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틴 헤드 1 - 오직 나만이 나의 근원이다
에인 랜드 지음, 민승남 옮김 / 휴머니스트 / 201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에인 랜드는 1905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자수성가한 유대인 약국 주인의 딸 알리사 지노비예브나 로젠바움으로 태어났다. 20세기 초반 러시아에서 부잣집 자제로 태어났으면, 망한 거다. 아니나 다를까,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자 큰 부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집안에 요리사, 하녀, 유모, 가정교사 등 프롤레타리아 고용인까지 두루 거느릴 정도였으니, 당연하게도 혁명정부에 의하여 전 재산을 탈탈 털리는 것으로 모자라 크림 쪽으로 쫓겨가 살았다. 열여섯 살 되는 해에 가까스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와 페트로그라드 대학에 다니며 역사, 철학, 문학을 공부…하려고 했지만 이이가 두각을 나타낸 철학과 문학에 대한 의지는 대학에서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학교를 졸업할 때 이미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레닌그라드로 변해 있었다. 이렇게 초년 팔자는 볼셰비키한테 집안이 거덜이 났고 젊은 시절에도 사회주의 특유의 집산주의集産主義 정책과 레닌에 의한 일인독재를 겪었으니 머리 하나는 똑소리 나게 좋았던 이이가 남은 평생동안 볼셰비키,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어떻게 어엿비 여길 수 있었겠는가. 그리하여 나중에 미국에 건너가 극작가, 소설가, 연설가, 철학자로 이름을 날리면서 그들의 정 반대 쪽의 편을 들 수밖에 없었을 터. 이런 이유로 1940년대 이후 이이의 명성이 높아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우파 진영, 특히 자유주의 사상의 파운틴헤드가 되어 버린다.

  이이는 어려서부터 대단히 총명했다고 한다. 딸에게 여간해서 애정을 표현하지 않았던 부모도 친척이나 친지와 함께하는 모임에서 알리사가 자신의 영특함을 과시할 때에는 이이를 자랑스러워 했단다. 1926년 스물한 살 때 미국에 도착한 알리사 바움은 자신을 초청한 친척이 살던 시카고에 잠깐 들렀다가 캘리포니아 할리우드에 정착해 영화에 잠깐 출연하는 등 그쪽 방면의 일을 하며 자리를 잡고, 결혼을 하고, ‘에인 랜드’라고 개명을 한다. 이후는 잘 나가는 작가들과 비슷한 한 생애를 보낸다. 내가 주목한 랜드의 한 생애는, ① 총명하지만 부모로부터 제대로 된 애정을 받지 못한 아이, ② 단지 돈이 많다는 이유 하나로 한 체제에 의하여 순식간에 집안이 거덜나고 그것도 모자라 추방까지 해버리는 집산주의 체제에 대한 환멸, ③ 주머니에 50달러만 갖고 도착한 미국에서 생존해야 했던 절박함으로 요약했다. 이런 환경은 내가 읽은 유일한 에인 랜드인 <파운틴헤드>를 통해, ①’ 극단적 개인주의 ②’ 사회주의/공산주의와 전체주의-독재정권에 대한 완전한 반대, ③’ 미국인보다 더 미국적인 영웅 주인공들의 탄생이라는 작용 혹은 반작용으로 나타나지 않았나 싶다. 이러한 작용 또는 반작용은 작품을 마치 황색신문의 연재소설 수준으로 만들 수 있는 기재일 수 있지만 에인 랜드는 현대인의 삶 자체에 대한, 획기적이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수천년 간 인류를 지배하던, 선하다고 믿는 이데올로기를 뒤집어 엎는 데 성공하면서 황색신문 연재소설에서 벗어난다.

  만일 이 책을 읽고자 한다면 몇 가지를 권고할 수밖에 없다. 읽다 보면 가끔 에인 랜드의 정치적 입장이 불편해진다. 당연히 작가의 시선에 의도적으로 동의해줄 수밖에 없을 때도 있다. 이이는 여성이지만 애초부터 여성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이고, 집산주의에 철저하게 반대하는 자유주의자라서, 등장인물 본인이 <파우스트>를 언급하기도 하는데 틀림없이 메피스토펠레스를 모델로 한 ‘엘즈워스 몽크턴 투히’는 파업 현장을 다니며 단결과 투쟁의 중요성을 연설하는 사회주의자이자 공동선을 위한 자선단체의 후원자로 시작했다가 조금씩 영웅적 창조자를 파멸시키려 하는 악마의 화신으로 진화하게 만들었다. 미국 태생의 미국인보다 훨씬 더 미국스러운 인물들이 등장해 이들끼리 만나기만 하면 필연적으로 불똥이 튄다. 이게 미국 소설 읽는 재미이기는 하지만, 영웅적 주인공 하워드 로크와 뚜렷한 주관을 가진 최고미녀 도미니크 프랭컨은 서로가 서로에게 강렬하게 끌려 있었던 건 맞는데, 스포일러 때문에 최소한의 힌트만 흘린다면, 이들의 사랑이 결코 바람직한 과정을 거쳐 성숙해지지 않는다. 심지어 여성주의자 시각으로는 매우 불편할 수 있다. 에인 랜드 그리고/또는 훌륭한 역자 민승남이 단어 선택에 조금만 더 신경을 썼다면 상당히 부드러워질 수 있었을 텐데, 아마 랜드의 고의적 연출이 아니었겠는가 싶다.

