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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린느 메디치의 딸
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박미경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19년 5월
평점 :
원래 제목은 La Reine Margo, <마르고 왕비>이지만, 흔히 ‘카트린 드 메디시스’라 불리는 작품 속에서 가장 강렬한 여성 악역을 강조하기 위해, <카트린느 메디치의 딸>이라 붙인 거 같다.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세계적인 명저를 16세기 초 피렌체의 통치자 우르비노 공작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헌정했는데, 이이의 증손녀가 이탈리아 발음으로 하면 카트린 메디치, 프랑스식으로 표기해 카트린 드 메디시스다. 프랑스의 왕 앙리 2세와 혼인해서 남편이 스페인 잔칫집에 가 마상 창 시합을 하다 사고로 죽은 이후 첫아들 프랑수아 2세 재위 기간, 둘째 아들 샤를 9세 재위 중 상당한 기간 동안 섭정으로 프랑스 전역을 들었다 놨다 한 인물. 이탈리아 여자가 프랑스에 와서 오랜 세월 동안 권력을 행사한 것에 좀 불만이 있을 수 있을 터. 알렉상드르 뒤마는 보편적 프랑스인들의 구미에 맞추기 위해서 그랬는지 카틀린 드 메디시스를 필요 이상 악녀화 했다. 읽어보시면 안다.
책은 1572년 나바라 왕국의 신교도 통치자 앙리와, 프랑스 왕(이었던) 앙리 2세의 딸이자 샤를 9세의 여동생인 마르그리트와의 결혼식이 있던 8월 18일에서 시작한다. 나바라의 왕 앙리 부르봉은 프랑스 남서쪽의 위그노, 샤를 발루아는 중앙과 북동쪽을 지배하는 가톨릭. 이 두 집안의 화해로 작게는 앙리의 모후 잔 달브레 3세를 독살한 카트린 드 메디시스(직접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상당한 근거가 있는 사실처럼 보인다)와의 화해, 크게는 오랜 세월을 끌어왔던 신구교간의 화해를 의미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기의 결혼 바로 8일 후에 닥쳐온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밤을 기억한다. 축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성당마다 경종이 울리는 것을 신호로 군인들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남성 시민들이 무기를 들고 눈에 띄는 개신교도, 즉 위그노들을 무참하게 학살했던 것을. 이미 시대는 중세에서 벗어났다. 중세 시대엔 비록 이교도를 화형에 처하기는 했지만, 집행하기 전에 심문을 통해 가톨릭으로의 개종을 권고한 후 그것을 거절할 때만 불을 질렀던 것이, 이젠 이교도들의 씨를 말릴 목적으로 무조건 학살을 감행하게 된다.
자료마다 조금씩 다른데, 대략 2만 명가량이 학살당한 후 수도 파리에서 거의 모든 신교도들과 신교도 귀족들을 잃은 나바라의 왕 앙리는 루브르궁에 감금 비슷하게 잡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가톨릭으로 개종을 해야만 했다. 개종 후에도 적어도 소설 속에서는 카틀린 드 메디시스의 숱한 암살 기도를 기적적으로 모면한다. 작품은 앙리가 모든 환란을 겪어내고 결국 다시 나바라의 왕으로 ‘도망할’ 때까지를 그리고 있다.
알렉상드르 뒤마는 여기에 있을 법하지 않은, 앙리의 손자인 루이 14세 시절 삼총사 비슷한 의리남 두 명을 등장시켜 총과 칼이 난무하는 무협지를 그리기도 하고, 의리에 죽고 사는 남성들의 우정을 묘사하기도 한다. 섹스리스 커플인 앙리와 마르그리트의 공인된 애인들은 물론이고 여인들의 무기라고 일컫는 각종 독약과 어둠의 마법 같은 것도 적절하게 구비 해놓아 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진짜로 책 한 권을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뚝딱 해치울 수 있을 정도의 속도감을 즐길 수도 있다.
그러나, 웬만하면 읽지 마시라. 난 돈이 아까웠다. 토마스 만의 친형 하인리히 만이 쓴 <앙리 4세>가 더 났다. 같은 앙리 4세를 그린 작품이지만 하인리히 만은 앙리가 부르봉 왕가의 초대 왕인 앙리 4세로 등극하기 바로 전의 파리 공성전攻城戰까지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서술했으나, 뒤마는 철저하게 19세기 초중반의 프랑스 독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읽힐 수 있을까를 공략 포인트로 설정했다. 내가 읽은 뒤마 중에서도, 이렇게 말하면 출판사가 싫어하겠지만, 제일 처진다. 하긴 뒤마가 가장 저명한 대중문학가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절판인 공산주의자 하인리히 만의 <앙리 4세>를 읽기 위해 헌책방을 뒤지라는 것도 아니다. 그 책은, 세 권짜리인데, 하인리히 만의 문장이 그런지, 역자가 번역한 우리말 문장이 그런지, 하여튼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다. 다른 책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밤의 학살 만 감상하시려면, 차라리 쟈코모 마이어베어가 작곡한 오페라 <위그노교도>를 대본 읽어가며 듣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다.
근데 더 좋은 건, 그냥 부르봉 왕가에 관한 역사책 한 권을 선택하시는 것일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