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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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상의 무서움에 대하여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공동체를 이루고 살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생각이 필요하다. 이런 생각이 발전하여 이론이 되고, 사상이 되고 사람들의 행동, 의식을 결정하는 사회적 규범이 된다.  그런 이론, 사상이 애초에 인간 중심이 아닌 순간 무서우리만큼 흉악한 무기로 변한다.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치가 그러했고, 책에 나오는 맬서스의 인구론이 그러하다. 사상의 무서운 점은 그것이 실체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이 옳지 못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이 정답인 것처럼 느낀다는 것이다. 교육이 역할을 하지 못하면 정도는 심해진다. 맬서스의 인구론은 한국의 교육 과정에서도 등장하는 이론이다. 인구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그에 반해 식량은 인구의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이론이었다. 여기까지만 가르친다. 그럼으로써 나타날 있는 문제점이나 해결책은 전혀 제시하지 않고, 단지 이론의 설명뿐인 것이다. 여기까지 정도 배운 사람이 스스로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기아와 인구과잉의 문제를 동시에 경우, 인구의 적절한 유지를 위해 기아를 묵인하는 태도를 보일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얼토당토않은 이론이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교육과정에 여전히 쓰일 정도로 영향력이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현재 더욱더 심해지고 있는 기아의 문제에 대해 해결할 의지조차 내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들 모두는 안다. 기아의 문제가 선진국들의 탐욕적인 경쟁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국민이 아둔할수록 국가는 더욱더 탐욕을 드러낸다.  국민들이 왈가왈부하지 않는 이상, 국가의 정책을 견제할 있는 것은 국제기구뿐인데, 지금의 국제기구는 단지 허수아비의 역할을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금의 경제 위상을 가진 것에 비해 빈곤국을 도와주는 정도가 너무나 낮다. 국제개발원조에 투여하는 금액은 다른 선진구의 평균에 한참 미치지 못하고, 그나마도 보여주기 식의 성과 위주 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원조금액을 늘려야 한다고 몇몇의 전문가들이 주장할 때마다, 아직 우리는 진정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지 못했다, 아직 개발이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국가는 주장하며 탐욕을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국민들은 그런 국가의 말이 그럴 하게 들리니 아직도 잘살아보세 외치며 국가를 위해 헌신한다.  사회지도층으로써 이보다 좋은 국민들도 있을까.  자신만의 사상이 없으면 사회의 사상이나 이론에 휩쓸리기 쉽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론이 조금만이라도 형성되는 순간 유난히 동조의 모습을 보이며 과격하게 행동한다. 자신만의 사상이 없으니 사회의 사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열성적으로 동조하기 때문이다. 특히 걱정스러운 부분은 우리나라의 강점인 IT이다. 세계 최상위권의 스마트폰의 보급률이 유지될수록 우리는 점점 아둔해져 간다. 일인당 독서량을 끝을 모르고 떨어지고, 도서정가제는 현실은 반영하지 못하고 좋은 취지만을 살려 강행한 탓에 책에 대한 관심을 떨어트리고 있다. 정부가 우리나라의 일인당 도서관수가 개도국보다도 못하는 현실을 알면서도 공공도서관을 적극적으로 늘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진국들이 바뀌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선진국의 국민들이 바뀌어야 한다.

- 커피 잔에 대하여

책은 카페에서 읽어 내려갔다. 3,000원짜리 카페라떼를 시켜놓고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노래가 나오는 쾌적한 공간에서 난민 캠프의 참상과 그곳에서 간호사들이 생명을 선발하여 영양주사를 주고, 선발되지 아니한 난민들은 천천히 죽어가는 내용을 읽었다. 순간 나의 행동하지 않는 모습이, 경제 대국의 혜택을 받고 있는 나의 모습이 옳지 않은 것만 같았다. 나의 3,000원으로 명의 아기들에게 생명을 연장할 기회를 있는데도 나는 먹지 않아도 나의 건강에 아무런 이상이 없는 커피를 마셨다. 이것이 과연 올바른 행동인지 자신에게 반문해 보였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는 행운을 누렸기 때문에 이것들을 당연히 누려도 되는 것인지 아니면 동안 내가 엄청난 불균형을 단지 미디어를 통해 정제된 장면만 봐서 진실을 몰랐던 것이었는지. 작가는 책을 통해 우리들의 원조의 손길이나 긴급 구호활동보다는 보다 많은 이들이 진실을 알기를 원했다고 하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진실만 알았을 변화하지 않았다. 책을 읽었을 때에는 당장이라도 정기후원금을 시작하고 여유 자금을 아프리카에 보내야지라고 마음 먹었지만 하지 않았다. 내가 보내봤자 크게 달라지겠어라는 미약한 힘이라고 포장하며 말이다. 그러면서 커피를 마신다.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양심을 마셔 없앤다.

