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의 철학
라르스 스벤젠 지음, 이세진 옮김 / 청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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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의 철학


오늘 소개하는 <<외로움의 철학>>은 노르웨이 베르겐 대학의 철학 교수 라르스 스벤젠의 책으로 국내에 소개된 저서로는 <<자유를 말하다>>, <<노동이란 무엇인가>>, <<패션:철학>> 등이 있다.


차례에서 보여주는 것과 같이 외로움을 여러모로 살펴보고 있는 책이다.


1 장 외로움의 본질

2 장 외로움이라는 감정

3 장 외로운 자는 누구인가 ?

4 장 외로움과 신뢰

5 장 외로움, 우정, 사랑

6 장 개인주의와 외로움

7 장 고독

8 장 외로움과 책임감


그 가운데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정도를 살펴볼까 한다


1. 외로움, 고독, 혼자 있음의 구분 에 대하여 살펴보고

2. 외로움은 어떻게 감소 되는가 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1. 외로움, 고독, 혼자 있음의 구분


외롭다고 말하든 외롭지 않다고 말하든 어쨌거나

우리는 외로움 이라는 말을 비교적 많이 쓰며 산다

그런데 그 외로움 이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거나 외롭다는 생각을 할 때 느끼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언제 처음 느꼈는지를 생각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철학자가 말하는 외로움이란 무얼까 싶어 책을 읽어 봤다


제목이 <<외로움의 철학>> 이라고 해서 철학책이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엔 철학책이라기 보단 외로움에 관한 연구서나 보고서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떤 주장이나 사실 관계의 제시에 있어서 철학적 접근보다

관련 논문들과 실험 데이타를 인용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나 싶다


외롭다는 것, 외로움이라는 것이 뭐냐고 할 때

뭔가 떠오르는 건 있는데 명료하게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외로움의 사전적 뜻은 다음과 같다


외로움 :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


흔히 외로움 이라고 하면 고독이라는 것을 떠올리기 쉽고 그 두 가지는 비슷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을 것이다. 고독이라는 말의 사전적 뜻은 다음과 같다


고독 :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


고독과 외로움의 사전적 뜻의 한국어 풀이만으로는 차이가 쉽게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


영어권에서는 어떠한지 저자의 의견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영어에서는 외로움(loneliness)과 고독(solitude)이 별개의 단어로 구분되어 있다. (...)

외로움은 부정적 감정 상태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고 고독은 긍정적 감정 상태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_16


!

외로움은 고독보다 명확하게 정의된다. 외로움의 근간에는 결핍이 있지만,

고독은 다양한 경험, 생각, 감정에 제한 없이 열려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외로움은 반드시 고통이나 불편한 느낌을 포함하지만,

고독은 꼭 특정한 감정을 포함하라는 법이 없다.

고독은 좋은 감정으로 다가오는 경우도 많고 아예 감정상 중립적일 수도 있다.

_162


여기에서 외로움혼자라는 것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저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다


!

영어에서 외로운(lonely)’이라는 단어가 글로 쓰인 가장 오래된 용례는

셰익스피어의 <코리올라누스>에서 볼 수 있는데, 여기서 외로운

완전히 홀로된 상태를 가리킨다.

이 사실에서 외로움(loneliness)이 홀로 있음(aloneness)의 동의어처럼

쓰였으리라 추정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도, 외로운 사람은 혼자인 경우가 많고

혼자인 사람이 더 외로울 거라는 생각이 흔하게 퍼져 있는 듯하다.

그러나 앞으로 보겠지만 외로움은 혼자 있음과 논리적으로 또한 경험적으로 별개다.

_24


!

혼자인(alone)’은 기본적으로 수()와 관련된 물리적 성격을 나타내는 단어로, 어느 한 사람 주위에 다른 이들이 없다는 사태 외에는 지시하는 바가 없다. 이 단어는 그 사태의 좋음이나 나쁨을 평가하지 않는다. (...) 반면에 외로운(lonely)’에는 늘 가치가 개입된다. ‘외로운은 대부분 부정적인 상태 표현에 쓰인다. 반면에 우리는 혼자 지내는 즐거움을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혼자인에는 필수적으로 포함되지 않는 정서적 차원이 외로운에는 포함되어 있다.

_27


각 언어마다 특정 상태를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제 각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주장하는 대로 외로움, 고독, 혼자 있음 의 차이를 따라 구분하고 써야 하는건 아닐 것이다

그렇더라도 다른 언어권 언어가 더 효율적으로 구사되고 있다면 그 언어를 통해 내재된 의미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나는 저자의 설명 덕분에 각 낱말의 의미나 느낌을 좀 확실하게 해둘 수 있었다.



