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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
박균호 지음 / 소명출판 / 2021년 1월
평점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4번은 왜 빵꾸가 났을까?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해봐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잘 모르는 책 바깥의 책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이다
뭐 눈에 뭐만 보인다고 책쟁이 눈에 책에 관한 책이 딱 들어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책의 저자 역시 자칭 ‘책 사냥꾼’이라 칭하며
절판 책을 사냥하거나 놓칠 때의 기분 그리고
우리같은 독자들은 미처 접하지 못한 책에 관한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있다
참고로 이 책은 책의 줄거리나 작품성에 관한 책이 아니라
책이 겪은 우여곡절이나 책이 살아오면서 겪은 기쁜 일과
슬픈 일에 관한 책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온라인 서점의 미리보기를 통해 이 책의 차례를 봤을 때
나는 빛의 속도로 결재 버튼을 눌렀다
차례에는 38가지의 책 이야기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들에 대한 꼭지가 무엇보다 구매 욕구를 자극했고
책 좀 읽는 이라면 당연히 궁금해 할 것 같은 이야기들로 가득했다(나만 그래?)
하지만 누군가에겐 몰라도 그만일 시시콜콜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점은 알고 가자
처음부터 끝까지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없지만 그 중에
내가 급 흥미를 느낀 꼭지를 먼저 소개해 본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희귀본, 후장 사실주의 제1호’
중고거래가 무려 70000원 책정
잠깐
뭔가 요상~한가?
‘후장’하니까 그 어떤 알 수 없는 뭔가를 상상할지 모르겠는데
뭔지 모를 그것과는 전~혀 상관 없고 특별한 뜻이 있는 건 아니고
로베르토 볼라뇨의 소설에 등장하는 문예사조 ‘내장사실주의’를
패러디한 것일 뿐이라고 한다 괜한 상상은 와장창 깨시기 바란다
차례에 나열된 제목을 훑어 가던 중 이 소제목을 보고
살짝 놀랐달까 좀 뜬금없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제대로 출간된 단행본이 아니라
소설가 정지돈이나 박솔뫼 그리고 금정연 같은 서평가 등
8명의 문인들이 모여 만든 동인지다
동인지스럽게 자비 350만 원을 들여 초판 1000부 한정으로 출간되었다
2015년 10월 1호가 나온 후 아직까지 2호에 대한 소식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소제목처럼 이 책은 진짜 극히 일부의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책인데 이걸 저자가 언급했다는 것에서 놀랐고
그 다음으로 저자 역시 이런 책을 몰랐다가 주변의 부탁으로
이 책을 수소문 했지만 결국 사냥에 실패했다는 대목에서
‘나는 가지고 있지롱~’ 하는 마음에서 은근슬쩍 뭔가
뿌듯한 기분이 든 건 안비밀이긴 하다
이 동인지가 출간될 당시 나는 정지돈이나 박솔뫼 같은
작가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이 책에 대한 사전 정보를 들을 수가 있었던 것 같다
여기저기 책 관련된 곳에서는 참여한 작가들의 면면과
발간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물론 그 특이한 이름 때문에 화제가 되었다는 점은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여하튼 ‘창간호’라는 것에는 대부분 어떤 의미가 부여되기 마련이기 때문에
나는 ‘아 이건 하나 사둘만 하겠다’는 직감적 직감으로
한 권 주문했고 지금까지 소장하고 있다
그동안 딱히 애장 도서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만 방출할까 하는 생각을 몇 번 하기도 했는데
저자의 이야기를 보고 검색을 해보니까 중고거래가가
진짜 무려 7만원으로 책정되어 있었다
물론 설마 그 가격으로 누가 살까 싶기는 한데
뭐 한 5만원에 올려 놓으면 사가려나 그런 생각도 해봤다
참고로
저자는 어찌어찌 헌책방에서 이 책을 발견하여 주문했다고 한다
다음으로 민음사 셰계문학전집 364번에 대한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잃어버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4번의 행방은?
일단 까놓고 시작해보자면 364번은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봄눈”이었다
2021년 2월 현재 민음사 세계문학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엽 감는 새 연대기” 1,2,3권이 각각 372~4번까지 나와 있다
문제의 번호 364번의 앞뒤인 363번과 365번은 각각
제인 오스틴의 “노생거 사원”과 미셸 투르니에의 “마왕”이다
대형 출판사의 문학전집은 어느 정도 출간 계획에 따라 진행이 될텐데
이렇게 중간에 펑크가 났다? 이건 어찌보면 출간 사고라고 봐도 된다고 본다
문학전집을 내는 출판사의 문학전집이라는 건
출판사의 간판이라고 봐도 될 것 같은데 거기에 펑크가 났다?
