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유리 동물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8
테네시 윌리암스 지음, 김소임 옮김 / 민음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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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태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를 읽었다고 착각한 것은 책 표지 그림으로 쓴 같은 제목의 영화를 봤기 때문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밤으로의 긴 여로>를 읽은 후로 유진 오닐, 아서 밀러, 테네시 윌리엄스 등의 미국 극작가들의 작품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경제와 자본주의, 반공주의 체제 속에서 역설적으로 인간에게 제일 기초적인 단위인 가족 사이에서조차 의사소통 부재에 의한 단절과 소외, 물질에 대한 집착을 집요하리만큼 사실적으로 그린 미국의 극작가들. 그 가운데 인간의 허위의식과 그것에 대한 역겨움, 욕망으로부터의 소외, 단절, 탐욕 등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또 하나의 명품 극작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를 보탠다. 물론 같이 실린 <유리 동물원>도 명품의 관을 써야 마땅하다.
  같은 제목의 영화에 대한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그래서 정확한 비교가 가능하지 않겠지만, 한정된 공간을 사용하는 희곡을 영화화한 것보다는 극작이 더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물론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폴 뉴먼 등 빼어난 외모를 자랑하는 배우들을 감상하고자 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미시시피 강 연안의 델타 지역에 잭 스트로와 피터 오첼로라는 동성 애인 소유의 거대 농장에 일꾼으로 들어간 폴리트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관리자 자리에 올랐고, 세월이 흘러 잭 스트로가 죽는다. 애인이 죽자 외로움 때문에 그랬는지 거의 곡기를 끊은 피터 오첼로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두고 만다. 그래 2만8천 에이커에 달하는 거대 농장을 소유하게 된, 천생 농장의 경영주이자 자본가인 폴리트 씨. 세월은 그에게도 손톱을 숨기지 않아 어느덧 예순다섯 번째 생일을 맞이하게 되고, 결장에 생긴 심각한 암종이 폐와 간, 신장 등 온몸에 전이가 되어 죽음을 예약하게 된다.
  변호사 큰아들 구퍼와 그의 아내 메이, 풋볼 해설가인 둘째 아들 브릭과 매기는 아버지와 어머니 아이다에게 아버지의 예비 개복수술 결과, 암이 아니라 단순한 결장 경련증이라고 안심시킨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큰아들 내외는 아버지가 평소에 둘째를 편애해 그에게 농장을 물려주지는 않나 싶어 아버지의 마지막 생일 파티에 가假 유언장을 만들어 온다. 작은아들의 처 매기는 구퍼에겐 다섯 명의 자녀와 곧 여섯 번째 자식이 나올 예정인 반면에 자신들에겐 아직 아이들이 없는 것이 유산 상속에 걸림돌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굳이 주인공이라면 둘째 브릭과 매기, 그리고 아버지 폴리트 씨라고 할 수 있다. 브릭은 타인들로부터 동성애 관계라고 의심을 받을 정도로 돈독한 우정을 쌓은 풋볼 동료이자 친구였던 스키퍼가 죽은 이후 알코올 의존증에 빠져버리는데, 자신이 술을 마시는 이유를 아버지에게 허위에 대한 역겨움이라 설명한다. 당사자인 브릭의 말을 제외하고 스키퍼와의 관계가 우정을 넘어선 동성애 관계였다는, 또는 아니었다는 아무런 증거도 극에서는 찾을 수 없다. 만일 동성애 관계였다면, 브릭이 주장하는 허위, 허위 행위를 스스로 행하고 있기도 한 것이리라.
  브릭의 처 매기가 바로 ‘뜨거운 양철 지붕 위에 오른 고양이’. 남부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 매기는 가난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너무도 잘 아는 삶을 살다가 부잣집 아들인 브릭과의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에 성공한다. 브릭의 입장에서는 매기를 사랑해서 결혼했다기보다 그녀가 스키퍼와의 관계에 절묘하게 파고들어 어떻게 하다 보니 연을 맺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스키퍼의 죽음에 매기가 관련된 걸 안 이후 브릭은 여전히 빼어난 미모로 타인의 시선과 욕망의 한 가운데에서 남자들의 욕망이 가득한 시선을 즐기는 매기와의 접촉을 거부하고 산다.
  결혼 후에야 부유한 환경의 여유를 즐기기 시작한 매기 입장에서는 알코올 의존증에 점점 깊게 빠져가는 남편과의 거리감에도 불구하고 결코 부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리하여 햇볕에 달궈진 양철 지붕 위에 오른 고양이처럼 가문의 상속을 받기 위해 팔짝팔짝 뛸 수밖에 없는 처지. 상속 논의가 결국 자손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에 이르자 건조한 결혼생활을 이어온 매기는 결정적인 마지막 뛰어오름을 감행하는데, 어떤 것인지는 매우 훌륭한 작품의 클라이맥스이니 직접 확인하시기 권하는 의미에서 알려드리지 않겠다.
  나는 예순다섯 번째 생일을 맞은 폴리트 씨가 상당히 인상 깊었다. 결장암인 것을 알고 난 뒤 집안 돌아가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음에도, 내가 산다면 얼마나 더 산다고 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그저 지나가는 풍경처럼 바라만 보다가, 생일을 맞아 이젠 단순하게 결장 경련증에 불과하다는 판정을 받아 앞으로 적어도 십오 년이나 이십 년은 더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갑자기 얻은 천부적인 사업가이자 농장주. 폴리트 씨에게 주어진 허위의 새 생명은 그를 원래보다 더 공격적이고, 여태까지 참아온 것을 만회하기 위해 매사를 모진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강했던 사람이 약자의 위치에 떨어졌을 때, 자신도 모르게 점점 공격적으로 바뀌는 것이 인지상정. 그도 역시 새로운 삶을 얻자마자 아들 브릭에게 젊은 여성을 향한 욕정과, 이젠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마음, 며느리들의 이전투구 등 세상 잡사에 대한 속물적 욕망을 드러낸다. 말기 암이 수반하는 극심한 고통까지 조금도 의심하지 않은 채로. 자기의 2만8천 에이커에 달하는 거대 농장과 몇 천만 달러의 현금재산을 사랑하지만 알코올 의존증에 빠진 것 같고, 동성애 성향인지도 모르는 둘째에게 상속해주느니 자신이 직접 경영하는 쪽을 선택한다.
  애초에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지 않은 부르주아 가정 속에서의 불협화음. 이 혼돈의 와중에서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매기는 매사에 의욕을 잃어버린 알코올 의존증 환자이자 남편인 브릭조차 어이없어 그냥 웃어버리게 만드는 마지막 발톱을 날리며 드라마를 완전한 비극 속에서 건져낸다.