2. 외로움은 어떻게 감소 되는가


우리는 흔히 현대사회로 오며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개인은 더더욱 외로워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통계적으로나 관련 연구를 찾아봐도 그러한 주장의 근거는 없다는게 저자의 주장이다.

인터넷의 발달과 보급으로 개인의 sns 사용 시간 역시 자연스레 증가했다 그것으로인해 개인은 더욱 외로워졌을거라 자연스레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그런 주장 역시 저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 주장에 나 역시 동의하는 점이 많은 편이다 궁금한 저자의 주장은 직접 책을 읽어보는 것으로 남겨 두겠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저자는 외로움고독그리고 혼자 있음을 구분했다. 그 가운데 외로움을 감소시키기 위해 고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나는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7장 고독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 가운데 인상적인 부분을 옮겨와 본다


!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과도한 외로움이 아니라 너무 미미한 고독일지도 모른다.

_186


!

아무도 고독을 견디는 법을 배우지 않고, 추구하지도 않고, 가르치지도 않는다.

고독 역량은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만 하는 것이다. 토마스 마초는 이른바 고독 기법”, 다시 말해 자기 자신과 교제하는 기술에 대해 썼다. 외로움 속에서는 자기 혼자 덩그러니 있는 것인 반면, 고독 속에서는 자기 자신과 더불어 있는 것이다. 고독 기법들의 일반적 성격은 자신을 이원화하는 데 있다. 나와 정확히 똑같은 분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와 더불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야 한다. 달리 말하자면, 혼자 있으면서도 타인들의 부재보다는 나 자신의 현존으로 충족이 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_188 ~ 189


!

모든 인생에는 외로움이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감수한 채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므로 외로움을 견디는 법, 될 수 있으면 외로움을 고독으로 변화시키는 법을 배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_208


한 마디로 말하자면 외로움을 고독으로 변화시키는 법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외로움의 실체를 잘 파악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저자는 외로움의 여러 측면을 설명한 것이다.


한편 저자는 한나 아렌트의 말을 빌려 고독이 외로움으로 변하는 경우를 설명하기도 했다.


!

고독이 외로움으로 변할 수도 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나는 나 자신에게 버림을 받은 것이다. 내가 나를 하나 속의 둘로 쪼개지 못했기 때문에 나 자신과 교제하지 못하고 덩그러니 혼자 남았다고나 할까.

_190


딱히 내 의견을 많이 첨가할 리뷰는 아닌 것 같다. 외로움이니 고독이니 어찌보면 뜬구름 잡기 좋은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잡히지도 않는 뜬구름 한 조각을 아무렇게 뜯어다가 내 맘대로 주물러 놓은것도 같다.

애시당초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를 걸어놓고 자랑질이나 하려했는지 모르겠다

돼지우리의 돼지에게도 외로움이나 고독의 시간이 있을까

잠시나마 그런 이야길 하고 있는 돼지도 있지 않나 상상을 해본다

돼지우리의 돼지는 살이 찌지 않는다면 돼지로써의 실존을 상실한 돼지다

구제역에 걸린 돼지나 소가 생매장 당하는 이유다

돼지처럼 살을 찌우는데만 혈안이 된 우리 대부분에게 고독이니 외로움이니 그딴 것들을 논할 시간은 없는 것 같다 누군가는 그러겠지 고독이 밥 먹여 주냐고 고독에서 쌀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고

쌀도 중요하고 밥도 중요하다 그런데 지구촌 어느 한 구석에는 돼지우리를 탈출해 먹기를 달가워하지 않는 어떤 정신나간 돼지도 있지 않을까 하는 외롭고 고독한 상상을 해본다



어쨌든 나는 당신들이 외롭지 않기를 바란다

부디 고독할 수 있기를 바란다면 귀를 막고 돌아설건가

마지막으로 올라브 하우게의 시 한 편을 옮겨놓는다


달콤하구나, 고독이란.

다른 이들에게 돌아갈 문이

열려 있는 한.

결국, 그대는

자기 힘으로 빛나지 않는다


Hauge, ‘Attum einsemds 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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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바침 - 결코 소멸되지 않을 자명한 사물에 바치는 헌사
부르크하르트 슈피넨 지음, 리네 호벤 그림, 김인순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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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1. 호들갑스런 소개와 추천사 리뷰?

