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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의 선
앨런 홀링허스트 지음, 전승희 옮김 / 창비 / 2018년 11월
평점 :
작가 앨런 홀링허스트. 처음 읽는 작가. 역자 전승희의 발문에서 보면, 1954년 영국 글로스터셔의 스트라우드라는 소도시 중산층 가정에서 외아들로 태어난, 자신의 동성애 취향을 부모에게 알리지 않은 동성애자라고 한다. 은행 지점장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고전음악과 건축에 관한 조예가 있으며, 도싯의 사립 기숙학교에 이은 옥스퍼드 영문학과를 다니며 1975년에 학사, 79년에 석사 학위를 받았다고 하는데, <아름다움의 선>의 주인공 닉과 비교해볼 때 차이점은, 닉은 ① 아버지의 직업이 고가구와 시계를 주로 다루는 골동품상이고, ② 음악, 건축과 더불어 고가구, 미술품 등 예술작품에 조예가 있으며, ③ 작가와 달리 1983년에 학사를 마치고 UCL(University College London)에서 대학원 과정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홀링허스트는 시간적 공간을 1983년에서 이후 4년으로 잡았는데, 이는 마거릿 대처 수상의 두 번째 집권 시기와 일치한다. 그리하여 작가는 작품을 구상할 때부터 대처 시대의 영국을 회화적繪畵的으로 묘사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닉이 대학원에서 전공으로 선택한 것이 헨리 제임스의 문체. 독자는 닉의 전공을 일찌감치 알게 되는데, 처음에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일 듯하다. 내 경우엔, 1부에서 벌써 홀링허스트의 문장과 플롯을 읽는 대신, 헨리 제임스를 통해 익숙한, 즉 제임스를 변주한 문단들의 집합인 챕터들을 읽는 것 같은 기시감이 느낄 수 있었다. 주인공 닉은 사실 지방 소도시 출신의 별 볼 일 없는 청춘이다. 단지 사립 기숙학교와 옥스퍼드를 졸업했으며, 하원의원 아버지와 거대 은행을 소유한 케슬러 경의 상속자인 토바이어스, 애칭 토비 페든과 동기동창이란 이유 하나로 켄징턴파크 가든스라는 저택에 상징적인 집세만 내는, 쉽게 얘기해서 얹혀사는 인물. 그러면서 닉은 영국의 최상류 계층의 온갖 사교모임에 전부 참석하는 기회를 잡고 심지어 만인이 보는 앞에서 마거릿 대처 수상과 춤을 추는 영광을 누리기도 한다. 2부에서는 역시 옥스퍼드 동기동창인 앙뚜안, 애칭 ‘와니’의 부, 정확하게는 와니의 부모가 채소를 팔아 이룬 부에 힘입어 최고급 생활을 영유한다. 이거 어디서 봤다. 남들보다 조금 더 예쁜 외모 덕택에 이모네 집에 얹혀살면서 천성적으로 사교적인 성격을 겸비해 귀여움을 받다가 천문학적인 금액의 현금을 상속받는 <한 여인의 초상> 주인공 이사벨 아처.
여기에 더해 며칠 전에 읽은 <대사들>의 문체까지. 헨리 제임스의 문체와 비슷하다는 건, 책을 읽기 위해 남다른 집중을 요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홀링허스트는 사람의 심리상태를 그대로 묘사하지 않는다. 특정인을 바라보는 눈빛, 목소리의 높낮이, 유럽식으로 부탁하는 말씨 등등. 게다가 1980년대를 관통하는 환상의 영미 파트너, 대처와 레이건 경제를 통과하며 점점 더 큰 부자가 되어가는 과정의 부르주아들을 세밀하게 그려낸 것도 저절로 헨리 제임스가 떠오르게 만드는 요인이다. 번역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 원서로 제임스와 비교해가며 읽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1983년 여름에 켄징턴파크 가든스의 페든 씨 가족이 딸 케서린만 남고 모두 프랑스 별장으로 여름휴가를 지내러 떠나게 됐을 때, 마침 대학원 진학을 앞에 두고 런던에 숙소를 마련해야 하는 닉더러 페든 가의 장남이자 닉의 옥스퍼드 동창생인 토비가 차라리 우리 집에 와서 동생을 돌보며 여름 한 철을 보내라는 호의를 보여, 시내에 방을 얻기까지만 임시로 이 저택에 머물려다가 무려 4년이 넘어, 이때 역시 타의에 의해, 저택을 떠나야 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1부부터, 주인공 닉은 책에서는 한 번도 이렇게 표현하지 않았지만, 기회주의적이고, 소심하고, 소극적이고, 의타적이고, 자존감이 없고, 이런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비겁하다. 성격 급한 독자는 답답해 짜증을 낼 수도 있다.