  <유리 동물원> 역시 수작. 이 두 편을 함께 담아 책은 만든 민음사에게, 실로 오랜만에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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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1-12 08: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가족간 막장 대화 한 장면

작은 아이가 오랜만에 집에 왔습니다. 때마침 양철지붕을 다 읽은 참이었습니다.
제가 이 책 표지를 보여주면서, 얌마, 너 말야,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눈에 욕망이 가득해서 얼굴을 어깨에 기댄채 바라보고 있는 거야. 해야겠냐, 안 해야겠냐.
아이 말하기를, 해야 합니다. 안 하면 천하의 나쁜 새낍니다.
근데, 저 폴 뉴먼이란 작자는, 안 해.
와, 때려 죽일 놈 같으니라고. 말도 안 됩니다.

이때 냉장고 문을 열던 아내가 책 표지를 슬쩍 쳐다보고 한 마디 합니다.
야, 나 같아도 했겠다. 그새끼 정말 나쁜 새끼네.

제가 이렇게 삽니다.

잠자냥 2021-01-12 09: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별 다섯 개 주시니 왠지 제가 다 기분이 좋군요. ㅎㅎ 여기 실린 두 작품 모두 제가 무척 좋아하는 작품이라서요. 저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보다 여기 실린 작품들이 더 좋더라고요. <유리 동물원> 때문에 닥치고 테네시 윌리엄스 팬이 되었다는. ㅎㅎ

Falstaff 2021-01-12 10:42   좋아요 2 | URL
저는, 정情도 첫정이라고 미국 극작 가운데 <밤으로의 긴 여로>가 젤 좋고요, 양철지붕이 그 다음 순서 정도 되겠군요. 아휴, 괜히 버터 냄새 운운하면서 부정하고 싶은데 도무지 미국의 극작가들, 대단하다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사실 윌리엄스는 욕망이라는... 때문에 그리 기대하지 않고 읽었습지요. 그래 더 화들짝 놀랐는지도 모릅니다. ^^

유부만두 2021-01-12 2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NT live 영상으로 보고 희곡을 읽어서인지 그 작품이 맘에 들었어요. 퇴폐적이고 출구 없는 지옥.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도 찾아서 읽어봐야 겠습니다.
그런데 전 그 지붕 위에 고양이 대신 바이올린으로 제목을 헷갈려 하고 있고요.

Falstaff 2021-01-12 20:17   좋아요 0 | URL
ㅎㅎ 유쾌하신 유부만두님.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바이올린. ㅋㅋㅋㅋ
뭐 독자가 다 같은 감상이면 재미없잖아요. 전 욕망전차가 좀 폭력적이라서 그냥 에그머니, 했던 겁니다. 영화에서도 말론 브란도가 걍, 아이고, 그 아까운 비비언 리를 말입죠.
근데, 양철 고양이, 꼭 읽어보셔요. 물론 기대가 크면 안 됩니다. ㅎㅎㅎㅎ
 