2. 책의 여백에 나도 슬쩍 숟가락을 얹어보다

-덕업일치를 이룬 끝판왕 슈피넨

-‘사인된 책선물받은 책에 관하여

3. 그럼에도 불구하고



1. 호들갑스런 소개와 추천사 리뷰?


책덕후들을 위한, 책쟁이들을 위한, 한 마디로 책에 환장한 사람들을 위한 책이랄까

물론 책에 대한 책이 지금까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런 책이 또 한 권 나왔다 그래서 뭔 책이냐 하면

바로 이 책 되시겠다


!

부르크하르트 슈피넨 의 <<책에 바침>>


일단 거두절미 하고 차례를 통해 이 책이 어떤 책인데 이렇게 호들갑을 떨고 있나 살펴보겠다

서문과 맺음말을 제외하고 본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책을 네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몸체에 대하여

사용에 대하여

전문성에 대하여

모여 있는 책들


책이라는 사물이 가진 물성적인 측면과 사용자에 의해 다뤄지는 형태에 대하여 분류하기도 했고 한 가지 책이라도 그 판본과 사용처에 따라 살펴보기도 했다 그리고 책들이 모여 있는 다양한 장소와 공간에 대하여 까지 살펴본 그야말로 책을 육체적 정신적으로 탈탈탈 털어 까발려 본 책이 아닐까 싶다


차례의 세세한 분류에 대해서는 잠시 뒤에 살펴보도록 하고


책에 대한 책이니만큼 유명 책덕후 인사들의 추천이 빠질 수 없을 것이다

그 가운데 서평가 로쟈 이현우 선생과 유튜브에서 북튜브 채널 겨울서점의 주인장으로 활동중인 김겨울님의 추천사를 잠깐 살펴 보자


로쟈 이현우 선생의 추천사는 144p<개인 도서관>이라는 꼭지를 읽고, 김겨울님은 62p<부적절한 책>을 읽고 영감을 받아 쓰인 것이라고 한다




추천사에서 이현우 선생은 자신이 장서가로 접어들게 된 경로를 살짝 보여주고 있는데 아마 많은 책덕후들의 모습과 겹치지 않나 싶었다. 나 역시 처음엔 본가에서 들고 간 책 몇 권이 세월이 흐르며 자연스레 그 몸집이 부풀고 부풀어 이사 때마다 책보따리를 싸며 진절머리가 났지만 부피는 여간해서 줄지 않았다. 장서가라고 불리는 이들에 비한다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일 뿐이다. 여하튼 최악의 이삿짐보따리일 뿐인 책들을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이고 지고 사는 일은 이현우 선생의 말처럼 어떤 미친 사랑의 한 예임은 분명한 것 같다.


저자 슈피넨은 서문의 시작을 19세기 말 세계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던 말이야기로 시작한다. 뜬금없이 무슨 말 이야기냐 했는데 오랫동안 인류와 함께 했던 말이 순식간에 자동차나 탱크와 같은 동력기관에 그 자리를 내주었듯 종이책 역시 말의 자취를 따르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 물론 저자 자신은 종이책에 대한 애착이 너무 큰 사람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김겨울님 역시 기마병이 사라졌듯 종이책도 사라질 것인지 아니면 초콜릿이 사라질 수 없듯 종이책도 사라질 수 없다고 믿는다면 그것 역시 이 책에서 발견할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을 이미 읽었거나 읽을 사람이라면 분명 책이란 사물을 다른 사물과는 다른 마음의 위치에 놓아두었을 것이다. 그 사람이 로또에 당첨 된다면 분명 넓은 서재로 쓸 공간과 크고 많은 책꽂이를 장만해 온라인 서점의 보관함에 넣어두고만 있던 책들을 모조리 현실 세계로 소환해 그의 입맛에 맞는 분류를 하고 꽂아두는 일을 할 것이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거기에 내 소박한 500원을 걸어 본다

그것이 바로 개인 도서관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싶고 그는 그렇게 장서가의 길로 접어드는 것이다. 물론 이미 그런 멋진 1인용 도서관을 구축해 남들의 부러운 시선을 즐기고 있는 사람 역시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의 저자나 추천사의 주인공들처럼 말이다.



2. 책의 여백에 나도 슬쩍 숟가락을 얹어보다


-덕업일치를 이룬 끝판왕 슈피넨


책에 관한 책을 쓰기 위해서는 책의 저자 자신이 상당한 책덕후여야 한다.

저자 소개에서 부르크하르트 슈피넨은 그야말로 이 바닥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않았나 싶다.

