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시앵 레짐과 프랑스혁명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사상선집
알렉시스 드 토크빌 지음, 이용재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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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읽은 역사책. 역사학자이자 철학자이기도 한 알렉시 드 토크빌이 필생의 대표작 <미국의 민주주의>를 쓰고 유명세를 얻은 다음, 벌써 60여 년이 흘러 혁명을 직접 경험하고 증언해줄 사람이 이젠 없어진 프랑스 혁명에 관하여 한 번 더 불세출의 사서를 한 권 쓰게 되니 바로 <앙시앵 레짐과 프랑스 혁명>이다.

  토크빌 자신이 프랑스의 유명한 문벌귀족 출신이다. 프랑스 귀족은 대강 두 종류로 따지는 게 보통이다. 앙리 4세 또는 그 이전부터 작위를 세습한 진짜 귀족하고, 주로 부르주아에게 귀족 증명서를 남발하여 그들의 돈과 세력을 이용해 자신의 야망을 채우기로 작정을 한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던져준 작위를 얻은 신흥귀족. 토크빌은 틀림없이 혁명 이전부터 이어져 온 진짜 문벌귀족의 일원이었던 것 같다. 이건 그리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니란 뜻도 아니다.
  이 책의 9.5할은 혁명이 아니라 구체제, 즉 앙시앵 레짐에 관한 이야기다. (앞으론 ‘앙시앵 레짐’ 대신 ‘구체제’로 표기하고자 한다. 글자 수가 적어 타이프하기 더 쉬워서.)
  루이 14세 때 정점을 찍고, 정점을 찍은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바로 그 시점부터 내리막길을 걷던 프랑스 전제정치, 절대 왕조가 그의 증손자 루이 15세에 와서는 거의 폭정 수준으로 변한다. 다수의 귀족과 새로이 대두한 부르주아에게 특권을 부여하는 대신 그들의 특권을 보상할 왕국의 수입원을 개발해야 하는 상황에서 절대왕조가 손쉽게 착상한 것이 인민들을 더욱 착취하는 것이었다. 부르봉 왕조 시대에는 기사를 포함한 귀족들이 자신들이 고용한 용병을 이끌고 스스로의 목숨과 건강을 담보로 국토와 인민들의 안녕을 보장하는 대신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인민들로부터 타이유세를 징수했다. 끔찍한 수준으로 타이유세(Taille稅 : 두산백과에선 이를, 봉건적 사회에서 농노에겐 세금을 걷는 사람 마음대로 하는 자의적 세금이었고, 비농노들에겐 정액定額 징수하는 세금이라 했다. 귀족을 포함한 국가가 자신들을 보호해주는 대가로 치루는 보호대상保護代償으로의 “공조”였다고 설명한다.)를 인상하는 등 하여간 걷어갈 만하면 무조건 약탈하고, 그 외에도 숱한 부역의 의무를 지우게 하기 때문에 인민들은 애초부터 도시로, 도시로,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도시인 파리로 집중할 수밖에 없었단다. 도대체 얼마나 인민들을 혹독하게 착취했느냐 하면, 타이유세를 열 배 올려 징수를 했단다. 여기에 사회 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는 당연히 국가 예산에서 충당하지만 도로, 항만 같은 건 언제나 예외 없이 귀족, 부르주아들만을 위해 사용하는 것임에도 무상으로 인민들의 노동력을 징발했던 건데, 지금이나 그때나 사람들이 가장 참을 수 없어하는 것이 불평등이다. 다 같이 배고프면 문제가 아니지만, 나만 배고프고 저들은 함포고복하고 있음에도 부자들의 이익을 위하여 내 힘을 보태 도로를 닦고 있다면 이건 진지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토크빌은 위에서 예를 든 한 가지 사례를 비롯해 전제국가 곳곳에 무르익고 있었던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꼭 집어서 이야기하는 대신 크게, 사회적, 경제적, 계급적, 문화적 변곡점의 대두에 관해 프랑스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틀을 소개한다.
  우리가 흔히 ‘프랑스 혁명’이라고 하면 마라, 당통, 로베스피에르로 대표하는 공포정치와 루이 16세, 아름다운 마리 앙트와네트의 단두대에서 절단된 머리통을 떠올리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간혹 재주는 프랑스 인민이 부리고 돈은 코르시카 출신의 키 작은 촌놈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번 사건 정도로 연상을 하는데, 여태까지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결딴내버린 역사상 초유의 사건이었다는데 더욱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이제 인민의 힘이 역사의 물결 앞에 등장하여 그간 싹이 트기만 했던 자유, 평등, 박애의 씨앗은 120년 후 러시아 혁명으로 열매를 맺을 것이고, 부르봉 왕가 뿐만 아니라 로마 가톨릭의 권위까지 아예 뿌리째 뽑혀버리는 정치, 경제, 사상의 일대 변혁이었음은 말하면 무엇 하겠는가만, 우리가 만일 이렇게 생각해왔다면 다시 돌이켜 숙고해봄직한 것이 이 책에 나열, 강조되어 있다(로마 가톨릭을 포함한 기독교가 구체제에선 귀족계급에서 멸시 당했던 반면, 혁명 후엔 귀족들을 중심으로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맞는 아이러니도 구경할 수 있다).
  구체제의 모든 것이 정말 그리 완벽하게 부패했고, 지리멸렬했으며, 아니면 적어도 더 이살 돌아볼 가치조차 없는 것일까, 하는 숙제. 구체제도 나름대로 자신들 속에 내재한 문제점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으며 그것들의 해결을 위해 자정하는 과정에 있었는데도, 그것보다 더욱 큰 압력으로 뿜어져 나온 인민의 힘이 폭력적인 혁명으로 나타났다는 것이 책의 요지다. 그러면서도 폭력혁명의 대두가 타당하다는 시각도 견지하는데, 어느 사건도 다 마찬가지겠지만 과거의 문제점 속에 가까운 미래에 벌어질 사건이 이미 발아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동서가 다 마찬가지다. 사마천의 <사기 세가>를 보면 진섭이라는 촌놈이 하나 등장하여 세가의 한 편을 장식하고 있다. 그리 엄정한 법가적 통일국가 진秦나라 변방의 한 병졸이 자신이  처벌받을 것이 두려워 한 번 시도해본 최초의 민란을 시작으로 위대한 진나라가 본격적으로 멸망의 길을 걸었던 것도 사실 진나라 안에 이미 멸망의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기 때문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거의 모든 일, 사건, 문제는 문제 속에서 이미 해결의 방법을 내포하고 있는 법이지만 사람들은 문제를 해석하려할 뿐, 해결하려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헤겔의) 말은 거의 언제나 정확하다.
  여러 책을 읽어보면, 철학책(물론 요새 철학책 말고 예전 책들)은 어떻게 하면 쉬운 얘기를 어렵게 쓸까 고민한 결과물인 것처럼 보이는 반면, 역사책은 역사학자가 되려면 작문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것처럼 아주 읽기 편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앙시앵레짐과 프랑스혁명>은 읽기에 매끄럽기는 하지만 역사책을 평소 잘 읽지 않은 사람들에겐 조금 과하게 전문적이란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마치 (박근혜 정권 시절 국사 교과서 편찬 위원장인가 뭔가 하는 감투 때문에 이미지 망쳤지만) 훌륭한 토지사 연구가 김정배의 고려시대 또는 조선시대 토지사 관련 책이 어렵지 않은 문장들일지언정 읽기(읽어내기!) 쉽지 않은 것과 비슷하게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정도.
  다시 말한다. 이 책은 프랑스 혁명의 진행과정이 아니라 구체제에서 혁명이 터질 수밖에 없었던 당시 환경, 구체제가 당연히 폐기될 악덕으로 이루어진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제 안에 숨어있던 뇌관들을 밝히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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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쥬코 프랑스 희곡선 1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 지음, 유효숙 옮김 / 연극과인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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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작가 베르나르-마리 콜테스에 관해서는 그의 희곡집 <검둥이와 개들의 싸움>에서 소개를 했으니 넘어가기로 하자. 아름다운 일이 별로 없었던 인물의 생애를 굳이 다시 거론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2차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극장을 달구던 장르는 단연 부조리극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외젠 이오네스코와 사무엘 베케트의 <대머리 여가수>, <고도를 기다리며>는 21세기 초반을 맹렬하게 질주하고 있는 요즘에도 무대에 올릴 때마다 매진을 기대하게 만들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한 20여 년 성가를 높이던 부조리극을 지양하는 움직임으로 1970년대에 등장한 것이 진짜 삶의 한 단면에 집중해 보여주려 했던 일상극이었다. 일상극에서는 시민들이 정말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날것’의 언어를 그대로 대사로 만드는 일도 흔했다고 하는데, 현대 프랑스 희곡을 번역으로 읽어보면 아무래도 원어민처럼 상세하게 느끼지 못할 듯하다. 하여간 나는 못 느꼈다.

