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 실패를 찬양하는 나라에서 71일 히치하이킹
강은경 지음 / 어떤책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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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신춘문예 낙방 후 절필선언을 하고 아이슬란드로 날아가 71일 히치하이킹 여행 후 쓴 원고를 32번 투고 거절 당한 후 33번째 투고하여 나온 눈물 겨운 여행에세이.


여행을 그닥 좋아하지 않다보니 그 흔한 텐트 치는 법도 모른다. 그렇다보니 여행기라는 책에 관심이 있을 리 없다. 그런 사람이 이 책을 집어든 이유가 있다

 

첫째, 저자의 다소 특이한 이력과 우여곡절 끝에 출간된 책의 이력 때문이다

30년 동안 매번 봄마다 신춘문예 낙방이라는 실패 끝에 절필선언을 하고 스스로를 패배자라 단정하고 실패를 찬양한다고 해서 간 아이슬란드에서의 고생 직싸게 하는 이야기는 여타의 여행에세이 와는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서른두 번의 투고 거절을 거쳐 서른 세 번의 투고 끝에 책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둘째, 여행기라면 흔히 유명 관광지나 먹거리의 사진 위주의 책을 떠올리는데 이 책은 글 위주의 여행기인데 저자의 30년 낙방 경력에서 우러나오는 문장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셋째, 여행의 장소가 아이슬란드였기 때문이다. 아마 유럽이나 미국 등과 같이 잘 알려진 곳이었다면 이 책에 관심이 가지 않았을 것이다.

추운걸 싫어하지만 갈 기회가 생긴다면 나는 북유럽 국가들의 거리를 배회해보고 싶다. 햄버거 하나에 2만원 한다는 살인적 물가에 달랑 300만 원을 장만해 아이슬란드 71일 히치하이킹을 한 저자를 따라할 엄두는 나지 않지만 그래도 가보고 싶은 곳 아이슬란드.

 

그렇게 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현지의 땅과 배경 위주의 여행기가 아니라 그 땅을 밟고 숨쉬는 여행자의 인간 드라마 같은 여행기에 나는 매료되지 않을 수 없어 찡한 가슴을 선물처럼 받으며 마지막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그렇게 각별하게 읽은 책소개를 해본다.



70대 미국 할머니 메리엔.
내가 혼자 아이슬란드로 여행을 가겠다고 했더니, 친구들이랑 손주들이 날 보고 미쳤다는 거예요. 아니, 텔레비전 앞에 매일 붙어 사는 걔들이 미친 거지, 내가 미친 거예요?
389p

다시 산다면 아니, 앞으로 남은 인생이라도 ‘꿈은 이루어진다‘는 희망고문 따위 붙들지 말아야지. 아이슬란드 사람들처럼 ‘내일‘, ‘다음‘ 따위의 단어도 버려야지. ... 아이슬란드 사람들에겐 ‘지금‘이 중요하지 ‘내일‘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네 꿈이 뭐니? 나중에 뭐가 되고 싶어?" 라고 묻지 않고 "지금 하고 싶은 게 뭐니?" 라고 묻는 것도 자연이 눈 앞에서 꿈틀거리고 뒤집히는 걸 수시로 목격하며 사는 사람들이라 그럴 것이다.
44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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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하면서 듣는 음악
이재민 지음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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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스스로 고백한 것처럼 청소하면서 들은 건 몇 개 없다고 한다. 제목에서 짐작하듯 전문적인 비평이나 지식의 나열 없이 음반을 들으며 인스타그램에 짧게 쓴 글들로써 지극한 사적 감상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인스타 계정 @round.midnight 의 주인장이 듣는 음반과 그 단상들의 모음집. 음반에 대한 짧은 메모를 따라 찾아 들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음악 이야기뿐 아니라 그에 얽힌 생각들이 오히려 이 책의 매력일 것이다. 특이한 점은 음반 타이틀이나 제목들을 번역해서 소개하고 있어 뭔가 응? 스럽기도 하지만 나같은 영알못에겐 다행스럽기도 하고 재미가 있다


큼지막하게 옛 음반 사진들을 한 면에 배치한 판형이 어떤 감상에 빠져드는데 일조하는게 아닐까 싶다. 신세계처럼 펼쳐지는 낯선 음악들을 들어보고 저자처럼 아날로그식으로는 못듣겠지만 음악파일로 구비해둘만한건 없나 촉각을 곤두세워 보는 일은 즐겁다.