무슨 소린가 하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최종 목표가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을 내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는 이 책을 내기 전 1991년 독일 최고의 데뷔 소설에 주어지는 아스펙테 문학상을 수상하고 뒤이어 잉게보르크 바흐만 상과 카롤리네 슐레겔 상 등의 문학상을 수상하며 장편소설과 에세이를 출간했다. 그야말로 책덕후라면 끝판왕이요 만랩이랄수 있으니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것 같다.


-‘사인된 책선물받은 책에 관하여


이 책의 모든 꼭지가 흥미롭지만 가장 관심이 갔던 건 <사용에 대하여> 편으로 묶인 꼭지들이다.

그 세부 항목들을 나열해봤을 때 책덕후들이라면 대부분 해당할 것이고 얼마든지 쏟아낼 이야기들이 넘쳐날 것이다


좋아하는 책, 알맞은 책, 부적절한 책, 비싼 책과 싼 책, 발견된 책,

선물받은 책, 사인된 책, 독점된 책, 빌린 책, 분실된 책, 훔친 책,

두고 간 책, 버린 책, 금지된 책, 학대받은 책, 불살라진 책


모든 꼭지들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고 그렇게 하자면 날 밤을 새울 자신도 있겠으나 혼자 떠드는 것도 그렇고 솔직히 끝까지 봐줄 것도 아닌걸 알아서 이 가운데 두 꼭지 정도 이야기해 본다


사인된 책에 관한 꼭지에 제일 먼저 솔깃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신간 출간 행사 때 일부러 저자 사인본을 사지 않기 위해 기다리는 편이다. 그러니 출판사들은 제발 비 사인본도 함께 초판본으로 내주면 좋겠다. 나 같은 사람이 나 혼자일리는 없다고 믿는다. 중고서점에서 어쩌다 사인본을 만나면 단 한 권이 남아 있다 해도 구입하지 않는다. 저자 사인본이기 때문에 중고가가 높아진다 해도 살 마음은 없다.

요즘의 사인본은 수백 수천 권 만들어지는데 저자의 이름 석자 씌여지는게 도대체 무슨 의미라고 사인본 증정이나 저자 사인회를 하는지 나는 끝내 이해 못 할 것이다.

이런 부정적 입장이다보니 과연 슈피넨은 사인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거기다 그는 사인회 까지 해 본 작가가 아닌가 말이다.

슈피넨의 입장은 사인본은 영원한 원본이 되는데 그 의미가 있다고 한다. 각각의 사인본이 오로지 그 한 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늘이 두 쪽 나도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책을 출간하게 된다면 나는 사인회를 하지 않는다는 계약 조항을 넣겠다.


그리고 선물받은 책에 대해서도 조금 더 이야기해 본다


채식주의자인 당신이 육포셋트나 갈비셋트를 선물 받았다면 어떤 기분일까

나는 책선물이 그와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책만큼 취향이 다양해서 선물 받는 당사자에게 안성맞춤인 책으로 선물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도서상품권이 나을 것이다

선물의 기준은 받는 사람에게 있어야 할 것인데 많은 경우 주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한다

저자 역시 그런 점을 언급하고 있다 책만큼 가격과 크기 그리고 품위 면에서 주는 사람에게 부담되지 않는 건 없다고 말한다. 한 마디로 말해 땜빵으로 적당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책이 선물에서 제외된다면 많은 출판사와 그 관계자들이 실직자가 될 만큼 선물용 책 시장이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으론 씁쓸하지만 현실이 그렇다면 인정해야 할 일이다.

작가 입장에서 자신의 책이 선물용으로 전달되어 읽히지 않고 책꽂이 한 켠에 꽂혀 있기만 하다면 참으로 슬픈 일이다.

누군가 내게 100만 권 이상이 팔렸지만 내 취향이 아닌 어떤 책을 덥석 선물한다면 나는 깨끗한 상태로 팔기 위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당장 중고서점으로 달려갈 것이다.



