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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바침 - 결코 소멸되지 않을 자명한 사물에 바치는 헌사
부르크하르트 슈피넨 지음, 리네 호벤 그림, 김인순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2월
평점 :
순서
1. 호들갑스런 소개와 추천사 리뷰?
2. 책의 여백에 나도 슬쩍 숟가락을 얹어보다
-덕업일치를 이룬 끝판왕 슈피넨
-‘사인된 책’과 ‘선물받은 책’에 관하여
3. 그럼에도 불구하고
1. 호들갑스런 소개와 추천사 리뷰?
책덕후들을 위한, 책쟁이들을 위한, 한 마디로 책에 환장한 사람들을 위한 책이랄까
물론 책에 대한 책이 지금까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런 책이 또 한 권 나왔다 그래서 뭔 책이냐 하면
바로 이 책 되시겠다
짠!
부르크하르트 슈피넨 의 <<책에 바침>>
일단 거두절미 하고 차례를 통해 이 책이 어떤 책인데 이렇게 호들갑을 떨고 있나 살펴보겠다
서문과 맺음말을 제외하고 본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책을 네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몸체에 대하여
사용에 대하여
전문성에 대하여
모여 있는 책들
책이라는 사물이 가진 물성적인 측면과 사용자에 의해 다뤄지는 형태에 대하여 분류하기도 했고 한 가지 책이라도 그 판본과 사용처에 따라 살펴보기도 했다 그리고 책들이 모여 있는 다양한 장소와 공간에 대하여 까지 살펴본 그야말로 책을 육체적 정신적으로 탈탈탈 털어 까발려 본 책이 아닐까 싶다
차례의 세세한 분류에 대해서는 잠시 뒤에 살펴보도록 하고
책에 대한 책이니만큼 유명 책덕후 인사들의 추천이 빠질 수 없을 것이다
그 가운데 서평가 로쟈 이현우 선생과 유튜브에서 북튜브 채널 겨울서점의 주인장으로 활동중인 김겨울님의 추천사를 잠깐 살펴 보자
로쟈 이현우 선생의 추천사는 144p의 <개인 도서관>이라는 꼭지를 읽고, 김겨울님은 62p의 <부적절한 책>을 읽고 영감을 받아 쓰인 것이라고 한다
추천사에서 이현우 선생은 자신이 장서가로 접어들게 된 경로를 살짝 보여주고 있는데 아마 많은 책덕후들의 모습과 겹치지 않나 싶었다. 나 역시 처음엔 본가에서 들고 간 책 몇 권이 세월이 흐르며 자연스레 그 몸집이 부풀고 부풀어 이사 때마다 책보따리를 싸며 진절머리가 났지만 부피는 여간해서 줄지 않았다. 장서가라고 불리는 이들에 비한다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일 뿐이다. 여하튼 최악의 이삿짐보따리일 뿐인 책들을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이고 지고 사는 일은 이현우 선생의 말처럼 어떤 ‘미친 사랑’의 한 예임은 분명한 것 같다.
저자 슈피넨은 ‘서문’의 시작을 19세기 말 세계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던 말馬 이야기로 시작한다. 뜬금없이 무슨 말 이야기냐 했는데 오랫동안 인류와 함께 했던 말이 순식간에 자동차나 탱크와 같은 동력기관에 그 자리를 내주었듯 종이책 역시 말의 자취를 따르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 물론 저자 자신은 종이책에 대한 애착이 너무 큰 사람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김겨울님 역시 기마병이 사라졌듯 종이책도 사라질 것인지 아니면 초콜릿이 사라질 수 없듯 종이책도 사라질 수 없다고 믿는다면 그것 역시 이 책에서 발견할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을 이미 읽었거나 읽을 사람이라면 분명 책이란 사물을 다른 사물과는 다른 마음의 위치에 놓아두었을 것이다. 그 사람이 로또에 당첨 된다면 분명 넓은 서재로 쓸 공간과 크고 많은 책꽂이를 장만해 온라인 서점의 보관함에 넣어두고만 있던 책들을 모조리 현실 세계로 소환해 그의 입맛에 맞는 분류를 하고 꽂아두는 일을 할 것이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거기에 내 소박한 500원을 걸어 본다
그것이 바로 개인 도서관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싶고 그는 그렇게 장서가의 길로 접어드는 것이다. 물론 이미 그런 멋진 1인용 도서관을 구축해 남들의 부러운 시선을 즐기고 있는 사람 역시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의 저자나 추천사의 주인공들처럼 말이다.
2. 책의 여백에 나도 슬쩍 숟가락을 얹어보다
-덕업일치를 이룬 끝판왕 슈피넨
책에 관한 책을 쓰기 위해서는 책의 저자 자신이 상당한 책덕후여야 한다.
저자 소개에서 부르크하르트 슈피넨은 그야말로 이 바닥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않았나 싶다.