스웨덴 기사 열린책들 세계문학 264
레오 페루츠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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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자 강명순에 의하면 함부르크 대학에서 현대 독일문학을 전공했던 은퇴교수 한스-하랄트 뮐러는, 레오 페루츠를 브로흐, 무질, 에른스트 바이스 같은 거장들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뮐러 교수는 자신의 대표 저작이 바로 <페루츠 전기>라는 점이 좀 거슬린다. 에른스트 바이스는 (읽어본 책이 없으니)제쳐두고, 브로흐와 무질에 대고 비벼? 자신이 전기를 쓴 인물이니 조금 과장했거나, 뮐러 교수의 독특한 기호가 페루츠하고 딱 맞아 떨어진 경우라고 보이는데, 뭐 아니면 말고.
  또 다니엘 켈만은 페루츠를 ‘마술적 리얼리즘의 대가’라고 했고, 오스트리아 작가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는 ‘환상소설의 거장’이라 했다 하지만, 진짜로 <스웨덴 기사>를 읽어보면 이 책을 근거로 마술적 리얼리즘이나 환상소설을 운운할 수는 있겠으나, 대가나 거장이란 칭호까지는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라틴 아메리카의 붐 소설을 연상하게 하는 ‘마술적 리얼리즘’ 또는 ‘환상소설’이란 말 대신에 그냥 우리가 흔히 쓰는 ‘액자소설’이라고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서문과 결론 형식의 마지막 장 사이에 세 개의 장part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소설은, 서문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본문 세 장이 독립된 단위로 이를 풀어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소설을 굳이 ‘마술적’이라거나 ‘환상’이란 말을 쓰는 건, 서문에 등장하는 한 여인, 결혼 전의 성姓이 토르네펠트였던 마리아 크리스티네가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 될 여섯 살 때의, 이미 죽은 아버지와의 만남, 그리고 아버지가 9년 전과 당시에 만나게 될 어찌 보면 악마 또는 악마가 현현한 주교의 시종 정도 되는 물레방아 주인의 영혼 장면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괜히 거창하게 말하지 말자. 우리가 쉽게 빠지는 함정이, 다니엘 켈만과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가 어떤 환경에서 그렇게 말하는지 밝히지 않았다는 걸 간과하는 일이다. 신문 문화면 한 페이지 전체를 장식했던 서평일 수도 있지만 책 뒤표지에 작은 글씨로 쓰인 한 마디의 추천사일 수도 있으니.
  이 책? 재미있다. 마음먹으면 휴일 하루 동안 책 다 읽고 독후감도 쓸 수 있다. 3백 쪽 분량의 장편이라 비교적 가볍게 읽을 수도 있고, 책의 스토리가 독자를 확 끌어당기는 매력도 있다. 물론 명작이나 수작이란 수식이 달리기는 힘들다. 그래 위에서 브로흐와 무질에게 비빌 정도는 아니라는 말을 했던 것. 하지만 나더러 무질을 읽을래, 페루츠를 읽을래? 묻는다면, 어차피 끝까지 읽지 못할(지도 모르는) 무질이 아니라, 하루 이틀의 즐거움을 확실하게 줄 수 있는 페루츠를 선택할 확률이 높다.
  스토리는 딱 서문만 소개한다. 소설 자체가 서문에 나오는 일종의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마리아 크리스티네는 첫 남편과 사별하고 덴마크 왕국 추밀원 의원이자 훌륭한 외교관인 라인홀트 미하엘 폰 블로메와 재혼을 하는데, 18세기 중엽, 50세가 되자 옛 기억들을 모은 책 <내가 살아오면서 만난 다양한 인물들의 풍경화>를 집필했고, 이 자료는 사망 후 수십 년이 지난 19세기 초에 원고를 발견한 손자가 이를 출간한다. 책에는 18세기의 다양한 폭동사건, 이를테면 잘츠부르크 대교구에서 발생한 개신교 소작농 추방사건, 콘스탄티노플 필경사들이 일으킨 폭동 같은 것들 들어 있고, 이들 사이에 가장 인상 깊고 강력한 이야기가 있었으니, “스웨덴 기사”라는 제목을 붙인 자신이 어렸을 때 돌아간 아버지에 관한 것이었다.
  마리아 크리스티네 폰 블로메는 슐레지엔의 대단한 집안이 소유한 거대 장원에서 태어난 소위 은수저였는데, 매우 매서운 눈빛을 가졌지만 딸을 바라볼 때는 파란 하늘이 열리는 것 같았던 아버지가, 마리아가 여섯 살 때 스웨덴 왕 칼 12세의 악명 높은 군대에 들어가기 위해 러시아로 떠난다.
  칼 12세는 강력한 스웨덴을 건설하고 더 큰 왕국의 기틀을 닦고자 러시아와의 전쟁에 돌입했으나, 아뿔싸, 당시 러시아엔 불세출의 영웅이자 2미터가 넘는 신장, 건장한 남성을 품에 안고 팔로 조여 갈비뼈를 부러뜨려 죽이는 완력의 소유자, 게다가 젊은 시절에 네덜란드를 비롯한 서유럽 방면에 직접 가서 조선술 등을 배워온 실천가인 공포의 표트르 대제가 집권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전 초기의 스웨덴 군은 파죽지세로 러시아 영토를 침공해 들어가고 있었고, 마리아의 아버지 토르네펠트 경은 전투에서 용맹하고 탁월한 기량을 발휘해 예타 강 서부 기병대 장교로 임관하고 이어서 아주 빠른 속도로 스몰란드 용기병 연대의 사령관으로 진급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골스크바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는 원동력이 되어 숱한 병사들과 장교들이 보는 앞에서 왕이 토르네펠트 사령관을 직접 포옹하고 양쪽 볼에 키스까지 해주는 영광을 누린다.
  그러나 그 해 7월, 스웨덴 군은 폴타바에서 전투 초기에 용기병을 지휘하던 토르네펠트 사령관이 총에 맞아 말에서 떨어져 죽고, 스웨덴 군도 표트르 대제가 이끄는 러시아 군에 쌍코피가 터져 심지어 칼 12세는 어머나 뜨거워라, 맹렬하게 도주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토르네펠트 경이 장원에서 떠나기 전날, 외동딸 마리아 크리스티네는 아버지와 함께 전장으로 떠날 하인에게 들은 주술, 흙과 소금으로 속을 채운 오자미를 아버지의 군복 안감 사이에 꿰맨다. 이것이 두 사람이 영원히 헤어지지 않기 위한 이미 검증된 방법이라면서. 몇 주 후, 밤에 누군가 마리아의 침실 창문을 누군가 두드렸고, 러시아로 떠난 아버지가 한 시간에 만팔천 킬로미터를 날 수 있는 말을 타고 와서 잠에서 깬 마리아의 얼굴을 감싸고 십오 분 가량 머물다 가버린다. 이후 가끔 찾아오긴 하지만 십오 분을 넘지 않는 시간만 이야기하고 얼굴을 감싸주고는 떠난다.
  그러다 파발마가 러시아 전장에서 도착해 아버지가 삼 주 전에 이미 죽어 매장을 했다는 기별을 가져오고, 이후 정말로 아버지는 찾아오지 않는데, 마리아는 도무지 아버지가 죽었다는 말이 믿기지 않는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아버지의 유령? 영혼? 마리아의 꿈? 몽유? 그러나 생생하게 와 닿는 피부와 목소리는 틀림없이 마리아의 진짜 아버지였던 것을.
  재미있는 작품. 읽어보셔도 후회하지는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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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1-11 09: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보다 먼저 번역된 <9시에서 9시 사이> 소개 문구 중에는 카프카와 비교하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ㅎㅎㅎ 너무 엄청난 거장들하고 자꾸 이름을 나란히 올리는 감이 없잖아 있는 듯하네요. 아무튼 또 다른 작품이 번역되어 나오면 계속 읽을 것 같기는 합니다. 일단 재미는 있어요.

