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위한 ‘선생님 장학회’ 만세

부산 신선중, 12년째 모든 교사가 참여
석포여중·금성중도 교사 장학금 만들어


[조선일보 김용우 기자]
스승의 날을 이틀 앞둔 13일 부산 영도구 신선중학교 교장실에 카네이션을 손에 든 3학년 학생 5명이 찾아왔다. 학생회장 박동범군과 부회장 김혜원양 등 모두 학생회 간부들이다. 스승의 날이면 교실에서 담임 교사에게 카네이션을 선물하는 여느 보은 행사와 달리 이들이 교장실 문을 연 까닭이 있다.

어느새 12년째, 가난한 가정이 많은 이 동네에서 교사들은 끼니를 거르거나 과거 ‘육성회비(현 학교운영지원비)’조차 낼 수 없던 딱한 제자들에게 따뜻한 정을 나눠왔다. 그간 이 학교에 전근 온 교사들 중에 제자를 위해 호주머니를 털지 않은 이는 없다. 이 학교에 있는 모든 교사가 ‘해송장학회’ 회원이기 때문이다.

지난 93년 이 학교에 근무하던 몇몇 교사들이 육성회비를 내지 못하는 제자들을 돕기 위해 만든 모임이 이 장학회의 시작이다. 현재 이곳 교사들 중 가장 오랜 4년을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부기 교장도 “워낙 조용히 시작된 교사들의 선행이라 누가 모임을 주도했는지 어떤 교사들이 참여했는지 딱히 아는 이들이 없다”며 “회비를 못내 졸업하지 못하는 제자들이 안쓰러워 교사들이 호주머니 돈을 턴 것이 장학회의 시초”라고 기억할 뿐이었다.

교장실을 찾은 학생 대표들은 “저희 친구들을 도와주신 선생님들에게 작은 보답이라도…”라며 저마다 쥐고 있던 카네이션을 교장선생님과 옆에 있던 교사들의 가슴에 달아주자, 교사들은 “고마워, 좋은 사람 되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해송장학회는 결성 연도에 6명의 학생에게 모두 60만원을 지급한 것을 시작으로 매년 금액이 늘어 올해는 330만원이 거둬져 제자들에게 전해질 예정이다. 작고도 큰 액수인 이 돈은 주로 급식비와 학교운영지원비를 내지 못하는 제자 50여명을 위해 쓰여진다. 현재 재직중인 교사 36명 모두 1구좌당 1000원씩 작게는 5000원(5구좌)부터 3만원(30구좌)까지 매월 월급에서 떼고 있다. 20구좌를 내고 있는 진명순 교감(여)은 “얼마만큼 구좌를 낼까 고민하는 교사만 있지, ‘왜 내냐’고 반문하는 교사는 아직 없다”고 웃으며 말했다.

어려운 처지의 제자들을 돕는 교사들의 사연들이 스승의 날을 앞두고 훈훈한 미담으로 전해지고 있다. 상당수 학교에서 교사들이 학부모들과 연계하거나 스스로 보이지않게 불우학생들을 돕고 있다. 부산 남구 용당동 석포여중 교사 30여명은 관내 사회보호시설에서 생활하는 본교 재학생들을 위해 매달 3000~5000원씩 모아 보육원을 통해 용돈을 주고 있다. 또 지난 94년 당시 3학년 담임교사로 근무했던 교사 10명은 ‘돌개 장학회’를 만들어 지금까지 해마다 석포여중생들 가운데 불우학생 1~2명을 선정해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동구 좌천동 금성중학교에선 IMF사태가 터진 지난 98년부터 ‘교사 장학위원회’를 구성, 가정형편이 어려우면서도 모범적인 학생들을 돕고 있다. 교사들은 매월 식대 중에서 1만원 가량을 거둬 매년 20여명을 도와오고 있다.

연제구 연산동 연산중학교 교사들도 3년 전부터 모금을 시작해 가정 형편 탓으로 끼니를 거르는 제자들의 급식비를 대주며 ‘결식 제자 없애기 운동’을 벌이고 있고, 남구 우암동 성지중학교도 지난 97년부터 ‘작은 사랑 나눔회’를 만들어 결식 학생들의 점심 문제를 해결하거나 방학 중 생활비 일부를 지원하고 있다.

