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과 그의 시대 이덕일의 역사특강 1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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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모에 대하여


나는 글로벌 리더가 되고 싶은 목표가 있다. 확실히 무모한 꿈이지만 꿈이라도 크면 좋지 않을까 해서 나이를 먹어감에도 계속 가지고 있는 꿈이다.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나는 당연 나의 역량이 제일 뛰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을 아우르는 카리스마는 단순히 행동이나 표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가진 실력, 역량에서 발현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독서도 늦게나마 꾸준히 이어나가는 이유도 나의 실력을 높이고, 나의 역량을 높이는 데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헌데 책을 보면서 글쓴이의 기가 막힌 지적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저자는 한국사와 중국사의 중요한 차이중 하나가 참모사와 짱사의 차이라고 말하였다. 중국사에는 중요한 역사적 시대마다 참모가 나타나 역사를 바꾸는 참모사라면, 한국사는 , 혼자 다하는 역사였다는 것이다.  리더가 혼자 사고하고, 혼자 결정하고, 혼자 행동하는 역사에서 추락한 인물은 수도 없이 많은데 그들의 공통점이 자기가 제일 똑똑한 안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똑똑하지 않은 것은 확실히 알고 있지만 제일 똑똑해져야 리더가 있을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역사는 좋은 참모를 가진 리더가 성공하는 증거를 들이밀었다. 사실 우리가 요즈음 티비에서 인터넷에서 수없이 보는 성공기를 보면 모두 사람에게 집중이 된다. 그것이 영웅화하는 효과도 있고, 기업의 성공에도 도움이 된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애플의 스티브 잡스, 삼성의 이건희 . 그래서 우리는 성공이 그들 혼자의 역량으로부터 나왔다고 으레 생각하기 쉽지만(내가 으레 생각하는 사람의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 성공기를 가만히 읽고 있어보면 참모가 드러난다. 그것이 공동 창업자가 되었든, 부하 직원이 되었든, 배우자가 되었든, 혼자 성공한 경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책의 주인공 정도전 역시 조선의 참모사에서 으뜸인 사람이다. 조선을 세운 사람은 이성계지만 조선을 디자인하고 구조 자체를 바꾼 사람은 정도전 이었다. 이전 시대의 공민왕과 신돈, 이후의 중종과 정도전 , 우리나라에도 대표적인 케이스들이 있다. 하지만 끝은 모두 좋지 않았다. 리더가 뽑은 참모이지만 참모의 실력이 워낙 좋기 때문에 리더를 뛰어넘는 평가를 받았고 거기서 두려움을 느낀 리더들이 참모를 없애 버리는 구조는 우리 역사에서 반복되었다. 중국을 참모사라고 당당하게 말할 있는 이유는 아마 유비와 제갈량의 관계라는 대표적인 경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삼고초려로 맺어진 만큼 절대적인 신뢰, 누가 봐도 제갈량이 유비보다 역량 자체는 뛰어났지만 그럼에도 유비가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윈윈하는 역사를 보여주었다. 지금 중국이 한창 부패를 척결하는데 속도를 내는 것도 어떻게 보면 참모들이 좋아서 것이다. 고위직의 부패척결은 절대로 리더 혼자서 하지 못한다. 권력의 최상층인 리더와 참모가 조화를 이룰 가능한 것이다. 우리나라를 살펴보면….참모는 수도 없이 바뀌는데 리더만큼은 굳건하다. 우리 역사에서 참모가 너무 경우 리더가 제압하는 경우는 있어도 이렇게 참모가 크지도 못하는 시대는 처음인 같다. 그래서 김영란 법도 모양이고 창조경제는 어느 순간부터 누구도 외치지 않고이래저래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          --땅에 대하여



