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읍내 오세곤 희곡번역 시리즈 1
손톤 와일더 지음, 오세곤 옮김 / 예니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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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턴 와일더는 극작가 유진 오닐의 네 번에 이어 퓰리처 상을 세 번씩이나 받는다. 전에 소개한 소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로 처음 상을 받고, 두 번째로는 희곡 <우리 읍내>, 세 번째 역시 희곡 <위기일발>로 받으니 사실 손턴 와일더는 소설가로 출발했으되 극작가로 더 큰 명성을 이루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꼭 그렇지도 않은 것이, 퓰리처 상 이후 받은 전미 도서상은 또 소설 <제8의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세기 말에 태어나 20세기 중반까지 활동한 작가임에도, 지금 읽어보면,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른 (극)작가들과 비교해보면 유난히 낡은 작품을 읽는 기분이 든다. 올해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작가들 가운데 돋보이는 한 명인 폴란드 사람 스타니슬라브 이그나치 비트키예비치는 와일더보다 열두 살이 더 많은 띠동갑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작품의 신선함 또는 전위성이 펄펄 뛰고 있으며 글 속의 비의를 알아차리기도 쉽지 않았던 경험이 있어서 더욱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알고 보면 지금은 전 지구가 거의 동일한 문화권으로 통합되어 있다고 쳐도, 20세기 중반까지 서양 중심의 문화적 시각으로 보면 세상에서 가장 보수적인 지역이 구대륙이 아닌 신대륙, 이 가운데서도 미국이었던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혁신적인 사조는 아니더라도 같은 미국 극작가유진 오닐이나 테네시 윌리엄스, 아서 밀러 등의 희곡 작품은 여전히 독자의 애간장을 녹이는 반면 와일더는 몇 십년 만에 (우리나라에 국한해서는)별로 읽히지 않는 보통의 (극)작가가 되고 말았다. 그럼 결론은, 손턴 와일더가 당대엔 잘 읽히는 보편적인 스타 (극)작가였지만 와일더 자신의 한계 때문에 이젠 낡은 느낌이 난다, 라고 할 수밖에 없다. 지난 달에 쓴 독후감에서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를, 책을 출판한 샘터사와 지극히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한 적 있다. 같은 의미로 <우리 읍내> 역시 희곡전문 출판사인 “예니”에서 찍었지만, 잡지 『샘터』에 기가 막히게 어울릴 극작이라고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샘터』에 어울린다.” 이것만 써도 눈치 빠른 독자들은 내가 어떻게 이 책을 읽었는지 감상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3막 희곡. 1막은 1901년, 2막은 열네 살이었던 여주인공 에밀리 웹이 열일곱 살이 되어 옆집에 사는 ‘조오지’ 깁스와 결혼하는 1904년. 이 때 조지 깁스의 나이도 에밀리와 같거나 그 근동쯤이다. 3막은 2막에서 9년 후인 1913년. 에밀리는 깁스의 두 번째 아이를 낳다가 숨을 거두고 이이의 장사를 지내는 날로, 에밀리는 유령의 형태로 등장한다. 장소는 모두 뉴햄프셔 주의 그로버즈 코너즈 (가상) 지역이며, 무대 감독이 공연을 시작하자마자 직접 무대에 등장해 나레이터로 활약하고 심지어 에밀리와 조지의 결혼식 때는 주례도 보고, 조지의 엄마 깁스 부인이 2막과 3막 사이에 결혼한 딸을 보러 뉴욕에 갔다가 비를 맞아 열병에 걸려 그곳에서 죽는다는 얘기, 읍내의 신문배달부 조오 크로웰이 읍내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놀랍게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에 들어가 학과 수석으로 졸업해 보스턴 신문에서도 대서특필 할 정도였는데 막 훌륭한 엔지니어가 되려는 찰나에 (이 작품이 끝난 뒤) 전쟁이 터져 프랑스에서 전사하게 된다는 것까지 늘어 놓는다.

  여기까지 얼핏 읽으셨으면, 그러니까 이 극작품은 어린 에밀리와 조지가 1막, 이들이 결혼하는 날의 풍경이 2막, 에밀리가 해산 중에 죽어 장사 지내는 날이 3막이라고 생각하실 터인데, 날짜 구분으로 하면 맞다. 물론 여러분은 이 책을 읽지 않으실 것이니까 좀 더 상세하게 얘기해보겠다.