3.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맺음말에서 저자가 밝히고 있는 사실은 이 책의 초고를 받아 읽어본 출판사 대표는 우울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이 출간된 해인 2016년에 저자는 예순 번째 생일을 앞두고 있었고 종이 텍스트 문화와 디지털 텍스트 문화가 혼재한 세상에서 종이책의 종말을 염려하며 여생을 보내는 심정이 자연스레 원고에 녹아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지금껏 호들갑스런 마음으로 이런저런 책 이야길 했고 이 책 역시 기쁜 마음으로 펼쳐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의 염려와 함께 스마트폰으로 책을 볼 수 있게 되어 책을 안 보던 저자의 친구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책을 보게 되었다는 것에서도 결국 종이책 특유의 존재감을 느꼈고 느끼기를 바라는 세대는 이제 사라지는게 아닐까 하는 저자처럼 나 역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종이책을 누렸던 세대가 종이책이 누렸던 그 간의 품위에 바칠 수 있는 마지막 헌정사 같은 게 아닐까 싶어 호들갑스런 마음 한 편에서 서글픔이 피어오르는 것도 사실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끝날 때 끝나더라도 사과 나무를 심는다고 하듯

모든 책덕후들은 읽든 읽지 않고 모셔두든 지금 당장 이 책을 질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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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가 아니어서 다행이야 푸른사상 시선 116
성향숙 지음 / 푸른사상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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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3 시인의 말

00:28 장님거미

01:58 안녕, 뭐 해?

03:26 물어본다 -신해철에게

05:42 나의 죽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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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 - 퓰리처상 수상 작가가 묻고 세계의 지성 100인이 답하다
윌 듀런트 지음, 신소희 옮김 / 유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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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출판사에서 "나온 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리뷰가 된다


1. 책을 쓰게 된 계기

2. 책의 구성

3. 보내온 답장들

4. 당신과 나는 왜 살고 있나


 

1. 책을 쓰게 된 계기


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면 나는 당장 자살할 생각입니다


책 제목이 다소 직설적이고 자극적으로 읽힐 수도 있고 뒤표지의 카피는

살짝 한 술 더 뜨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없는 말을 가져온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이 책은 왜 살아야 하는가하는 것을 당시의 유명인들에게

편지로 물어보고 답장을 받은 내용을 간추려 엮은 것이다


책의 저자 윌 듀런트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의 철학자, 역사가, 작가로

1968년에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다. 국내에는 노년에 대하여” “문명 이야기” “철학 이야기등이 출간되어 있다.


책 제목을 보고 살펴보던 중 이 책을 쓰게 된 일화가 인상적이어서 소개해 본다


1930년 가을 윌 듀런트의 집에 한 남자가 찾아와 듀런트가 자신에게

살아야 할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없다면 자신은 자살할 생각이라고 한다.

듀런트는 어떻게 해서든 그의 마음을 돌려 보려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이 남자를 설득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리고 같은 해에 자살하겠다는

사람들의 편지를 몇 통 더 받았다고 한다.

고심 끝에 듀런트는 당시의 유명인사 100명에게 삶의 의미에 관한 기본적인

답변과 그들 각자의 삶에서 어떻게 의미와 목적과 만족을 찾았는지도

이야기해 줄 것을 부탁했다.


듀런트의 편지 일부 내용이다

 

(......) 당신의 영감과 활력은 어디에서 비롯되며

당신을 노력하게 만드는 목적 혹은 원동력은 무엇인지.

당신은 어디에서 위안과 행복을 구하는지,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궁극적 가치는 무엇인지.







2. 책의 구성


이 책은 대략 210여 페이지의 3부로 되어 있는데 150여 페이지는 보내는 편지의 내용과 과학, 종교, 철학 등의 암울한 전망을 내세워 그럼에도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보고 있다이 책을 읽기 전에 먼저 당시의 상황이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대공황이 휘몰아친 혼란스러운 시대였음을 상기해야 한다.


100여 통의 편지를 보냈으나 수신자의 상당수는

이런 일에 연루 되고 싶지 않아 답변 할 수 없다는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어쨌든 이 책의 2부에는 28편의 답장이 실려 있다.

3부에서는 질문에 대한 저자 자신의 답변이 실려 있다.


3. 보내온 답장들


과연 누가 답장을 보냈으며 그 답장의 내용을 확인하는 것이

이 책을 읽어보는 이유가 될 것이다여기에서 일일이 답장에 대해 말할 수는 없을 것이고

몇몇 답장들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답장을 보낸 많은 이들은 종교와 가족 그리고 각자의 직업을 삶의 이유로 꼽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답할 법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론 조금 유별나 보이는 답장을 소개해 본다


버트런드 러셀의 답장이다


이렇게 말하려니 유감입니다만, 지금 당장은 내가 너무 바쁜 나머지 삶에는 의미도 뭣도 없다는 데 동의할 수밖에 없군요 (......) 진리의 발견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우리가 판단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으니까요.

(1931. 6. 20)


그리고 버나드 쇼의 답장이다


젠장, 내가 어찌 알겠소?

