다!!^^ 6권짜리라고 더 재밌진 않겠죠? ㅎㅎ

Falstaff 2022-12-07 06:00   좋아요 1 | URL
윽, 너무 띄워 주시면 ㅎㅎㅎㅎ 좋지요!

yamoo 2022-12-08 17: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마제국쇠망사...전 까지에서 나온 한 권짜리 축약본으로 봤는데, 걸루 봐도 재밋더라구요. 기번의 저 6권을 다 읽으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거 같아 전 축약본으로..ㅎㅎ

Falstaff 2022-12-08 19:30   좋아요 0 | URL
옙. 이 책을 다 읽는데 내년 10월까지로 잡았습니다. 그러니까 두 달에 한 권 꼴로. ㅎㅎㅎ 게으른 사람은 어쩔 수 없다니까요.

yamoo 2022-12-09 16:56   좋아요 0 | URL
대단하십니다! 폴스타프 님은 잃어버린시간을찾아서 뿐만 아니라 두꺼운 책도 꺼리낌 없이 완전히 읽으실거 같아요~ 지금까지 그렇게 해 오신 이력이 정말 대단하나는 말밖에..^^

Falstaff 2022-12-09 19:05   좋아요 0 | URL
잃어버린 시간은 김창석 번역으로 읽었습니다. 오직 그냥 ˝읽었다˝ 하는 거 하나에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만.
텍스트가 뭐가 됐든지간에 일단 저질러야 이룰 수 있잖아요. 아직 못 읽고 있는 (거의 유일한) 하나가 <피네간의 경야>인데 이건 문화충돌인지 뭔지 하여튼 읽다가 재수 없으면 그냥 그만 읽으려고 합니다. ㅎㅎㅎㅎ
 
우리 읍내 오세곤 희곡번역 시리즈 1
손톤 와일더 지음, 오세곤 옮김 / 예니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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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턴 와일더는 극작가 유진 오닐의 네 번에 이어 퓰리처 상을 세 번씩이나 받는다. 전에 소개한 소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로 처음 상을 받고, 두 번째로는 희곡 <우리 읍내>, 세 번째 역시 희곡 <위기일발>로 받으니 사실 손턴 와일더는 소설가로 출발했으되 극작가로 더 큰 명성을 이루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꼭 그렇지도 않은 것이, 퓰리처 상 이후 받은 전미 도서상은 또 소설 <제8의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세기 말에 태어나 20세기 중반까지 활동한 작가임에도, 지금 읽어보면,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른 (극)작가들과 비교해보면 유난히 낡은 작품을 읽는 기분이 든다. 올해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작가들 가운데 돋보이는 한 명인 폴란드 사람 스타니슬라브 이그나치 비트키예비치는 와일더보다 열두 살이 더 많은 띠동갑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작품의 신선함 또는 전위성이 펄펄 뛰고 있으며 글 속의 비의를 알아차리기도 쉽지 않았던 경험이 있어서 더욱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알고 보면 지금은 전 지구가 거의 동일한 문화권으로 통합되어 있다고 쳐도, 20세기 중반까지 서양 중심의 문화적 시각으로 보면 세상에서 가장 보수적인 지역이 구대륙이 아닌 신대륙, 이 가운데서도 미국이었던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혁신적인 사조는 아니더라도 같은 미국 극작가유진 오닐이나 테네시 윌리엄스, 아서 밀러 등의 희곡 작품은 여전히 독자의 애간장을 녹이는 반면 와일더는 몇 십년 만에 (우리나라에 국한해서는)별로 읽히지 않는 보통의 (극)작가가 되고 말았다. 그럼 결론은, 손턴 와일더가 당대엔 잘 읽히는 보편적인 스타 (극)작가였지만 와일더 자신의 한계 때문에 이젠 낡은 느낌이 난다, 라고 할 수밖에 없다. 지난 달에 쓴 독후감에서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를, 책을 출판한 샘터사와 지극히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한 적 있다. 같은 의미로 <우리 읍내> 역시 희곡전문 출판사인 “예니”에서 찍었지만, 잡지 『샘터』에 기가 막히게 어울릴 극작이라고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샘터』에 어울린다.” 이것만 써도 눈치 빠른 독자들은 내가 어떻게 이 책을 읽었는지 감상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3막 희곡. 1막은 1901년, 2막은 열네 살이었던 여주인공 에밀리 웹이 열일곱 살이 되어 옆집에 사는 ‘조오지’ 깁스와 결혼하는 1904년. 이 때 조지 깁스의 나이도 에밀리와 같거나 그 근동쯤이다. 3막은 2막에서 9년 후인 1913년. 에밀리는 깁스의 두 번째 아이를 낳다가 숨을 거두고 이이의 장사를 지내는 날로, 에밀리는 유령의 형태로 등장한다. 장소는 모두 뉴햄프셔 주의 그로버즈 코너즈 (가상) 지역이며, 무대 감독이 공연을 시작하자마자 직접 무대에 등장해 나레이터로 활약하고 심지어 에밀리와 조지의 결혼식 때는 주례도 보고, 조지의 엄마 깁스 부인이 2막과 3막 사이에 결혼한 딸을 보러 뉴욕에 갔다가 비를 맞아 열병에 걸려 그곳에서 죽는다는 얘기, 읍내의 신문배달부 조오 크로웰이 읍내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놀랍게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에 들어가 학과 수석으로 졸업해 보스턴 신문에서도 대서특필 할 정도였는데 막 훌륭한 엔지니어가 되려는 찰나에 (이 작품이 끝난 뒤) 전쟁이 터져 프랑스에서 전사하게 된다는 것까지 늘어 놓는다.