Falstaff 2021-01-11 09:40   좋아요 2 | URL
넵? 카프카요? ㅎㅎㅎ 재미있습니다.
<9시 - 9시>도 함 봐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까지 썼다가 책 검색해보니, 이거 영, 재고해봐야겠습니다. ㅋㅋㅋㅋ

유부만두 2021-01-11 09: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무섭지만 ... 내 아빠도 아닌데 머... 읽어보겠습니다.

Falstaff 2021-01-11 10:07   좋아요 1 | URL
아하, 제가 제목을 무섭게 달아놨군요. ㅋㅋㅋ
재미있으니 금방 읽으실 겁니다.

붕붕툐툐 2021-01-12 00:32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내 아빠도 아니래..ㅋㅋㅋㅋㅋ
 
우리 중 하나
윌라 캐더 지음, 정선우 옮김 / 아토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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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라 캐더. 일찍이 <나의 안토니아>와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로 내게 깊은 인상을 준 미국의 지방주의 작가. 지방주의? 쉬운 얘기로 (혹시 오해하실지 몰라 말씀드리는 건데, 다음 단어는 친근한 표현, 좋은 뜻으로 쓰는 말임) 미국 촌년이란 뜻이다. 버지니아 주 출생이지만 네브래스카 주립대학을 다니며 한참 감수성 짙은 시기의 십 년을 네브래스카의 광대한 벌판과 엄혹한 자연환경과 끝도 없는 농장을 보며 살았다. 이때 척박한 계절 속에서 생존해나가는 시골의 선량하고 건강하고 강인한 생활력, 여유 있는 자가 없는 자에게 삶을 계속해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좋은 길로 인도하는 선한 이야기가 위에서 말한 두 작품. 두 전작에 홀딱 빠져 이이에게 퓰리처상을 받게 해준, 그리하여 대표작 가운데 하나라고 말할 수 있는 <우리 중 하나 One of Ours>가 새로이 번역, 출간되었다는 걸 알자마자 어찌 서둘러 사 읽어보지 않을 수 있었을까.
  1922년 작품. 시대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의, 그래봤자 당시의 세계란 아메리카와 유럽을 말하는 것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세계의 농장이자 공장으로 온갖 부를 쌓았을 때. 폐허가 된 유럽을 복구하기 위하여 여전히 북아메리카로부터 막대한 농업과 공업 생산품을 수입하던 시기의 미국은 새로운 해가지지 않는 나라의 왕좌에 등극한다. 이때 윌라 캐더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네브래스카 출신의 장교 한 명을 그리고 있다. 책의 육십 퍼센트는 주인공 클로드 흴러가 징집을 하기도 전에 스스로 입대하여 참전하기까지의 심리적 변화를 그렸고, 사십 퍼센트는 유럽까지의 항해와 프랑스에서의 대 독일 전투 장면에 할애했다.
  네브래스카의 시골도시 프랭크포트에서도 (땅 좁은 우리 기준으로) 상당히 (그러나 넓은 미국 기준으로는 조금) 떨어진 흴러 농장에서, 심성은 좋으나 진심도 농담처럼 말하는 습관 때문에 세 아들로 하여금 도무지 진심을 알아채지 못하게 만드는 아버지 넷 흴러와, 기독교적 편향의 문제를 빼고는 현모양처임을 의심하지 못할 에반젤린 흴. 세상에, ‘흴’이란 가문도 있다. ‘휠’이 아니라 ‘흴’이다. 도대체 영어로 어떤 스펠링을 쓸까?
  하여튼 흴 부부는 아들만 셋 두었는데, 첫째 베일리스는 소심한 편이라고는 하기 힘들지만 편협하고 신중하고, 좀 박완서 식 선병질적이라 농장을 이어가기는 힘들겠다고 판단해서 프랭크포트 시내에 농기계 도매상을 열어주었고, 맏이답게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느라고 탄탄대로를 걷고 있어 도시(라봐야 그냥 동네 수준)에서 딸 둔 부모의 눈에 아주 맞춤한 신랑 후보로 이름이 났다. 게다가 담배도 안 피워, 술 마시는 건 경멸해, 여자관계도 깨끗하니 이게 웬 떡이냐 말이지. 물론 자빠뜨릴 수만 있으면.  둘째를 건너뛰고 막내 랄프는 기계를 좋아해서 어머니를 위해 식기건조기, 우유 착유기 및 선별기 같은 것을 자꾸 들여오는 바람에 오히려 타박만 받는 좀 허영기 있는 스타일. 흴러 씨는 막내의 독립을 위해 아주 멀리 떨어진 메인 주에 큰 농장을 구입해 랄프가 부모와 떨어진 곳에서 혼자 경영할 수 있게 돕기로 결정을 한다. 그러나 메인에서 농장에 성공을 했는지, 깨끗하게 말아먹고 말았는지는 책이 끝날 때까지 알 수 없다. 덜 중요한 조연의 숙명이다. 궁금해 하지 마시라.
  드디어 우리의 주인공 둘째아들 클로드. 좀 못 생겼지만 건장한 체격과 강단 있는 체력을 겸비한 클로드는 학교를 다니면서 틈틈이 농사일도 거들어온 착한 아들. 그런데 공부를 하고 싶어서 작가가 졸업한 네브래스카 주립대학에 보내달라고 부모에게 요구를 했으나, 원래 미국의 오래된 부자들이 항용 그러하듯 돈 한 푼에 벌벌 떠는 흴러 부부는 학비가 저렴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주립대학에 가면 축구하느라 공부를 소홀히 할 거 같기도 해서 클로드를 신학교에 보내버리고 만다. 그런데 두 대학이 한 도시에 있어서, 우연히 주립대학의 역사학과 학과장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생긴 클로드는 주립대학의 도서관에 거의 살다시피 하면서 역사학에 대단한 관심이 생기고, 나아가 빼어난 논문을 써 학과장에게 제출하기도 한다.
  이 정도면 부모가 되어, 집에 돈도 많은데 말이지, 아이비리그는 아니더라도 주립대학 정도는 보내야 하는 거 아냐? 아버지 넷 흴러는 흠흠 하면서 그만이고, 어머니 에반젤린은 도무지 촛농 떨어뜨린 인삼주 병뚜껑처럼 요지부동이다. 그래 종교에 대해 회의하고 있던 클로드, 목사가 되느니 차라리 농사나 짓겠다, 하고 학교마저 때려치우고 농장에 전념하게 되는데, 농장일 하면 늘 조금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법, 한번은 팽팽하게 묶인 철사에 얼굴을 갈아버리는 일이 생겨 두문불출 몇 주를 앓아야 하는 일을 겪는다. (당시엔 항생제가 없었다.)
  이때 혜성같이 나타나는 누구? 맞습니다. 여성. 이니드. 어머니 에반젤린보다 더 찐 기독교 원리주의자. 장래 희망이 친언니처럼 중국에 가서 선교활동을 하는 일이다. 이니드가 매일, 하루도 빼지 않고, 어떤 땐 하루 두세 번씩 클로드의 방을 방문하여 간호해주고, 격려의 말을 해주고, 손도 잡아주니 한참 울뚝불뚝 리비도를 주체하지 못할 나이의 클로드가 오해하지 않겠어? 그리하여 결혼해버린다. 기독교 원리주의자 비슷한 이니드는 부부간의 성접촉도 불결하게 생각하는 여성. 2년 만에 중국에 있는 언니가 아프다니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남편 팽개치고 중국으로 떠나버린다.
  그리하여 삶에 대하여, 운명에 대하여, 자꾸 꼬여버리는 자신의 인생에 관해 고민하던 클로드는 한참 절정을 향해 치닫던 1차 세계대전의 파도에 자진해서 휩쓸려버린다.