  이런 것 몇 가지만 감안해서 읽으면 좋겠다.


  나는 개인주의자다. 몇 번 얘기했는데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가운데 가장 감명 깊었던 구절은 “나의 조국은 나를 위해 죽어달라.”는 거였다. 이 책 <파운틴헤드>를 쓰고 약 20여 년 후에 미국 우파의 정신적 지주가 될 에인 랜드에게는 가당치 않을 말이겠지만 놀랍게도 <파운틴헤드>에서는 전편에 걸쳐 진정한 개인주의가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 개인에게서는 물론이고 세계와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도 얼마나 엄청난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심지어 개인주의, 물론 철저하게 진정한 개인주의자 영웅의 경우이지만 이들을 ‘창조자’라고 칭하며 불을 발견한 프로메테우스, 바퀴를 발명한 최초의 인간, 비행기를 설계한 과학자 등을 예로 들고 있다.

  책의 등장인물 가운데 제일 찌질한 건축가 피터 키팅은, 작품의 중후반에 주인공 하워드 로크를 찾아가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를 위해 키팅이라는 이름으로 설계도면을 대신 그려 달라고, 죽기보다 싫은 부탁을 하며 영혼을 팔아서라도 보답을 하겠다고 말한다. 로크는 영혼을 파는 것이야말로 제일 쉽고 편한 선택이라고, 가장 어려운 것은 자신의 영혼을 지키는 일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영혼을 지키는 일. 이게 진정한 개인주의라는 의미다.

  키팅과 로크는 책의 첫 장면에서부터 연결되어 있다. 키팅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하숙집에 로크가 기숙을 했던 것. 둘은 미국 동부지역에 있는 명문이자 가상의 스탠턴 공과대학 건축과에 다녔다. 1922년에 키팅은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최우등 졸업하고 같은 날 로크는 3학년만 마친 채 퇴학을 당하고 만다. 스탠턴 공대 건축학과는 그리스, 로마, 르네상스, 중세 고딕, 식민지시대, 크리스토퍼 렌* 등의 전통, 더 이상 건축학적 발전은 없을 것이란 전통과 고집에 입각한 교육을 하고 있었고, 키팅은 교수들의 가르침을 금과옥조처럼 빨아들인 반면 로크는 지난 시절의 유산을 복사하는 것을 거부하고 건축하는 건물의 위치와 건물에 들어와 생활할 사람들의 입장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아름다운 “현대적” 건축물을 추구한 차이였다. 이제 최우등 졸업을 해서 전학기 장학생 자격으로 프랑스 미술대학으로 유학을 가느냐, 아니면 뉴욕 최고 그러니까 세계최고의 설계사무소인 ‘프랭컨 앤드 헤이어 건축사무소’에 스카우트 되어 가느냐 하는 행복한 선택의 기로에 선 키팅 입장으로 보면 자신도 모르고 남들도 알지 못하는 두 가지 행운이 있었으니, 하나는 로크와 한 학년이 아니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로크가 자신보다 먼저 학교를 떠나지 않았다는 거였다.

  키팅을 딱 한 마디로 소개하면, 결정장애 속물. 원래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으나 과부 엄마가 건축가의 길을 권유하자 별 의미 없이 건축으로 진로를 바꾸었다. 건축과에 진학을 해서도 애초부터 자신이 원하는 건축물에 관한 개념이 없었으니 교수들이 가르쳐주는 대로 그리스, 로마, 르네상스 등의 “빛나는 전통”을 잇는 데 전력을 다 했지만, 자신이 설계를 마치고 난 후에 ‘내 작품’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 지 늘 궁금해 했고, 작품에서 뭔가 미진하기는 하지만 그게 뭔지 몰라 언제나 한 지붕 아래에서 같은 밥을 먹고 살던 로크에게 그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그러다 작품 수정을 요구했다가, 그게 그럴 듯해서 그게 마치 자신의 아이디어인 것처럼 그대로 수정본을 제출해왔던 것. 스스로 조금도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로크는 그저 자기 작품에 아주 약간의 수정만 해주었을 뿐이었기 때문에. 로크는 작품의 마지막에 자신의 잘못이었다고 고백한다. 애초에 자질이 되지 않았고 건축에 대한 자신만의 관념이 없는 대신 타인들이 자신에게 내릴 평가에만 관심이 있던 키팅을 위해 작품 수정을 해주고, 간혹 대신 그려 주기도 해서 높은 평가를 향유하게 만들었던 것을. 키팅은 세계최고의 건축가 사무소에 들어가서도 자존심을 허물면서 자신의 설계를 로크에게 가져가 보여주고, 부족한 점에 관해 말해달라고 하고, 지금 말한 것처럼 수정해달라고 해서, 그걸 그대로 사장에게 제출해 아주 이른 시일 내에 스타 건축가가 된다. 이런 과정을 걸쳐 피터 키팅은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출세 지상주의의 찌질남을 대표한다.

