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폴리냐크, 내게 와서 함께 울어주세요, 당신의 친구를 위로해주세요. 방금 나온 판결은 지독한 모욕입니다. 나는 고통과 절망의 눈물로 뒤범벅돼 있습니다. 사악한 사람들이 내 영혼을 구겨버릴 온갖 수단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듯한 이때에 우리는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어요. 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요. 그러나 나는 언제나 착하게 살려고 노력했고, 앞으로 세 배나 더 착해져서 악한 사람들을 이겨낼 것입니다. 그들은 나를 괴롭힐 수는 있겠지만 내가 복수에 나서도록 할 수는 없을 거예요.

심술궂은 사람들이 내 영혼을 얼어붙게 만들 모든 방법을 냉정하게 계산해 놓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선행을 세 배로 늘이면서 심술궂은 사람들을 이길 겁니다. 나 자신을 복수로 몰아가는 것보다 나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 더 쉽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마지막으로 시누이에게 남긴 편지(유언)에 그들을 용서한다고 했다. 죽기 직전에 적힌 쓴 글이기에 가식일 수도 있을까? 그건 아닌것 같다.
복수보다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 더 쉽다고 했던 마리는 어쩌면 프랑스의 왕비가 아니었다면, 아니 왕비만 아니었더라도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녀의 불행은 그 성격에 맞지 않는 왕비가 되었다는 것이고, 하필이면 무너져가는 프랑스 왕정에서 외국인 왕비로서 살아가야 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마도 죽어서도 내 적, 나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빈말로도. 용서하지 못하기에 괴롭고 아프지만, 그래도 용서하지 못할 것 같다.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는 그 유명한 말을 남겼던 그녀가 위의 말들을 남겼다는 것이 조금 아이러니 같기도 하면서, 그만큼 그녀가 철이 없고(?), 세상을 몰랐다고 생각한다. 순진했던 것일까?
무지는 죄가 된다. 그녀는 몰랐기에 죄인이었고, 자신을 억누르지 못했기에 죄인이었고, 외국인이었기에(특히나, 오스트리아인이었기에) 죄인이었다.

용서가 과연 복수보다 쉬웠을까? 어려웠을 것이다. 목걸이 사건이 끝나고 나서 왕비가 과연 복수할 만한 시간이 없었다고 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사실은 복수하고자 했지만, 노느라고 바빴던 것일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용서이다. 그리고 철없고, 자유분방했던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걸 쉽게(어쩌면, 어렵게) 일구어 냈다. 그것은 대단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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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11-11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이 없었다기 보다는 한이 많지 않았나 싶습니다. 시집올때 발가벗고 왔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무척 멸시와 모욕을 받았다더군요. 자기 나라 국민이라 생각했으면 안그랬을지 모르지만 남의 나라 국민이라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여자의 일생이 남자에 의해 좌우되었던 시기니 그렇게라도 화를 풀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전 그녀가 불쌍해요...

작은위로 2004-11-11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는 사람 하나없이, 시녀하나도, 입고 있던 옷조차도 가지고 오지 못했던 것이기도 하고, 시집와서 일년도 안돼서 자신이 프랑스로 올 수있게 힘썼던 슈아죌 마저도 사라져버려서 자신을 비방하려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있었기에 많이 힘들었을 거라고 저도 생각해요. 거기다가 창녀 출신인 마담 뒤 바리에게 굴욕적인 모욕도 많이 당했을거구요.(책에는 몇장면 안나오지만요.)

음, 단지 저는 그렇기에 더 그녀가 조심했어야 하지 않나 했던 것입니다. 온통 적뿐인 곳에선 더욱더 조심하고 몸을 낮췄어야 하지 않나... 그랬다면 그 삶이 그렇게까지 불행하게 끝맺지 않았지 않을까... 했어요.

뭐, 어차피 그녀가 어떻게 살았건 간에 그 당시의 사람들은 그녀를 이용했을 테지요. 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외국인 특히나 적대국인 오스트리아 출신의 왕비는 좋은 표적판이 되어 주었을 테니까요.

철없다는 표현은, 아무래도 베르사유의 장미를 본 기억에서 연유 된것 같기도 하고요...^^

저도 그녀가 많이 불쌍하답니다. 그녀는 프랑스 혁명기의 최대 피해자 일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