  여기까지 얼핏 읽으셨으면, 그러니까 이 극작품은 어린 에밀리와 조지가 1막, 이들이 결혼하는 날의 풍경이 2막, 에밀리가 해산 중에 죽어 장사 지내는 날이 3막이라고 생각하실 터인데, 날짜 구분으로 하면 맞다. 물론 여러분은 이 책을 읽지 않으실 것이니까 좀 더 상세하게 얘기해보겠다.

  손턴 와일더는 희곡의 제목을 <우리 읍내: Our Town>이라고 했으니 이 커플만 등장해서는 규모가 작다. 커플은 희곡/연극의 재미 또는 스토리의 연결을 위한 장치 정도로만 기능한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세대의 흐름. 인간살이의 연속성. 보편적인 삶의 위대함 같은 사소한 아름다움 아니었을까 싶다. 이 동네의 유지라고 할 만한 사람들은 읍의 이름을 유래하는 그로버즈를 비롯해서, 1950~60년대 미국드라마 <보난자 Bonanza>의 주인공인 카트라이트, 깁스, 허시 가문 등인데, 이 가운데 유일하게 등장하는 집안이 1막에 열네 살이었다가 3막에선 홀아비가 되는 조지 깁스의 집으로, 그래봤자 아버지 깁스 씨는 1막이 올라가자마자 밤새 폴란드 여인네의 쌍둥이 출산을 돌보고 새벽에 집에 돌아오는 왕진 의사에 불과하다. 나머지 부자 집안은 3막의 무대인 공동묘지에 묘비로만 나오거나 아예 꼬리도 내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와일더는 시골 마을인 그로버즈 읍의 보통 사람들의 삶을 그려내고, 이어서 이들이 성장, 결혼, 출산, 사망이라는 사이클을 멈추지 않고 계속하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어떠셔? 진짜 샘터스럽지?

  역자 오세곤은 연세대학 불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를 마쳤다. 오박사가 대학시절 유명한 ‘연세극회’에서 활동하면서 장 주네, 이오네스코, 오태석 등의 작품을 “연출”한 바 있는데, 이 당시 연세극회의 지도교수가 고 오화섭 선생이었다고 한다. 와일더의 <Our Town>을 우리말로 <우리 읍내>라고 붙인 사람이 오교수라고 하고, 학창 시절에 우리나라의 위대한 연극배우 가운데 한 명인 오현경과 박재서의 공동연출로 무대에 올린 <우리 읍내>에 참가한 경험도 있다고 하니,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이 여간한 것이 아닐 듯도 하다. 오세곤이 74학번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학생운동사에 모든 학교의 74학번이 참 지랄맞고 극성맞았다. 대학에 입학해보니 74학번이 얼마나 까마득하게 보이든지. 요즘엔 그냥 친구라고 부를까 싶기도 하지만. 하여간 그랬는데 70년대에는 와일더의 <우리 읍내>를 기성 극단이 공연을 해도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지금은 대학 극단에서 하면 적절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내 ‘교만한’ 느낌일 수도 있으니 믿지는 마시라. 어쨌든 이렇게 역자 오세곤이 <우리 읍내>와 <우리 읍내>를 처음으로 번역한 오화섭의 관계가 이러했고, 이제 오세곤이 자신의 이름을 딴 “오세곤 희곡 번역 시리즈”를 내려 해 자신이 애정해 마지 않는 <우리 읍내>를 시리즈의 1번 자리에 두고 싶었을 수도 있다. 이런 내역이 책의 앞쪽에 실린 “옮긴이의 글”에 재미있게 쓰여 있어서 굳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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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12-03 1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74학번이 그렇게 지랄 맞은가요? ㅎㅎ
캬~ 보난자. 그렇군요. 전 그때 넘 어려서 그거 하는 시간에 잤는데. 그건 울아버지께서 좋아하셨습니다.
오현경 씨는 탈랜트 그분이 맞죠? 어찌지내시나 모르겠습니다.

