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첫 회사에 입사하기전 면접을 볼때의 일이다. 내 앞에 앉아계셨던 면접관들 몇분은 나에게 물었다. 어떤 쪽에서 일하고 싶냐고. 혹시 경리과 쪽에서 일해볼 생각이 없냐고 물었었다. 아마도 나에게 있었던 부기2급자격증을 보고서 물었던게 아닌가.. 싶다. 나는 당당히 싫다고 대답했다. 가능하다면 그쪽관련업무는 하고 싶지 않다고.
그렇게 면접을 봐놓고 나는 떨어졌겠거니, 했다. 웬걸. 턱하니 붙었다는 합격통지가 날아왔다. 취업과로 터덜터덜 걸어가면서도 내가 왜 붙었나, 싶었었다. (아무튼 그때, 1학기 기말고사를 안볼수도 있었는데, 열성적인 선생님으로 인하여 졸지에 안봐도 될 시험하나 더 보고 취업했었다.)
내가 근무하게 된 팀은 생산관리쪽이었는데, 여직원 채용은 내가 첨인듯 싶었었다. 아무튼 한달여 가량을 깨작깨작거리면서 캐드도 만져보고 이것저것 업무를 조금씩 익혀갈 무렵이었다.
회계, 경리쪽에서 일하던 언니(당시 학교 선배였다.)가 그만두게 된다는 통보있었고, 졸지에 내가 그쪽으로 옮겨가게되었다. 내 험란한 회계경리 일상의 시작이 그때였다. 여직원 둘과 대리급 남직원하나, 그리고 부장. 이렇게 넷이서 꾸려가던 중에 총무쪽에 결원이 생겨 대리급 남직원이 총무과로 발령나고하더니 얼마있지 않아서는 웬걸 부장이 같이 일하던 언니를 너무 괴롭혀서 언니가 회사를 그만두기까지 했다.
덕분에 얼떨결에 혼자 남은 나는 죽을둥 살둥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내야 했다. 컴퓨터관련자격증이 있다는 이유로 전산관련 업무도 했고, 각종 세금신고도 혼자서 다했고, 출납에, 회계업무까지 했으며, 수입관련업무도 했다. (물론, 영어가 부족한 이유로 서류정리하고 결재올리는게 다였지만.) 8시 출근에 7시 퇴근이던 그 회사에서 나는 홀로 늘 늦게 까지 남아서 일할 수 밖엔 없었다.
너무 너무 힘들어서, 일도 그렇지만 후에 들어온 남직원으로 인해 무척이나 힘들었었다. 아무튼 그렇게 힘들어서 나는 어느날 사표를 집어던지고 바로 다른 회사에 입사했고,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여기와서도 처음엔 무척이나 좋았고 편했다. 일도 별로 없었고, 부딪치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그렇게 반년을 넘게 나는 행복했다. 연말이 되자 일이 많아지면서 나를 부려먹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 물론, 내가 소속되어있던 팀이 공중분해되면서 일어난 일이다.
지금의 팀장은 나를 데려가려고 - 당시 그녀는 과장이었음에도 밑에 직속이 한명도 없었다. - 당시 내 직속상관이던 부장님께 위로는 일도 잘하고, 어쩌고 저쩌고 엄청난 칭찬과 함께 나에게도 참 잘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남들은 다 알던 팀장님의 본색(?)을 반년넘게 혼자만 몰랐다.
점차 나는 팀장의 모습을 알아갔고, 혼자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어찌보면 내가 여기까지 버텨온것은 기적일지도 모르고, 그만큼 내 성격이 더러워서 일지도 모르고, 물들었는지도 ...모른다.( 이 생각하니까 너무 너무 두렵다.)
수학은 좋아하지만, 수학는 푸는 재미라도 있지, 이건 완전히 죽노동이다. (그래, 죽노동. 별다른 말이 필요없다.) 요즘같은 시대에 손으로 직.접 장부기장을 하는 회사는 여기뿐이다.(사실, 이건 보여주기 위한 일이다. 회계장부 같은걸 보기 싫어하는 회장님 덕에 내가 고생하는 것이지.)
어쨌든, 내년안으로 나는 이 회사를 떠날 것이다.(이건, 정말 확고한 결심이다. 이제나도 졸업반이니까, 전공쪽을 가능하면 살리고 싶은거다. 도전은 해봐야지.) 그리고 두번다시는, 가능하다면, 절대로, 회계나 경리업무는 하지 않을테다. 이건 정말 싫다. 5년가까이 해먹었으면 됐다.
언젠가 내 친구가(내가 경리쪽 업무를 한다니깐) '넌 단순하니까 잘할거야.'라는 말로 나를 구렁텅이에 집어쳐 넣은 적이 있지만, 내가 알고, 이제는 그 친구도 알듯이 난 절대 단순하지 않고, 알고보면 무지 복잡하고 예민하다. 단순하다 복잡하다도 그 업무에 대해서 말할수는 없지만, 없겠지만, 어쨌든 단 하나는 확실하다. 내가 아무리 그 업무를 몇년간 별 트러블 없이 잘 해왔다고 하더라도(팀장이 뭐라건 난 내 나름의 최선이었다는 걸 안다. 남들도 알더라.) 내 적성이 아니라는 것을.
숫자놀이 이제는 탈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