  이제 80년대 말을 기점으로 등장한 베르나르-마리 콜테스. 우리에게 콜테스, 라고 하면 당연히 민음사 세계문학 124번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를 떠올릴 것이다. 이 책엔 콜테스의 표제 작품과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 두 편의 대표작이 실려 있어서 콜테스의 반항기, 긴장과 폭력 등을 감상할 수 있는데, 이번에 읽은 극작가의 마지막 작품 <로베르토 쥬코>는 여기에 한 술 더 떴다. 그렇다고 콜테스를 반항과 폭력, 범죄 같은 하드코어 작품의 생산자로만 여기면 섭섭할 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길게 이어지는 대사가 번역문으로 읽어도 무척 시적이고 심지어 아름답기조차 하기 때문이다. <로베르토 쥬코>의 주인공 로베르토는 희대의 살인마. 길지만 그의 대사를 인용해보자.


  “난 떠날 거야. 지금 바로 떠나야 해. 이 거지 같은 동네는 너무 더워. 난 눈 내리는 아프리카에 가고 싶어. 죽을 거니까 떠나야만 해. 어차피 그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그 누구도. 남자에게는 여자가 필요하고, 여자는 남자를 필요로 하지. 하지만 사랑이란 없어. 난 여자들하고는 동정심 때문에 같이 자지. 지금처럼 불행하지 않게 개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 쓰레기통을 뒤지는 거리의 개 말이야. 아무도 나한테 신경도 안 쓸 거야. 난 옴으로 뒤덮인 누런 개였으면 좋겠어. 그러면 사람들이 나에게 신경도 안 쓰면서 피해갈 테니. 난 영원히 쓰레기통을 뒤지고 싶어. 더 이상 단어들이란 없어. 더 이상 할 말도 없어. 말을 가르치는 걸 중단해 버려야 해. 학교를 없애 버리고 묘지를 늘려야 해. 어차피 일년이나 백 년이나 모두 마찬가지야. 빠르건 늦건 언젠가는 모두들 죽어야 하니까. 그런 게 새들을 노래하게 하지. 그런 게 새들을 지저귀게 해.” (p. 46)


  로베르토 쥬코는 아버지를 살해한 죄로 교도소에 수감되자마자 탈옥에 성공해 곧바로 집으로 달려가 엄마를 목 졸라 죽인다. 이어 길거리에서 지나가던 형사의 등을 칼로 찔러 죽이고 권총을 탈취해, 벤츠 280SE를 타고 다니는 여성의 열네 살 먹은 아들의 머리통을 쏘아 살해한 후 거리에서 만난 경찰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해 다시 교도소에 들어간다. 현대식 교도소에서 또 한 번 탈옥하기 위해 지붕으로 올라간 로베르토 쥬코는 지붕에서 추락하고 만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희곡에는 나오지 않지만 죽었다고 봐야겠다.

  이 이야기는 ‘수코’라고 하는 이탈리아 조현병 환자를 모델로 해 만들었다. 콜테스는 우연히 TV를 통해 수코를 만난다. 조현병 증세로 열네 살에 부모를 살해해 정신병원에서 오래 치료를 받다가 프랑스로 탈출했고, 프랑스의 여러 지방을 전전하며 절도, 성폭행, 연쇄 살인을 저지르다 이탈리아에서 체포된다. 이탈리아의 감옥에서는 탈옥에 실패하자 감방 안에서 자살해버렸다.

  콜테스는 이 흉악범의 이야기를 왜 마지막 작품으로 구상했을까. 당시만 해도 걸렸다 하면 방법 없이 곧바로 죽을 병이었던 HIV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틀림없이 이 작품이 유작이 될 것을 알았다고 하는데, 많고 많은 이야기 가운데 하필이면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를, 앞에서 인용하기도 했지만, 시적이기도 하고 심지어 아름답기조차 한 언어로 만들었을까. 이게 궁금했다. 당연히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현대 범죄사에 이름을 올릴 ‘수코’라는 조현병 사이코패스에 관해서는 해설을 읽기 전까지 전혀 몰랐으니 더욱 이상할 수밖에. 처음부터 전제로 나오는 친부살해는 저 멀리 소포클레스부터 유구하게 내려오는 전통이니 그러려니 할 수 있었지만, 탈옥 후에 곧바로 벌어지는 친모살해부터, 독자는 이 대책 없는 범죄자의 진짜 모습이 궁금해지지 않았겠는가 말이지.


  그런데 책의 첫 페이지에 <파리의 대 마법 파피루스의 한 부분인 미트라 예전>이라고 실려 있다.

  “두 번째 기도를 한 후에 너는 태양의 표면이 펼쳐지는 것을 볼 것이며, 태양은 바람의 근원인 성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네가 동쪽으로 머리를 돌리면 태양의 성기는 동쪽으로 이동할 것이고, 네가 머리를 서쪽으로 돌리면 서쪽으로 따라올 것이다.”

  이 두 문장을 의사이자 철학자인 칼 융이 BBC와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인용을 했다고 한다.


  쥬코가 순찰을 돌고 있던 경찰 두 명에게 자신의 범죄 사실을 고지하고 체포되어 교도소로 왔고, 다시 탈출하기 위해 교도소 지붕 꼭대기에 올랐을 때, 무대에는 오직 지붕 위 쥬코만 등장하고 나머지 재소자들은 목소리로만 쥬코와 대화한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쥬코는 목소리들에게 말한다.


  “태양을 봐. (완벽한 침묵이 교도소의 마당을 감싼다.) 아무것도 안 보인단 말이야?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움직이는 게 안 보인단 말이야?

  태양에서 나오는 것을 쳐다봐. 태양의 성기야. 저기에서 바람이 나오는 거야.

  머리를 움직여 봐. 너희들과 함께 그게 움직이는 걸 볼 수 있을 거야.

  저건 바람의 근원이야.