이건 두고두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또 모르겠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스을쩍 364번을
달고 나올 수도 있지 않냐 하겠지만
사정을 들여다보면 그것도 여의치 않을 것 같다
왜 그런지는 민음사 내부 직원이 아닌 이상
정확한 팩트는 알 수가 없지만 저자가 유추한 바를 간략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2020년 4월 어느날 새벽 2시경 어떤 독서커뮤니티에 한 장의 사진이 올라왔는데
그것은 인터넷서점 중고장터에서 발견된 2019년 7월 3일에 출간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봄눈”이었던 것이다
“봄눈”의 번역자가 쓴 작품해설의 날짜는 2019년 7월로 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쯤에서 나는 그 실물이 궁금해 구글링을 통해 한 장의 이미지를 찾았다
독서커뮤니티에 올라왔다는 사진과는 몇 달이 지난 시간 차가 있는 것으로 보아 다른 사진으로 보인다
실물까지 확인했으니 궁금증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민음사는 왜 이런 펑크를 내버렸을까?
소설 “봄눈”이 인쇄된 2019년 6월은 한국에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시작될 즈음이었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일본 극우주의자였던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을 하필 이때
출간한다는 것은 분명 부담이 되었을 것이란 게 합리적 추론이다
그렇다해도 책으로 만들어진 실물이 중고 도서로 나왔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것에 대해 어떤 독자는 ‘민음북클럽 서평 프로그램’을 거론하며
이 행사를 통해 사전에 배포된 일부 소량 가운데 하나일 거라는 것이다
거의 정답이 아니겠냐는 게 저자의 이야기다
미시마 유키오는 생의 마지막 작품으로 4부작 “풍요의 바다”를 썼는데
이 4부작을 완역하면 거의 2000 쪽에 달하는 대작이고
그 출발 작품이 “봄눈”인 것이다
이 4부작을 세계문학전집에 넣기 위해서는 364~367번까지
비워두었어야 했는데 출판사 내부적 문제였는지 다른 작품이
이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 같다
어쨌든 이 문제적 작품 “봄눈”은 2020년 9월 7일에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세계문학전집 시리즈가 아닌 “풍요의 바다” 시리즈 1권으로 나왔는데
“달리는 말” “새벽의 사원” “천인오쇠” 까지 발간 예정이라고 한다
“봄눈”은 번역이 유려하다고 하니까
작가의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관심 있다면 4부작 완간을 기대해볼 만한 것 같다
영상에서 특히 이야기해보고 싶었던 두 가지 이외에도
흥미를 끌었던 꼭지들을 꼽아보자면
차례에서 가장 먼저 언급되고 있는
『율리시스』는 어떻게 전설적인 작품이 되었나?
소설 좀 읽는다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통과의례 같은 작품 가운데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일전에 책장 투어 벽돌책 편에서 이야기했듯이
이 저자 또한 “율리시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율리시스” 이 한 권으로 제임스 조이스를 아는 사람
즉 뇌가 섹시한 사람으로 신분 상승을 한다고 하거나
5쪽만 읽고 책을 덮었다고 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하고
저 유명한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17장 마지막 줄 파리똥 사건’ 등의 이야기에서
뭔가 동병상련 같은 걸 느낄 수 있었다
다음으로,
편집자가 2년 동안 애타게 찾아다닌 책 『죽음의 부정』
이 책은 2008년 국내 초역으로 출간되었다가 절판된 책을 복간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편집자 관련 비하인드 스토리는 다소 드라마틱하지 않나 싶다
이런게 궁금하다면 당장 지르시라 말씀 드린다
이 책을 복간하기 위해 2년의 발품 끝에 정가의 4배 가격을 주고 구입했다는
편집자의 이야기뿐 아니라 책이 가지는 의미나
작품성 등 미처 몰랐던 이야기가 풍부하다
나 역시 작년 여름이었을까 이 책의 복간 소식과 원본에 대한 찬사를 듣고
구입해 읽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읽다가 멈춘 상태이긴하지만
저자 역시 이 책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 반가웠다
이밖에도 학창시절 지옥 같았던 영어 시간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성문영어의 저자 송성문 선생에 대한 이야기나
『성문종합영어』의 저자, 송성문 선생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누군가는 한국의 율리시스 라고 하지만 막상 읽어보면
그런 소설은 아니었던 박상륭 선생의 “죽음의 한 연구”에 관한 꼭지
영안실 청소부, 책방을 차리다 『죽음의 한 연구』
인상적으로 읽었던 우엘백의 “소립자” 가운데 그 번역투를 지적하고 있는
미셀 우엘백이 쏘아올린 번역의 문제 『소립자』
그리고
국민시, 국민노래 <세월이 가면>은 어떻게 탄생했나
유령출판사에서 낸 신경림의 첫 시집 『농무』
책을 너무 많이 사는 사람이 만나게 되는 문제
등등 모든 내용들을 소개해보고 싶은 책이었다
이 책의 제목은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이다
책에 대해 부정적이면서 긍정적인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각자의 입장에 따라 어느 한쪽에 마음이 기울 것 같다
굳이 하나의 입장을 택하라면 나는
‘그래봤자 책’ 편이다
누군가는 책으로 인생이 뒤바뀌었다거나 책에 대해 과한 몰입을 하더라마는
책은 책일 뿐이다 그 책을 만든 건 먼저 인간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간만에 책에 관한 책으로 아주아주 흡족하고
그야말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한 책 안에서 여러 책들을 만났다
이 정도면 한번 읽어볼만 하지 않나?
자칭 책덕후라면 말이지
ㅋ ㅋ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