  내용은 이정도만. 전쟁 나가서 어떻게 됐느냐 까지 말해버리면 곤란하다.
  문제는, 책의 앞표지, 뒤표지에서 이름을 발견할 수 없는 역자 정선우. 앞날개에 쓰인 역자 소개 전문을 옮겨본다.


  “대학에서 관광 영어를 전공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어 번역을 시작했다.”

  좋다. 경력이 어찌 됐든 번역만 잘 하면 장땡이지 뭐. 좋아하는 일이 번역인지, 아니면 좋아하는 일은 따로 있고 그걸 행하기 위해 돈을 벌려고 번역을 시작했는지는 역자소개만 읽어보고 접수가 되지 않는다. 검색을 해보면 <우리 중 하나>가 이이의 첫 번역이다. 근데 왜 하필, 적어도 나한테 무지 중요한 작가의 대표작을 첫 번역의 대상으로 했는지 아쉽다.
  물론 이이가 영어 하나는 당연히 나보다 월등하게 잘 하겠지. 근데 문제는 한국말 수준이다. 다른 거 다 빼고, 정선우가 사용하는 우리말 단어의 총량이 번역을 생업으로 하기엔 너무 적고, 그나마 적절한 장소에 적절한 단어를 사용하는데 연습이 덜 되어 있는 “것 같다.” 잘 연습이 되었지만 내가 알아내지 못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러니 고소sue하지 마시라. 그리고 인칭대명사와 지시대명사를 찬란하게 남발해 오히려 독자가 이해도 못하고 학을 질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영어를 우리말로 그냥 옮기기만 할 때 이런 '불통의 골짜기 현상'이 벌어지지 않을까?
  아래 예시는 책을 통해 대표적인 것들이 아니라 읽다가 하도 진도가 나가지 않아서, 문장이 이상하면 내용과 관계없이 진짜 진도 안 나가고 짜증만 나는 희귀 증후군 환자임을 먼저 고백하고, 하도 지루해 읽다가 하품 나올 쯤 해서 몇 문장 골라본 거다.


  “그의 어머니에게 수감된 영혼은 그녀의 육체적 자아보다 사람들 사이에 더 많이 존재했다.” (202쪽)


  “베일리스는 평화주의자였는데, 미국이 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유럽이 낭비하는 것들을 끌어모으면, 전 세계의 실질적인 수도가 될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계속 말하고 다녔다.”  (227 쪽)


  “그녀는 그의 가치없는 손을 잡고 키스를 했다.“  (228 쪽)
 
  202쪽: 비문.
  227쪽: 주장하는 바는 알겠지만 매우 특색 있는 문장.
  228쪽: 가치 없는 손이 도대체 뭘꼬? 이해 불가.


  이 책을 통해 내가 새롭게 배운 것이 있으니, 번역도 습작이 필요하다는 것. 아놔, 참 언짢다. 하필이면 그 많은 작품 가운데 윌라 캐더의 것을 말씀이야, 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



  남자들 육군훈련소에 입소하면 군의관이 나와서 최종적으로 신체검사를 하는데, 243쪽에서 역자는 이런 의사를 이렇게 부른다. “검시관.” 웃기지?