무슨 소린가 하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최종 목표가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을 내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는 이 책을 내기 전 1991년 독일 최고의 데뷔 소설에 주어지는 아스펙테 문학상을 수상하고 뒤이어 잉게보르크 바흐만 상과 카롤리네 슐레겔 상 등의 문학상을 수상하며 장편소설과 에세이를 출간했다. 그야말로 책덕후라면 끝판왕이요 만랩이랄수 있으니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것 같다.
-‘사인된 책’과 ‘선물받은 책’에 관하여
이 책의 모든 꼭지가 흥미롭지만 가장 관심이 갔던 건 <사용에 대하여> 편으로 묶인 꼭지들이다.
그 세부 항목들을 나열해봤을 때 책덕후들이라면 대부분 해당할 것이고 얼마든지 쏟아낼 이야기들이 넘쳐날 것이다
좋아하는 책, 알맞은 책, 부적절한 책, 비싼 책과 싼 책, 발견된 책,
선물받은 책, 사인된 책, 독점된 책, 빌린 책, 분실된 책, 훔친 책,
두고 간 책, 버린 책, 금지된 책, 학대받은 책, 불살라진 책
모든 꼭지들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고 그렇게 하자면 날 밤을 새울 자신도 있겠으나 혼자 떠드는 것도 그렇고 솔직히 끝까지 봐줄 것도 아닌걸 알아서 이 가운데 두 꼭지 정도 이야기해 본다
‘사인된 책’에 관한 꼭지에 제일 먼저 솔깃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신간 출간 행사 때 일부러 저자 사인본을 사지 않기 위해 기다리는 편이다. 그러니 출판사들은 제발 비 사인본도 함께 초판본으로 내주면 좋겠다. 나 같은 사람이 나 혼자일리는 없다고 믿는다. 중고서점에서 어쩌다 사인본을 만나면 단 한 권이 남아 있다 해도 구입하지 않는다. 저자 사인본이기 때문에 중고가가 높아진다 해도 살 마음은 없다.
요즘의 사인본은 수백 수천 권 만들어지는데 저자의 이름 석자 씌여지는게 도대체 무슨 의미라고 사인본 증정이나 저자 사인회를 하는지 나는 끝내 이해 못 할 것이다.
이런 부정적 입장이다보니 과연 슈피넨은 사인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거기다 그는 사인회 까지 해 본 작가가 아닌가 말이다.
슈피넨의 입장은 사인본은 영원한 원본이 되는데 그 의미가 있다고 한다. 각각의 사인본이 오로지 그 한 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늘이 두 쪽 나도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책을 출간하게 된다면 나는 사인회를 하지 않는다는 계약 조항을 넣겠다.
그리고 ‘선물받은 책’에 대해서도 조금 더 이야기해 본다
채식주의자인 당신이 육포셋트나 갈비셋트를 선물 받았다면 어떤 기분일까
나는 책선물이 그와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책만큼 취향이 다양해서 선물 받는 당사자에게 안성맞춤인 책으로 선물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도서상품권이 나을 것이다
선물의 기준은 받는 사람에게 있어야 할 것인데 많은 경우 주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한다
저자 역시 그런 점을 언급하고 있다 책만큼 가격과 크기 그리고 품위 면에서 주는 사람에게 부담되지 않는 건 없다고 말한다. 한 마디로 말해 땜빵으로 적당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책이 선물에서 제외된다면 많은 출판사와 그 관계자들이 실직자가 될 만큼 선물용 책 시장이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으론 씁쓸하지만 현실이 그렇다면 인정해야 할 일이다.
작가 입장에서 자신의 책이 선물용으로 전달되어 읽히지 않고 책꽂이 한 켠에 꽂혀 있기만 하다면 참으로 슬픈 일이다.
누군가 내게 100만 권 이상이 팔렸지만 내 취향이 아닌 어떤 책을 덥석 선물한다면 나는 깨끗한 상태로 팔기 위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당장 중고서점으로 달려갈 것이다.
3.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맺음말에서 저자가 밝히고 있는 사실은 이 책의 초고를 받아 읽어본 출판사 대표는 ‘우울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이 출간된 해인 2016년에 저자는 예순 번째 생일을 앞두고 있었고 종이 텍스트 문화와 디지털 텍스트 문화가 혼재한 세상에서 종이책의 종말을 염려하며 여생을 보내는 심정이 자연스레 원고에 녹아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지금껏 호들갑스런 마음으로 이런저런 책 이야길 했고 이 책 역시 기쁜 마음으로 펼쳐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의 염려와 함께 스마트폰으로 책을 볼 수 있게 되어 책을 안 보던 저자의 친구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책을 보게 되었다는 것에서도 결국 종이책 특유의 존재감을 느꼈고 느끼기를 바라는 세대는 이제 사라지는게 아닐까 하는 저자처럼 나 역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종이책을 누렸던 세대가 종이책이 누렸던 그 간의 품위에 바칠 수 있는 마지막 헌정사 같은 게 아닐까 싶어 호들갑스런 마음 한 편에서 서글픔이 피어오르는 것도 사실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끝날 때 끝나더라도 사과 나무를 심는다고 하듯
모든 책덕후들은 읽든 읽지 않고 모셔두든 지금 당장 이 책을 질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