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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쥬코 ㅣ 프랑스 희곡선 1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 지음, 유효숙 옮김 / 연극과인간 / 2018년 12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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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가 베르나르-마리 콜테스에 관해서는 그의 희곡집 <검둥이와 개들의 싸움>에서 소개를 했으니 넘어가기로 하자. 아름다운 일이 별로 없었던 인물의 생애를 굳이 다시 거론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2차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극장을 달구던 장르는 단연 부조리극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외젠 이오네스코와 사무엘 베케트의 <대머리 여가수>, <고도를 기다리며>는 21세기 초반을 맹렬하게 질주하고 있는 요즘에도 무대에 올릴 때마다 매진을 기대하게 만들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한 20여 년 성가를 높이던 부조리극을 지양하는 움직임으로 1970년대에 등장한 것이 진짜 삶의 한 단면에 집중해 보여주려 했던 일상극이었다. 일상극에서는 시민들이 정말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날것’의 언어를 그대로 대사로 만드는 일도 흔했다고 하는데, 현대 프랑스 희곡을 번역으로 읽어보면 아무래도 원어민처럼 상세하게 느끼지 못할 듯하다. 하여간 나는 못 느꼈다.
이제 80년대 말을 기점으로 등장한 베르나르-마리 콜테스. 우리에게 콜테스, 라고 하면 당연히 민음사 세계문학 124번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를 떠올릴 것이다. 이 책엔 콜테스의 표제 작품과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 두 편의 대표작이 실려 있어서 콜테스의 반항기, 긴장과 폭력 등을 감상할 수 있는데, 이번에 읽은 극작가의 마지막 작품 <로베르토 쥬코>는 여기에 한 술 더 떴다. 그렇다고 콜테스를 반항과 폭력, 범죄 같은 하드코어 작품의 생산자로만 여기면 섭섭할 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길게 이어지는 대사가 번역문으로 읽어도 무척 시적이고 심지어 아름답기조차 하기 때문이다. <로베르토 쥬코>의 주인공 로베르토는 희대의 살인마. 길지만 그의 대사를 인용해보자.
“난 떠날 거야. 지금 바로 떠나야 해. 이 거지 같은 동네는 너무 더워. 난 눈 내리는 아프리카에 가고 싶어. 죽을 거니까 떠나야만 해. 어차피 그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그 누구도. 남자에게는 여자가 필요하고, 여자는 남자를 필요로 하지. 하지만 사랑이란 없어. 난 여자들하고는 동정심 때문에 같이 자지. 지금처럼 불행하지 않게 개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 쓰레기통을 뒤지는 거리의 개 말이야. 아무도 나한테 신경도 안 쓸 거야. 난 옴으로 뒤덮인 누런 개였으면 좋겠어. 그러면 사람들이 나에게 신경도 안 쓰면서 피해갈 테니. 난 영원히 쓰레기통을 뒤지고 싶어. 더 이상 단어들이란 없어. 더 이상 할 말도 없어. 말을 가르치는 걸 중단해 버려야 해. 학교를 없애 버리고 묘지를 늘려야 해. 어차피 일년이나 백 년이나 모두 마찬가지야. 빠르건 늦건 언젠가는 모두들 죽어야 하니까. 그런 게 새들을 노래하게 하지. 그런 게 새들을 지저귀게 해.” (p. 46)
로베르토 쥬코는 아버지를 살해한 죄로 교도소에 수감되자마자 탈옥에 성공해 곧바로 집으로 달려가 엄마를 목 졸라 죽인다. 이어 길거리에서 지나가던 형사의 등을 칼로 찔러 죽이고 권총을 탈취해, 벤츠 280SE를 타고 다니는 여성의 열네 살 먹은 아들의 머리통을 쏘아 살해한 후 거리에서 만난 경찰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해 다시 교도소에 들어간다. 현대식 교도소에서 또 한 번 탈옥하기 위해 지붕으로 올라간 로베르토 쥬코는 지붕에서 추락하고 만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희곡에는 나오지 않지만 죽었다고 봐야겠다.
이 이야기는 ‘수코’라고 하는 이탈리아 조현병 환자를 모델로 해 만들었다. 콜테스는 우연히 TV를 통해 수코를 만난다. 조현병 증세로 열네 살에 부모를 살해해 정신병원에서 오래 치료를 받다가 프랑스로 탈출했고, 프랑스의 여러 지방을 전전하며 절도, 성폭행, 연쇄 살인을 저지르다 이탈리아에서 체포된다. 이탈리아의 감옥에서는 탈옥에 실패하자 감방 안에서 자살해버렸다.