- 개혁자에 대하여

책에서는 빈곤국에서도 개혁의 모습을 보인 적이 있다고 한다. 교육이 어렵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개혁자는 반드시 나온다. 책에서 나온 이들은 칠레의 아옌데와 부르키나파소의 상카라였다. 젊은 개혁자들로써 문제의 근본이 무엇인지 정확히 꿰뚫고 있었고, 영향을 발휘할 있는 자리에까지 올랐다. 하지만 모두 죽임을 당하여 개혁이 일어나지 못했다. 저자는 빈곤국들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해외의 원조가 아닌 나라의 구조가 개혁적으로 변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내부에서 진정한 변화를 통해 근본부터 바꾸어야 중심을 잡고 일어날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개혁자들을 발굴해 내는 방법이나 여건은 말하지 않은 단순히 개혁자가 나타나 개혁을 이룰 때까지 빈곤을 버텨야 한다는 식으로 서술하였다.  하지만 이유는 아마도 개혁자가 나타나는 원리는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지 않을까.  개혁가는 범인들과는 다른 시각을 가지고 멀리 본다. 누군가 그런 방법을 알아 낸다면 모든 사람들이 그런 시각을 가지고 보기 때문에 개혁가라고 없다. 하지만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는 말이 있듯이, 어려운 시기에 개혁가가 많이 나오는 것만은 맞는 같다. 어려워질수록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은 많아지고 그것이 응축되어 개혁가가 탄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갈수록 위험해지고 어려워지는 한국 사회에서도 개혁가가 필요하다. 미봉책을 만들어내는 기성세대적인 사상가들이 아닌 뿌리부터 흔들 있는 개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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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장
윤흥길 지음 / 현대문학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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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지 알아?. 우리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말이다. 외국에서 음주문제로 경찰에게 걸리자 말도 통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우리의 한글을 전파한 고위 공무원이 있는가 하면, 최근에는 국회의원이 대리기사에게 한번 말을 날리고 거기에 모자라 폭행까지 했다는 의혹까지 나왔다. 이쯤 되면 유행어라고까지 만하다. 유명 개그프로에서 쓰이지 않을 뿐이지 고위공무원이나 상류층의 자리에서는 종종 쓰이다가 이렇게 흘러나오는 것만 같다.

