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클로저의 포스터를 보았을 때, 내가 아는 배우가 세명이나 나와서 살짝 볼까, 말까를 고민했었다. (오션스 일레븐을 제외하고 내가 아는 배우가 1,2명 이상인 작품은 이게 첨이다.) 무슨 내용인지 무척이나 궁금은 했으나 꼬옥 봐야지! 하는 마음은 없었다. 그런 내가 일요일 아침, 조조로 그것도 상암CGV에서는 상영하지 않아서, 서울극장까지 가서 보는 수고까지 하게 된 것은 로렌초의 시종님 덕택이다.

영화 얘기에 앞서 사족부터 달자면, 내가 이 영화를 당당히 혼자 끊어서 영화관에 들어선 순간, 상영관에는 아무도 없었다. 영화 시작은 9시 반인데, 그 시간이 넘도록 사람도 안들어 오고 광고도 나오지 않는다. 순간 나는 혼자서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설마, 보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고 해서 상영안하는 건 아니겠지?'라는 지금 생각하면 조금 말이 안될 듯한, 당시에는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9시 40분쯤 아저씨가 들어오시더니, 아무도 없는게 가운데 앉아요. 하곤 나갔다. 그리고선 2,3분 뒤에 여자분 두사람이 들어왔고, 그래서 3명이 조용히 영화를 보았다.

첫 오프닝 장면에서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걷던 댄과 알리스는 서로에게 첫눈에 반했다. 낯선 이방인과의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렇게 걷던 두사람에게 알리스의 사고는 서로에게 다가가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고, 그날부터 그들은 연인이 되었다. 영화는 시시콜콜 그들의 연애과정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관객은 그저, 짐작할 따름이다.

댄과 알리스, 댄과 안나, 안나와 래리, 래리와 알리스. 얽히고 얽힌 관계로 인해 이들의 관계는 복잡하다. 남자들의 심리는 역시 이해하기 힘들다. 어째서, 그러는 걸까. 영원한 사랑은 없다고 사람들은 말하고, 과학적으로도 증명해 냈다. 영원한 사랑을, 평생토록 함께하는 사랑을 꿈꾸는 것은 내가 아직 어리기 때문일까? 한번도 본적도 없으면서 나는 그냥 꿈꾼다. 사실, 사랑은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유지하는 것은 서로의 노력이다. 감정은 영원하지 않으니까, 싫어하던 사람을 좋아할 수도 있고, 좋아하던 사람을 싫어할 수도 있는 것이다. 노력없이 쭉 감정이 이어지지는 않는다.

댄과 안나는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 이미 서로에게 자신들의 사람이 있음에도 그들에게 충실하지 못했다. 배우자에게, 연인에게 충실하지 못하고 바람을 피우는 것은 대부분은 일시적이다. 사랑한다고 해서, 이혼까지 하더라도, 갈라서더라도 그렇게 하게 된 동기의 사람과 끝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영화얘기하다가 엉뚱한 곳으로 빠졌다. 아무튼, 영화는 한편으로는 적나라하게, 한편으로는 환상적으로 일상을 보여주고, 이야기한다. 알리스와 래리는 최선을 다했다. 충실하지 못한 것은 안나와 댄이다. 래리의 사랑 혹은, 집착으로 안나는 다시 댄을 떠나 래리에게 돌아갔고, 결국 댄도 다시 알리스에게 돌아가지만 그 스스로 알리스가 떠나도록 만든다. 치졸한 남자들.

마지막 장면이 마음에 든다. '이제부터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댄의 곁은 떠난 알리스는 혹은 제인은 당당한 걸음으로, 뉴욕의 복잡한 거리를 걷는다.

알리스는 최선을 다해 댄을 사랑했고, 댄을 용서했다. 그러나 댄은 웃기게도 알리스에게 끈질기게 물어댄다. '괜찮아, 진실을 말해줘.' 이미 알리스는 알고 있다. 진실을 말한다면, 댄은 그것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렇다고 거짓을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댄이 이미 진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사랑할때는 진실하게 최선을 다해서 했고, 떠날때는 가차없이, 미련없이 떠나갔다.

우습게도 남자들은 자신들은 바람을 피워도 아내의, 연인의 바람은 용서하지 못한다. 바람 자체는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라면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안나를 추궁해서 결국은 래리와 잔 사실을 알아낸 댄은 안나를 질리게 만들었고, 그를 떠나 래리에게 가게 만들었다. 후회해 봐야 이미 떠나버린 배이다. 안나를 돌려달라고 래리에게 찾아가 울부짓었지만, 래리는 승자(?)의 여유로 맞받아친다. 기가차고 어이없던 한가지는 래리가 알리스에게 찾아가라며 주소를 주었을때 고맙다고 하던 댄이다. 다시 알리스를 찾아가는 댄이다. ...안나를 돌려달라고 찾아간 남자가 결국은 알리스에게 간다? 이해불능. 어쨌든, 래리는 댄에게 완,벽,하,게 복수했다. 안나를 되찾았고, 댄은 혼자가 됐다.

이미, 안나의 경우에서 깨달았어야 할 댄은 그럼에도 알리스에게 집요하게 추궁한다. '그와 잤어?' 라고. 이미 진실(혹은 진실이라고 아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정말이지, 뭐라고 해야 할까, 그는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이같다. 하지만, 순수하지 않는 아이. 댄은 과연 언제서야 진짜 어른이 될까?

사랑은 어렵다. 절대 쉬운게 아니다. 시작하는 거은 쉽지만, 유지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한순간의 실수로 사랑을 잃는다면 그것은 손해가 아닐까? 한순간의 실수조차 용서하지 못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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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위로 2005-02-14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가, 과연 사랑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까?

로렌초의시종 2005-02-14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을 읽고, 추천까지 하게 되서 정말 기쁩니다. 그렇죠. 사실 이 영화에서 굳이 승과 패를 말한다면, 단연코 남자쪽이 패배입니다. 그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없었던 댄은 눈에 띄는 패자, 자신에게 진심은 떠나버린 여인을 기어이 품에 안을 수 있었던 래리는 눈에 띄지 않는 패자. 물론 지극히 평범한-인간적인- 래리는 자신이 패배한 지를 모르겠죠. 좋은건지 나쁜건지. 아무튼 제가 작은위로님께 그토록 수고를 끼쳤다니 기쁘기도 하고, 조금은 죄송스럽네요. 영화는 맘에 드셨나요? 요즘 그러고보면 알라딘에 클로저 리뷰가 풍년이어요.

작은위로 2005-02-15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앗, 그러고 보니 제가 빠뜨렸어요, 이 영화를 보게 해준 로렌초님께 감사하다고 해야 하는데 말이죠. ㅎㅎㅎ
제 생각은요, 모르는게 약이다란 말처럼 래리는 모르는게 좋아요. ^<^
클로저 풍년인가요? 후훗. 좋은 일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