Falstaff 2022-12-03 11:34   좋아요 1 | URL
74학번들, 아주 쌈꾼들이예요. 정말 쌈도 잘하고, 술도 잘 퍼마시고 ㅋㅋㅋㅋ
<보난자>는 아버지 벤, 아들 존, 호스, 찰스 카트라이트 네 부자의 서부 정착기인데 아마 지금 다시 보라고 하면 백인주의와 원주민 비하 때문에 못 볼 거 같아요.
오현경 씨의 본령은 연극입지요. 이 양반이 배우자 윤소정 씨 먼저 보내 홀아비 된 것까지 아는데 아직도 활동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TV에 나와 희극 이미지가 강해져 오히려 마이너스가 된 대표적 연극인일 겁니다.

잠자냥 2022-12-03 10: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짜 ‘읍내’라는 단어랑 딱 어울리는 작품이었어요…. 올드하다 올드해 ㅠㅠ

Falstaff 2022-12-03 11:3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우연히 도서관 서가에 있는 걸 보고, 으아, 아는 이름이다, 싶어서 빌려 읽었습니다. 짧아서 다행이었습지요. ㅋㅋ
 
아비가일
서보 머그더 지음, 진경애 옮김 / 프시케의숲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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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서보 머그더의 문장은 끝장이다. 문장도 문장이지만 장면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독자를 홈빡 빠뜨려버리는 눈물의 연못을 만들어내는 솜씨는, 아이고, 환장이다, 환장. 세 번 울었다. 사람을 울리고 지랄이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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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2-12-02 14: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거 만두 님이 전에 청소년 소설 같다고 해서 이거 읽을 생각은 없었는데..... 솔깃솔깃...

Falstaff 2022-12-02 14:50   좋아요 1 | URL
저도 독후감엔 청소년 소설....이라고 콕 대놓고 얘기하지는 않아도, 청소년 시절에 읽으면 참 좋았겠다, 라고는 할 예정입니다. 도서관 가셔요!

유부만두 2022-12-02 16: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님 우셨어요?? 소년 골드문트의 신선한 발견이에요!!
확실히 우리말 번역가들의 솜씨로 서보 머그더의 문장이 빛나는 것일지도 몰라요. 불어론 그냥 그랬거등요. … 그나저나 골드문트님의 감동 포인트는 어디였을까요? 정말 궁금하네요.

Falstaff 2022-12-02 18:11   좋아요 0 | URL
ㅎㅎㅎ 요즘 유난히 에스트로젠이 풀풀 분비되는 거 같아서 말입죠.
감동 포인트는요, 당연히 안 알려드립니다. ㅋㅋㅋㅋ

scott 2022-12-14 1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영어판으로 읽었는데 눈물은 단 한방울도 ㅎㅎ

Falstaff 2022-12-14 18:25   좋아요 1 | URL
ㅎㅎㅎ 제가 어느새 테스토스테론 보다 에스트로젠을 더 분비하는 세월을 맞았나 봅니다. ㅋㅋㅋㅋㅋㅋ

그레이스 2022-12-14 1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어>의 작가군요^^
성장소설이라고 하니 눈물 날수도 있겠네요.