 

 

 


* 어제 출판사 '한ㅇ문ㅇ사'가 자기네가 낸 책의 번역 흉본 것을 정중하게 항의했다. 이 포스트 같이 번역, 창작물 비난하면, 메이저 출판사는 오히려 안 그러는데, 작거나, 크더라도 덜 알려진 출판사에선 (포스트 수에 비하면)자주 항의가 오고 법정대응 어쩌구 하기도 한다. 거 참 찝찝하네. 이 출판사도 그럴까? 참 출판사도 힘들긴 하겠다. 명색이 문화사업인 출판업을 하면서 "야 썅, 이거 삭제 안 해?"라고 하지 못하고 많이 배운 척하면서 온갖 부처님 말씀을 해야 하니 말이지. 그런 게 그 사람들의 업이야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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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8 1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08 1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08 1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08 1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08 1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10 1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1-01-08 1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 이 책 샀는데... (시무룩)

Falstaff 2021-01-08 10:55   좋아요 0 | URL
뭐 사셨으면 어쩔 수 없는데.... 이런 경우가 가끔 있는데요, 괜히 미안해지더라고요. ^^;;

cyrus 2021-01-08 11: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검시관은 시체를 보는 의사인데.... ^^;; 저는 서평에 이런 지적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Falstaff 2021-01-08 11:06   좋아요 2 | URL
옙. 사이러스 님도 이런 것에 예민하시지요. 다른 분들도 사실 마찬가지일 거라고 보는데요, 굳이 언짢은 이야기 하기 싫어들 하시는 거 같더라고요.
전 이런 독후감을 자주 써서 출판사, 역자, 심지어 작가들로부터 항의를 적어도 연 1회 이상 받는데요, 올해는 1월부터 돌 날아오기 시작했습니다. ㅋㅋㅋㅋ

cyrus 2021-01-08 11:10   좋아요 1 | URL
연말부터 지금까지 제가 출판사 관계자나 역자가 불편하게 느낄 수 있는 글 몇 편을 남긴 상황이라, 언제 돌이 날아올지 몰라요.. ㅎㅎㅎ 그래서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

Falstaff 2021-01-08 11:31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 전 심지어 알라딘에 의하여 강제 비밀글 처리도 당해본 적 있습니다.
이 포스트, 제일 아래에서 두번째 줄에 나오는 단어 ˝썅˝이라 썼다고요. 물론 다른 건전하지 못한 단어도 조금 더 있었습니다만. 유명 출판사가 직접 제게 항의하긴 쪽팔리니까 알라딘에 대고 뭐라고 했던 거 같았어요.
다 인생입지요. 고소당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지요 뭐. 그렇게 알고 사는 게 편하잖아요. 일개 자유인 주제에 말입니다. ㅋㅋㅋㅋ

blanca 2021-01-08 15: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저 지금 윌라 캐더 <나의 안토니아> 시작했거든요. 너무 좋아서 아껴가며 읽는 중인데 별점 보고 어, 작품에 기복이 있나? 했어요. 저도 번역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어휘량 및 절대 공부량 부족으로 시작도 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했거든요. 번역이라는 게 대단히 어렵고 어떤 의미에서는 문학 작품을 다른 나라의 언어로 재창조하는 수준까지 나아가야 하는데 요새는 아쉬운 번역들이 참 많더라고요.

Falstaff 2021-01-08 15:29   좋아요 2 | URL
일본의 초창기 영문학자이기도 한 나쓰메 소세키의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지식인 일인칭 화자들은 자주 영문 한 문장을 어떻게 자연스러운 일본어로 바꾸는가를 연구하고 토론하잖아요. 그것도 몇 날 며칠을 두고 말입니다.
그런 전통이 내려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번역하는 속도가 한국보다 더 늦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이윤기에 의하여 이탈리아-영어-한국어로 중역 코스를 밟았는데도요. 더 허기가 지는 건, 이윤기가 번역한 다른 에코의 책에 자신이 장미의 이름을 일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번역했다고 자랑을 했던 겁니다. 그러나 결국 이윤기는 일본의 에코 협회의 초청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맙니다.
결론은, 한국에서는 자질이 되지 않아도 일단 번역 같은 건 하고 본다는 겁니다.

2021-01-16 0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16 0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aoddlrj 2021-07-29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갖고와서 옮긴이 소개보고 환불하려 가혀던 참에 검색해봤네요.. 본인이 하는 출판사가 아니련지…

aoddlrj 2021-07-29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고로 책 환불하는건 처음이네요

Falstaff 2021-07-29 17:13   좋아요 0 | URL
이 책 환불하시는 건 독자의 권리 행사라고 봅니다.
 