콜테스는 이 흉악범의 이야기를 왜 마지막 작품으로 구상했을까. 당시만 해도 걸렸다 하면 방법 없이 곧바로 죽을 병이었던 HIV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틀림없이 이 작품이 유작이 될 것을 알았다고 하는데, 많고 많은 이야기 가운데 하필이면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를, 앞에서 인용하기도 했지만, 시적이기도 하고 심지어 아름답기조차 한 언어로 만들었을까. 이게 궁금했다. 당연히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현대 범죄사에 이름을 올릴 ‘수코’라는 조현병 사이코패스에 관해서는 해설을 읽기 전까지 전혀 몰랐으니 더욱 이상할 수밖에. 처음부터 전제로 나오는 친부살해는 저 멀리 소포클레스부터 유구하게 내려오는 전통이니 그러려니 할 수 있었지만, 탈옥 후에 곧바로 벌어지는 친모살해부터, 독자는 이 대책 없는 범죄자의 진짜 모습이 궁금해지지 않았겠는가 말이지.
그런데 책의 첫 페이지에 <파리의 대 마법 파피루스의 한 부분인 미트라 예전>이라고 실려 있다.
“두 번째 기도를 한 후에 너는 태양의 표면이 펼쳐지는 것을 볼 것이며, 태양은 바람의 근원인 성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네가 동쪽으로 머리를 돌리면 태양의 성기는 동쪽으로 이동할 것이고, 네가 머리를 서쪽으로 돌리면 서쪽으로 따라올 것이다.”
이 두 문장을 의사이자 철학자인 칼 융이 BBC와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인용을 했다고 한다.
쥬코가 순찰을 돌고 있던 경찰 두 명에게 자신의 범죄 사실을 고지하고 체포되어 교도소로 왔고, 다시 탈출하기 위해 교도소 지붕 꼭대기에 올랐을 때, 무대에는 오직 지붕 위 쥬코만 등장하고 나머지 재소자들은 목소리로만 쥬코와 대화한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쥬코는 목소리들에게 말한다.
“태양을 봐. (완벽한 침묵이 교도소의 마당을 감싼다.) 아무것도 안 보인단 말이야?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움직이는 게 안 보인단 말이야?
태양에서 나오는 것을 쳐다봐. 태양의 성기야. 저기에서 바람이 나오는 거야.
머리를 움직여 봐. 너희들과 함께 그게 움직이는 걸 볼 수 있을 거야.
저건 바람의 근원이야.
동쪽으로 머리를 돌리면 그건 그리로 움직여 갈 거야. 머리를 서쪽으로 돌리면 그쪽으로 따라올 거야.”
이어서 폭풍이 일어나 비틀거리던 쥬코는 지붕에서 추락하고 막이 내려간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걸까? 역자 유효숙에 의하면 콜테스는 “집단적 무의식 이론의 근거가 된 ‘태양의 성기’ 일화를 <로베르토 쥬코>에 삽입하고 있다.”고 한다. 사람이 동쪽으로 머리를 돌리면 동쪽으로, 서쪽으로 돌리면 서쪽으로 향한다니까, 해부학적으로 보면 남성의 성기에 가깝고 실제로 유효숙도 ‘남근’이라 칭하는데, 이 ‘남근’이 흔들려서 바람이 생긴다는 건 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20세기에 사는 조현병 환자가 우연히 저 오래 전 고대 미트라 교의 예전에 등장하는 태양의 성기를 이야기 했다고 해서 그게 “집단적 무의식 이론”의 근거가 된다고 하니, 이거 정말 놀라운 비약 아닌가.
오히려 로베르토 쥬코가 살인을 하지 않는 보통의 시간에는 정상인들보다 더 부드럽고, 온화한 품성을 지녔음을 강조해서 역설적으로 현대의 누구나가 흉악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고, 현대인들은 그런 위험 속에서 호흡하며 살고 있다고 말한다면, 굳이 뜨겁기만 하고 강단 없이 흐물흐물거려 별 내용 없을 것이 뻔한 태양의 성기 이야기까지 꺼낼 필요가 없었을 텐데. 그래도 공연만 하면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을 듯한 작품일 듯.
물론 희곡에 별로 조예가 없는 아마추어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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