Falstaff 2022-12-14 19:13   좋아요 0 | URL
ㅋㅋㅋ 제가 좀 여린 남자라서 말입죠.

stella.K 2022-12-15 0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평이 강렬하네요. 읽을 것이 많아 행복한 세상입니다. ㅎㅎ

Falstaff 2022-12-15 13:15   좋아요 1 | URL
ㅎㅎㅎ 즐기기 딱 좋은 책입니다.

coolcat329 2022-12-19 1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스콧님이 골드문트님 세 번 울었다고. 저도 책 읽고 울고 싶어요.
이 책은 꼭 읽으렵니다.

scott 2022-12-19 18:49   좋아요 1 | URL
헝가리 문학
작품들 깊이가 있습니다 산도르 마라이 머그더 모두 세계적인 문호들 ^^
 
지평선 너머
유진 오닐 지음, 이형식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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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벨 문학상과 무려 네 번의 퓰리처 상을 받은 유진 오닐은, 겨우 <밤으로의 긴 여로>와 <느릅나무 아래의 욕망>을 읽어봤을 뿐이지만, 한 마디로 말해서 독자에게 큰 한 방의 충격파를 주는 극작가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독자도 나처럼 오닐의 명성만 기억하고 있다가 어느 날 문득 <밤으로의 긴 여로>를 골라 별 생각 없이 읽어나가다 충격의 여파로 넋을 잃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리하여 <밤으로의 긴 여로>를 읽고 쓴 독후감으로 “피를 토해 쓴 백조의 노래”라는 단 한 구절로 마무리해야 했다. 어떻게 더 보탤 말이 없어서. 이후 4년이 흘러 다시 <느릅나무 아래의 욕망>을 읽었는데, 이 작품은 에드워드 토마스가 오페라로 작곡한 것을 지난 세기말부터 듣고 있었던 터라 대본을 통해 스토리를 잘 알고 있어서 ‘백조의 노래’를 들은 여파에도 불구하고 선택에 시간이 걸렸었다. 세월은 자신의 속에 망각을 품고 있다. 나 역시 세월 속의 망각에 묻혀 오닐의 다른 작품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가 오랜만에 생각이 나 검색을 해보니 다른 작품도 꽤나 많이 번역 출판을 하고 있었다. 이번엔 놓치지 않으리. 이 가운데 유진 오닐에게 첫 번째 퓰리처 상을 안게 해준 초기 작품 <지평선 너머>를 동네 도서관에서 상호대출 신청을 해 읽었다.


  지평선 너머. 저 너머에 뭐가 있을까? 지리적 관점으로 말하자면 지구 표면적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바다가 나온다. 하지만 문학장르 가운데서도 시와 더불어 가장 함축적이어야 하는 희곡에서 지평선 너머에 있는 ‘무엇’은, 초등 고학년이던가 중학 저학년 시절에 교과서에서 배운 김동인의 단편소설 <무지개>에서 말하는 ‘무지개’ 비슷한 것이겠다. 꿈, 또는 의미도 없고 이룰 수도 없어서 허망하기 짝이 없는 야망 같은 것. <지평선 너머>에는 앤드루와 로버트 메이오 형제가 등장한다. 건장하고 튼튼한 앤드루는 아버지의 농장을 이어받아 주에서 가장 효율적인 농장으로 성공시키는 것이 꿈이고, 병약한 동생 로버트는 대학 1학년을 마치고 휴학중인데 농장생활을 답답하게 여기며 저 평야 밖에 있는 지평선 너머엔 아름다움, 자신을 부르는 아름다움, 멀리 있는 미지의 아름다움, 자신을 유혹하는 동방의 신비와 마력, 넓은 곳에서 자유를 누리고 싶은 마음 등이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힌, 조금은 몽환적인, 좋은 말로 시적인 청년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성격에 맞게 형은 농장에 남아 땅을 파고, 동생은 바다를 건너 동방으로 가면, 희곡도 안 되고 연극도 안 된다.

  우애 깊은 형제들 사이의 지극히 좁은 간극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 있었으니, 사랑과 질투. 옆 농장의 병든 과부여인 슬하 외동딸 루스. 어린 시절부터 형제와 루스, 이렇게 세 명은 죽마를 타고 놀던 동무 사이였다.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다가 당장 내일 새벽에 외삼촌이 선장으로 있는 상선을 타고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자 하는 로버트한테 루스는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건 앤드루가 아니라 로버트였다고 고백하면서 농장에 남으라고 요구하고, 루스가 당연히 앤드루와 결혼할 줄 알았던 로버트는 감격에 차서 출발을 아홉 시간도 남기지 않은 밤, 떠나지 않고 루스와의 결혼을 위해 남아 있기로 결심을 바꾸었다고 가족들에게 선언한다. 외삼촌 딕 스콧 선장을 제외하고 온 가족이 로버트의 변심을 기뻐하지만, 이게 무슨 일인지, 형 앤드루가 루스의 변심으로 깊게 상심해 로버트 대신 외삼촌의 배를 타기로 한다.