김두한. 책을 읽으며 실존인물 인물이 종술과 가장 닮았다고 생각했다. 종술과 마찬가지로 시장에서 주먹깨나 쓰면서 자리를 잡은 김두한은 정치권에서 완장을 달아주자 몇몇의 의미 있는 활동을 남겼으나 도를 넘은 그의 행동은 국회오물투척사건으로 단번에 이해할 있다. 물론 상황자체가 사카린을 밀수입한 상황이기에 지탄 받아 마땅한 상황이지만 그것의 표현 방식이 완전히 어긋나 버렸다. 완장을 찼다는 것은 그에 맞는 행동, 책임도 따르겠다는 의미인데, 오물을 투척하는 것은 시장 싸움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지 대표성을 지닌 국회에서는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통쾌해하고 시원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걸 용인하는 우리들의 태도로 인해 지금의 폭력정치, 주먹정치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남아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임종술의 몰락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중반부를 넘어갈수록 더해지는 임종술의 횡포에 그의 몰락도 극적이었으면 통쾌했을 것이다. 하지만 임종술은 해고를 당했음에도 다음 내정자를 반협박하여 모두 고사시켜버리고 완장을 끝까지 지키다가 부월이와의 사랑을 위해 완장을 버리고 도망가 이야기가 끝나버렸다. 도망가기 전에 과거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에게 꼼짝없이 걸리어 훈시의 말을 들어 그의 잘못을 고하지만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부월이의 사랑이었다고 생각한다. 완장과 완력으로 악랄하게 살았던 종술이를 사랑으로 약간은 낭만적으로 포장하여 보내 버린 것이 아닐까. 물론 마지막 그가 완장을 부월이에게 건내며 포기하는 장면은 그가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것으로 있는데, 더욱 극적인 추락이 시원하고 통쾌했을 같다. 힘으로 과시하는 사람에게는 훈계나 지적은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약 익삼의 입장이었다면 장정 네다섯을 써서 반죽음이 되도록 혼쭐을 내주었을 것이다. 상당히 야만적이고 비이성적인 방법일수도 있지만(사실상 그러하다.) 몰상식하고 야만적이게 완력을 과시하는 사람들에게는 완력이 결코 독보적이지 않다는 보여주어야 깨달을 있다고 생각한다. 책에서도 종술은 교장선생님의 집에서 훈시의 말을 오랜시간 듣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언제 지루한 훈시가 끝나고 부월이를 보러가냐는 걱정으로 가득 있었다.  완력으로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원시시대 사냥으로 생계를 이어갈때나 가능할 법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현대의 시대에서는 교화가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처음에도 말했듯이, 한국에는 완장에 살고 완장에 죽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흡사 임종술이가 명도 넘게 있는 같다. 완력이 세지 않아 다행이지 완력까지 스스로 갖추었다면 일반인들은 완장을 몰라봤다는 이유만으로 원산폭격 해야 할지도 몰랐겠다.  이렇게 완장에 죽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기 위해서는 세우기 문화부터 없애야 한다. 성적 세우기, 대학교 세우기, 업무 세우기 등등 모든 것을 줄을 세우고 제일 잘한 사람에게만 감투를 씌어 주는 사회는 완장의 힘이 가장 강력할 있는 사회이다. 만약 남이 완장을 차던 말던 내가 상관하지 않는다면 완장은 힘을 잃어버릴 것이다. 책에서도 저수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어도 완장을 보면 괜히 피하고 무서워하였다. 그런 스스로의 완장에 대한 인식이 완장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누가 알아봐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완장이 아닌 단지 왼팔에 두른 두건의 역할 뿐일 것이다.  그런 개인의 인식은 사회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에 사회를 우선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를 바꿀만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완장을 현인이 나타나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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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어드 - 우리가 그들이고 그들이 곧 우리다
데브 팻나이크 지음, 주철범 옮김, 현용진 감수 / 이상미디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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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 어느 이른 아침, 뉴욕에 살고 있던 젊은 디자이너 패티 무어는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          공감에 대하여

