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앙시앵 레짐과 프랑스혁명 ㅣ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사상선집
알렉시스 드 토크빌 지음, 이용재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3년 4월
평점 :
.
오랜만에 읽은 역사책. 역사학자이자 철학자이기도 한 알렉시 드 토크빌이 필생의 대표작 <미국의 민주주의>를 쓰고 유명세를 얻은 다음, 벌써 60여 년이 흘러 혁명을 직접 경험하고 증언해줄 사람이 이젠 없어진 프랑스 혁명에 관하여 한 번 더 불세출의 사서를 한 권 쓰게 되니 바로 <앙시앵 레짐과 프랑스 혁명>이다.
토크빌 자신이 프랑스의 유명한 문벌귀족 출신이다. 프랑스 귀족은 대강 두 종류로 따지는 게 보통이다. 앙리 4세 또는 그 이전부터 작위를 세습한 진짜 귀족하고, 주로 부르주아에게 귀족 증명서를 남발하여 그들의 돈과 세력을 이용해 자신의 야망을 채우기로 작정을 한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던져준 작위를 얻은 신흥귀족. 토크빌은 틀림없이 혁명 이전부터 이어져 온 진짜 문벌귀족의 일원이었던 것 같다. 이건 그리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니란 뜻도 아니다.
이 책의 9.5할은 혁명이 아니라 구체제, 즉 앙시앵 레짐에 관한 이야기다. (앞으론 ‘앙시앵 레짐’ 대신 ‘구체제’로 표기하고자 한다. 글자 수가 적어 타이프하기 더 쉬워서.)
루이 14세 때 정점을 찍고, 정점을 찍은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바로 그 시점부터 내리막길을 걷던 프랑스 전제정치, 절대 왕조가 그의 증손자 루이 15세에 와서는 거의 폭정 수준으로 변한다. 다수의 귀족과 새로이 대두한 부르주아에게 특권을 부여하는 대신 그들의 특권을 보상할 왕국의 수입원을 개발해야 하는 상황에서 절대왕조가 손쉽게 착상한 것이 인민들을 더욱 착취하는 것이었다. 부르봉 왕조 시대에는 기사를 포함한 귀족들이 자신들이 고용한 용병을 이끌고 스스로의 목숨과 건강을 담보로 국토와 인민들의 안녕을 보장하는 대신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인민들로부터 타이유세를 징수했다. 끔찍한 수준으로 타이유세(Taille稅 : 두산백과에선 이를, 봉건적 사회에서 농노에겐 세금을 걷는 사람 마음대로 하는 자의적 세금이었고, 비농노들에겐 정액定額 징수하는 세금이라 했다. 귀족을 포함한 국가가 자신들을 보호해주는 대가로 치루는 보호대상保護代償으로의 “공조”였다고 설명한다.)를 인상하는 등 하여간 걷어갈 만하면 무조건 약탈하고, 그 외에도 숱한 부역의 의무를 지우게 하기 때문에 인민들은 애초부터 도시로, 도시로,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도시인 파리로 집중할 수밖에 없었단다. 도대체 얼마나 인민들을 혹독하게 착취했느냐 하면, 타이유세를 열 배 올려 징수를 했단다. 여기에 사회 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는 당연히 국가 예산에서 충당하지만 도로, 항만 같은 건 언제나 예외 없이 귀족, 부르주아들만을 위해 사용하는 것임에도 무상으로 인민들의 노동력을 징발했던 건데, 지금이나 그때나 사람들이 가장 참을 수 없어하는 것이 불평등이다. 다 같이 배고프면 문제가 아니지만, 나만 배고프고 저들은 함포고복하고 있음에도 부자들의 이익을 위하여 내 힘을 보태 도로를 닦고 있다면 이건 진지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토크빌은 위에서 예를 든 한 가지 사례를 비롯해 전제국가 곳곳에 무르익고 있었던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꼭 집어서 이야기하는 대신 크게, 사회적, 경제적, 계급적, 문화적 변곡점의 대두에 관해 프랑스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틀을 소개한다.
