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약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이런 것밖엔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안타깝게 죽어간 사람을 위해서 추모의 검은 띠를 두르는 일 정도밖엔 없을 것이다. 많은 님들의 말씀처럼 우리에겐 이라크의 사람들을 욕할 권리는 없다. 우리 또한 지난 세월 일제를 몰아내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그들과 싸우고 또 그들을 죽인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애국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렇기에 지금 우리에게는 과격단체로 불리우는 그들도 그네들에게는 애국자이다. 비폭력무저항이란 간디같은 성자(?)나 가능한 일이지 평범한 우리나 그네들에게 비폭력과 무저항이 어디 될말이던가. 그리고 먹힐 나라던가. 그 땅덩이만 커다랗고 욕심만 많은 그 나라가.
애초에 나는 이라크 파병에 대해서 반대의 입장도 찬성의 입장도 아니었다. 무관심이라기 보다 어떤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부족했기 때문이리라. 전쟁의 참혹함을 나는 절실히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전쟁이라는 것이 인류의 가장 커다란 죄악이라는 것 정도는, 그것이 가장 커다란 슬픔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있다. 하지만 미국의 강한 힘앞에서 힘없는 이나라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네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수밖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강함을 알고 우리의 약함을 절실히 알고있기에...
애초에 이 나라가 여기까지 온 것은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고 어린 내가 무엇을 안다고 지껄여 댈수있겠는가마는... 그래도 적어도 우리가 무조건 파병을 거부할 수있는 힘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 알 뿐이다.
내 친구는 지난 이라크파병때 후발대로 잠깐 이라크에 대녀왔다가 그 후에 바로 제대했다. 얼굴을 맞대고 만난 적이 없기에, 그들의 상황에 대해서 들을 수는 없었지만 예상을 할 수는 없다. 아마도 우리는 그들에게 용서할 수 없는 역겨운 적일 뿐이다. 혹은 더러운 위선자일 것이다.
그네들은 말하고 있다. 너희들은 우리를 위해 온것이 아니라, 미국을 위해 온것이라고....
난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적어도 이라크인들을 위해서 간 것은 정말 거짓으로라도 그렇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난 적어도 미국을 위해서 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우리가 간 것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이겠지... 이기적이게도..(정치인들의 생각을 알 수는 없지만.. 지금의 상황으로 이야기 해본 다면 말이다.) 침략당하고 그네들의 도움인척하는 위선의 손길에 상처받고 또 이용당하고 했던 우리의 과거를 본다면 우리는 미국의 손을 잡고 이라크에 가선 안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파병하지 않으면 다음 목표는 북한이다.'라고 말하는 (대놓고 한것이던가, 아니었던가...-_-) 미국을 향해서 '파병불가'라고 말할 수는(그런 용기가 우리의 국회의원들에게 있을리가 없다.)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내가 정치인들을 믿어서가 아니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아니다. 쓰레기같은(!) 정치인들이 하는 생각따위야 내가 어떻게 알 것이며, 그들에게 희망따윈 더더욱 가지고 있지도 않지만. 모든 것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나 자신만을 위해서 동족도 팔아 넘길수 있는 적은 수의 혹은 많은 수의 한국인들의 잘못으로 인한 약한 국력일지도 모른다. 아니, 알수없다. 사람들의 생각은 모두 다르니까.
적어도 난 우리나라가 포로 한명을 살리기위한 노력을 했으면 한다. 자세한 사정은 알지 못하니까. 무어라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지금 나는 더이상 실망할때도 없던 정부에게 또다시 커다란 상처를 받으며 실망하고야 말았다. 이라크에 살고있는 우리의 교민들은 지금 현재 불안에 떨며 제2의 김선일씨가 나올지도 모른다며 두려워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현실을 보면 파병을 해야한다는 노무현 대통령과 보복을 해야한다는 일부 과격론자들의 논리가 앞서나아가고 있다. 도대체 무엇에 대한 보복이란 말이던가.
적어도 앞서 말했듯이 가장 큰 죄인은 바로 이나라가 아니었던가!
파병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찬성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꼭 파병을 해야만 하는가!!
그렇게 파병을 해서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국제사회의 약속이란것이 이나라 국민들의 목숨보다도 소중한가?! ...적어도 다수를 위해서 소수를 희생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가 아니길 바란다. 소수를 위해 다수를 희생하자는 논리도 말이 안되겠지만 다수와 소수가 모두 함께 살아갈 수있는 방향을 모색했으면 한다. 그것이 불가능이라고 치부하지 말고. 세상에 불가능이 어디있을까? 해보지도 않고 불가능부터 외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횡설수설이 되고 있지만 적어도 적어도 한번만 더 생각을 해주었으면 한다. 우리에게 일본과 미국이 증오의 대상이듯이 이라크인들에게 우리는 또 증오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그건 정말이지 슬픈일이다.
조금 안타깝기는 하지만 위험한 것을 알면서 이라크로 간것은 그의 선택이기에 슬프지는 않다. 다만 내가 안타까운 것은 이 나라의 약함과 비겁함이다. 그로인해 애꿎은 국민하나가 낯선 이국의 땅에서 살해당해야 했다는 것이다.
살고싶었을, 꿈을 이루고 싶었을 김선일씨가 돌아오지 못하고 죽어야만 했던 것은 아마도...
그가 죽어서는 평안했으면 한다. 그의 가족들의 슬픔이 쉬이 가시지는 못하겠지만 우리네들의 위로가 그네들에게 들리지는 않겠지만 위안이 되기엔 너무 위선적이겠지만 그래도 그들도 슬픔을 이겨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