  본문에 나온 공감의 예시를 기억나는 대로 적어보면, 휠체어에서 2주간 체험, 자동차 주차공간이 없는 할리 데이비슨, 폭력성 게이머들의 공감에 성공한 MS Xbox. 해리 백의 다이어그램 지하철 노선도, 분사시키지 않고 거대 회사를 그대로 유지, 성공시킨 IBM 거스트너, 연주자들과 수없이 어울리며 최고의 심벌즈를 만들어낸 아베디스 질지언사, 영국에서 국산 농산물 소비운동을 시작한 니나 플랭크, 직접 식당에서 일을 하며 만들어낸 만화 영화 라따뚜이’, 대학가를 방문해서 관찰을 통해 스포츠 패션 분야을 개척한 나이키 등등 많은 성공 사례들이 등장한다. 외국 작가가 책이기에 외국 사례들만 나온 것은 이해할 있어도, 국내의 성공적이 사례를 스스로 생각해 보려 해도, 나지 않는다.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역시나 고스펙 시대, 다스펙 시대로 이어지지 않나 싶다. 공감이라는 것은 본문에서처럼 대상과 오랜 시간 같이 지내면서 교감을 하고 이해를 하면서 생겨나는 것이고 그것을 토대로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생산적이지 않는 추상적인 공감을 용인하지 않는다. 영어 점수, 대외 활동 구체적이고 정량적인 지표를 원한다. 그리고 가지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잘하기를 원한다. 단군의 홍익인간 정신은 정말 죽어도 지키는 같다. 때문에 우리 사회의 사람들은 공감할 시간, 주위 사람들을 돌아볼 시간에 점수를 올리기에 바쁘다. 이런 사회에서는 아이디어는커녕 대상을 이해하기도 힘들다.  미국의 실리콘 밸리가 끊임없이 새로운 스타트업을 쏟아내며 명성을 이어가는 데에는 공감처럼 어찌 보면 쓸데없는 행위에 관대하고 허용하는 분위기를 지니고 있어서 것이다. 미국과 대비하여 우리나라는 대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걱정할 일이다. 현상유지를 해보았자 경제성장률은 쥐꼬리만큼이고 내로라했던 대기업들은 이제 세계에서 힘을 잃어간다. 새로운 벤처 기업이 대기업으로 사례는 아예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분명 능력이 있는데 그런지 모르겠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원체 공감의 능력이 특별하다. 본문에서 인간에게는 거울 신경이란 것이 존재해서 다른 사람의 감정을 똑같이 느끼는 능력이 있다고 했는데, 우리는 동안 그것을 이라고 불렀을 뿐이다. 외국인들도 정이 너무 좋아서 한국을 다시 찾아올 정도로 공감 능력이 특히 발달했는데, 엉망진창인 사회구조가 우리 국민의 특출 능력마저 억누르고 있다. 청년의 5 1명이 취업을 못하고 그나마 취업을 자들도 1 계약직이 대부분, 직장에 들어가도 40대까지 버티지 못하고 나가라고 하는 것이 다반사, 자영업은 이미 레드오션열거할수록 더욱 암담한 현실인데도 딱히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아마 우리 국민의 특출 공감능력이 발휘되어 나만 힘든 것이 아니고 너도 힘들고 우리 모두 힘드니 참고 살자라고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디자인 씽킹에 대하여