  동쪽으로 머리를 돌리면 그건 그리로 움직여 갈 거야. 머리를 서쪽으로 돌리면 그쪽으로 따라올 거야.”


  이어서 폭풍이 일어나 비틀거리던 쥬코는 지붕에서 추락하고 막이 내려간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걸까? 역자 유효숙에 의하면 콜테스는 “집단적 무의식 이론의 근거가 된 ‘태양의 성기’ 일화를 <로베르토 쥬코>에 삽입하고 있다.”고 한다. 사람이 동쪽으로 머리를 돌리면 동쪽으로, 서쪽으로 돌리면 서쪽으로 향한다니까, 해부학적으로 보면 남성의 성기에 가깝고 실제로 유효숙도 ‘남근’이라 칭하는데,  이 ‘남근’이 흔들려서 바람이 생긴다는 건 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20세기에 사는 조현병 환자가 우연히 저 오래 전 고대 미트라 교의 예전에 등장하는 태양의 성기를 이야기 했다고 해서 그게 “집단적 무의식 이론”의 근거가 된다고 하니, 이거 정말 놀라운 비약 아닌가.

  오히려 로베르토 쥬코가 살인을 하지 않는 보통의 시간에는 정상인들보다 더 부드럽고, 온화한 품성을 지녔음을 강조해서 역설적으로 현대의 누구나가 흉악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고, 현대인들은 그런 위험 속에서 호흡하며 살고 있다고 말한다면, 굳이 뜨겁기만 하고 강단 없이 흐물흐물거려 별 내용 없을 것이 뻔한 태양의 성기 이야기까지 꺼낼 필요가 없었을 텐데. 그래도 공연만 하면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을 듯한 작품일 듯.

  물론 희곡에 별로 조예가 없는 아마추어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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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노 슐츠 작품집 을유세계문학전집 61
브루노 슐츠 지음, 정보라 옮김 / 을유문화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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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루노 슐츠는 생전에 딱 두 권의 작품집을 냈다. 이 두 작품집을 한 권으로 묶어 <저주토끼>의 저자인 정보라가 번역해 을유문화사 세계문학전집 61번으로 출간했다. 그것이 2013년.

  폴란드 문학이 우리에게, 아니면 적어도 내게 이름을 알린 것은 <쿠오바디스>를 쓴 헨릭 시엔키에비치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통해 알게 된 비톨트 곰브로비치, 그리고 2018년 노벨 문학상을 받아 장안의 종잇값을 올린 올가 토카르추크 정도였다. 그러다가 며칠 전에 매력적인 장편소설 비트키예비치의 <탐욕>을 읽는 행운을 누렸고, 이 작품의 해설 속에서 비트키예비치에 못지 않는 난해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작가 브루노 슐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출간한지 9년이나 된 을유세계문학 61번 책을 주저없이 사서 읽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비트키예비치와 곰브로비치, 그리고 슐츠. 도대체 1920년대와 30년대 폴란드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이하 역자의 작품 해설을 인용함.) 브루노 슐츠는 1892년 당시 갈리치아 왕국의 드로호비츠에서 유대인 부모 사이의 늦둥이로 태어났다. 유대교를 포기하고 가톨릭으로 개종한 슐츠 가족은 드로호비츠에서 포목점을 운영했는데, 책을 통해 짐작해보면 1층은 포목점이고, 2층은 슐츠 가족이 살며, 3층 이상은 다른 사람들이 입주한 아파트 형태의 집 구조를 가졌던 거 같다. 이 아파트가 슐츠 씨의 소유인지 아닌지는 가늠할 수 없으나, 아닌 것으로 봐야할 것이 포목점 하나에 모든 가족의 생계가 걸려 있었다고 하니 방세를 받아 살림에 보태지는 않았을 터. 1차 세계대전 와중이던 1915년 아버지가 병사하고 11세 위의 형 이지도르마저 1935년에 타계하는 바람에 슐츠 혼자 과부 형수와 조카, 19세 위인 과부 누나와 조카들의 생계도 전적으로 슐츠가 책임을 져야 했다고 하니, 미술 교사로 근근이 먹고 살던 그에겐 어려운 시절이었을 것이다.

  슐츠는 에로틱하고 환상적이고 동화적인 기묘한 분위기의 미술작품집 《우상숭배의 책》을 내 폴란드에서 어느 정도 주목을 받기도 했고, 자신의 모교인 김나지움에서 대학을 정식으로 졸업하지 않아 기간제 교사로 일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위키피디아는 브루노 슐츠를 작가, 미술가, 문학비평가, 교사로 소개한다. 이후 슐츠는 스타니스와프 이그나치 비트키예비치, 데보라 포겔 등과 교류하게 되고, 1937년에는 비톨트 곰브로비치, 레오폴트 스타프 등 주요 인사들과 친교를 맺는다. 더욱 놀라운 건, 인생을 통틀어 딱 두 권의 단편집만 낸 슐츠가 1937년 폴란드 문학 아카데미 훈장을 받았다는 것.

  그러나 영광의 시절은 짧았다. 몇 년 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전쟁터가 된 폴란드의 게토에 머물러야 했던 슐츠는 1942년 11월 19일, 드로호비츠의 게토 거리에서 게슈타포의 총에 뒤통수를 맞아 길거리에 시신이 버려진다. 해설에 의하면 굶주림에 시달리는 가족을 위하여 빵을 구하러 나갔다가 총에 맞았다는 말도 있고, 게슈타포 경찰이 슐츠가 그려준 초상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총을 쏘았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 어찌 됐던 당시에 유대인 시신을 함부로 수습하는 것도 금지사항이었기 때문에 하루 종일 방치되었다가 다른 유대인 시신들과 함께 한꺼번에 매립된 것으로 추정한단다.


  이 책은 두 권의 단편집 《계피색 가게들》과 《모래시계 요양원》을 실었다.

  폴란드 문학에 과문해서 몰랐는데 브루노 슐츠는 20세기 세계문학사에서 자기 만의 특별한 영역을 가진 작가들, 스타니스와프 비트키예비치, 비톨트 곰브로비치와 더불어 특히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에 폴란드에서 있었던 아방가르드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고 한다. 전위예술. “기성의 예술관념이나 형식을 부정하고 혁신적 예술을 주장한 예술 운동 또는 그 유파.” 그러니까 애초에 아무 대비 없이 슐츠의 책을 읽겠다고 덤비면 난처한 입장을 당하기 좋다. 이 책을 읽기 위하여 준비운동이 좀 필요할 것 같다. 소설 읽기의 스트레칭. 만일 소설 따위를 읽는데 무슨 준비운동이고 스트레칭이냐, 준비운동과 스트레칭? 아니, 무슨 같은 말을 두 번 하느냐, 라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그래도 많이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수사법, 모든 상징이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출몰하는 일견 기괴한 작품을, 아름답게, 맞아, 맞아, 아름답게, 아무리 아방가르드 소설이지만 간혹 주머니 속의 바늘처럼 불쑥 삐져나온 아름다움을 찾기 위하여는 미리 어느 정도의 독서가 준비되어 있으면 더 좋겠다는 뜻이다. 부탁하니, 이 제안을 잘난 척이라 여기지 말아 주시기를.