결국은 땅이 문제다. 우리나라는 작다. 엄청 작은 아니지만 특히 서울은 작다. 인구 밀집도가 세계 최상위권이기 때문에 아파트를 아무리 지어도 집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부동산은 언제나 우리나라 최고의 화두였다. 강남 집값이 들썩인다고 하더라, 어디가 신도시로 지정된다고 하더라, 재개발이 된다고 하더라. 과거는 주로 투기형으로 화제가 되었다면 이제는 생계형으로 이슈가 옮겨가지 않나 싶다. 가난한 사람은 울며 겨자먹기로 전세가 아닌 집을 사는 풍토고 사는 사람들이 전세로 옮겨 다닌다. 그런 부담이 밀려 밀려 이제는 대학가 근처 자취방도 방이 없다고 한다. 사회 초년생들이 집을 구하지 못해서 그냥 대학가 자취방에서 출퇴근을 하기 때문이다. 아우성. 고려 시기도 이와 비슷했다. 책을 보니 땅의 주인이 5-6명은 기본이요. 구가세족의 땅은 산천으로 경계를 삼았다고 한다. 서울 전체를 안이 나누어 가졌다는 의미이다. 또한 구가세족은 세금도 내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재정은 부족하고 서민에게 부담을 안기는 식이다. 복지 없는 증세를 외치는데 고위 탈세자 걷혀야 곳에서는 걷히지 않으니 복지에 필요한 돈이 부족하고, 연말정산 폭탄과 같은 방식으로 서민들에게 부담을 안기는 식이다.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 있나 보다. 반복이 되는 . 모양은 다르지만, 주체는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정도전은 조선 건국을 계획하면서 토지개혁부터 떠올렸다고 한다. 그래서 정작 조선 건국은 위화도 회군 4개월 이후이지만 사이에 급진적 토지개혁, 계민수전(사람의 수에 맞게 땅을 분배) 주장하며 토지개혁의 기틀부터 다졌다. 이성계라는 상승장군와 그의 군대가 있었기 때문에 권력층의 반발을 막을 있었다. 사회에서는 이성계와 그의 군대 같은 것을 바랄 수도 바라서도 된다. 좋아질 기미는 없이 점점 악화되어만 가는 우리 나라 토지 상황. 책에서 말하길 2013 대한민국 인구의 상위 1퍼센트가 전국 토지의 55퍼센트를 소유하고 있다고 하였다.  2015 지금은 심할 거라고 자신(?)한다. 높이 2미터도 안되고 가로 세로 10미터도 되는 공간을 차지하기 위한 99퍼센트의 사투. 땅을 가지고 우리가 싸워야 상대는 서로가 아니라 구조, 사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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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 - 파이돈/ 크리톤/ 향연 내 손안에 소피아 클래식 1
플라톤 지음, 강윤철 옮김 / 스마트북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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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겸손의 미덕에 대하여


소크라테스는 철학의 고전 중에 고전에 속한다. 대학교 철학입문 수업 중에서도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철학이고, 흔히 철학의 시작을 논할 때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줄기를 이야기하고 논쟁을 한다. 책은 철학입문 당시 읽었었는데, 다시 읽은 이유는 철학을 좋아하는데 너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어서(사실 아무것도 몰라서) 제대로 알려면 뿌리부터 알아보는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거 철학입문 수업은 게다가 영어 수업이어서 알아들은 부분도 컸다. 소크라테스 자신이 대부분 말하는 변명을 읽고 나니, 과거에 읽었던 기억이 나며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사람 오만하다 라는 생각.  돈을 받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자신을 처형한다면 그건 자신을 해치는 해치는 것이 아니라 배심원들, 시민들 자신을 해치는 일이라고 말한 , 자신을 신께서 시민들에게 보낸 은총이라고 말한 , 유죄가 선고되자 자신에게 적합한 형벌은 사형이 아니라 영빈관에서의 식사대접이라고 말하는 , 1프나의 작은 벌금형으로 바꾸는 , 그나마 작은 돈의 상징성 때문에 1프나 인줄 알았는데 바로 제자의 도움으로 30프나로 바꾸는 등등. 물론 변명을 모두 읽지 않고 앞서 말한 것들만 듣는 다면 누구나 유죄를 외칠 것이다. 하지만 맥락을 감안하고 읽는다 하더라도, 겸손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내가 한국인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배심원들인 시민들도 유죄를 던지고, 1 유죄선고가 이루어지고 소크라테스의 변명이 이어질수록 유죄라고 선택한 비율이 높아지는 것을 보니 그냥 누가 보더라도 오만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겸손이라는 것도 지혜에 포함되어 있는 요소일텐데, 그는 어찌도 저리 겸손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까. 잠시 생각해보면 우리의 편견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크라테스의 위치는 피고인이다. 이미 소문이 좋게 상황이라 자칫하면 사형 선고를 받을 수도 있는 상태란 말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의 결백을 목에 핏대 서게 외치거나 동정에 호소할 것이다. 그래야 응당 맞는 것처럼 보였다. 죄의 옳고 그름보다는 얼마나 동정심을 유발하느냐가 판단에 영향을 지대하게 미치는 같으니까, 판결하는 것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거니까.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달랐다.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부정과 불의라고 외치고, 자신이 패소한 것은 염치가 모자라서, 비굴함을 드러내지 않아서라고 패소 직후 말한다. 변명 말미와 파이돈편에서 이야기하듯이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철학자는 죽음을 기꺼이 맞이해야 한다며 죽음에 대하여 희망을 가져도 좋다고 했다. 사람이란 원체 죽음이 두려워 사형 선고의 앞에서는 벌벌 떨며 동정을 구한다고 본다. 우리는 모두 그런다. 그런데 당신도 마땅히 그럴 알았는데 오히려 당당하게 자신에게 적합한 형량은 맛있는 식사라는 말에 우리는 괴리감에 느껴 오만함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지혜로운 사람이었다면 결국은 겸손해야 했다고 본다. 그가 정말로 신으로부터 선택 받은 자였다면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했고, 일반인들의 눈높이로 다가서야 했다.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결론적으로 겸손해서 나쁠 것은 전혀 없다.