  고향에 남아 옆 농장까지 합해 큰 농장을 경영하게 된 로버트는 당연히 하는 일마다 꼬박꼬박 실패해 농장은 나날이 황폐해지고 아내 루스와의 사랑 역시 희미해진다. 삼 년이 지나고, 기어이 항해를 떠나기 전에 앤드루와 부자간의 연을 끊은 아버지마저 2년 전에 돌아간 후, 이제 한 재산을 모은 앤드루가 다시 집에 돌아오는 것이 2막. 실패한 로버트는 형 앤드루에게 미묘한 열등감을 지니게 됐고, 루스는 살아보니까, 3년 전에 자신이 진심으로 로버트를 사랑했다는 것이 진심이었을지언정 진실은 아니었음을 너무 늦게 깨닫는다. 살다 보면 그럴 수 있잖은가. 로버트가 내일 새벽에 떠난다고 하니, 사실은 안 그랬음에도 마치 자신이 남아 있을 형보다 떠날 동생을 진심으로 사랑해왔다고 과 포장하게 되는 것. 이거 하나 가지고도 그리스 사람이라면 수 없이 많은 신화를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하지만 사실이 그렇더라도 일단 결혼을 하고 두 살 난 딸 메리까지 어리광을 부린다면 지나간, 진심 말고 진실은 마음 속에 가두고 절대 내보이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솔직히 당신도 그렇고 나도 그렇잖아. 근데 드라마의 주인공쯤 되면 그런 걸 못하는 법이라서 루스는 기어이 남편 로버트에게 삼 년 전의 고백이 거짓, 아니면 적어도 기가 막힌 후회스러운 과장이었고, 진실은 앤드루를 사랑했었다고, 그걸 이제야 알게 됐다고 남편에게 말하고야 만다. 그러나 앤드루는 동남아 근해에서 태풍을 만나 악전고투하며 채 1년도 되지 않아 루스와의 사랑은 깨끗하게, 완벽하게 정리를 해버렸다고 로버트에게 선언을 했다. 로버트는 이 사실을 루스에게 전한다. 앤드루 역시 직접 자기 입을 통해 루스한테 같은 내용을 말한 후 아르헨티나에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장을 건설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급하게 떠난다.

  여기까지가 1막과 2막. 3막은 다시 5년 후, 백만장자 가까이까지 갔다가 곡물 선물거래에 손을 대 겨우 5만 달러만 남기고 다시 고향의 농장집에 앤드루가 들르면서 극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는데, 어떻게 되는지는 안 알려드리겠다. 물론 로버트는 완전 파산 일보직전이고, 양쪽 폐가 기능을 거의 정지해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으며, 딸 메리는 8개월 전에 먼저 세상을 떠, 루스는 심신이 거의 상실한 채 남편의 죽음만 건조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배경만 소개한다.


  어떤 작가의 작품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 불운한 앤드루-로버트 형제 같이 극단적으로 다른 성향을 갖는 한 쌍이 서로 다른 행로를 선택하고자 하지만 이들의 운명의 연못에 운명의 돌이 하나 떨어져 생긴 파장이 각기 서로 어긋난 행로로 가게 만드는 작품. 혹시 기억 나시나? 날 것도 같고 아닐 것도 같다. 그러나 그리스 로마 시절에 많고 많은 신들이 인간을 대상으로 저지른 숱한 장난이 전부 이런 식 아니었나 싶다. 기껏 최고의 능력을 부여해놓고 능력과 관계없는 길을 걸어야 하는 운명까지 심술궂게 툭 던져버리는 우롱의 신들. 또는 세상의 지복을 약속하는 동시에 도저히 지킬 수 없는 단서조항을 달아버리는 장난꾸러기 신들. 이것들을 나는 유독 유진 오닐의 작품에서 볼 수 있었으니 첫째가 <밤으로의 긴 여로>의 제이미와 에드먼드. 그리고 <느릅나무 아래의 욕망>에서 시미언-피터와 이들의 이복동생 에벤.