지난 학기 들었던 수업 중에 책과 정말로 유사한 개념을 배웠던 적이 있었다. 디자인 씽킹이라는 방식이었는데, 평범한 같은 사람들은 어려워했던 수업이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디자인이라 하면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디자이너들이 어디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디자인 씽킹은 디자인을 쓰는 사람들을 먼저 관찰하고 이해한 뒤에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 대상을 설정하고, 대상에 공감하고(empathy), 공감을 바탕으로 문제를 도출하고(define problem), 문제를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내고(ideate), 아이디어를 구체화 시켜보고(prototype), 구체화 시켜 대상에게 적용(test)해서 좋으면 발전하고 아니면 이전의 단계들로 돌아가는 것이 기본 구조이자 주요 구조이다. 처음에 개념을 배웠을 때에는 ideate,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구나라고 어림짐작을 했었는데, 완전히 틀렸다. 학기의 중반이 지나가도록 empathy 머물러 있었다. 대상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 다음단계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하였다. 정말로 책에서 강조하는 말과 일맥상통하였다. 그리고 매우 어려웠다. 본문에는 문제해결을 위해 휠체어를 동안 이용해보거나 대상과 주일 동안 같이 다니며 관찰하고 이해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같은 경우는 바쁜 학기를 핑계 삼아 대상을 관찰하지 않았고, 기본적으로 이해를 하지 못했다.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대상이었는데, 노약자나 생활이 어려운 사람이었던 다른 팀들에 비해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대상이었음에도 불성실하게 임하였고, 내가 자전거를 타니까 생각이 맞을 것이라는 편견에 휩싸였다. 결국 결과물로 내놓은 것에 확신이 없었고, 점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책의 저자가 하는 수업을 한국에서 들었다고 있는데, 낙제점을 받은 학생이었던 것이다. 평소 읽기를 좋아하고, 다양한 것을 접하는 것을 즐겨 하여 나름 창의적이고 기발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순서부터가 잘못된 것이었다. 정말 좋은 디자인, 해결책은 나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대상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이번 수업, 책을 통해 번이나 느꼈다. 문제에 이미 답이 있다는 것이 디자인씽킹의 핵심인 같다.  우리나라의 대다수 사람들은 나처럼 문제의 근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 문제는 항상 주어져 있었고, 이미 정해져 있는 답만 찾으면 됐었으니까. 교수님도 empathy define problem에서 어려워하는 우리들을 보고, 지금 우리가 하는 것은 문제를 찾아내는 것부터 하는 것이기에 어려울 밖에 없다고 하셨다. 그렇다고 피하면 안되고 끈질기게 지켜보고 이해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너무 빨리빨리 문화이다. 최근 정부의 어처구니 없는 대책도 같은 이치이다. 액티브 x 없애라고 명령이 내려오자 부랴부랴 액티브x 없애고 불편한. exe다운로드 방식을 추진한 정부.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 몰라도 한참 모르는 대책이었고, 디자인 씽킹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thinking 자체를 못한 같다. 국민들이 액티브x 사용하는 데에 불편함을 느끼는지 조금이라도 조사를 했더라면(이미 불편한지, 어느 나라가 좋은 사례인지 언론과 인터넷에서 모두가 말하고 있지만) 그와 같은 졸작은 내놓지 않았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액티브x 인터넷 사용과정을 인터넷 사용유저에게 넘기기 위한 도구라고 하며, 미국과 같은 경우는 추가적인 설치파일은 모두 해당 웹사이트나 회사에서 처리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정부는 그저 액티브x 자체가 잘못 되었으니 다른 걸로 대체하면 되겠구나라고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창조경제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갈지 정말 걱정이다. 창조경제(공무원 분들이 의미라도 제대로 알고 있다면) 정말 살리고 싶다면 부디 지금과는 조금만이라도 다르게 생각하고 정책을 짜주었으면 좋겠다. 책의 문장도 패티 무어라는 등장인물이 평소와 다르게 행동했다는 문장이다. 나의 동안의 사고방식, 일반적인 생각의 방향에서 벗어나 다르게 바라보는 . 이것이 모두에게 필요하다. 자원 하나 없는 나라에 믿을 것은 우리 국민의 thinking 뿐이다. 정부가 방해만 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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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계급사회 - 누가 대한민국을 영어 광풍에 몰아 넣는가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4
남태현 지음 / 오월의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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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영어를 배웠다고 치면 내가 영어를 배운 햇수만 15년이다. 초등학교를 다니며 윤선생 영어교실 방문선생님과 함께 공부했었고, 고등학교에 들어가 과외를 배우고 대학교에 들어와 카투사로 군복무로 하며 영어를 배웠다. 국어 공부를 사교육을 통해 배운 적이 없으니 어떻게 보면 국어보다 영어를 공부한 셈이다. 어렸을 영어를 배우는지도 모르며 배운 것을 생각하면 어리석기도 하면서 배우는지 깨닫지 못한 것도 아쉽다. 영어. 우리는 영어에 그토록 목매는 것일까. 강대국인 중국과 일본에 살고 있으면서 한국어라는 고유의 언어를 지켜낸 나라가 한국어에 버금가는, 아니 이상의 시간을 들여 영어를 배우고 있다.

 2012년에 출간된 책이기에 최근의 일까지 포괄하고 있겠지만 후배를 통해 들어본 한국의 영어 광풍은 아직도 진행형이고 진화하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과 1학년 자매를 가르친다는 친구는 외국에서 년간 살다 유학생이다. 6학년 학생을 가르치는 목적은 학생이 영어학원에 다니는데 따라가기가 벅차 그것을 보충하고자 과외를 시킨다는 것이다. 이것만 들어도 기가 찬데, 1학년을 가르치는 이유는 가관이다. 사립초등학교에 다니는데 번째 수준의 반에 들어가기에 실력이 모자라니까 정도 수준에 맞춰달라고 한다. 그래서 후배는 초등학생 1학년에게 Be동사란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있다고 하는데, 자기도 이건 너무 심한 같다고 말한다. 물론 여러 매체를 통해 요즘의 초등학생은 옛날 같지 않고, 학원에 치인다고 하는데 이렇게 심한 상황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본인의 경우, 학습지를 하며 매일 아침 선생님과 오분 정도 통화를 하고 숙제를 하고 일주일에 선생님이 오셔서 같이 읽고 숙제를 확인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것도 많다고 투정부리던 것이 번이 아닌데, 후배의 말을 들으니 조금이라도 일찍 태어난 것에 감사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미국이 여전히 강대국이긴 하나 옛날만큼 강한 것은 아니고 중국과 같이 여러 강대국들도 나오고 여러 언어들이 세계에서 쓰이는 마당에 , 유독 영어만 그렇게 대접을 받고 있는가에 대해 저자는 일갈한다.