대략 4000여 개 노래 파일들이 담겨진 내 플레이어의 폴더를 살펴봐도 딱히 이거다 싶은게 없는건 당연히도 너무나 옛날옛적 닳고 닳은 노래들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뭔가 새로운것 뭔가 다른걸 듣고는 싶은데 아무거나 듣는건 안될때 이런 책에 기대어 음악 감상의 폭을 넓혀가보는것도 좋을듯 싶다. 후속편을 내 준다면 좋겠다. 이를테면 멍때리면서 듣는 음악 같은 ㅋ

어떤 물질적 물성을 가진 사물들에 비해 음악이란건 소리라는 무형의 어떤 것인데 그것에 물질적 물성을 부여하는 것이 레코드자켓이나 CD케이스 일 것이다. 촉각과 시각을 통해 그것을 느껴지게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은 동감하는 부분이다. 요즘이야 스트리밍이 대세지만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어디 상상이나 했던가. 반영구적 기록매체라는게 CD라 했지만 반백년도 못가 용도 폐기 직전의 매체가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굳이 CD음반을 비롯 LP나 카셋테잎 등을 구입하고 플레이어로 듣는건 분명 스트리밍이나 mp3파일로 듣는것과는 다른 뭔가가 있다. 과학적 이론적 근거가 없다한들 주관적 감상의 세계에 진입하다보면 그런것쯤은 조족지혈 거리도 안된다.


인간의 감성 이란게 때론 부질없고 허튼 것일 뿐이기도하지만 때론 그것으로 인해 어떤 모든게 뒤집히기도 하니 뭐라 할 수가 없다.
저자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압구정역 근처 상아레코드에서 CD를 샀다는 대목에서 그때쯤이면 나도 일렉기타리스트 친구를 따라 어쩌면 그 레코드 가겔 한두 번은 들렀을것 같다는 회상에 잠기듯 어떤 음악을 듣고 음악에 잠긴다는 것의 매력은 사적인 어마어마함으로 다가오는 일이다.


바이널이든 CD든 물리적 저장 매체로 듣는 음악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훨씬 머릿속에 각인되고 회자되기 좋다. 소리 위에 얹혀진 그림이나 사진 같은 이미지의 심상 때문이기도 하고, 그걸 구입하고 재생한 순간의 기억 덕분이기도하다.
어쨌든 스트리밍이나 다운로드해서 듣는 음원으로는 얻기 힘든 부분이 존재한다. 돈을 주고 산 음악은 그 좋은 부분을 억지로라도 찾아내게 된다. 그렇게 체화한 음악을 들을 때는 종소리를 들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저절로 이런저런 게 연상된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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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 노르웨이에서 만난 절규의 화가 클래식 클라우드 8
유성혜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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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라고 하면 "절규"
그렇게 등식관계가 될만큼 그 작품 이외엔 문외한인 상태에서 읽어보는 그의 작품과 인생에 대한 에세이는 생각보다 깜놀할 재미가 있었다


우선
절규의 제대로 된 제목은 "비명"이 맞겠다는 것
단순 비슷한 말의 범주로 보기엔 어렵지 않겠나 하는 저자의 설명에 동감
그러나 일반대중에게 뿌리 깊이 박힌 "절규"라는 말이 갖는 화가에 대한 이미지가 쉽게 바뀌기는 어렵겠지

둘째
절규의 그림에서 등장인물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
나만 몰랐나? 외부의, 더 정확히는 자연의 비명에 귀를 막고 있는 거라는 사실
뭉크가 남긴 메모를 토대로 하자면 그게 맞다

비명을 지르던 절규를 하던 그 소리의 주체가 자연이냐 인간이냐, 내부냐 외부냐의 근본적 차이점에 관한 것이라 나는 꽤나 쇼킹한 사실의 발견이었다

저자는 노르웨이에 10여년 째 거주하고 있고 관련 연구자이기도 하니 저자의 주장을 흘려 들을건 아니겠다

절규라는 작품이 채색화로 4종 있다는것도 처음 알았고 도난 사건이 두 번 있었다는 것도, 도난 작품을 찾기 까지의 과정도 흥미로웠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그 "절규"라는 작품에 '미친 사람만이 그릴수 있는 그림이다' 라는 누군가의 낙서가 발견 되었다는 것도, 등등 재밌는 사실들이 많았다