  당신은 카프카의 <변신>을 읽었을 것이다. 그러면 카프카는 됐다. 곰브로비치의 <페트리두드케>는? 여기까지는 그렇다고 치고, 소위 아방가르드 적 ‘아름다움’은 어떻게 됐는가. 그걸 찾기 위해서 비트키예비치의 길고 긴 장편을 읽을 수는 없다. 그러니 다른 건 몰라도 전위적 아름다움은 그냥 책을 읽으면서 알아가는 것으로 치자. 어차피 아방가르드의 아름다움이나 그냥 우리 주위의 들꽃처럼 지천에 깔려 있는 아름다움이나 그게 그거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준비가 되어 있으면 누구나 찾을 수 있을 터이니. 그러니 됐고, 여기에 (내가 특히 좋아하지 않는 작가 두 명만) 더 보태면 저 남미 사람, 아쉽게도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 아르헨티나의 맹인 작가 보르헤스와 초현실주의의 대표선수 앙드레 브르통. 이 정도의 예비 독서가 있으면 《브루노 슐츠 작품집》을 그나마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을 듯하다. 여기서 나는 선독서가 있으면 책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고 했지, “쉽게” 읽을 수 있다고 얘기하지 “않았다.” 그만큼 브루노 슐츠는 문자와 단어와 문장과 문단으로 헝클어진 작품을 만들어 당신의 대뇌 역시 마구 헝클어 놓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내가 읽은 슐츠는 특히 카프카 가운데서도 <변신>과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에 많은 영향을 받을 것 같았다. 그의 시각으로 보면 세상과 인물과 객체는 관찰자의 시점에 의하여 수시로 다양하게 변하는데, 이때 변하는 정도가 카프카나 브르통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혁신적으로 변용한다.


  역자 정보라는 해설을 통해 “폴란드의 아방가르드 작품을 읽어보면 처음에는 무척 이해하기 힘들지만 대체로 충격적이고 그러면서도 더없이 매혹적인데 어째서 매혹적인지 설명해보라면 뭐라고 딱 집어 말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브루노 슐츠의 작품도 바로 그러하다.”(p.419)라고 했다.

  좋다. 정보라가 인디애나 대학에서 슬라브 문학으로 박사를 받았다 하더라도 평론가가 아닌 작가, 역자라니 이 정도면 더 없이 솔직한 의견으로 접수할 수 있다. 오히려 말도 안 되는 온갖 미사여구를 첨부하는 직업 평론가보다 훨씬 보기 좋다. 물론 이건 정보라가 하는 겸양의 말이다. 이후 해설을 통해 그로테스크한 신화적 상상력와 풍성한 묘사에 관해 이야기를 풀어 나가, 슐츠의 소설이 어떤 의미에서 내가 말하는 ‘아름다움’의 경지에 이르는지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아쉽기는 하다.

  브루노 슐츠의 단편집. 말이 단편집이지 딱 정형화시켜 놓은 한 가족을 일인칭 화자 유제프의 시선으로 관찰해서 연작 장편으로 읽어도 무리가 없을 《계피색 가게들》과 《모래시계 요양원》을 읽으며 왜 내가 이 작품들이 아름답다고 느끼는지 설명해주는 평론가, 문학자 또는 요즘 각광받는 직업인 서평가가 있다면, 서슴지 않고 만 원 주겠다. 나는 브루노 슐츠의 책이야말로, 저번에 비트키예비치의 <탐욕>을 읽고 쓴 독후감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건 논리가 아닌 “직관”으로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말하겠다. 그리고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이 책을 재미있게, 재미는 아니더라도 매우 흥미롭게 읽은 건, 한 결론을 향해 스토리를 밀고 나가는 힘이 아니라 특정한 장면이나 순간의 기분 또는 감상을 포착해서 그 상황을 마치 에세이처럼 설명하는 묘사, 그러니까 문장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살면서 어찌 쉬운 책만 읽을 수 있을까. 때론 난마처럼 뇌가 헝클어지는 고난도 겪어야 할 터. 이 책을 권하는 이유는 당신도 책 읽는 고생을 한 번 해보라는 심통이 아니다. 가끔 격렬한 스포츠를 한 후의 특별한 개운함을 경험하는 것도 아주 좋은 일일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할 점. 함부로 덤볐다가는 한 방에 나가 떨어져 본전 생각이 간절해질 수도 있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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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2-08-05 05: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비트키예비치의 <탐욕>도 그렇고 이 책 <브루노 슐츠 작품집>도 그런데, 차마 별 다섯 개를 주지 않은 건 작품의 60% 정도 이해했을까, 하는 의심 때문입니다. 감상자가 만끽하지 못했으면서 덜렁 이거 최고라서 만점이다, 하기는 좀 께름칙해서 말입죠.

coolcat329 2022-08-05 06: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이 책 가끔 중고로 보였는데 굉장히 전위적인 작품이었군요.
1892년 유대인으로 태어난 폴란드인 ...설마설마했는데 역시나 안타깝게 가셨네요. ㅠㅠ
이 소설집은 골드문트님의 리뷰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며 잘 읽었습니다.

Falstaff 2022-08-05 12:03   좋아요 1 | URL
ㅎㅎㅎ 좋은 선택 하신 것인지도 모릅니다.
혹시 도서관에 가실 시간 있으면 한 번 들춰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

alummii 2022-08-05 06: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직관으로 읽어야 하는 책 ㅡ 확땡기는데요! ㅎㅎ 얼마전 저도 장바구니에 담아놓긴 했었는데 리뷰보고나니 더 읽고싶네요 만원은 ㅋㅋ 저도 걸어봅니다

Falstaff 2022-08-05 12:03   좋아요 2 | URL
오, 이런 스타일 좋아하시면 읽으셔야지요.
물론 저는 책임 안 집니다. ㅋㅋㅋㅋ

유부만두 2022-08-05 08: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 현실이 드러버서 전 쉬운 책만 읽고 있습니다;;;;; 몇 권만 더 읽을게요

Falstaff 2022-08-05 12:04   좋아요 1 | URL
저도 요즘 좀 복잡해서 오히려 진도 안 나가는 두꺼운 책 위주로 읽는데요.
ㅋㅋㅋㅋ 인생이란.....

독서괭 2022-08-05 12: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단편집 두권만 내고 살해당하다니 안타깝네요 ㅠ 난해한 아름다움이라니.. 대뇌를 마구 헝클어뜨린다니?? 아무래도 저는 독서력을 더 쌓고 와야겠습니다(뒷걸음질) ㅎㅎ

Falstaff 2022-08-05 13:31   좋아요 1 | URL
ㅎㅎㅎ 다음에 읽으셔요. 새털같은 나날들인데 뭐하러 서두르십니까. ^^

stella.K 2022-08-05 12: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문트님의 마지막 문단의 말씀에 동의 하지만 선뜻 읽을 자신은 없네요.
저도 준비운동과 스트레칭을 많이 해야겠어요.
소설 읽기는 그렇게 만만한 작업은 아닌 것 같습니다.
늘 소설 읽기를 수도하듯 읽으시는 문트님 같은 분을 뵈면 그저 존경할 다름입니다.ㅠ

그런데 정보라 작가 정말 똑똑한 사람이군요.
전 요즘 작가는 잘 몰라서리...ㅠ

Falstaff 2022-08-05 13:34   좋아요 4 | URL
근데 소설 만큼 잘 읽히는 것도 없지 않나요? ㅎㅎㅎ
특히 요즘같이 더울 때는 문사철 가운데 소설이 제일 좋잖아요.
저도 소설가 정보라는 모릅니다. 하나도 안 읽어봤어요. 부커 인터내셔널 최종심에 정보라의 <저주토끼>가 올라갔다는데 전 <엽기토끼>인줄 알았었다니까요. -_-;;;

stella.K 2022-08-05 13:37   좋아요 4 | URL
엽기토끼! ㅎㅎㅎㅎ

그레이스 2022-08-07 19: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좋아할것 같아요!^^