  계급사회. 그것이 저자가 생각하는 영어 광풍의 이유이자 현상이다. 유독 심한 경쟁사회에서 영어는 우월함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고, 언어를 점수로 수치화시킨 수많은 시험에서 사람들은 우월해지기 위해 끝없이 매달린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유학을 갔다 소위 잘사는 집안의 아이들에겐 당해낼 재간이 없고, 점점 격차는 벌어질 뿐이다.  직장에서도 영어로 취업을 결정하고 직장에 들어가서도 영어로 인사고과를 평가한다고 하니 평범한 사람들은 죽어라 학원에 다니며 문제를 밖에 없는 구조이다. 대학에서도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느라 난리인데, 실제로 나의 학과도 영어 위주의 수업이다. 여기서 아이러니한 것이 영어로 수업하는 한국인 교수님들과 학생들 모두 영어수업이 한국어 수업보다 질이 떨어진다는 것에 동의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결과란 말인가. 대학에서는 지식을 배워야 하는데, 모국어를 사용하지 않기에 대학수업은 단숨에 미국 고등학교, 나쁘게 말해서는 중학교 수준까지 떨어진다. 질문은 없고, 수업도 더디고, 이런 상황에서 지식의 발전을 꿈꿀 있을 것인가. 상황이 이런데도 영어로 진행한다는 명분이 있기에 대외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다.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면 확실히 좋은 수업일 것이라는 모든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과 함께. 틀렸다.

나는 정말로 운이 좋게도 영어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바로 복무를 미군부대에서 했기 때문인데, 살기 위해 영어를 익혔고, 대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정말 자신 있게 말할 있는 것이 군대에서 21개월 동안 익힌 영어가 전에 13 익힌 영어보다 많다는 것이다. 복무 전까지는 역시 해외체류를 번도 없는 평범한 학생으로서 열심히 토익을 공부했고 나름 좋은 점수를 받아 기뻐했었다. 하지만 군대에 들어오자마자 나의 책에서만 보아오던 영어는 아무런, 정말로 아무런 힘이 되지 않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밖에 없었다. 무엇이 되었는지 복무하고 절반 정도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동안 나는 영어를 어디에 써먹어야지 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그냥 점수만 받았으면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다른 과목들처럼 암기하고 넘어가는 수준뿐이었다. 군대 이전에 배운 것은 영어라는 과목이었고 군대에서 배운 것은 영어라는 언어였다.  언어는 과목이 아닌 대화의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 22년이 걸렸다.