우리가 흔히 ‘프랑스 혁명’이라고 하면 마라, 당통, 로베스피에르로 대표하는 공포정치와 루이 16세, 아름다운 마리 앙트와네트의 단두대에서 절단된 머리통을 떠올리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간혹 재주는 프랑스 인민이 부리고 돈은 코르시카 출신의 키 작은 촌놈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번 사건 정도로 연상을 하는데, 여태까지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결딴내버린 역사상 초유의 사건이었다는데 더욱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이제 인민의 힘이 역사의 물결 앞에 등장하여 그간 싹이 트기만 했던 자유, 평등, 박애의 씨앗은 120년 후 러시아 혁명으로 열매를 맺을 것이고, 부르봉 왕가 뿐만 아니라 로마 가톨릭의 권위까지 아예 뿌리째 뽑혀버리는 정치, 경제, 사상의 일대 변혁이었음은 말하면 무엇 하겠는가만, 우리가 만일 이렇게 생각해왔다면 다시 돌이켜 숙고해봄직한 것이 이 책에 나열, 강조되어 있다(로마 가톨릭을 포함한 기독교가 구체제에선 귀족계급에서 멸시 당했던 반면, 혁명 후엔 귀족들을 중심으로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맞는 아이러니도 구경할 수 있다).
구체제의 모든 것이 정말 그리 완벽하게 부패했고, 지리멸렬했으며, 아니면 적어도 더 이살 돌아볼 가치조차 없는 것일까, 하는 숙제. 구체제도 나름대로 자신들 속에 내재한 문제점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으며 그것들의 해결을 위해 자정하는 과정에 있었는데도, 그것보다 더욱 큰 압력으로 뿜어져 나온 인민의 힘이 폭력적인 혁명으로 나타났다는 것이 책의 요지다. 그러면서도 폭력혁명의 대두가 타당하다는 시각도 견지하는데, 어느 사건도 다 마찬가지겠지만 과거의 문제점 속에 가까운 미래에 벌어질 사건이 이미 발아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동서가 다 마찬가지다. 사마천의 <사기 세가>를 보면 진섭이라는 촌놈이 하나 등장하여 세가의 한 편을 장식하고 있다. 그리 엄정한 법가적 통일국가 진秦나라 변방의 한 병졸이 자신이 처벌받을 것이 두려워 한 번 시도해본 최초의 민란을 시작으로 위대한 진나라가 본격적으로 멸망의 길을 걸었던 것도 사실 진나라 안에 이미 멸망의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기 때문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거의 모든 일, 사건, 문제는 문제 속에서 이미 해결의 방법을 내포하고 있는 법이지만 사람들은 문제를 해석하려할 뿐, 해결하려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헤겔의) 말은 거의 언제나 정확하다.
여러 책을 읽어보면, 철학책(물론 요새 철학책 말고 예전 책들)은 어떻게 하면 쉬운 얘기를 어렵게 쓸까 고민한 결과물인 것처럼 보이는 반면, 역사책은 역사학자가 되려면 작문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것처럼 아주 읽기 편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앙시앵레짐과 프랑스혁명>은 읽기에 매끄럽기는 하지만 역사책을 평소 잘 읽지 않은 사람들에겐 조금 과하게 전문적이란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마치 (박근혜 정권 시절 국사 교과서 편찬 위원장인가 뭔가 하는 감투 때문에 이미지 망쳤지만) 훌륭한 토지사 연구가 김정배의 고려시대 또는 조선시대 토지사 관련 책이 어렵지 않은 문장들일지언정 읽기(읽어내기!) 쉽지 않은 것과 비슷하게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정도.
다시 말한다. 이 책은 프랑스 혁명의 진행과정이 아니라 구체제에서 혁명이 터질 수밖에 없었던 당시 환경, 구체제가 당연히 폐기될 악덕으로 이루어진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제 안에 숨어있던 뇌관들을 밝히는 작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