  평생 떠돌면서 돈을 벌 목적의 멜로 드라마에만 출연하던 제임스 오닐 씨의 아들로 태어난 유진 오닐은 아버지를 반면교사 삼아 극작을 시작할 때부터 예술적인 작품을 염두에 두었다고 하는데, 유진 오닐의 작품 세계를 시기별로 3기로 나눌 때 2기에 그리스 극도 실험해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역자 해설 속에서 이 내용을 읽으며 오닐의 초기작인 이 <지평선 너머>에도 그리스 극과 유사한 내용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하긴 세상의 어떤 일이라도 굳이 가져다 짜맞추기로 하면 그리스 신화와 비교하지 못할 게 하나라도 있긴 한가 말이지만. 억지스런 독자의 감상일지언정, 이런 모든 것을 합해 어디서 이미 읽은 듯한 기시감을 느낄 수 있고 그래서 별점 하나를 뺐을지라도 유진 오닐, 참 드라마 하나는 재미있게 잘 쓴다. 오늘도 난 또 하나의 유진 오닐을 읽고 놀래 자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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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12-01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극단적으로 다른 성향을 갖는 한 쌍이 서로 다른 행로를 선택하고자 하지만 이들의 운명의 연못에 운명의 돌이 하나 떨어져 생긴 파장이 각기 서로 어긋난 행로로 가게 만드는 작품‘ 에서 저는 제일 먼저 ‘제프 린제이‘의 <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가 떠올랐지만, 아니겠죠. 골드문트 님은 덱스터를 안읽으시겠죠... ㅎㅎ
그러고보니 <차일드 44>도 형제들이었는데, 역시 골드문트 님은 차일드 44도 안읽으시겠죠..

저도 저 줄거리의 답을 기다립니다. 궁금하네요.

Falstaff 2022-12-01 16:22   좋아요 0 | URL
댓글이 늦었습니다. 이제 하루 루틴이 (조금 일찍) 끝나서 놋북 앞에 앉았습니다. ㅋㅋ
흠. 이야기하신 책들 참고 하겠습니다. 도서관 이용하면 좋은 것 가운데 하나가 어떤 책이 있다, 하면 그냥 읽을 수 있다는 점 아니겠습니까. 은근히 기대하겠습니다. ㅋㅋㅋ
줄거리의 답은요, (아씨, 스마트 폰으로 읽을 때 적절한 단어가 생각났었는데 그새 잊었습니다) 그냥 코메디아, 즉 일상극이랄까 그렇습니다.

바람돌이 2022-12-01 14: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님 리뷰를 읽을 때마다 세상에 내가 안읽은 작가가 왜 이리 많을까 절망하게 됩니다. 저는 오늘부터 미래에 자라서 골드문트님이 되기로..... 그러기 위해서 지금도 열심히 읽어야겠네요. ^^

Falstaff 2022-12-01 16:23   좋아요 1 | URL
에이, 그게 어딨어요. 책 읽는 거, 전 백퍼 취미활동입니다. 이까짓 거 가지고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아요. 아무쪼록 바람돌이 님도 그러시기 바랍니다. ㅎㅎㅎㅎ

yamoo 2022-12-08 1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밤으로의 긴 여로>를 골라 별 생각 없이 읽어나가다 그냥 덮었습니다. 희곡은 영 재미없네...라는 생각이 들어 몇 페이지 읽다 말았는데... 이거이거 완독을 해 봐야 겠습니다.충격과 넋을 잃을 정도라니...닥치고 완독해야 겠습니다. 사실 두 권 모두 있거든요..ㅎㅎ 밤으로, 느릅나무..

흠...그나저나 다락방 님 댓글을 보니, 전 차일드44를 너무도 재밌게 읽었는데 말이죠..ㅎ

Falstaff 2022-12-08 19:25   좋아요 0 | URL
사람마다 맞고 아니고가 있잖습니까. 아무리 셰익스피어라도 읽는 독자가 싫으면 싫은 것이지 뭐 별 거 있겠습니까. 근데 이렇게 써 놓고 봐도, 가지고 계신 이이의 작품 두 편은 ㅎㅎㅎ 다시 읽어보시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말입죠.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