-          --지혜에 대하여


소크라테스는 델포이의 신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으로 지목 받았다. 그는 자신의 무지를 증명하기 위해 정치가, 시인, 공예가를 차례로 찾아가 보았지만 결론은 자신처럼 지혜가 사실 아무 쓸모가 없음을 아는 자가 가장 현명하다는 사실이었다. 이거 하나만큼은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아는 척을 한다. 자기가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거나(정치가), 훌륭한 구절을 남기지만 의미가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시인), 기술적인 일에만 뛰어난데 다른 일도 잘한다고 생각한다(공예가). 꺼풀, 꺼풀만 깊게 물어보면 모두들 대답을 못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 아는 척을 한다. 나부터가 그러하다. 대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으니, 책을 알고 있으니 나는 점점 알아가는 것이 많구나 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소크라테스가 비판했던 정치가와 다를 바가 없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지혜가 아무것도 쓸모 없음을 아는 . 이렇게 소크라테스가 말한 바를 문장으로 써놓으면 단순히 머리에 입력은 된다. 그런데 뜻을 진정이해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이게 너무 많이 알아서 해탈한 것인지, 자신을 알라처럼 자신의 부족함을 깨우친 것인지. 내가 말을 단번에 이해했다면 스스로 지혜롭다고 자부하면서 살지도 않았을텐데. 그래도 나의 부족함을 조금이라도 알았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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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애플로 출근한다
정총 지음 / 휴먼큐브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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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어 자만심에 대하여


책에서 글쓴이는 영어로 많은 문제를 겪었다고 한다. 직장을 구할 때에도 전화 면접만 가면 쉬운 질문에도 영어로 제대로 답을 못하여 탈락한 경우가 많았고, 대학교에서도 물론 서툰 영어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게다가 스타트업에서 직장생활을 했음에도 다음 대기업으로 옮겼을 때조차 영어로 대화가 안되어 고생을 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대학교도 나오고(비록 편입이지만) 직장생활까지 사람인데도 영어로 고생했다고 한다. 이걸 읽으며 나의 마음가짐, 나의 상태를 파악해보니 경악할 수준이었다. 나는 좋게도 카투사에서 복무를 했었다. 거기서 나름 영어를 배워와서 다른 영어 대외활동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영어 활동도 했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영어 상위 20프로 안에는 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의 내용과 나의 최근 인턴 면접 과정을 살펴보니 내가 얼마나 자만감에 취해 살았는지 같았다. 외국계 인턴 위주로 지원(이것도 내가 영어를 잘한다는 자만감에 비롯된 경거망동) 덕분에 면접에서 영어 질문이 들어오는데 그때마다 유창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군대 갔다 이후로 이상 영어 공부는 따로 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군대에서 매우 유창하게, 원어민처럼 배워 것도 아닌데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군대 다닐 어렵사리 토익점수는 유효기간이 만료되었지만 만료된 점수를 지원서에 쓰면서 영어 능력을 이라고 하고, 아무리 자신을 PR하는 것이 자기 소개서라고는 하지만 나의 오만함이 너무 지나쳤었다. 면접에서는 내가 말을 시작하자마자 면접관이 슬랭 발음을 쓴다고 지적했고, 다른 면접에서는 다른 지원자가 너무나도 매우 유창하게 잘해서 기죽어서 못했었다. 그런 것들을 경험했음에도 나는 아직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지 않다. 면접에서 당한 것보다 호되게 당하는 밖에 없다.