(김용우기자 yw-kim@chosun.com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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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9월
평점 :
절판


책 표지의 그림은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이다. 욕조 안에서(반신욕중이었나?-이건 우리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답장을 쓰다가 살해당한 쟈코뱅의 마라. 그는 프랑스혁명 당시의 혁명가였다. 그런데 나는 이 그림을 보면서 처음에는 자살한 그림이라고 생각했었다. 작은 슬라이드를 통한 그림이었기에 자세한 것은 보이지 않았던 때문이다. 욕조하면 흔히 생각나는 것은 살해보다는 동맥자살아닌가.

그런의미에서인지 나는 이 표지의 그림이 잘 선택되었다 생각한다(물론, 1장의 제목이 마라의 죽임이기는 하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그림은 세가지이다. 하나는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 또 다른 하나는 클림트의 [유디트], 마지막 하나는 들라크루와의 [사르다나팔의 죽음]이다. 이 세가지의 그림을 통해 작가는 이야기를 매력적으로 끌고 나아간다.

작중 화자에 속하는 '나'는 자살도우미이다. 현실에선 가능할것같이 않은 이야기이므로 이소설은 판타지에 속한다고 할수있다. 처음에 읽어가면서 나는 '나'가 살인청부업자라는 생각을 했지만 알고보니 '나'는 자살도우미였다. '나'는 수많은 의뢰인을 만나고 그들을 도와준다. 그리고 일이 끝나면 여행을 떠난다. '나'는 자살도우미이기도 하며 또한 소설가이기도 하다.  '나'는 고객들의 이야기를 소설화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그리고 여기엔 그의 많은 고객들 중에 두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한여자는 클림트의 '유디트'를 닮은 세연, 또 다른 한 여자는 전위예술가인 '미미'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두여자에 연결된 한남자 'C'이다. 한 남자에게 연결된 두 여자이지만 그 두여자다 자살을 선택하고 자살도우미인 '나'의 도움으로 자살을 선택한다. 한여자는 가스를 통해 또다른 한여자는 동맥을 끊어버린다.

1장은 마라의 죽음이라는 그림을 통해 이야기 하는데... 그 장면과 마지막에서 '미미'의 자살 장면이 오버랩된다.(나만 그런것일수도 있다.) 자살은 죄악이라는 인식이 깊게 박혀있는 나(어린시절 세뇌되다 싶이한)인데도 제목에서 거부감이 아닌 묘한 끌림을 받았다.

어쩌면 내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죽고싶다'라는 생각을 여러번 해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자살을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아니라면 할말은 없다) 그렇기에 이 소설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지도 모른다. 내가 죽지 않은 것은, 혹은 못한 것은 죽음이라는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 일것이다. 이러한 때에 그 죽음이라는 것이 두려운 것만은 아니라고 이야기 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것은 꽤 매력적이지 않을까? 내가 너무너무 힘들고 아파서 사람을 미워하면서 그사람를 죽이기보다 나를 죽이고 싶었을때 (이렇게 쓰고보니 꼭 실연이야기 같지만 그것은 아니고 사회생활을 처음하면서 겪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이다.)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났다면 편안히 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어쨌든,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이라는 것은(그것이 최악의 죄라고 하실지라도.) 그만큼이나 매력적이라는 것이 되니까. 죽음이라는 것은 모든 무거운 어떤 짐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니 말이다.

마라의 죽음에서 죽은 마라의 얼굴이 고통스러운 것도, 어쩌면 해방감에 젖은 것도, 그것들이 섞인 것도 그모든 것이 죽음에 이르렀기 때문이 아닐까? 그것이 타살이든, 자살이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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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교, 당시엔 국민학교에 다닐 때였다. 내 기억으로 아마 4학년, 혹은 5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나는 책읽는것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얌전한 아이였는데.