직조공 서문문고 314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 지음, 손은주 옮김 / 서문당 / 1999년 7월
평점 :
품절



 

  게르하르트 하웁트만, 독일인 극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인물이지만 이이의 재능을 알게 되면 놀랄 수밖에 없을 것. 1862년 독일 슐레지엔 지방의 작은 마을 오버잘츠부른에서 작은 호텔 사장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할아버지가 직조공으로 1844년 6월 4일에 발생했던 ‘슐레지엔의 직조공 폭동’에 직접 참여했었다고 한다. 어려서 이 일을 경험/목격한 아버지로부터 직조공 폭동에 관하여 자주, 많이 들어와서, 게르하르트는 이 유명한 극작 <직조공>을 아버지 로베르트 하웁트만에게 헌정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하웁트만이 극작가를 꿈꾸었던 건 아니다. 예나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이이는 취리히 대학에서는 또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지만 어려서부터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예술교육원에서 조각을 공부하고 좀 더 체계적인 탐구를 위해 대리석의 나라 이탈리아로 유학까지 다녀왔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성공을 이룬 분야는 극작이니, 이 양반이 재주가 없는 게 농사짓는 일 말고 도대체 뭐가 있었는지 모를 지경이다.
  나도 찬란한 이름만 알았지 이이의 작품을 읽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도무지 어떤 책이 나와 있는지 알아야지. 그러다가 우연히 <직조공>을 발견해 두 번 생각하고 말고 없이 선뜻 사 읽었다.
  책을 읽기 전에 슐레지엔 직조공 폭동에 대하여 알아두면 희곡을 이해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리라.
  독일의 슐레지엔 지방은 아마와 목면 공업의 중심지. 때는 과학의 세기라고 하는 19세기로 접어들어 기계식 직조기가 도입되어 직조공들의 인력이 남아돌기 시작한다. 인력의 과잉공급은 시장의 법칙에 따라 임금의 급격한 저하를 가져왔고 그게 도를 넘어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참담한 빈곤에 허덕’이게 된다. 사흘 굶어 담 넘지 않는 사람 없다고 슐레지엔의 페터스발다우 직공과 가족들 5천여 명이 도끼와 몽둥이 등의 원시적인 무기를 가지고 가장 악랄한 공장주 츠반치거에게 몰려가 임금인상을 요구하다가 공장과 집, 가구들을 다 때려 부수면서 사건이 커진다. 물론 거의 모든 자생적 민란이나 폭동은 정규군에 의해 작살 나는 것이 공식이고, 인근 랑엔비라우까지 진출했던 슐레지엔의 직조공들도 공식에 어긋남이 없이 프로이센군에게 괴멸됨으로서 종말을 고하게 된다. 당시 파리에 있던 마르크스는 폭동은 프로이센 정부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부르주아를 상대했던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
  하웁트만의 <직조공>은 이 ‘자발적 폭동’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있는데 다만 폭동을 유발한 악독한 공장주 츠반치거 역을 ‘드라이시거’라는 가상의 인물로 바꾸었다. 이런 ‘자발적’ 노동쟁의에 관한 논의는 황석영의 <객지>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방면에서 매우 활발하게 등장했기 때문에 별로 새롭게 읽히지는 않았다. <직조공>도 다른 콘텐츠에서와 마찬가지로 자본가(와 그의 하수인)에 의한 임금/노동력 착취와 불평불만 (1막), 직조공 가족의 비참한 생활과 반항의 싹 (2막), 불만 세력의 규합과 상대방에 대한 적대적 분노 (3막), 쟁의 또는 폭동의 시작과 확장 (4막), 결말 (5막)이라는 전형적인 구성으로 되어 있다.
  그리하여 4막을 읽을 때까지 우리나라의 독자들은 1980년대 후반에 너무도 많이 읽어 익숙한 운동권 문학을 몇십 년 만에 다시 읽는 것 같은 식상함이 없지 않았는데, 5막에 가서는, 이 희곡이 아직도 생명력을 갖고 하웁트만을 대표하는 작품이라 자리매김하는 이유를 발견한다. 얼핏 읽으면 19세기 말 유럽 전역을 배회하던 사회주의 또는 무정부주의의 기운이 작품 속에 가득한 것 같고, 그래서 프로이센 정부도 작품 발표 후 1년 동안 공연금지 처분을 내렸겠지만, 결국에 독자들은 뒤통수를 한 방 얻어맞고 만다. 결론은 기독교, 인도주의, 반反혁명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발적 폭동으로 자본가와 공장을 때려 부수기는 했지만 이미 시작부터 괴멸을 예약해둔 상태라는 건 앞에서도 이야기했다. 그러면 폭동의 괴멸을 통해, 일반 독자들은, 이런 형태의 “바위를 향해 날아드는 달걀”이 언젠가는 바위를 쪼갤 것이란 확신, 신념을 주장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으나, 아니었다. 기독교와 인도주의, 반혁명이라면 또 자본가나 권력과의 화해의 기미를 기대할 수 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그냥 말 그대로 산산이 부서지고 말 뿐이다. 실제가 그러하듯이. 말 그대로 우울한 미래비전의 세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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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1-06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 서문문고는 폴스타프 님께 상줘야 할 거 같아요. ㅎㅎㅎㅎ

Falstaff 2021-01-06 15: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근데 제본이 별로예요. 뒤표지에 직조공 폭동이 1984년이라고 쓰여 있네요.
이런 시리즈에 가끔 재미난 것들이 섞여 있더라고요. 주의해서 보고 있습니다. ㅋㅋㅋㅋ

단발머리 2021-01-06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안 읽고 리뷰만 읽어도 배부릅니다. 중요한 한 가지를 배웠습니다. 직조공 폭동이요.
더 알고 싶지만 책이 어려울까봐 저어됩니다 ^^

Falstaff 2021-01-06 20:27   좋아요 0 | URL
아하, 책이요, 하나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냥 즉각 이해되는 수준인데, 시대가 21세기라서 굳이 읽어야 하는지는 조금 그렇습니다. 별 하나가 빠진 이유? 하여간 뭐 그렇습니다. ^^
 