  그래서 미국식 영웅인 하워드 로크의 적수로 피터 키팅은 완전히 함량 미달이다. 땅 속의 루시퍼나 메피스토펠레스를 대신하는 엘즈워스 몽크턴 투히 입장에서 보면 키팅은 메피스토펠레스의 노리개 감이었던 파우스트 박사에 불과하다. 로크의 진정한 적은 투히다. 그러나 정말로 책을 읽어보실 분을 위해 흥미진진하게 벌어지는 투히의 지적 투망投網으로 자기 진영을 만드는 일, 그리하여 자신의 영혼을 지키기 위해 진력을 다 하는 인물들을 괴멸하게 만드는지에 관해서는 알려드리지 않겠다.


  나는 에인 랜드의 정치사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이의 작품을 재미없게 읽을 필요는 없다. 나 자신이 살면서 가장 쉬운 방법인 영혼을 팔아 평생의 살림을 꾸려온 찌질한 인생의 일원으로, 가장 험난한 삶의 방법인 자신의 영혼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일인지를 새삼 떠올리게 만든 거 하나만 가지고도 열흘을 바쳐 1,550 페이지의 장편소설을 읽은 보람이 있지 아니한가.

  결국 삶에 실패한 피터 키팅은 아무도 모르게 그린 그림, 한 시절 자신의 꿈이었던, 그림 몇 점을 가지고 로크를 찾아가 보여준다. 한동안 그림을 바라보던 로크는 말한다. “피터, 너무 늦었네.”




* 크리스토퍼 렌. 1632~1723. 영국 르네상스 건축의 대가. 1666년에 있었던 런던 대화재를 복구하면서 세인트 폴 대성당을 설계한 것으로 유명하다. 피터 애크로이드는 장편소설 <혹스무어>를 통해 크리스토퍼 렌이 설계한 런던의 50여 개의 교회에 얽힌 '교란역사' 또는 '역사교란'을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2-07-29 06: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에인 랜드의 마천루 가 분명 어느 책에서 언급되어 제가 오천년전에 찜해두고 있었거든요. 그때도 분량의 압박으로 미루고만 있었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 파운틴 헤드 리뷰로 또 만나네요. 역시나 분량때문에 망설여지기는 하지만 골드문트 님 리뷰의 제목에 제가 심히 동의하는지라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영혼을 지키는 거, 그게 어렵죠. 그런 이야기라면 전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Falstaff 2022-07-29 09:12   좋아요 2 | URL
저도 사놓고 분량 때문에 후덜덜.... 읽는 결심을 하는데 반 년이 걸렸습니다. 게다가 철학자라고 하지, 너무 어려워 여러 출판사가 정중하게 출간을 거절했다고 하지, 하여튼 많이 망설였는데요, 읽어보니까 지금 수준에선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이런 분량의 책을 읽기엔 너무 덥지 않나 싶고요, 선선한 바람 불면 한 번 시도해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그레이스 2022-07-29 08: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왜 그렇게 비판했는지 알 것 같네요^^
저는 이 작가의 책 마천루와 5권짜리 아틀라스 갖고 있어요^^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리뷰 읽고 나니 읽고 싶네요.
언제 읽나.. ㅋ
파운틴 헤드는 영문으로 슬쩍 슬쩍 보고 있는데 골드문트님처럼 깊이 있게 읽으려면 아무래도 한글로 읽어야겠죠^^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Falstaff 2022-07-29 09:13   좋아요 2 | URL
저도 지금 <아틀라스>를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조금 고민입니다. 읽는다면 도서관에 갈까, 책을 살까... 이것도 궁리 중이고요.
아이고, 이걸 영문으로 읽으면... 생각만 해도 혀가 쭉 빠지네요.

coolcat329 2022-07-29 20: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장 어려운 일은 자신의 영혼을 지키는 것이다... 멋있는 말이네요.
작가가 러시아 출신이었군요. 미국으로 잘 건너갔네요. 레닌그라드에 있었다면 그냥 제거됐을 확률이 높을 사람이에요.
저는 읽을 엄두가 안 나지만 책의 내용과 작가라도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Falstaff 2022-07-30 18:41   좋아요 1 | URL
ㅎㅎㅎ 고맙습니다.
이 책은 참 괜찮았는데요, 이이의 대표작이라고 하는 <아틀라스>는 어째 읽기가 께름칙하네요. 나중에 도서관에서 빌려 봐야겠습니다.
잘난 것들은 참 냉정해요. 미국으로 건너가서 20여 년이 흐른 다음에 딱 한 번 여동생을 만난 것 외에 다시는 가족들하고 얼굴을 맞대지 않았다고 하네요. 책의 주인공하고 비슷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