Falstaff 2022-08-07 19:44   좋아요 2 | URL
아휴, 그럼 읽으셔야지요!!! ^^

mini74 2022-09-08 09: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격렬한 스포츠같은 책이라는 말씀에 살포시 읽기만 했던 리뷰 ㅎㅎ 축하드립니다
골드문트님 ~ 추석연휴도 즐겁게 보내세요 *^^*

Falstaff 2022-09-08 09:12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미니 님도 살 많이 찌지 마시고 건강하게 한가위 보내셔요!! ^^

그레이스 2022-09-08 09: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골드문트님~~^^

Falstaff 2022-09-08 17:2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그레이스 님. ^^

이하라 2022-09-08 1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추석연휴 되세요.^^

Falstaff 2022-09-08 17:23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이하라 님도 마음껏 드시고 살은 안찌는 한 가위 맞으셔요!!!! ^^

하나의책장 2022-09-12 1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Falstaff 2022-09-12 18:16   좋아요 0 | URL
ㅎㅎㅎ 에그, 쑥스럽습니다. 고맙습니다. ^^
 
바다의 긴 꽃잎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22년 2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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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에 출간한 아옌데의 스무 번째 장편소설. 이사벨 아옌데는 이 책을 자료조사와 꼼꼼한 교정을 해준 친동생 후안 아옌데와 작품의 주인공 빅토르 달마우의 모델이 된 빅토르 페이 카사도에게 헌정했다. 장편소설의 주인공이 될 만한 삶을 사는 것이 행복했을까? 그것도 20세기, 한 번의 세계대전과 내전, 제3세계의 쿠데타와 독재의 격랑 속을 그대로 관통한 삶이. 빅토르 페이 또는 빅토르 달마우는 하여간 그리 살았다. 이사벨 아옌데는 워낙 유명한 작가이니 더 이상 소개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곧바로 작품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작품의 시작은 1938년. 스페인 내전 중이다. 내전에 관해 좀 더 알아보면 좋을 듯하지만 오웰의 <카탈루냐 찬가>,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호르헤 셈프룬의 <잘 가거라 찬란한 빛이여…>, 앙드레 말로의 <희망>, 하비에르 세르카스의 <살라미나의 병사들> 등 무수한 저작을 통해 때론 점잖게 때론 격정적인 열전의 형태로 간접경험 할 수 있으니 지금은 건너뛰기로 하자. (스페인 작가들 가운데 내전을 다룬 건 예상 외로 많지 않다. 프랑코 정권의 검열 때문일까?) 다만 바로 전에 읽은 에인 랜드가 <파운틴헤드>에서 말하기를 전쟁 중에서 가장 잔혹한 전쟁이 같은 종교의 다른 분파끼리 벌이는 전쟁과, 같은 민족끼리 싸우는 내전이라고 했음을 기억하는 편이 좋겠다. 남북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도 칠십 여 년 전에 내전을 경험해서 알고 있기는 하지만.

  1938년이면 이미 대세는 기울어 있을 때였다. 스페인 좌파 공화국을 지원했던 코민테른은 서서히 전쟁에서 발을 빼기 시작한 반면 노골적으로 팔랑헤 당을 지지한 독일 나치 권력은 전투기를 필두로 우수한 성능의 무기와 인력을 지원하고 있었다. 마드리드와 고립된 카탈루냐를 확보하기 위해 맞붙은 1938년 후반기 4개월 간에 걸친 에브로 강 전투에서 인민전선 측은 3만 명의 전사자를 내며 결정적으로 패전을 확정하고 이때부터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스로, 프랑스로 기약없는 망명의 길을 떠난다. 이후 소위 ‘잔당 색출’을 끝낸 1939년 4월 1일, 프랑코는 전국의 라디오 방송을 통해 종전을 선언한다.

  당시 마드리드 북역인 노르테 역에는 빅토르 달마우라는 이름의 의과대학생이 내전이 벌어진 1936년 이후 거의 3년 동안 인턴으로 일하고 있었다. 역자의 주석에 의하면, 전세가 불리한 인민전선에는 부족한 병사를 보충하기 위하여 공화국 대통령의 명으로 소년들까지 징집해 소총을 쥐어주고 전선으로 내몰기도 했는데,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자 시인이었던 페데리카 몬트세니는 이들 소년병들을 “비베론 부대”라고 불렀다고 한다. ‘비베론’은 젖병을 의미해 아직 젖병을 물고 있어야 할 나이라는 뜻이다. 공화국이며 인민전선이라고 해서 항상 선한 건 아니었다. 이들도 국민전선과 다름없이 죄 없는 인민들을 학살하기도 하고 국민전선 포로들을 재판 없이 총살하거나 고문 후 때려죽이기도 했다. 전쟁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인간에게 극한의 악마로 변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라서.

  이때 부상을 입고 노르테 역에 실려온 소년병 하나가 빅토르의 눈에 띄었다. 상처부위를 덮은 담요를 젖혀보니 개방된 가슴을 통해 심장이 드러나 있었다. 이미 죽었다고 판단해 그냥 버려질 예정인 소년병의 심장이 자기 눈 앞에서 멈춘 것을 발견한 빅토르는 자신의 소독하지 않은 손을 갈비뼈 사이에 집어넣고 심장을 직접 마사지해 기어이 소년병에게 삶을 돌려주었다. 이 특별한 경험으로 빅토르는 이름도 모르는 소년에게 ‘라사로’라는 자기만의 이름을 부여하고 특별한 기념으로 삼았다. 천운으로 살아난 소년병은 기어이 빅토르 달마우라는 이름을 알아내 2년 후 마르세유에서 가슴의 상처 바로 아래에 그의 이름을 문신으로 새겨 고이 간직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들은 그들의 남은 생애에 결코 만나지도 않고 서로의 소식을 알지도 못한다. 다만 이 기념할 만한 치료로 의과대학 졸업도 하지 않은 빅토르의 외과의사로의 자질은 스페인 전 지역에 소문이 나고, 이후에 심장외과의 권위자가 되는데 조금은 이바지한다.

  그러나 인민전선은 패전했다. 빅토르 달마우에게는 전쟁 중에 만난 두 명의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 한 명은 스위스 출신의 전시아동구호단체 소속 자원봉사자이며 비혼주의자인 엘리자베트 아이덴벤츠. 다른 한 명은 불멸의 바스크인으로 불리는 운전병 아이토르 이바라. 매우 중요한 사람들이다. 빅토르 역시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프랑스로 망명을 떠나야 하지만 집에 머물고 있는 어머니 카르메 달마우 여사와 전사한 동생 기옘의 아이를 임신한 만삭의 로세르 브루겔라를 먼저 보내야 할 처지였다. 자신은 너무도 많은 부상자들을 치료해야 했으므로. 그리하여 바스크인 아이토르에게 어머니와 제수를 부탁하고, 프랑스에 도착하면 적십자에서 일하는 엘리자베트를 찾으라고, 그러면 언젠가는 자신과 연락이 닿을 수 있을 것이라 전한다. 때는 1939년 1월. 기록적인 추위가 덮친 피레네 산맥을 넘는 과정과 프랑스 수용소에서 겪는 모진 고통은 생략한다.