카트린느 메디치의 딸
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박미경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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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제목은 La Reine Margo, <마르고 왕비>이지만, 흔히 ‘카트린 드 메디시스’라 불리는 작품 속에서 가장 강렬한 여성 악역을 강조하기 위해, <카트린느 메디치의 딸>이라 붙인 거 같다.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세계적인 명저를 16세기 초 피렌체의 통치자 우르비노 공작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헌정했는데, 이이의 증손녀가 이탈리아 발음으로 하면 카트린 메디치, 프랑스식으로 표기해 카트린 드 메디시스다. 프랑스의 왕 앙리 2세와 혼인해서 남편이 스페인 잔칫집에 가 마상 창 시합을 하다 사고로 죽은 이후 첫아들 프랑수아 2세 재위 기간, 둘째 아들 샤를 9세 재위 중 상당한 기간 동안 섭정으로 프랑스 전역을 들었다 놨다 한 인물. 이탈리아 여자가 프랑스에 와서 오랜 세월 동안 권력을 행사한 것에 좀 불만이 있을 수 있을 터. 알렉상드르 뒤마는 보편적 프랑스인들의 구미에 맞추기 위해서 그랬는지 카틀린 드 메디시스를 필요 이상 악녀화 했다. 읽어보시면 안다.

  책은 1572년 나바라 왕국의 신교도 통치자 앙리와, 프랑스 왕(이었던) 앙리 2세의 딸이자 샤를 9세의 여동생인 마르그리트와의 결혼식이 있던 8월 18일에서 시작한다. 나바라의 왕 앙리 부르봉은 프랑스 남서쪽의 위그노, 샤를 발루아는 중앙과 북동쪽을 지배하는 가톨릭. 이 두 집안의 화해로 작게는 앙리의 모후 잔 달브레 3세를 독살한 카트린 드 메디시스(직접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상당한 근거가 있는 사실처럼 보인다)와의 화해, 크게는 오랜 세월을 끌어왔던 신구교간의 화해를 의미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기의 결혼 바로 8일 후에 닥쳐온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밤을 기억한다. 축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성당마다 경종이 울리는 것을 신호로 군인들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남성 시민들이 무기를 들고 눈에 띄는 개신교도, 즉 위그노들을 무참하게 학살했던 것을. 이미 시대는 중세에서 벗어났다. 중세 시대엔 비록 이교도를 화형에 처하기는 했지만, 집행하기 전에 심문을 통해 가톨릭으로의 개종을 권고한 후 그것을 거절할 때만 불을 질렀던 것이, 이젠 이교도들의 씨를 말릴 목적으로 무조건 학살을 감행하게 된다.

  자료마다 조금씩 다른데, 대략 2만 명가량이 학살당한 후 수도 파리에서 거의 모든 신교도들과 신교도 귀족들을 잃은 나바라의 왕 앙리는 루브르궁에 감금 비슷하게 잡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가톨릭으로 개종을 해야만 했다. 개종 후에도 적어도 소설 속에서는 카틀린 드 메디시스의 숱한 암살 기도를 기적적으로 모면한다. 작품은 앙리가 모든 환란을 겪어내고 결국 다시 나바라의 왕으로 ‘도망할’ 때까지를 그리고 있다.

  알렉상드르 뒤마는 여기에 있을 법하지 않은, 앙리의 손자인 루이 14세 시절 삼총사 비슷한 의리남 두 명을 등장시켜 총과 칼이 난무하는 무협지를 그리기도 하고, 의리에 죽고 사는 남성들의 우정을 묘사하기도 한다. 섹스리스 커플인 앙리와 마르그리트의 공인된 애인들은 물론이고 여인들의 무기라고 일컫는 각종 독약과 어둠의 마법 같은 것도 적절하게 구비 해놓아 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진짜로 책 한 권을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뚝딱 해치울 수 있을 정도의 속도감을 즐길 수도 있다.

  그러나, 웬만하면 읽지 마시라. 난 돈이 아까웠다. 토마스 만의 친형 하인리히 만이 쓴 <앙리 4세>가 더 났다. 같은 앙리 4세를 그린 작품이지만 하인리히 만은 앙리가 부르봉 왕가의 초대 왕인 앙리 4세로 등극하기 바로 전의 파리 공성전攻城戰까지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서술했으나, 뒤마는 철저하게 19세기 초중반의 프랑스 독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읽힐 수 있을까를 공략 포인트로 설정했다. 내가 읽은 뒤마 중에서도, 이렇게 말하면 출판사가 싫어하겠지만, 제일 처진다. 하긴 뒤마가 가장 저명한 대중문학가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절판인 공산주의자 하인리히 만의 <앙리 4세>를 읽기 위해 헌책방을 뒤지라는 것도 아니다. 그 책은, 세 권짜리인데, 하인리히 만의 문장이 그런지, 역자가 번역한 우리말 문장이 그런지, 하여튼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다. 다른 책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밤의 학살 만 감상하시려면, 차라리 쟈코모 마이어베어가 작곡한 오페라 <위그노교도>를 대본 읽어가며 듣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다.

  근데 더 좋은 건, 그냥 부르봉 왕가에 관한 역사책 한 권을 선택하시는 것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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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1-04 14: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뒤마의 책이라 혹해서 읽었는데 축약본이라는 말에 어찌나 씁쓸하던지요...
아, 책은 읽고 나서 바로 팔아 먹었습니다.
영화 <여왕 마고>도 보았는데 당대 내로라하는 프랑스 배우들의 향연에 그만
뻑이 갔습니다.
젊은 날의 이자벨 아자니는 정말...

Falstaff 2021-01-04 14:18   좋아요 1 | URL
당시 이자벨 아자니의 나이가 서른아홉, 우리나라 나이로 마흔이었답니다. 그 나이에 스무 살 마르고 왕비 역을 했으니..... 와, 대단합지요.
근데 코코나하고 라 몰 백작이 실존 인물이라네요. 같이 참수 당한 것도 그렇고요. 깜짝 놀랐습니다. 완전 허구인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아요.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