그런 질문에 뭔 의미가 있단 말이오?

(1931. 6. 18)


다소 신경질적인 버나드 쇼의 짧은 답장의 말이 정답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많은 오답과 정답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 생각한다.


그 다음으로 인상적인 답장은 종신형을 선고받은 죄수의 답장이었다.

어쩌다가 종신형의 죄수가 되었는지 사연은 알 수 없지만

범죄자라는 것과는 별개로 답장에서 보여준 그의 생각에

동감되는 부분이 있어 살짝 당황스럽기도 했다.

어찌보면 온갖 문헌과 역사에서 진리를 구하고자 하는

철학자의 주장에 한 방 먹이는듯한 주장을 하는 그가

어떻게 종신형의 죄수가 되었는지 결국 그는 교도소에서 생을 마감했나 싶었다.

그는 그 자신의 인생철학이 건전하다고 믿기만 한다면 삶이란, 심지어 감방 안에서도 바깥에 있는 사람의 삶만큼이나 흥미로우며 가치로울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미국의 배우, 극작가,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한

윌 로저스가 주간지에 기고한 글 가운데 일부를 소개해 본다

 

인생이란 결국 한바탕의 야단법석이다. 그러니 웃을 일을 만들자.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하자. 아무것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자.

지금 이 세대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은 확실히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각 세대는 이전 세대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것이지 이전 세대 덕분에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지식을 구하려하지 말자. 간절히 구할수록

오히려 함정에 가까워 질 뿐이니까. 하나의 이상에 헌신하지 말자.

그건 마치 호수처럼 보이는 신기루를 향해 말을 달리는 일과 같다.

도착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호수는 이미 없을 것이다. 사후 세계에 관해

뭔가를 믿는 건 괜찮지만 그곳이 이러이러할 거라고 너무 확고하게

믿지는 말자. 그러면 그곳에서의 삶도 그리 실망스럽게 시작되진 않을

테니까. 패배할 때마다 한 발짝 앞서갈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도록 하자.


이외에도 소설가 싱클레어 루이스나 인도의 네루와 간디 등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인사들의 답장이나 잘 모르는 인사들의 답장이라해도

그들의 인생관은 어떠했나를 보며 왜 살아야 하나 같은 안해도 그만인 생각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4. 당신과 나는 왜 살고 있나

 

여기에 정답은 없을 것이다. 몇날 며칠 밤을 새워가며 난상토론을 한다해도 그 결과대로 살아갈 인간은 없다. 100억 명의 인간이 있다면 100억 개의 인생이 100억 개의 방향으로 살아갈 뿐이다. 왜 사냐는 물음 자체가 할 필요도 대답할 가치도 없을 그런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그 물음에 답이 있기 위해서는 먼저 우주의 빅뱅이 왜 일어났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빅뱅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이 책이 1930년대에 씌어졌다는 시간적 거리감과 3부에 씌어진 저자의 입장이 그리 탐탁치는 않다. 좋은게 좋은거다 같고 그래도 살아야 한다 식의 끝맺음이 철학자로서 너무 관대한건 아닌가 싶은 것이다. 1부에서의 비관적 전망을 한 그 사람 맞나 싶기도 하다 그 말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원초적 질문에 대한 답변들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 읽어볼만한 책은 맞다.


어쨌든

어느날 우리에게도 이 책의 저자 듀란트에게 한 남자가 다가와 살아야 할 이유를 물었던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때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당신이라면 그 남자를 설득할 수 있을까?


나는 근본적으로 다른 생각을 하는 편이다.

사람들은 자꾸만 삶의 이유를 찾는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찾는 사람도 있겠고 못찾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이유를 찾는다해도 그것이 끝까지 가란 법도 없다

왜 사람들은 삶에 이유가 있어야 해서 그것을 찾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삶에 이유나 의미가 없다고 무의미한 삶이라고 허무하고 무목적적인 그런 허무한 삶은 아니다

산과 바다가 그냥 그것대로 있듯이 인간 역시 자연 속에 그냥 있을 뿐이다 우주 속에 한 점 티끌도 되지 않는 것으로 생겨나고 사라질 뿐이다 거기에 이유나 의미 같은 건 없다

언젠가 이야기 했듯 그냥 사는 것 뿐이다 산이 좋으면 그냥 좋고 물이 좋으면 그냥 좋은 것이다 거기에 무슨 이유가 붙나 그냥 좋다는데 아무 이유 없이 보기만 해도 그냥 좋은 사람과 같은 거다 이유나 의미는 거추장스런 핑계거리일 뿐이다