아르테에서 100권 기획을 했다는 이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팟캐스트도 진행하고 있는데 방송도 들을만 하고 출간하고 있는 책들의 디자인이나 만듦새도 좋은것 같다 요즘 같은 세상에 100권의 기획이라니 좀 무리가 아닌가 싶긴한데 내 알 바 아니니.
근간 도서 목록을 보니 헨리 제임스 김사과, 카뮈 최수철에서 눈길이 머문다. 소개하는 저자들에 더 관심이 간다는 사실.
무엇보다 팟캐 진행자 김태훈의 팬심도 한 몫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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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한 연구 - 상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1
박상륭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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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을 읽는 독자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소설

몇 번의 실패를 하다가 여러 번 포기했다는 소설

이 책을 사놓은 건 까마득한데 읽은 건 최근이다. 그러니까 10여 년 그 이상 책꽂이에 꽂혀만 있었는데 한번씩 꺼내 초반 몇 페이지 읽다 포기했었다.



아마 제목만 보거나 골때리는 첫문장에 압도되어 나처럼 미리 포기하거나 초반의 고비를 넘기지 못한 독자들이 많을 것으로 짐작한다. 감히 단언하는데 제목에 쫄 필요도 없고 속는셈 치고 초반만 넘기면 여느 소설처럼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를 따라 읽다보면 소설이 끝나가는게 아쉽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리고 어디가서 이 소설 읽어봤다고 하면 폼도 좀 난다.

 

박상륭

1940년 전북 장수에서 태어나 서라벌 예대를 졸업했다. 1963사상계신인상에 '아겔다마'로 입상하였다. 1969년 캐나다 이주 후에는 병원 시신 안치실에서 청소부로 일하고, 서점을 운영하며 틈틈이 소설을 써왔다. 출국 전날 광화문 우체국 화단의 흙을 씹어 먹으며 자신이 버린 조국을 한탄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고 한다.

1998년에는 소설집 평심을 발표하여 이듬해 표제작 <평심>으로 제2회 김동리 문학상을 수상했다.

동서고금의 종교와 신화, 그리고 철학을 아우르는 방대한 사유체계와 우주적 상상력으로 전개되는 거대한 스케일, 독보적인 문체로 한국문학의 지평을 확장시켜왔다. 주요 작품으로 <죽음의 한 연구>, <칠조어론>, <열명길>, <아겔다마>, <평심>, <산해기> 등이 있다.

201771일 캐나다에서 향년 77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이 소설은

바닷가에서 창녀로 일하던 어머니 밑에서 태어나 노승의 제자가 된 주인공이 '유리'라는 공간에서 40일간 구도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작품이다.

생명과 유토피아를 꿈꾸는 수도승 유리가 "마른 늪에서 물고기를 낚으라"는 화두를 놓고 40일 동안 밀교적 고행을 벌이는 내용으로, 1995년 양윤호 감독에 의해 박신양 주연의 유리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그리고 죽음의 한 연구의 속편격인 4부작 칠조어론은 무려 17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이라고 한다.

 

참고로 문학평론가 고 김현 선생은 이 소설에 대해

무정이후에 씌어진 가장 좋은 소설 중 하나.”라고 평하기도 했다.

 

아마 이 소설을 읽어봤거나 읽다 포기한 독자라도 첫문장 만큼은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공문(空門)의 안뜰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깥뜰에 있

는 것도 아니어서, 수도도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살이의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어서, 중도 아니고 그렇다

고 속중(俗衆)도 아니어서, 그냥 걸사(乞士)라거나 돌팔이중이라

고 해야 할 것들 중의 어떤 것들은, 그 영봉을 구름에 머리 감기

는 동녘 운산으로나, 사철 눈에 덮여 천년 동정스런 북녘 눈뫼로

, 미친 년 오줌 누듯 여덟 달간이나 비가 내리지만 겨울 또한

혹독한 법 없는 서녘 비골로도 찾아가지만, 별로 찌는 듯한 더위

는 아니라도 갈증이 계속되며 그늘도 또한 없고 해가 떠 있어도

그렇게 눈부신 법 없는데다, 우계에는 안개비나 조금 오다 그친

다는 남녘 유리(羑里)로도 모인다.

 

이게 첫 문장이자 하나의 문장이다. 뭔가 좀 감이 오는지 모르겠다.

 

이를테면 '율리시즈''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같은 앞부분만 보다가 덮어버리는

많은 책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은데. 언젠간 완독하겠지 자포자기의 마음으로 쳐다만 보는 작품. 단어 하나하나도 쉽지 않고 보기로 따온 첫 문장처럼 한 문장의 길이 또한 예사롭지가 않아서 번번히 실패를 안겨주는 박상륭 선생의 걸작.