  다만 모든 것을 일찍 눈치챈 바스크인 아이토르는 혼돈의 와중에 가업이자 바스크인들의 전통적 생업 가운데 하나였던 밀수를 통해 제법 돈을 마련해 베네수엘라 이민을 준비한다. 나중에 프랑스로 탈출해 아르헬레스수르메르 수용소에서 빅토르를 발견한 아이토르는 엘리자베트의 도움을 받고 있던 로세르에 관한 소식을 전해 이들을 만날 수 있게 해주면서, 당시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던 베네수엘라로 이민 갈 수 있도록 자신이 초청하겠다고 약속한다. 이것으로 이 두 명의 선한 인물은 작품에서 사실상 사라진다. 나중에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만 배경으로 등장할 뿐.


  다음에 등장하는 인물이 파블로 네루다. 빅토르와 로세르는 고향인 바르셀로나를 떠나 프랑스에 가서, 대단히 폭력적이고 거친 수용소 생활을 거쳐, 스위스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이방의 나라에 머물다가, 베네수엘라로의 이민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때 칠레 좌파 정부는 외교관이기도 했던 시인 네루다를 파리에 보내 스페인 난민들을 칠레에서 받아들이기로 하는데, 칠레 정부는 보수 가톨릭 부르주아 세력들의 반대 때문에 충분한 비용을 지원해줄 수 없었다. 네루다는 1939년 8월 상선 위니펙 호를 빌려 보르도 항을 출발해 칠레, 네루다의 표현에 의하면 “하얗고 새까만 거품의 허리띠를 두르고, 바다와 포도주와 눈으로 이뤄진 기다란 꽃잎”의 땅으로 향한다. 이 피란민 속에 전사한 동생 기옘의 아들 마르셀과 마르셀의 엄마 로세르와 결혼한 빅토르도 끼어 있었다. 이민을 위한 서류 결혼이었다. 육체적 결합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곁들인. 이때는 몰랐지, 한 번 결혼을 하면 칠레에서 이혼할 수 없다는 것을.

  9월 3일,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바로 그날에 칠레 땅을 밟은 이들은 탈카 주州에 거류하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칠레는 민주주의의 나라라 거주이전의 자유가 있어서 수도 산티아고에 머문다. 음악 교육과 작곡에 능했던 빅토르의 아버지가 가르친 가장 훌륭(하지만 가장 가난하기도)했던 제자 로세르는 산티아고에서 피아노 연주와 레슨으로 돈을 벌고, 빅토르는 낮엔 의과대학을 다니면서 밤엔 술집 주방에서 일을 한다. 이때 칠레에 의사 출신 가운데 가장 유명하며 보건부 장관에 올랐고 30년 후엔 칠레의 대통령이 될 살바도르 아옌데와 인연을 맺게 된다. 그건 30년 후이니까, 30년 동안 서류상 부부인 유능한 외과의사 빅토르와 역시 유능한 피아니스트이자 후에 고음악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단장으로 활약하게 될 로세르는 서로가 서로의 생활을 향유하며 세월을 보낸다. 이들의 아들 마르셀 역시 훌륭한 시민사회의 일원이 되고 미국으로 유학해 콜로라도 대학에서 광물학 박사를 받는다.

  그러나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1973년, 군부에 의한 쿠데타. 한 국가 내에서 벌어지는 살육은 스페인에서 경험한 참혹한 광경을 능가하는 것이었고, 간혹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과 체스 시합을 벌였던 빅토르 달마우 역시 이웃 여자의 악의적인 고발로 군부에 의하여 체포당해 칠레 북쪽, 세상에서 가장 건조하지만 전 칠레 시민을 먹여 살릴 만큼의 지하자원을 보유한 사막의 수용소로 배치된다. 쿠데타로 인해 스페인을 떠나 프랑스의 극악한 수용소 시절을 보낸 빅토르는, 대서양을 건너 태평양 연안의 나라 칠레에서도 쿠데타를 겪고 잔인한 폭력과 살인이 벌어지는 수용소를 경험해야 했던 것.

  그래도 작품은 끝나지 않았다. 주인공의 모델이 된 빅토르 페이 카사도는 103세까지 살았다. 그러니 앞으로도 40년이 넘는 세월이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다.


  스토리를 자세하게 썼다고 여기지 마시라. 극히 일부분의 내용에만 살을 붙였을 뿐이다. 이제 결론을 내야겠다. 책 자체로는 재미있다. 그러나 이사벨 아옌데의 전작을 읽어서, 이이에게 일정 수준의 기대치가 생긴 독자는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가 된 이사벨 아옌데가 새로운 걸작으로 돌아왔다!”

  느낌표를 동반한 화려한 헌사를 애초부터 믿은 건 아니다. 나는 오직 하나, “이사벨 아옌데”라는 이름만 보고 책을 샀고 읽었고, 실망했다. 다시 말하지만 실망할 책이 아니다. 만일 아옌데가 아닌 작가가 썼다면. 아옌데 치고 결말도 지극하게 상투적이다.





*  남북조 시대. 복거일의 미래소설 <파란 달 아래>에서 달 기지에 정착한 통일국가가 20세기의 한반도 시대를 ‘남북조 시대’로 규정한 것을 따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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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8-02 09: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사람의 책을 읽는다면 이 책부터 읽는게 좋겠군요. 저는 가면 갈수록 기대되는 작가가 좋지 실망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

Falstaff 2022-08-02 09:57   좋아요 3 | URL
ㅎㅎㅎ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실실 웃은 적이 있습니다.
아옌데 삼부작으로 충분할 거 같아요. 물론 이이의 작품을 더 읽어봐야겠지만 77세에 발표한 작품이라 그런지 젊은 시절 작품보다 글이 팽팽하지 않아서, 출간 연도를 주의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

그레이스 2022-08-02 11: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장바구니에 담겨있는 책, 라자로, 문신 ...구매하고 싶게하는 이야기들, 그런데 덧붙인 얘기들이 있으시다니^^ 멈칫합니다. 에덤 호크실드의 <스페인 내전> 읽은 것으로 만족해야 할 듯 합니다. 리뷰로 스페인 내전 리마인드했습니다. 감사합니다.