친구 명이 있으면 토익 시험을 본다.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보고 직장에서도 가장 많이 본다는 시험. 시험을 치는 이유를 물어보니 명은 장학금 가산점을 위해 명은 졸업 전에 졸업 점수로 내기 위해 본다고 한다. 역시 이번 년도 말에 토익 유효기간이 만료되기에 다시 한번 봐야 한다. 여러 영어 시험 하나라도 보고 점수를 내야지 그렇지 않으면 졸업할 수가 없다. 영어 성적이 있어야(게다가 우리 학과는 유별나게 기준 점수가 높다.) 한국 대학을 졸업할 있다는 아이러니. 이것은 국문학과, 한문학과 가리지 않고 모두 동일하다. 국제품이라는 국제적 마음가짐을 기르자는 취지의 인증제도를 보면 취득 가능 요건의 절반이상이 영어 관련 시험이 차지한다. 점수로 언어가 국제화 정도를 나타낼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어는 시험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언어는 말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다. 영어는 영어권 사람들과 사용할 역할을 하는 거지 성적표에 점수가 높다고 빛을 발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여행 중에 만난 친구는 유럽을 여행한 적이 있는데, 여행 중에 길거리에서 잡상인을 봤다고 한다. 잡상인은 무려 4 국어를 했다고 하는데, 그것을 보고 친구는 우리가 아무리 영어를 익히고 익혀도 여기서는 길거리 잡상인보다도 못한 언어 실력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길거리 잡상인은 4 국어를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20 년을 언어에만 쏟아 부어도 되는 것인가. 목적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화를 위해서라는 마음가짐과 점수를 위해서라는 마음가짐. 영어라는 언어가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힘있는 언어로 어디든 가도 쓰일 확률이 높고 익숙한 언어. 다만 언어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바뀌어야 한다. 점수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외국인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 영어를 배우면 어떨까. 지금부터라도 인터넷 펜팔을 하는 것이 단어를 외우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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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술 - 개역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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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여행을 꿈꾼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예상치 못한 새로움이 넘쳐나고, 피로와 짜증은 하나도 없는 환상의 세계. 보는 순간 숨이 막히는 장관이나 건축물이 있고 재미있고 친절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여행지를 꿈꾼다. 낭만과 즐거움, 역시 가족들과 제주도로 여행가기 전에 부푼 기대감을 가지고 책을 가지고 떠났다. 여행의 기술이란 제목에서 마치 어떻게 하면 남들과는 다른 깊은 여행을 있는지 알려줄 것만 같았지만 제목의 기술은 수단이나 방법을 나타내는 기술 아닌 여행 자체에 대한 기술 담담하게 적어놓은 책이다. 나는 혹자들이 책을 읽으며 어느 문장을 읽는 순간 숨이 막히며 감명을 받았다는 얘기를 믿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지금까지의 나의 독서 태도였을 것이다. 맥락위주의 독법은 문장, 문장 보다는 문단, 단락에 주의하며 읽는 방법이기 때문에 문장 속에 담겨 있는 아름다움을 찾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최근에 박웅현씨의 책은 도끼다라는 책을 읽고는 문장, 문장을 끊어 읽자는 작은 목표를 세웠었고, ‘여행의 기술 책을 읽으면서 힘을 알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하는 감탄을 내뱉게 하는 문장들이 있었고 그때마다 책에 표시를 두었다. 여기에 가지를 적어본다.

p-173, 그러나 18세기 왕궁 건축 감상에 맛이 붙은 사람의 자연스러운 행로는 전시관을 완전히 무시하고 프라하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발을 옮기는 것이다.

  문장을 읽으며 우리는 얼마나 정형화된 여행만을 다녔나 싶다. 나라에 가면 이것을 보아야 되고, 다음에는 이것을 보러 이동해야 한다는 짜여진 일정에 우리는 너무나도 익숙하다.  열에 사람은 모두 좋아하는 것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양한데, 같은 나라를 여행한 사람들의 열에 아홉은 모두 같은 것을 보고 들어온 것이다. 물론 많이 회자되는 것만큼 훌륭할 있고, 가치가 있을 있으나 18세기 왕궁 건축 감상에 감명을 받은 사람이라면 근처에 있는 다른 같은 양식의 건축물을 보는 것이 훌륭한 여행이 있다는 것이다. 역시 언제나 여행을 가면 여행 책자부터 보는 편인데, 책자를 보면 모든 여행지가 중구난방으로 되어있어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코스가 아닌 수박 핥기 식의 여행이 되고 기억에 남는 것은 가장 인기가 많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뿐인 경우가 많다. 어떤 친구가 유럽의 축구장만 방문하는 것이 꿈이라는 것을 듣고 유럽을 가면 여러 관광지를 봐야지라고 핀잔을 주던 나의 말에는 나의 가치관이나 취향은 들어있지 않고 여행책자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각인되어있는 여행 일정만 들어 있던 것이다. 어쩌면 축구장 여행이 깊은 여행이라고 있겠다.