천지사방에 기댈 것 없이 혼자 선 인간이 삶의 이유나 삶의 의미라는 이름으로 기대야 한다면 그것이 종교든 가족이든 일이든 기댈면 되겠지만 그것 역시 언제 무너져내릴지 모르는 사상누각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기댐 없이 혼자 서는 인간만이 제대로 서는 인간이라고 감히 개똥같은 썰을 풀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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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자살 사건 철학이 있는 우화
최승호 지음 / 달아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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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자살 사건

 

그날 눈사람은 텅 빈 욕조에 누워 있었다. 뜨거운 물을 틀기 전에

그는 더 살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자살의 이유가 될 수는 없었으며

죽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사는 이유 또한 될 수 없었다. 죽어야

할 이유도 없었고 더 살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텅 빈 욕조에 혼자 누워 있을 때 뜨거운 물과 찬물 중에서 어떤 물을 틀어야 하는 것일까. 눈사람은 그 결과는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뜨거운 물에는 빨리 녹고 찬물에는 좀 천천히 녹겠지만 녹아 사라진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었다.

나는 따뜻한 물에 녹고 싶다. 오랫동안 너무 춥게만 살지 않았는가. 눈사람은 온수를 틀고 자신의 몸이 점점 녹아 물이 되는 것을 지켜보다 잠이 들었다.

욕조에서는 무럭무럭 김이 피어올랐다.





최승호 시인의 우화집 <<눈사람 자살 사건>>이 출간 되었다.

신간은 아니고 1997년에 출간되어 지금은 절판된 <<황금털 사자>>의 개정판인 셈이다.

이 우화집에는 74편의 글과 43점의 명화들이 함께 실려 있어 볼거리가 풍부하기도 하다.

이번 개정판 시인의 말에서 읽을 수 있는 표제작 <눈사람 자살 사건>에 대한

독자들의 소감이 그냥 하는 말로 들리지 않는건 나 뿐만은 아닐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시인의 말을 읽어 본다.


책머리에


오랫동안 절판되었던 책 황금털 사자(해냄, 1997)를 다시 내게 되었다. 책 제목을 눈사람 자살 사건으로 새로 정하고, 작품도 부분적으로 수정하였다.


나는 따뜻한 물에 녹고 싶다. 오랫동안 너무 춥게만 살지 않았는가.”


표제작 눈사람 자살 사건은 우울하고 슬픈 작품이다. 그럼에도 어떤 독자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시를 읽은 느낌이라 했고, 어떤 독자는 눈사람 자살 사건을 읽고 다시는 자살하지 않기로 했다는 긴 편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_부분


시인의 말처럼 <눈사람 자살 사건>이라는 작품은 우울하고 슬픈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 감히 이런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간

내가 읽고 느껴온 최승호 시인의 작품들과 이 우화집의 작품들의 결은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우화라고는 하지만 시라고 해도 되고 시집이라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단순하게 우울과 슬픔에서 그쳤다면 우화라고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야기의 표면이 슬쩍 감추고 있거나 세태에 대한 단순해 보이는

조롱 속에 감추어진 의미를 읽어낼 때 이 우화집은 빛을 발할 것이다.



<눈사람 자살 사건>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면, 죽어야할 이유도 살아야할

이유도 없다는데 나는 주목한다. 많은 사람들은 삶은 의미가 있어야 하고

그 의미를 찾아 어디론가 떠나기도 한다. 정말로 인간의 삶은 의미가 있는 것일까?

어떤 승려는 삶에는 의미가 없다고 한다. 그냥 사는 것이라고 하는 말에

나는 동의하는 편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사랑할 때 어떤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냥 좋아하고 그냥 사랑하는 게 나는 맞다고 본다. 어떤 이유가

붙게 되었을 때 그 이유가 사라지면 그 사랑은 어떻게 되는가?


나는 따뜻한 물에 녹고 싶다. 오랫동안 너무 춥게만 살지 않았는가라는 문장은

너무나 가슴 시리게 다가오는 문장이다. 녹아 사라진다는 눈사람의 죽음처럼

우리 인간 역시 각자 언젠가 죽게 마련이란 점은 눈사람과 동일하지만 어떻게

살고 죽을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렸다.

내가 눈사람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생각해 봤다. 눈사람처럼 춥게 살아 왔으니

따뜻한 죽음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천천히 죽음을

유예 시키는 선택을 할 것인지.

