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직장동료를 '탄핵'하고 싶은 경우는 없을까? 지난 3월 한 결혼정보회사에서 20~30대 직장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여성 직장인들이 동료나 상사를 탄핵하고 싶은 경우 1위는 바로 '성차별을 경험했을 때'였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취업, 그 관문을 뚫고 일자리를 구한 것만으로도 여성들에게는 다행일지 모른다. 그러나 힘들게 직장생활을 시작한 여성들에게 여전히 많은 벽이 가로놓여 있다. 한정된 업무분야도 그렇고,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에 따른 성차별도 직장생활을 힘들게 한다.
비서직을 그만둔 이씨
지난 2월 대학을 졸업한 이 아무개(여, 25)씨. 몇 번의 면접 끝에 한 회사에 채용됐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그만뒀다. 이씨는 사무직으로 지원, 입사했지만 출근 첫 날 비서로 발령이 났다. 게다가 정규직으로 입사했지만 곧 계약직으로 전환될지 모른다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 이씨는 그 외에도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회사 남자직원들의 태도를 꼽았다.
처음 출근한 날 30대 초반의 남자직원이 이씨에게 던진 첫마디는 "네가 면접 때 제일 예뻤냐"였다. 이씨는 "하루에도 '너 왜 이리 촌스럽게 생겼냐'같은 말을 몇 번이나 들었다"면서 "여자고 어리기 때문에 무시당한 것 같아 불쾌했다"고 털어놨다.
"출근 첫 날 통성명도 하지 않은 젊은 남자직원에게 '야, 너도 이리 와서 밥 먹어라'하는 반말을 들으며, 과연 이 회사에서 버틸 수 있을까 고민했다"는 이씨는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현재 은행에서 일반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는 이씨는 "남자들은 비서를 결코 직장동료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비서직이 차별받고 무시당하는 이유는 바로 대부분이 여성이기 때문이라는 게 이씨의 생각이다. 남자 비서였어도 그런 대우를 했겠느냐는 것이다.
이씨의 경우 처럼 직종에 대한 편견을 겪는 경우는 많다. 실례로 특정 직종에 따른 성비 불균형이 심하다. 취업사이트 스카우트에 따르면 2003년을 기준으로 기획이나 전략 분야는 남성이 79%, 여성이 18%를 구성하고 있다. 반면에 비서직의 경우 여성이 94%, 남성이 4%로 정 반대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에 대해 (사)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손영주 사무처장은 "남녀의 역할이 다르다는 통념은 남녀가 담당하는 업무와 직종을 분리시킨다"면서 "이는 결국 여성 직종=하위직이라는 분리구조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이러한 성별분리가 결국 "모집, 채용 및 임금에서의 차별뿐 아니라 교육, 배치, 승진, 정년 및 해고 과정에서도 크고 작은 차별을 야기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홍보기획사 입사 2년차인 김 아무개(여, 26)씨는 전략기획팀에 근무 중이다. 김씨는 자신이 직접 큰 계약을 몇 차례 성사시킨 경험이 있다. 신입시절 처음으로 계약을 성공시킨 후 회식자리에서 팀장이 김씨에게 한 말은 "김아무개씨가 남자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였다.
김씨는 "잘 해 보고 싶은 마음에 야근이나 밤샘도 마다하지 않고 남자직원들과 똑같이, 오히려 더욱 열심히 노력했다"면서 "일할 때는 남녀 차별 없이 일했는데 성과를 인정받는 데 있어선 차별을 받은 기분"이라고 설명했다. "힘든 일이라고 해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서 기회를 얻었는데, 여성은 기회를 잡고 난 후 힘든 일이 더 많은 것 같다"는 것이 김씨가 직장생활에서 얻은 결론이다.
김씨 경우처럼 직종의 성벽을 뛰어넘은 여성이 또 다시 직장 안에서의 차별에 부딪히는 경우는 많다. 같은 일을 해내도 남자직원과 같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지난 4월 온라인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노동부가 ‘남녀고용평등 강조주간’을 맞아 남녀 직장인 2347명과 국내거주 기업 인사담당자 225명을 대상으로 고용차별 인식 실태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여성 직장인 60.8%는 신입사원 배치 때 남성 입사동기생에 견주어 낮은 직급이나 직위에 배치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58.3%(남성 35.2%)가 '특정 직급 또는 직위 이상 여성의 승진에 제한을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승진제도에 대해서도 여성 직장인의 73.2%(남성 42.9%)가 '여성들이 같은 입사동기 남성들에 비해 승진기간이 길다'고 답했다. 직장에서의 성차별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며, 많은 '일하는 여성'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여성이 편견을 만든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여성 스스로가 여성에 대한 편견을 만들지 않느냐"고. 일에 대한 책임감도 없고, 별 이유 없이 결혼만 하면 회사를 그만두지 않느냐고 말한다.