전국국민학교글짓기 대회였던것 같다. 거기에 내보낼 아이들을 찾기위해서 학교자체에서 전교생을 대상으로 글짓기대회를 했었다. 논설문, 수필 뭐 그런 것들을 받았던 것 같은데. 나는 그때 기억으로 환경에 대한 글짓기를 했었다. 내가 알고있는 것에 대한. 물론, 담임선생님께서 조금 틀린 부분이나 문법정도는 고쳐줬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우수상을 받게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상장을 받는 날이었는데(그때 당시 전교생을 모아놓고 조회시간에 상장을 주곤했었다.) 분명히 우수상 전모모해야 하는데 이상하다. 우리반의 다른 아이 이름이 나왔다. 선생님은 나보고 나가라고 하셨다. 이상하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담임선생님은 나에게 실수로 그렇게 된것이니 이름을 바꿔주겠다 하셨다. 어리고 순진했던 나는 그냥 네. 대답하고는 무심히 넘겼었다.

집으로 가서는 엄마에게 이야길 하는데 엄마가 이 멍청아, 하면서 소리소리 지르시는 거다. 생활기록부에는 분명히 그 상을 받은게 그 아이가 될거라는 식으로 그러면서 그 선생이 나쁜 놈이네 하면서 멍청하다고 나를 구박하는 것이다. 그렇게 혼나면서도 나는 선생님이 그럴리가 없다라고 믿으면서 아닐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인가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더이상 완벽하다거나 깨끗하기만 한 존재가 아니란 것을 아게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나는 글을 쓰지 않게 되었다. 학교에서도 여러번 글짓기대회라든지 독후감내기 등이 있어도 나는 참가하지도 않았고, 차라리 못그리는 그림이나 대충 그려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 내가 무척이나 바보같기도 하고 글쓰기를 멈춘것이 후회되기도 한다.(그 이후로 나는 일기조차도 쓰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말도 안돼고 뒤죽박죽 섞이기도 한 글들을 줄기차게 일기쓰듯이 써내려 가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얼굴도 이름도(나는 사람 기억하는 재주가 없다) 기억나지 않는 선생님과 그때 그 상을 대신 받은 아이. 순전히 어른들의 이기심이라고만 생각하고 그때당시 같은반이었던 그아이는 몰랐을 것이라 믿고. 당시 나의 담임이셨던 그분에게 묻고 싶을 따름이다. 왜 그러셨는냐고. 진실이, 사실이 영원히 묻히는 일은 거의 없는 법을 선생님은 모르셨는냐고. 그 이후에 어린 내가 받았을 상처와 불신을 당신께서 어떻게 하실 생각이셨냐고. 정말 정말 그런것이셨냐고. 아직도 선생님의 실수로만 믿고 싶지만 비슷한 이름도 연결된 번호도 아니었던 그아이와 나를 정말로 착각할 수도 있는 것이냐고.

스승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이제 나에게 기억나는 담임선생님이란 중1때의 담임과 중3때의 담임과 고등학교때의 선생님들뿐이다. 그래도 존경의 마음까지 생겨나지 않는 것은 나의 탓일까, 아니면 선생님들의 탓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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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번 학기에 듣고 있는 교양수업중에 (서양)미술의 이해라는 과목이 있다. 담당교수님은 현업이 교수임과 동시에 화가이기도 하시다. 

사실 내가 미술에,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것은 내친구 덕분이다. 지금 이 친구는 미대에 가기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입시학원과 미술학원을 다니고 있다. 이녀석이 제일 좋아하는 화가는 고흐와 클림트인데 특히, 클림트 그림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내가 이번학기 교양에 미술을 선택하게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녀석의 영향이었다. 그전에는 나는 미술, 회화는 잘 모르는 일반인(?)에 속했고 그다지 관심도 없었다.

역시나 친구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계기이기도하다. 아무튼 수업은 무척이나 재미있다. 슬라이드를 통해 작품을 하나씩 보여주고 있는데 작품에 얽힌 에피소드나 화가에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들려주시곤 한다. 생각보다 재미있는 수업에 과목선택을 잘했구나 하며 흐뭇해 했던 기억이난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되기도 하고 은연중에 우리에게 익숙하게 보여졌던 것들이 사실은 누구의 작품인지도 알게되기도 했다.