Falstaff 2022-08-02 15:39   좋아요 2 | URL
아옌데를 정말 좋아하는 독자라면 사서 읽을 듯합니다. 보통의 독자라면 권하지 않을 거 같고요. 이젠 차라리 다른 얘기를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을,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좀 그만 우려먹으란 것입죠. ^^;;;

다락방 2023-04-13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 아옌데 소설 더 읽고 싶어서 검색해 이 책을 알게 되었는데 이 리뷰가 이렇게 똭! 그렇다면 저는 일단 영혼의 집을 다음 순서로 읽고 아옌데는 잠시 멈춤 하겠어요. <파울라> 읽고 싶은데 품절이더라고요. ㅠㅠ

Falstaff 2023-04-13 18:18   좋아요 0 | URL
아휴.... 이 책에 관해서는 제 별점에 신경쓰지 마세요.
만일 아옌데가 쓴 작품이 아니었다면, 이란 가정이 중요하지요. ㅎㅎㅎ
 
파운틴 헤드 1 - 오직 나만이 나의 근원이다
에인 랜드 지음, 민승남 옮김 / 휴머니스트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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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인 랜드는 1905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자수성가한 유대인 약국 주인의 딸 알리사 지노비예브나 로젠바움으로 태어났다. 20세기 초반 러시아에서 부잣집 자제로 태어났으면, 망한 거다. 아니나 다를까,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자 큰 부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집안에 요리사, 하녀, 유모, 가정교사 등 프롤레타리아 고용인까지 두루 거느릴 정도였으니, 당연하게도 혁명정부에 의하여 전 재산을 탈탈 털리는 것으로 모자라 크림 쪽으로 쫓겨가 살았다. 열여섯 살 되는 해에 가까스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와 페트로그라드 대학에 다니며 역사, 철학, 문학을 공부…하려고 했지만 이이가 두각을 나타낸 철학과 문학에 대한 의지는 대학에서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학교를 졸업할 때 이미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레닌그라드로 변해 있었다. 이렇게 초년 팔자는 볼셰비키한테 집안이 거덜이 났고 젊은 시절에도 사회주의 특유의 집산주의集産主義 정책과 레닌에 의한 일인독재를 겪었으니 머리 하나는 똑소리 나게 좋았던 이이가 남은 평생동안 볼셰비키,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어떻게 어엿비 여길 수 있었겠는가. 그리하여 나중에 미국에 건너가 극작가, 소설가, 연설가, 철학자로 이름을 날리면서 그들의 정 반대 쪽의 편을 들 수밖에 없었을 터. 이런 이유로 1940년대 이후 이이의 명성이 높아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우파 진영, 특히 자유주의 사상의 파운틴헤드가 되어 버린다.

  이이는 어려서부터 대단히 총명했다고 한다. 딸에게 여간해서 애정을 표현하지 않았던 부모도 친척이나 친지와 함께하는 모임에서 알리사가 자신의 영특함을 과시할 때에는 이이를 자랑스러워 했단다. 1926년 스물한 살 때 미국에 도착한 알리사 바움은 자신을 초청한 친척이 살던 시카고에 잠깐 들렀다가 캘리포니아 할리우드에 정착해 영화에 잠깐 출연하는 등 그쪽 방면의 일을 하며 자리를 잡고, 결혼을 하고, ‘에인 랜드’라고 개명을 한다. 이후는 잘 나가는 작가들과 비슷한 한 생애를 보낸다. 내가 주목한 랜드의 한 생애는, ① 총명하지만 부모로부터 제대로 된 애정을 받지 못한 아이, ② 단지 돈이 많다는 이유 하나로 한 체제에 의하여 순식간에 집안이 거덜나고 그것도 모자라 추방까지 해버리는 집산주의 체제에 대한 환멸, ③ 주머니에 50달러만 갖고 도착한 미국에서 생존해야 했던 절박함으로 요약했다. 이런 환경은 내가 읽은 유일한 에인 랜드인 <파운틴헤드>를 통해, ①’ 극단적 개인주의 ②’ 사회주의/공산주의와 전체주의-독재정권에 대한 완전한 반대, ③’ 미국인보다 더 미국적인 영웅 주인공들의 탄생이라는 작용 혹은 반작용으로 나타나지 않았나 싶다. 이러한 작용 또는 반작용은 작품을 마치 황색신문의 연재소설 수준으로 만들 수 있는 기재일 수 있지만 에인 랜드는 현대인의 삶 자체에 대한, 획기적이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수천년 간 인류를 지배하던, 선하다고 믿는 이데올로기를 뒤집어 엎는 데 성공하면서 황색신문 연재소설에서 벗어난다.

  만일 이 책을 읽고자 한다면 몇 가지를 권고할 수밖에 없다. 읽다 보면 가끔 에인 랜드의 정치적 입장이 불편해진다. 당연히 작가의 시선에 의도적으로 동의해줄 수밖에 없을 때도 있다. 이이는 여성이지만 애초부터 여성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이고, 집산주의에 철저하게 반대하는 자유주의자라서, 등장인물 본인이 <파우스트>를 언급하기도 하는데 틀림없이 메피스토펠레스를 모델로 한 ‘엘즈워스 몽크턴 투히’는 파업 현장을 다니며 단결과 투쟁의 중요성을 연설하는 사회주의자이자 공동선을 위한 자선단체의 후원자로 시작했다가 조금씩 영웅적 창조자를 파멸시키려 하는 악마의 화신으로 진화하게 만들었다. 미국 태생의 미국인보다 훨씬 더 미국스러운 인물들이 등장해 이들끼리 만나기만 하면 필연적으로 불똥이 튄다. 이게 미국 소설 읽는 재미이기는 하지만, 영웅적 주인공 하워드 로크와 뚜렷한 주관을 가진 최고미녀 도미니크 프랭컨은 서로가 서로에게 강렬하게 끌려 있었던 건 맞는데, 스포일러 때문에 최소한의 힌트만 흘린다면, 이들의 사랑이 결코 바람직한 과정을 거쳐 성숙해지지 않는다. 심지어 여성주의자 시각으로는 매우 불편할 수 있다. 에인 랜드 그리고/또는 훌륭한 역자 민승남이 단어 선택에 조금만 더 신경을 썼다면 상당히 부드러워질 수 있었을 텐데, 아마 랜드의 고의적 연출이 아니었겠는가 싶다.

  이런 것 몇 가지만 감안해서 읽으면 좋겠다.


  나는 개인주의자다. 몇 번 얘기했는데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가운데 가장 감명 깊었던 구절은 “나의 조국은 나를 위해 죽어달라.”는 거였다. 이 책 <파운틴헤드>를 쓰고 약 20여 년 후에 미국 우파의 정신적 지주가 될 에인 랜드에게는 가당치 않을 말이겠지만 놀랍게도 <파운틴헤드>에서는 전편에 걸쳐 진정한 개인주의가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 개인에게서는 물론이고 세계와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도 얼마나 엄청난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심지어 개인주의, 물론 철저하게 진정한 개인주의자 영웅의 경우이지만 이들을 ‘창조자’라고 칭하며 불을 발견한 프로메테우스, 바퀴를 발명한 최초의 인간, 비행기를 설계한 과학자 등을 예로 들고 있다.

  책의 등장인물 가운데 제일 찌질한 건축가 피터 키팅은, 작품의 중후반에 주인공 하워드 로크를 찾아가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를 위해 키팅이라는 이름으로 설계도면을 대신 그려 달라고, 죽기보다 싫은 부탁을 하며 영혼을 팔아서라도 보답을 하겠다고 말한다. 로크는 영혼을 파는 것이야말로 제일 쉽고 편한 선택이라고, 가장 어려운 것은 자신의 영혼을 지키는 일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영혼을 지키는 일. 이게 진정한 개인주의라는 의미다.