닉이 토비의 집에 들어간 스물한 살 때까지 동정이었다. 닉은 애초에 여자한테 관심이 없었고, 남자는 늘 그리웠지만, 그리움을 넘어 성적 충동이 말로 다 할 바가 아니어서 대학 시절 학교 대표 조정 선수이기도 했던 토비를 짝사랑하기도 했었는데,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어서 블라인드 데이트, 잡지에 난 동성의 애인 구함, 이란 광고를 보고 서른한 살 정도 되는 서인도제도 출신 작은 체구의 흑인 리오에게 편지로 자기소개를 보내, 무려 몇십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데이트를 하기에 이른다. 닉은 리오를 본 순간 반해버리고, 리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아 이들은 만난 첫날 관계에 이르기로 합의한다. 그러나 문제가 있으니, 리오는 엄마, 여동생과 한 집에 살고, 닉 역시 범절을 어길 수 없는 명문 토리당 하원의원 페든 씨의 서생으로 머물고 있어 이들만의 공간이 없다는 것. 그리하여 이들은 페든 가 저택 켄징턴파크 가든스 주민들의 공동정원 안 으슥한 풀밭에서 드디어 닉의 딱지를 떼게 된다.
뭐 가난한 연인들이 사랑은 하고 싶고, 돈은 없어 숙박업소에 갈 처지가 아니라면 한 번 정도는 그럴 수 있다고 친다. 오히려 눈물 나는 가난의 참경이라고 동정이 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가 문제다. 닉은 소도시 출신이라 하더라도 사립 기숙학교에 옥스퍼드 출신의 중산층 자제. 페든 가로 들어온 것도 다른 곳에 방을 얻을 때까지 잠시만이라는 전제였음에도 리오와의 사랑은 야외나 공중화장실 같은 장소에서 이루어진다. 닉이 페든 집안의 안락한 생활과 상류사회, 미식취향, 금준미주를 물리칠 수 없었던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고 사랑을 쟁취할 수는 없다는 진리를 닉은 너무도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조금이나마 짐작한다.
생각해보자. 닉의 고향을 선거구로 하는 집권 토리당의 하원의원 집안에다가 모계 쪽으로는 귀족의 핏줄에다 거대 은행의 소유주인데, 한갓 시골 중산층의 자제를 ‘동등한’ 사람으로 여기겠는가. 이들은 귀족, 부르주아, 집권층의 평균 모습대로 친절하고 온화하고 비교적 거의 ‘동등한’ 복지의 제공에도 불구하고, 격이 떨어지는 객식구 닉은 언제나 제공할 수 있는 가장 나쁜 방과 가구에 만족해야 하며, 은근한 부탁을 언제나 들어주어야 하고, 사소한 심부름 역시 무조건 승낙하지 않을 수 없는 일종의 준 하인, 그러나 주장하기를 항상 가족과 준하는 대우를 받아야 할 뿐이었다. 그래도 닉은 자존감 손상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리오와의 공중화장실 안에서의 섹스를 지속하는 게, 이게 말이나 되느냐고.
닉의 이런 기생寄生 생활은 페든 가에 국한하지도 않는다. 2부로 넘어가면 옥스퍼드 동기생 가운데 가장 부자이며 가장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는 와니의 애인으로 지내는데, 대가로 와니로부터 1986년 화폐 가치로 5천 파운드의 돈을 받는다. 그러면서 <오지Ogee>라는 제목의 잡지를 창간한다는 핑계로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을 전전하며 환락과 마약과 술의 세상을 경험한다. 다분히 개인차이겠지만 당신이라면 그렇게 하겠는가. 난 죽어도 못한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닉과 다르기 때문이다. 다르다고 그를 비난하면 바람직하지 않겠으나, 나의 복지를 위해 애인과 공중화장실 안에서 섹스를 하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다. 또다른 애인에게 심부름해주고, 성적인 봉사를 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고 싶지도 않다. 닉은 나와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찌질해 싫다. 부당한가?
기본적으로 이 작품은 시골 향사의 런던 무협지다. 이런 측면에서 닉이 전공으로 연구하고 있는 헨리 제임스의 작품 속에 숱하게 나오는 유럽 속의 미국인들과 매우 유사하다. 닉은 훗날 자신의 생에 크게 보탬이 될 수도 있었던 상류사회와의 막강한 연줄을 맺는 데 성공 가까이 갈 수 있었고, 동창생 하나 잘 만나 그의 애인이 되다가 다른 곳도 아닌 세계에서 가장 비싼 땅값을 자랑하는 런던의 고층빌딩을 유증받아, 책에서 말한 그대로 평생 일하지 않고 놀고 먹을 수도 있었다가 만다. 21세기 작품답게 해피 엔드로 마감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비극도 아닐 수 있었던 것은 현대 매스미디어의 즉물성을 감안할 때 그렇다. 이 책은 분명하게 헨리 제임스의 저 먼 후손이지만 결코 복제가 아니다. 하이 소사이어티를 관찰한 젊은 지식인을 통해 본 현대 유럽이며, 제 삼의 젠더가 세상을 향해 토해내는 사랑의 노래이기도 하다.
다시 강조할 것은, 헨리 제임스의 후손이란 건, 읽는 데 집중을 요구한다는 의미이고 진도 빼는 데 여간한 애를 써야 한다는 뜻이라는 점. 전철에서 읽기 위해서라면 광폭의 마스크나 차라리 두건 또는 복면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도 참고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