 

많이 아는 만큼 많이 보이는 소설이라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동사양의 철학과 종교적 지식이 작품안에 많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티벳의 사자의 서라든지 신약과 구약의 내용 그리고 불교적 내용까지. 이런 점이 소설의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로 읽었다.

있어 보이는제목에 일단 구입했다는 어느 독자의 말대로, 제목이 주는 무게만큼 죽음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냐 하면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제목에 딴지를 걸자는 건 아니다만.

23~26일의 내용, 즉 매장 전 망자에게 해탈하는 법을 읊어주는 '티벳 사자의 서' 내용 일부를 차용하고는 있지만 작품의 일부일 뿐이다. 결국 '유리'라는 한 인간으로 대표되는 본래 인간의 번뇌에 관하여 쯤이려나.

 

관념소설이라고 해서 어렵다고만 하기에는 유리인 ''를 비롯 등장인물들이 인간적으로 너무 절절해서 이렇게 끝나버릴수밖에 없다는 게 필멸을 받아들여야 하는 심정과 같아 먹먹하기만 했다.

 

오직 읽은 이만이 고 김현 선생이 왜 벅찬 감정 가득한 감상을 실었는지 알 것이다. 그 감상에는 스포라기보단 기본 줄거리가 누설되어 해설부터 보는 편인 나는 멋모르고 봤다가 살짝 김이 피식. 물론 그게 다는 아니지만. 끝을 알고 보니 애잔해서 책장 넘어가는게 다 안타까웠다. 줄거리도 줄거리지만 그보다 특유의 ''의 음미도 이 소설의 매력이므로 따박따박 읽는것이 재미일 것이다.

 

후려친 한 줄 오독 요약.

마른늪이 있는 유리라는 바르도에서 40일간 머물며 고기 낚기, 그 고기의 이름은 무의미여라.

 

유리는 '바르도'이며 유리는 물고기다.

'티벳 사자의 서'에도 나와 있듯 사람이 죽은 다음 그 영혼이 잠시 머무는 중간 세계를 바르도라 하고 그곳에서 49일간 머문다 그 기간 동안 영혼의 선택에 의해 해탈을 할 수도 환생에 접어들 수도 있지만 대부분 환생으로 빠져든다. 유리에서 '마른늪에서 고기 낚기' 즉 무의미 낚기를 터득한다면 영원한 죽음에 이르지 않을까.

 

그러므로 고기는 무의미하다.

197p

 

,,종반으로 나누어 읽을수 있는 '17' 에서, 초반은 '창세기' 31절에서 7절까지의 기사에 대한 화자의 분석과 비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중반의 원죄 개념이나 삼위일체 등에 관한것은 이해가 쉽지 않았지만 글자 구경하는 심정으로 따라 읽었다. 묵시록 등에 관한 종반의 이야기 역시 흥미로웠다.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그럴듯해보이는 이론들의 조합에 혀를 내두를만 했다. 이 소설의 백미가 아닐까. 그럼에도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에는 이런 이론적인 이야기는 희미해지고 인물의 감정선만이 오롯하게 가슴을 적신다.

 

공즉시색이라고 유리란 사내가 내뱉듯 죽음이 곧 사랑이요 사랑이 곧 죽음이란 말도 통하는 것이니 결국 죽음으로 사랑을 하여내었고 사랑으로 죽음을 이루어내었네. 아 진작에 읽을것을, 하는 후회 반 벅참 반.

 

 

곁다리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나는 유리羑里 라는 말이 가장 오래 기억에 남았다

첫 문장에 나오는 지명으로써의 유리는

중국 은상의 군주 주왕이 주 문왕을 잡아 가둔 곳으로 지금의 하남성 탕음현의 지명이기도 하다. 그리고 주인공의 이름이 유리이고 그 다음으로 우리가 흔히 따로 떨어지다의 뜻으로 쓰는 유리되다의 그 유리란 말이 있다. 박신양 주연의 영화 제목도 유리였다. 좀 억지스럽게 하나 더 갖다 붙여보자면 투명해서 없는 듯 하다가도 쉽게 와장창 하고 깨져버리는 성질의 유리도 생각할 수 있다. 그 모든 것들이 결코 소설과 무관하지 않아 보이고, 작가는 어떤 의도와 의미로 유리라는 말을 썼는지 알 수 없지만 절묘한 작명이 아닌가 싶다.