  키팅과 로크는 책의 첫 장면에서부터 연결되어 있다. 키팅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하숙집에 로크가 기숙을 했던 것. 둘은 미국 동부지역에 있는 명문이자 가상의 스탠턴 공과대학 건축과에 다녔다. 1922년에 키팅은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최우등 졸업하고 같은 날 로크는 3학년만 마친 채 퇴학을 당하고 만다. 스탠턴 공대 건축학과는 그리스, 로마, 르네상스, 중세 고딕, 식민지시대, 크리스토퍼 렌* 등의 전통, 더 이상 건축학적 발전은 없을 것이란 전통과 고집에 입각한 교육을 하고 있었고, 키팅은 교수들의 가르침을 금과옥조처럼 빨아들인 반면 로크는 지난 시절의 유산을 복사하는 것을 거부하고 건축하는 건물의 위치와 건물에 들어와 생활할 사람들의 입장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아름다운 “현대적” 건축물을 추구한 차이였다. 이제 최우등 졸업을 해서 전학기 장학생 자격으로 프랑스 미술대학으로 유학을 가느냐, 아니면 뉴욕 최고 그러니까 세계최고의 설계사무소인 ‘프랭컨 앤드 헤이어 건축사무소’에 스카우트 되어 가느냐 하는 행복한 선택의 기로에 선 키팅 입장으로 보면 자신도 모르고 남들도 알지 못하는 두 가지 행운이 있었으니, 하나는 로크와 한 학년이 아니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로크가 자신보다 먼저 학교를 떠나지 않았다는 거였다.

  키팅을 딱 한 마디로 소개하면, 결정장애 속물. 원래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으나 과부 엄마가 건축가의 길을 권유하자 별 의미 없이 건축으로 진로를 바꾸었다. 건축과에 진학을 해서도 애초부터 자신이 원하는 건축물에 관한 개념이 없었으니 교수들이 가르쳐주는 대로 그리스, 로마, 르네상스 등의 “빛나는 전통”을 잇는 데 전력을 다 했지만, 자신이 설계를 마치고 난 후에 ‘내 작품’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 지 늘 궁금해 했고, 작품에서 뭔가 미진하기는 하지만 그게 뭔지 몰라 언제나 한 지붕 아래에서 같은 밥을 먹고 살던 로크에게 그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그러다 작품 수정을 요구했다가, 그게 그럴 듯해서 그게 마치 자신의 아이디어인 것처럼 그대로 수정본을 제출해왔던 것. 스스로 조금도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로크는 그저 자기 작품에 아주 약간의 수정만 해주었을 뿐이었기 때문에. 로크는 작품의 마지막에 자신의 잘못이었다고 고백한다. 애초에 자질이 되지 않았고 건축에 대한 자신만의 관념이 없는 대신 타인들이 자신에게 내릴 평가에만 관심이 있던 키팅을 위해 작품 수정을 해주고, 간혹 대신 그려 주기도 해서 높은 평가를 향유하게 만들었던 것을. 키팅은 세계최고의 건축가 사무소에 들어가서도 자존심을 허물면서 자신의 설계를 로크에게 가져가 보여주고, 부족한 점에 관해 말해달라고 하고, 지금 말한 것처럼 수정해달라고 해서, 그걸 그대로 사장에게 제출해 아주 이른 시일 내에 스타 건축가가 된다. 이런 과정을 걸쳐 피터 키팅은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출세 지상주의의 찌질남을 대표한다.

  그래서 미국식 영웅인 하워드 로크의 적수로 피터 키팅은 완전히 함량 미달이다. 땅 속의 루시퍼나 메피스토펠레스를 대신하는 엘즈워스 몽크턴 투히 입장에서 보면 키팅은 메피스토펠레스의 노리개 감이었던 파우스트 박사에 불과하다. 로크의 진정한 적은 투히다. 그러나 정말로 책을 읽어보실 분을 위해 흥미진진하게 벌어지는 투히의 지적 투망投網으로 자기 진영을 만드는 일, 그리하여 자신의 영혼을 지키기 위해 진력을 다 하는 인물들을 괴멸하게 만드는지에 관해서는 알려드리지 않겠다.


  나는 에인 랜드의 정치사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이의 작품을 재미없게 읽을 필요는 없다. 나 자신이 살면서 가장 쉬운 방법인 영혼을 팔아 평생의 살림을 꾸려온 찌질한 인생의 일원으로, 가장 험난한 삶의 방법인 자신의 영혼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일인지를 새삼 떠올리게 만든 거 하나만 가지고도 열흘을 바쳐 1,550 페이지의 장편소설을 읽은 보람이 있지 아니한가.

  결국 삶에 실패한 피터 키팅은 아무도 모르게 그린 그림, 한 시절 자신의 꿈이었던, 그림 몇 점을 가지고 로크를 찾아가 보여준다. 한동안 그림을 바라보던 로크는 말한다. “피터, 너무 늦었네.”




* 크리스토퍼 렌. 1632~1723. 영국 르네상스 건축의 대가. 1666년에 있었던 런던 대화재를 복구하면서 세인트 폴 대성당을 설계한 것으로 유명하다. 피터 애크로이드는 장편소설 <혹스무어>를 통해 크리스토퍼 렌이 설계한 런던의 50여 개의 교회에 얽힌 '교란역사' 또는 '역사교란'을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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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7-29 06: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에인 랜드의 마천루 가 분명 어느 책에서 언급되어 제가 오천년전에 찜해두고 있었거든요. 그때도 분량의 압박으로 미루고만 있었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 파운틴 헤드 리뷰로 또 만나네요. 역시나 분량때문에 망설여지기는 하지만 골드문트 님 리뷰의 제목에 제가 심히 동의하는지라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영혼을 지키는 거, 그게 어렵죠. 그런 이야기라면 전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Falstaff 2022-07-29 09:12   좋아요 2 | URL
저도 사놓고 분량 때문에 후덜덜.... 읽는 결심을 하는데 반 년이 걸렸습니다. 게다가 철학자라고 하지, 너무 어려워 여러 출판사가 정중하게 출간을 거절했다고 하지, 하여튼 많이 망설였는데요, 읽어보니까 지금 수준에선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이런 분량의 책을 읽기엔 너무 덥지 않나 싶고요, 선선한 바람 불면 한 번 시도해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그레이스 2022-07-29 08: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왜 그렇게 비판했는지 알 것 같네요^^
저는 이 작가의 책 마천루와 5권짜리 아틀라스 갖고 있어요^^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리뷰 읽고 나니 읽고 싶네요.
언제 읽나.. ㅋ
파운틴 헤드는 영문으로 슬쩍 슬쩍 보고 있는데 골드문트님처럼 깊이 있게 읽으려면 아무래도 한글로 읽어야겠죠^^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Falstaff 2022-07-29 09:13   좋아요 2 | URL
저도 지금 <아틀라스>를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조금 고민입니다. 읽는다면 도서관에 갈까, 책을 살까... 이것도 궁리 중이고요.
아이고, 이걸 영문으로 읽으면... 생각만 해도 혀가 쭉 빠지네요.

coolcat329 2022-07-29 20: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장 어려운 일은 자신의 영혼을 지키는 것이다... 멋있는 말이네요.
작가가 러시아 출신이었군요. 미국으로 잘 건너갔네요. 레닌그라드에 있었다면 그냥 제거됐을 확률이 높을 사람이에요.
저는 읽을 엄두가 안 나지만 책의 내용과 작가라도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Falstaff 2022-07-30 18:41   좋아요 1 | URL
ㅎㅎㅎ 고맙습니다.
이 책은 참 괜찮았는데요, 이이의 대표작이라고 하는 <아틀라스>는 어째 읽기가 께름칙하네요. 나중에 도서관에서 빌려 봐야겠습니다.
잘난 것들은 참 냉정해요. 미국으로 건너가서 20여 년이 흐른 다음에 딱 한 번 여동생을 만난 것 외에 다시는 가족들하고 얼굴을 맞대지 않았다고 하네요. 책의 주인공하고 비슷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