그 어느 선택도 만족한 선택은 아닐 것 같다가도 그 어떤 선택을 한다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기도 하다.


삶에는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끝내 그 의미를 찾지 못하면 그때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찾지 못한다는 건 실패한 것일까? 의미를 부여한다는 건

그만큼 삶이 좁아지는 일이다.

길지 않은 한 편의 우화 또는 시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두툼한 소설 한 권

보다 더 묵직한 느낌을 안겨준다. 시인들의 글에서 자주 느껴지는 지점이다.



이 우화집에 실려 있는 다른 작품도 소개해 본다.



고슴도치 두 마리


고슴도치 두 마리가 가시를 상대방의 몸에 찌른 채 피투성이가 되어 함께 죽어 있었다. 그들은 서로 너무 사랑했던 모양이다.


도둑


황소를 훔친 도둑이 경찰서에 끌려와 말했다.

저는 고삐를 하나 훔쳤을 뿐입니다. 고삐를 들고 오니까 소가 따라오더군요. 소까지 훔칠 생각은 없었는데 말입니다.”

경찰서장이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도 자네 손을 잡아왔을 뿐이네. 손만 오지 자네는 왜 따라왔나. 우리는 자네를 형무소에 넣지 않겠네. 자네 손만 집어넣을 걸세.”


나는 이 우화집을 읽고 다른 독자들은 어떻게 읽었나 싶어 몇몇 리뷰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 가운데 어떤 이는 이 우화집을 다소 불편하게 읽었다고 했다.

안도현 시인은 우리나라에 우화가 드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 하기도 했다.


일차적으로 현실 비판을 토대로 하는 우화가 설 땅을

우리 사회가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비판을 싫어하는 위정자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도 은연중에

진실이라고 믿고 있던 허상이 우화라는 틀을 통해 들춰지고

까발려지는 것을 두려워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우리

문학사가 보유하고 있던 넉넉한 풍자와 해학의 정신은

텔레비전 속 천박한 코미디물의 웃음거리로 전락하게

된 것은 아닐까.


_안도현



우화가 이야기하는 표면적인 이야기나 대상에만 치중하면

우화는 이게 뭔 말인가 싶고 조롱조의 이야기가 불편하게 읽힐 수도 있다.

흔히 하는 말로 달을 바라보라는데 달은 보지 않고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는 경우와 같다고 할 것이다.


면도날로 가슴을 긋는 듯한 서늘한 이야기

온 가슴이 더 이상 물을 머금을 수 없는 스펀지가 된 듯한 이야기

그러다가도 피식 옆구리를 찌르는 이야기

이토록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책을 요근래에 만난적이 있었던가 싶다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가 넘쳐나지만

직접 두 눈으로 읽어볼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 놓으며 다음 우화들을 소개하며 마친다



열등감


황소개구리에 놀란 도롱뇽들이 바위 그늘에 모여서 깨알만 한 심장을 할딱이며 말했다.


우리 조상님은 공룡이다.”



물 위에 쓰는 우화


글을 쓰고 싶을 땐 강가로 나가 흐르는 물 위에 손가락

으로 글을 쓰던 다올 씨가 있었다. 그는 강가에서 혼자

슬퍼하기도 하고 웃기도 하였으나 우화집 한 권 내지 않

았기 때문에 함께 웃은 독자도 없고 함께 눈물 흘린 독

자도 없는 영원한 무명작가였다.


다올 씨가 죽고 나서 세상에 그의 기이한 행동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소문에 헛소문이 덧보태져 나중에는 많은 사

람들이 다올 씨가 살던 마을을 찾게 되었다. 그가 손가락

으로 글을 썼던 개야강은 관광지가 되었으며 작가의 집

은 명소가 되었다. 주위에는 작은 호텔들과 음식점들이

들어섰고 기념품 가게들도 생겨났다.


관광 안내원들도 나타났다. 그들은 어찌된 일인지 앵무

새들처럼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 개야강이 바로 다올 씨의 책입니다. 물의 책, 혹은 물

의 우화집이라고 해도 좋겠지요. 글씨가 보이지는 않지

만 이 흐르는 물에 숱한 우화들이 녹아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다올 씨가 강으로 내려오면 낚시

가 전혀 안 됐다고 합니다. 슬픈 우화를 쓸 때면 물고기

들이 슬퍼하여 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고 우스운 우화를

쓸 때는 물고기들이 입을 벌리며 물 위로 튀어 올랐다는

군요. 물고기들만이 그의 독자인 셈이었죠. 아름답지 않

습니까. 전해 오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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