-          --의심에 대하여


글쓴이의 스토리는 놀랍다. 한국의 일반적인 대학교에 들어가서 해병대를 갔다 오고, 제대를 하고 미국 어학연수를 갔다가 거기서 커뮤니티 칼리지를 다니게 되고, 미시간 대학으로 편입하게 되고, 스타트업에 취업하게 되고, 아마존, 마지막으로는 애플로 자리를 옮길 때까지, 파란만장하면서도 열심히 살았다는 것을 짧은 시간 읽으면서도 있었다. 글쓴이는 책을 읽으면 별로 대단하지 않은 사람인데도 이런 자리까지 왔구나 라고 느낄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나는 그의 성공을 인정하지 않고 나와는 다름부터 찾았다. 그것은 어처구니 없게도 해병대를 갔다 왔다는 . 그는 해병대에서 엄청난 고생을 했기 때문에 미국에 가서도 그렇게 열심히 있었던 거고, 나는 해병대를 다녀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와는 다르다고 어느 순간 멍청한 선을 그어 버렸다. 다른 이로부터 배우지는 못할 망정, 다름을 강조하며 거부하는 나는 그러는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는 정말로 노력을 했다. 노력은 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체력이 없어서가 수도 있고, 상황이 좋아서 그럴 수도 있고 어찌되었든 노력을 하지 않았다. 노력은 누구나에게나 동일한데 나는 하지 않았으니까 차이가 벌어진 것이다. 나는 이것을 직감적으로 알면서도 그것을 인정하기가 싫어서 해병대라는 구실을 만들어 차이를 두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의심을 거두고 노력을 하자. 제발 부디.



-          --백수의 불안함에 대하여


나는 휴학생이다. 인턴을 하고 싶어서 휴학을 했는데, 정말 보는 족족 떨어진다. 아직 10개도 쓰지는 않았지만 벌써 휴학을 시작한 마당에 공식적으로는 백수이기 때문에 불안감이 상당하다.  괜히 휴학한 것은 아닌지,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하는 건지, 각종 자격증 공부를 시작해야 하는 건지, 하루에도 번씩 취업센터 홈페이지를 들어가지만 마땅한 자리는 올라오지 않는다. 그렇게 혼자 자책하고 있으며 책을 읽었는데, 어느 정도 위로(?) 받았다. 글쓴이는 미국까지 가서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도 취업이 되는 상황에 있었다. 졸업은 해야 하는데, 군데를 지원서는 돌아오지 않으니 열심히 준비했지만 성공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은 초조해지고 불안해져만 갔다라고 밝혔다. 얼마나 불안할까. 나의 인턴 도전기는 그래도 돌아갈 곳이 있다. 학교를 다시 다니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매일매일을 불안과 함께 일어나고 불안과 함께 들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취직 준비는 결코 포기하지 않아 스타트업에 들어갈 있었다. 내가 혹시 창업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당장 내년부터 군데에 지원서를 넣을 것이다. 탈락하는 기업들이 많아질수록 불안감을 커져가겠지만 그럼에도 계속 지원은 해야 한다. 불안감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야지, 불안감이 압도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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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   오늘은 인턴 공고도 안올라온 내가 가고 싶었던 회사 ㅈㅌㅁㅅㅌ에 무작정 자소서를

써서 보냈다. 인턴 공고는 여러군데에서 매일매일 올라오지만, 나를 위한 회사는 없는 건지, 내가 배가 부른건지. 내가 배가 부른 것은 맞다. 


오후      -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기에 오늘은 국회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파이돈, 그리고 나는 애플로 출근한다라는 책. 3가지 책은 모두 내용도 다르고 쓰여진 시기도 다르지만(소크라테스의 변명, 파이돈은 비슷하지만), 결국은 먹고 사는 이야기 인 것 같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크라테스는 결국은 삶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고, 나는 애플로 출근한다라는 책은 해외 취업 성공기를 통해 잘 먹고 잘 사는 이야기였다. 이제는 잘 먹고 잘 사는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관련이 없는 책을 읽고 싶다. 칼 막스의 자본론이라던가, 돈키호테라던가. 