  손턴 와일더는 희곡의 제목을 <우리 읍내: Our Town>이라고 했으니 이 커플만 등장해서는 규모가 작다. 커플은 희곡/연극의 재미 또는 스토리의 연결을 위한 장치 정도로만 기능한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세대의 흐름. 인간살이의 연속성. 보편적인 삶의 위대함 같은 사소한 아름다움 아니었을까 싶다. 이 동네의 유지라고 할 만한 사람들은 읍의 이름을 유래하는 그로버즈를 비롯해서, 1950~60년대 미국드라마 <보난자 Bonanza>의 주인공인 카트라이트, 깁스, 허시 가문 등인데, 이 가운데 유일하게 등장하는 집안이 1막에 열네 살이었다가 3막에선 홀아비가 되는 조지 깁스의 집으로, 그래봤자 아버지 깁스 씨는 1막이 올라가자마자 밤새 폴란드 여인네의 쌍둥이 출산을 돌보고 새벽에 집에 돌아오는 왕진 의사에 불과하다. 나머지 부자 집안은 3막의 무대인 공동묘지에 묘비로만 나오거나 아예 꼬리도 내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와일더는 시골 마을인 그로버즈 읍의 보통 사람들의 삶을 그려내고, 이어서 이들이 성장, 결혼, 출산, 사망이라는 사이클을 멈추지 않고 계속하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어떠셔? 진짜 샘터스럽지?

  역자 오세곤은 연세대학 불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를 마쳤다. 오박사가 대학시절 유명한 ‘연세극회’에서 활동하면서 장 주네, 이오네스코, 오태석 등의 작품을 “연출”한 바 있는데, 이 당시 연세극회의 지도교수가 고 오화섭 선생이었다고 한다. 와일더의 <Our Town>을 우리말로 <우리 읍내>라고 붙인 사람이 오교수라고 하고, 학창 시절에 우리나라의 위대한 연극배우 가운데 한 명인 오현경과 박재서의 공동연출로 무대에 올린 <우리 읍내>에 참가한 경험도 있다고 하니,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이 여간한 것이 아닐 듯도 하다. 오세곤이 74학번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학생운동사에 모든 학교의 74학번이 참 지랄맞고 극성맞았다. 대학에 입학해보니 74학번이 얼마나 까마득하게 보이든지. 요즘엔 그냥 친구라고 부를까 싶기도 하지만. 하여간 그랬는데 70년대에는 와일더의 <우리 읍내>를 기성 극단이 공연을 해도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지금은 대학 극단에서 하면 적절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내 ‘교만한’ 느낌일 수도 있으니 믿지는 마시라. 어쨌든 이렇게 역자 오세곤이 <우리 읍내>와 <우리 읍내>를 처음으로 번역한 오화섭의 관계가 이러했고, 이제 오세곤이 자신의 이름을 딴 “오세곤 희곡 번역 시리즈”를 내려 해 자신이 애정해 마지 않는 <우리 읍내>를 시리즈의 1번 자리에 두고 싶었을 수도 있다. 이런 내역이 책의 앞쪽에 실린 “옮긴이의 글”에 재미있게 쓰여 있어서 굳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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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12-03 1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74학번이 그렇게 지랄 맞은가요? ㅎㅎ
캬~ 보난자. 그렇군요. 전 그때 넘 어려서 그거 하는 시간에 잤는데. 그건 울아버지께서 좋아하셨습니다.
오현경 씨는 탈랜트 그분이 맞죠? 어찌지내시나 모르겠습니다.

Falstaff 2022-12-03 11:34   좋아요 1 | URL
74학번들, 아주 쌈꾼들이예요. 정말 쌈도 잘하고, 술도 잘 퍼마시고 ㅋㅋㅋㅋ
<보난자>는 아버지 벤, 아들 존, 호스, 찰스 카트라이트 네 부자의 서부 정착기인데 아마 지금 다시 보라고 하면 백인주의와 원주민 비하 때문에 못 볼 거 같아요.
오현경 씨의 본령은 연극입지요. 이 양반이 배우자 윤소정 씨 먼저 보내 홀아비 된 것까지 아는데 아직도 활동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TV에 나와 희극 이미지가 강해져 오히려 마이너스가 된 대표적 연극인일 겁니다.

잠자냥 2022-12-03 10: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짜 ‘읍내’라는 단어랑 딱 어울리는 작품이었어요…. 올드하다 올드해 ㅠㅠ

Falstaff 2022-12-03 11:3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우연히 도서관 서가에 있는 걸 보고, 으아, 아는 이름이다, 싶어서 빌려 읽었습니다. 짧아서 다행이었습지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