외국계 제약회사에 다니는 이 아무개(여, 26)씨는 "동료 여직원 중에 신입사원 발령시 지방발령을 냈을 때 '여자라서 할 수 없다'고 주장한 직원이 있었다"면서 "분명 신입사원 모집 공고 당시부터 지방근무가 가능해야 한다고 명시했고, 연수 성적과 희망에 근거해서 발령을 내린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그 여직원은 지방 발령을 철회해 주기를 요구했고, 결국 다른 남자직원이 지방으로 발령이 났다. 이씨는 "성 차별도 나쁘지만 여성 스스로가 '여자'라는 것을 '무기'로 내세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경우는 어떨까?
국내 의류업체에서 근무 중인 한 여성은 "동료 여직원 중에 야근을 자꾸 기피하고, 일을 책임감 없이 하는 사람이 있다"면서 "그 여직원 때문에 다른 여직원들까지 '그래서 여자들은 안돼'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고 털어놨다. 그 역시 여성 스스로가 편견을 조장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남자 직원 중에도 책임감 없이 일을 처리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래서 남자들은 안돼"같은 말을 듣지 않는다. 책임감을 평가할 때도 남녀 차별이 존재하는 셈이다
(사)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손영주 사무처장은 '여성들이 스스로 편견을 조장한다'는 지적에 대해 "이는 사회, 정치, 경제적으로 여성에 대한 평등한 기회와 대우의 조건이 형성되지 못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불평등한 조건에서 만들어지는 결과만을 바라봤기 때문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반박했다.
일하는 여성에 대한 차별은 결혼이나 출산문제에 직면했을 때 더욱 심각하게 나타난다.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센터 온라인 상담실에는 결혼이나 출산에 관한 상담이 줄을 잇고 있다.
한 여성은 "결혼계획을 밝히자 상사에게 ‘언제 그만 둘 거냐’는 말을 들었다"며 상담해왔으며, 다른 구직자는 합격이 확정된 후, 뒤늦게 결혼했다는 사실을 안 회사가 합격취소 통보를 했다고 밝혔다. 출산휴가나 양육휴가 사용으로 회사와 마찰을 빚다가 결국 권고사직을 당하거나 스스로 그만둬야 했다는 상담자들도 허다했다.
손영주 사무처장은 여성이 회사를 그만두는 이유로 크게 두 가지를 꼽았다. 첫째로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본인의 능력과 무관하게 지속되는 차별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때이고, 둘째는 바로 임신, 출산, 양육으로 직장 생활을 유지하기 힘들 때다.
손 사무처장은 '쓸 만하면 그만두는 여자보다 당연히 남자를 선호하게 된다'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 위의 두 가지 경우를 들며 "위의 두가지 문제는 여성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오히려 쓸 만한 여성을 일에서 퇴출시키고 있는 사회구조와 기업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하는 여성을 원한다면
통계청이 발표한 4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남성경제활동참가율은 75.1%,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은 50.4%로 많은 차이를 보인다. 실업률은 남성 3.5%, 여성 3.4%로 나타났다. 또한 지난해 발표된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2002년을 기준으로 남성임금을 100.0으로 할 경우 여성의 임금은 63.9%에 불과하다.
일하는 여성이 되는 것도 힘들지만, 일하는 여성으로 살기는 더욱 힘들다. 거기에 결혼과 출산까지 겹친다면? 그야말로 여성은 일과 결혼(혹은 출산) 둘 중 하나는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임신 사실을 회사에 알린 영양사가 일방적인 계약해지를 당하고, 8년 동안 직장생활을 한 여성은 출산휴가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직장에서의 여성에 대한 차별이 낮은 출산율 문제만 낳는 것이 아니다. 채용과정과 직장 내에서의 성차별은 여성인력 활용을 크게 저해하고 있다. 이는 남녀불평등의 문제를 너머서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도 엄청난 비효율을 낳을 수밖에 없다.
손영주 사무처장은 “여성노동자에게 가해지는 성차별을 근절하는 것은 크게는 국가 생산력 발전에 기여할 것이고, 남녀 관계에서는 가정경제 책임에 대한 부담을 나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손영주 사무처장은 이어서 남녀고용평등법이나 남녀차별금지및구제에관한법률에 명시된 차별금지가 현장에서 이루어지기 위한 방안으로 관련부처의 적극적인 행정감독과 더불어 성차별에 노출돼 있는 여성노동자들의 적극적인 문제제기와 권리 찾기 시도를 요구했다.
또한 노동시장의 성차별 해소를 위한 권리구제기관 담당자의 양성평등의식과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를 위해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는 '왕초보 내힘으로 권리 찾기'등 법권리 책자를 해마다 발간하고 있으며 여성노동영화제 개최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성차별 해소는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사회 전체, 나라 전체를 봤을 때도 직장 내에서의 성차별 해소와 여성인력의 적절한 활용은 매우 중요하다. 기업 내에 여성 노동문제에 관한 전담 체제를 마련하거나, 성차별 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위원회 등을 설치하는 것도 성차별 방지를 위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사업장마다 ‘남녀평등지수’ 등을 개발해 주기적으로 보고서를 작성, 공개하도록 하는 등 여성 노동자들의 자체적인 노력을 이끌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여성만이 아닌, 정부와 사회 전체가 나서야 직장 내 성차별 문제를 풀 수 있기 때문이다.
/김미정 기자 (kkaaee@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