평일 목요일의 국회도서관은 여유와 정열이 혼재하는 공간이다. 노트북을 열심히 두드리며 무언가에 몰두하는 젊은이들. 그것이 대학원 논문이 되었던, 회사 입사 준비가 되었건, 국회 비서실의 자료 준비가 되었건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만큼 그들의 눈빛도 빠르게 돌아갔다. 그에 반해 여유로운, 어떻게 보면 쓸쓸한 어르신분들. 평일 이시간에 여기 있다는 말은 은퇴를 하셨단 말이겠지...신문보는 공간은 온통 어르신분들의 자리인데, 신문을 거칠게 넘기시면서 그분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이 사회가 혼돈으로 치닫는 상황을 보며, 쓴웃음을 지으실지, 안도의 웃음을 지으실지. 대중에게 공개된 도서관은 학교의 도서관과는 분위기가 극명하게 다르다. 대학의 도서관은 온통 경쟁의 바다. 더 좋은 자리를 얻기 위한 사투, 과제를 하기 위한 노트북, 전공 공부. 그곳에는 삶의 여유가 없다. 강의실보다 오히려 삶의 속도를 채찍질하는 공간이 대학 도서관일 것이다. 그에 반해 대중 도서관은 책을 한장한장 넘기며 노트에 받아 적으시는 어르신들, 신문을 읽으며 한탄해하는 아저씨들, 동화책을 읽는 어린아이까지 모두 모인 제각각의 삶의 속도가 모인 공간이다. 그곳에 가면의 나의 삶의 속도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모두에겐 저마다의 속도가 있는데, 왜 우리는, 왜 나는 나의 속도를 유지하지 못할까. 왜 남을 인정하지 못할까. 왜 나는 너를 사랑하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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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    ㅈㅅㅇㅈㅅ에 인턴 지원, 뭐 자소서 한장 쓰는데 왜이렇게 오래 걸리는지....소설

쓴다는 것이 이말이구나라고 느꼈다.


오후       - 저녁에 사물함 비울겸 친구 수업 책 줄겸 약속을 잡아두고 집에 있기 답답하여 2시쯤에

집을 나섰다. 노량진의 치열한 삶을 느끼고자 갔지만 바람이 차고 추워 카페에서 책이나 읽었다. 2시간동안 어떻게 살것인가 라는 몽테뉴에 관한 책을 야무지게 읽고 학교로 이동


저녁     - ㄱㅌ이와 ㅇㅅ이와 쪽문 근처 중국집에서 세트메뉴 탕수육하나 자장면 2개 볶음밥하나에

고량주를 먹고 오뎅바로 이동하여 또 먹었다. 너무 배부르다. 10시쯤 파하고 동네 오니 11시쯤. 지하철 역 근처 천가에서 건너편 아파트를 바라보니 늦은 저녁 티비들을 보는지 점점히 빛나는 창문들. 우리가 죽어라 돈 벌고자 하는 이유가 저 높이 2미터도 안돼고 가로 세로 10미터도 안되는 공간을 차지하고자라고 생각하니 씁쓸하고 서글프다. 이것도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나 느끼는 감정이겠지. 우리 주위에 널린것이 아파트인데 우리의 따뜻한 불을 밝힐곳이 없는 서울. 직장도 마찬가지겠지. 미생에서 말한 것처럼 저렇게 많은 회사의 불빛 중에 나만을 위한 불빛은 없다. 

오늘 오뎅바에서 술을 마시며 친구들과 우리나라 교육에 관하여 서로 열변을 토했다. 친구 2명은 대학수를 절대적으로 줄여서 잘하는 사람만 대학을 가는 것이 훨씬 효율적. 나는 우리나라가 자원도 안나는 상황에서 결국은 지식으로 먹고 살기에 무리해서라도 많은 사람들을 대학으로 보내는 것이 좋다는 입장. 결론은 안났지만 이런 대화를 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좋은 것 같다. 내가 지식이 더 많았다면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 


내 하루는 누군가가 보기엔 아무것도 안한것 같은 하루지만 그 누구보다 소중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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