어제는 다다이즘에 대한 작품이 나왔다. 다다(DADA)란 하나의 운동이라고 한다. 파괴하는 행동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음, 잘 기억이 안난다. (이런, 겨우 하루지났을 뿐인데.)

예를 들어 다다이스트들이 피아노 연주회를 한다 하면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나와서 피아노를 톱으로 자른다. 혹은 불로 태운다. 라거나 시낭송회를 한다 하면 두사람이 다른 시를 동시에 낭송한다거나 하는 거라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게뭐야'라는 반응을 보이면 그런반응을 바란거야 란 식으로 대꾸한다고 한다. 흠, 대충 이런 내용이다. 미술분야도 비슷하다. 기성품, 이미 만들어진 것을 가지고 자기 이름만 써서 그것을 전시한다거나 했다고 한다.

다다이즘은 세계제1차대전때 전쟁에 반발하여 발생한 것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운동이라고 하는데.. 모순되는 사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후에 초현실주의에 의해 무너진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모든 분야에서 이러한 다다를 능가하는 새로운 것은 나올수가 없다고 한다.

교수님은 다다에 관한, 다다이즘에 관한 책을 세네번쯤은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고 했다. 생각이 트이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알라딘을 뒤졌다. 다다혹은 다다이즘에 관한 책을 찾기 위해서. 그런데 현재 다다에 관한 책은 몇권되지 않으며 그나마 대부분 품절제품이다.

그나마 한권을 찾아내서 주문해놓은 상태이다. 교수님도 10년동안 5번정도 읽었다고 하셨다.(절대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라고 강조를 하셨다.) 초현실주의까지 수업이 나간 상태인데 다음 수업에 관한 기대를 절로 하게 만드시는 분이다. 수업을 들으면서 내 장바구니엔 미술에 관한 책들이 하나씩 들어가기 시작했으니 좋은 날들이었던 것에는 틀림없다.


옆에 이 작품은 교수님의 다음카페에 올라와있는 작품이다. (여러개가 있었는데 오늘 들어가 보니 이것 하나만 자료실에 남아있다.) 제목은 "1999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이다. 따뜻한 분위기의 그림을 주로 그리시는데 젊은 시절엔 마치 뭉크의 그림처럼 어두침침하고 암울한 분위기의 그림을 자주 그리셨다고 한다. 나이들면서 그림을 밝게 그리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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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울에 살기 시작한지는 이제 3년정도 되었다. 내가 이 회사에 다닌지 4년차이니 말이다.

오늘은 또! 늦잠을 자고야 말아서 부랴부랴 준비하고 택시를 타고 전철역으로 갔다. 사람이 여전히 많았는데 전철에 타는 순간 느꼈다. 이건 콩나물시루야 라고... 내리는 사람은 없고 가는 역마다 사람이 타고있다. 그런데 배가 남산만큼은 아니어도 임신 6,7개월정도 되어보이는 한 임산부가 그 콩나물시루에 끼어 배를 감싸고 서있는데 순간 오싹하더라. 불안했나보다. 그래도 다행히 타신분들 모두가 그분을 은연중에 보호하려고 하더라. 오늘따라 짐도 많고 무거웠는데 20여분을 그렇게 타고오니 지금도 힘들어죽겠다.

중학교시절 학교를 가기위해 타던 버스는 만원버스, 흔히 말하는 콩나물시루였다. (이건 순전히 그렇게 낑낑대며 학교다니는 아해들이 불쌍해서 어른들이 붙이신 거다.) 그렇게 꽉찬 버스라도 못탈까봐 발동동구르며 버스를 기다리던 기억이 난다.(고등학교는 걸어다녔다.)

정겹다까지는 아니지만 옛생각이 나기는 하는데... 그래도 늦잠자면 안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고있다. 

 

P.S 서울에 살면서 이런 전철을 탈일이 많다고 생각하지 말아주시라. 난 이번에 겨우 2,3번째다. 그것도 늦잠 잔날. 에에잇, 게을러서야...-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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