 

너무나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두서 없이 이야기를 하다보니 뭔 소리를 하냐고 한다면

딱 한 마디만 하겠다. 잔말 말고 일단 읽어보시라!

쫄지 말고 읽어보면 안다. 얼마나 기가 막히게 재밌는 작품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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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환상통 문학과지성 시인선 527
김혜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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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 시인의 시집이 2016년 출간된 두 시집 피어라 돼지, 죽음의 자서전 이후 대략 3년 만에 출간 되었다. 거두절미 하고 이 시집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조금 더 가까이 느껴보려면 우선 새 하기라는 말부터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 시집의 서시라고 할 수 있는 제일 앞에 실려 있는 시의 첫 연을 살펴보자

 

새의 시집

 

이 시집은 책은 아니지만

새하는 순서

그 순서의 기록

 

뭔가 이상하지 않나 그렇다. 새하는 순서 라고 했다. 물론 새 하기라는 말은 없다.

시집에 붙는 해설은 잘 안보는 편인데 이 시집에 첨부되어 있는 해설은 한번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 시집을 읽어나가는 데 한결 수월할 것이다.

해설 부분을 읽어보자

 

이 시집은 새하는 시집이다. -하다 가 어떤 움직임을 말하는 것인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새라고 하는 명사에 하다 라는 행동이나 작용을 이루는 술어가 붙어 있는 것은 어색하다. (...) ‘의 위치가 주어도 목적어도 될 수 없거나 혹은 둘 다 될 수 있는 이 모호함이 이 문장을 시적인 것으로 만든다. (...) 주체와 대상 혹은 인간과 동물의 위계를 지워버리는 이 강력하고 매혹적인 수행문이야말로 이 시집을 관통하는 동력 장치이다.

 

다시 한번 첫 시를 조금 더 읽어 나가보자

 

이 시집은 책은 아니지만

새하는 순서

그 순서의 기록

 

신발을 벗고 난간 위에 올라서서

눈을 감고 두 팔을 벌리면

소매 속에서 깃털이 삐져나오는

내게서 새가 우는 날의 기록

새의 뺨을 만지며

새하는 날의 기록

 

공기는 상처로 가득하고

나를 덮은 상처 속에서

광대뼈는 뾰족하지만

당신이 세게 잡으면 뼈가 똑 부러지는

그런 작은 새가 태어나는 순서

 

 

새 하기 라고 하기 전에 무엇 무엇 하기라는 걸 떠올려야 한다. 운동 하기 책 읽기 밥 먹기처럼 무엇무엇 하기 앞에 올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 해설에서 언급한 것처럼 여기에 새는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새 라는 것을 떠올리고 그 새가 나타내는 모든 것을 떠올려보면 조금 쉬울지 모르겠다

 

이 시집의 제목은 날개 환상통이다. 날개란 무엇인가. 새가 날개를 펴고 허공으로 뛰어들 때의 그 날개짓을 떠올려 보자. 그 다음 환상통이란 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환상통은 있지도 않은데 있는 것에서 오는 통증이다. 그렇다면 날개 환상통이란 날개는 없지만 없는 날개가 느끼는 통증이다.

 

다시 새 하다를 떠올려 보자. 여기에서의 새는 날개가 없다 날개가 없는 새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날개 없는 새가 허공으로 뛰어든다

 

이 두툼한 시집 곳곳에 새 라는 낱말이 있는데 새 하다 라는 게 뭔지 어슴프레하게라도 느껴진다면 시 읽기는 한결 수월할 것이다. 이 시집의 첫 시 새의 시집을 유의해서 읽어봐야 하는 이유다

 

두 번째 시 역시 주의해서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별부터 먼저 시작했다 라는 시의 2연을 읽어보자

 

 

 

300페이지에 육박하는 왠만한 소설책 분량의 시집을 이런 짧은 영상으로 소개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일지 모른다. 아주 극히 일부분 코끼리의 꼬리 정도를 더듬거려 보았을지 모른다.

다른 영상에서 말한적 있듯이 시를 이해하려 든다면 오리무중에 빠질수도 있다. 물론 모든 시가 그런건 아닐 것이다. 이 두툼한 시집 한 권을 나역시 얼마나 제대로 느꼈는지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중요한건 오독이 되더라도 한 편 한 편 천천히 읽어나가보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이 시집 덕분에 새 하다 라는 어색한 문장이 품을수 있는 범위와 그 느낌을 처음 대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무엇이 되었든 이 시집을 읽는 당신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유튜브에서 얄븐독자 찾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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