p-241, 세상이 너한테는 비논리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자체로 비논리적인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끝없이 펼쳐지는 장관을 보며 평소와는 다른 마음가짐을 갖게 된다고 한다. 여행하면서 드는 피로감, 남은 돈에 대한 걱정은 줄어들고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인간의 하찮음에 대해 많이 느낀다고 한다. 웅장하고 장엄한 것들을 보면서 그것을 표현한 길이 부족했던 사람들은 숭고함(sublime)이라는 단어를 발견하고 이것을 그랜드 캐니언처럼 숭고한 것을 쓰는 단어로 까지 만들었다. 우리는 항상 우리 주위의 힘겨운 것들,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일을 가지고 힘들고 불평등하다고 외치지만 눈부신 자연경관을 보며 그런 마음은 온데간데 없고 자연 앞의 작은 인간만을 경험할 뿐이다. 책에 나오는 예시 중에 하나를 소개하자면, 시인인 토머스 그레이가 알프스를 도보여행하면서 그랑드 샤르트퇴즈를 올라가는데 그가 표현한 자연 경관 앞에 그것이 옳을 밖에 없구나라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단순한 절벽도 아니요, 격류도 아니요, 낭떠러지도 아니었다. 그것은 종교와 시를 잉태하고 있었다.’ 우리는 숭고한 것들을 반드시 봐야 한다. 앞에 작은 자신을 보고 깨닫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p-305, 사진이 자동적으로 세상의 소유를 보장해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공연장을 가보면 각자의 머리 위에 하나씩 들고 있는 그것, 바로 카메라다. 우리는 담아두려는 것일까. 그것을 다시보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여행지에서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잡아두고 싶어한다. 사진이 가장 보편적이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인데, 사진을 찍음으로 아름다운 것이 닮는 것도 아니기에 영국의 미술 평론가 러스킨은 카메라를 인간이 만들어놓은 모든 기계적인 가운데 그래도 한가지 해독제가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카메라는 셔터 속에 아름다움의 일차적 이미지를 저장하며 우리의 진실된 감동조차 함께 앗아간다. 우리는 사진을 찍음으로써 아름다움을 영원히 간직할 있다고 생각하고 현재 보고 있는 아름다움에 크게 집중하지 않는다. 주위 환경과의 배치 덕분에 아름다울 수도 있고, 마침 그날의 하늘색과 어울려 크게 감동 받을 있는데 우리는 단순히 아름다움과 내가 함께 있었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한다는 것이다. 러스킨은 여행지에서 아름다움을 가장 옳게 붙잡는 방법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매우 옳다고 생각한다. 그림을 그리려면 우선 봐야한다.’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고 끈질기게 보고 거기서 눈에 가장 띄는 부분은 그리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나만의 아름다움을 가질 있게 되고, 대상을 오랫동안 자세하게 바라볼 있는 것이다. 앞으로 여행을 많이 다닐 계획인 나로써는 그림에 소질이 없는 것이 아쉽지만 책을 보고 배워서라도 한번 실행에 옮겨보도록 해야겠다. 아름다움은 사진 속에 담는 것이 아니라 여행자의 마음 속에 담을 진정 아름다운 것이다.

책을 읽고 나니 내가 동안 다녀온 여행들(그래봤자 2번의 해외여행과 5,6번의 국내여행이지만) 옳지 않았었다는 탄식과 앞으로 기회가 많은 시점에 책을 읽었다는 안도감을 얻었다. 역시 여행은 사람들이 많이 가본 , 유명한 곳을 다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여행은 틀에 박힌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여행은 밖으로 나가는 육체와 안으로 들어가는 내면이 만났을 진정한 빛을 발하는 같다. 앞으로의 나의 여행은 무궁무진할 것인데, 때마다 책을 들고 다니며 계속해서 읽으면 깊은 것들을 느낄 있을 것이다.  여행의 기술은 생각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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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lragu01 2015-04-06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읽어보구싶네요^^~

윙헤드 2015-04-06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읽으시고 여행을 떠나시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