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의 재판 - 가리옷 유다의 시복재판에 관한 보고서
발터 옌스 지음, 박상화 옮김 / 아침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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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8월 28일, 독일 출신 프란치스코 수도회 신부 베르톨트 B.는 유다를 복자로 추대하기 위한 공식적인 시복 심의를 청구한다. 예수를 팔아넘긴 배신자 유다를 성인의 반열에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꼭 예수가 아니라 하더라도 자신이 섬기던 스승을 돈을 받고 팔아넘긴 행위는 분명 비겁하며 매우 추잡한 행동임에 틀림없다. 하물며 예수를 팔아넘긴 유다라니... 불을 보듯 뻔히 결과가 보이는 이 위험한 행동을 그는 왜 하게 되었을까? 잠시 그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유다 없이는 십자가도 없고, 십자가 없이는 구원의 계획도 실현될 수 없었습니다. 유다가 없었더라면 교회도 없었을 것이며, 팔아넘긴 이가 없었더라면 팔아넘기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혁명가인 유다가 예수님의 생명을 구해 주었더라면 우리 모두에게는 죽음을 가져다 준 꼴이 되었을 것입니다......누군가 한 사람은 그 일을 해야만 했으며, 그 한 사람이 유다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다는 신의 명에 의해 그 일을 했고 그것은 유다의 운명이었을 뿐만 아니라, 신실한 유다가 거절하지 않고 그 일을 충실히 실행했기에 우리는 구원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꽤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이 사건을 심사하는 것은 종교관계자들..그들에게 얼핏 간단해보였던 이 사건은 그러나 예상외로 재판을 열게 되고 학자들 사이에 ‘유다는 원래 누구였으며, 그의 배신의 동기는 무엇이었는가?’ 에 대한 열띤 논쟁이 오고가게 된다.

이에 대해 세 가지 논제가 제기되었으나 모두 폐기되는가하면, 지금까지 제시된 여러 가설들을 근거로 ‘유다의 희생물로서의 예수’‘예수의 희생물로서의 유다’‘하느님의 계획을 위한 공동의 희생물로서의 유다와 예수’라는 세 가지 가설을 세우기도 한다.

이 재판의 검찰 측이라 할 수 있는 신앙검찰관은 이 재판의 부당함을 역설하기도 한다. 아니 소송의 합법성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결코 내용은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를 팔아넘긴...악마와도 같은 이에게 복자라니!


자칫 딱딱하기만 할 것 같은 이 책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논제와 가설, 각각의 시각에서 달리하는 성서해석 등 호기심 가득한 이야기를 그다지 어렵지 않게 차근차근 풀어가며 놀라운 지적흥미를 제공한다.


“유다는 금발의 인간들 사이에서 홀로 머리가 검은 인간이다......아무튼 그는 다른 존재이다.......열 한 명의 제자들이 함께 집단을 이루고 있고, 그만 홀로 서 있다.”      


책의 마지막장에 이르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든다. 나 역시 누군가를 유다로 만들지는 않았는가? 또한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유다가 아닐까...

이 세계는 아직도 끊임없이 누군가를 또는 어떤 집단을 또는 어떤 나라를 유다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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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평전 - 개정판
조영래 지음 / 돌베개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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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구여...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뇌성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 태우고 꺽어버린다 해도,

하늘이 나에게만 꺼져 내려온다 해도, 그대 소중한 추억에 간직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세...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잠시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애 못 다 굴린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 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굴리는 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고3때 수능이 끝나고 학교에서 단체관람으로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그때 영화를 보고는 '아...저 때는 저렇게 힘들게 일했구나', 주인공이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 분신자살을 하는 장면에서는 '배우 고생했겠다'...정도의 감상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엔딩 크레딧을 인상적으로 보았을 뿐...

대학을 가고 선배들이 나에게 자주 물어봤던 질문 중의 하나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란 영화를 봤냐는 것이었다. 나는 영화를 봤고, 그런 모든 내용을 담기에는 영화가 다소 짧았다는 감상평을 내놓았다. 그냥 무심코 한 대답에 선배는 자못 진지한 표정을 지었었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도 전태일이란 이름을 그저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자신의 주장을 알리기 위해 분신자살을 한 사람 정도로만 기억할 뻔 했다. 이 책을 읽고 눈물을 흘리기 전까지는...



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감정에는 약한 편입니다.

조금만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마음이 언짢아 그날 기분은 우울한 편입니다.

내 자신이 너무 그러한 환경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 자신도 가진 것이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늘 배고팠고, 추위에 떨었고, 누군가에게 쫓겨다녀야했고, 맞아야했다. 어린 나이부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했으며, 세상에서 가장 하고 싶은 공부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구두닦이, 우산장사, 신문팔이 등등의 일로 생계를 이어가던 어느 날, 우연히 평화시장에 붙어있던 '시다구함'이라는 광고를 보고 그는 16세의 나이에 평화시장에 발을 들여놓는다.

거리에서 떠도는 일명 '거리의 천사'들에게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건 두 가지의 길 밖에 없다. 하나는 범죄의 길, 또 다른 하나는 노동지옥의 길...전태일은 노동지옥의 길을 택했다.

평화시장에서의 삶은 말 그대로 지옥이다. 허리조차 펼 수 없는 다락방에서 하루 15시간...그조차 햇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먼지꾸댕이 속에서 잠 안오는 주사를 맞아가며 일하는 곳...한 달에 딱 두 번의 휴일...건강검진 같은 건 없다. 그 속에서 5..6년 정도 일을 하면 100% 병에 걸린다. 병에 걸리면 무조건 해고이다.

그 자신도 빈한했다. 제 한 몸 추스리기도 힘든 노동지옥 속의 노동자가 아니었던가...그런데 무엇이 그를 스스로 붙태우게 만들었는가...



간을 물질화하는 세대

인간의 개성과 참 인간적 본능의 충족을 무시당하고

희망의 가지를 잘린 채 존재하기 위한 대가로

물질적 가치로 전락한 인간상을 증오한다.


처음에는 그저 재단사가 되고자 했다. 평화시장의 인력구조에서 재단사는 일거리를 조정하는 정도의 약간의 재량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단사가 되면 시다나 미싱사의 편의를 봐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프다고 병원데려가고 직원들 쉬게하고 본인이 혼자 일을 도맡아 하자 사장은 꼬투리를 잡아서 그를 해고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러저런 호소도 해보았으나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근로기준법이란 책은 닿고 닿도록 보았다. 바보회를 조직했고, 삼동회를 조직했다. 노동청도 찾아가보았고, 신문사도 찾아가보았다. 진정서도 내 보았고, 대통령에게 편지까지 쓸 생각까지 했다. 그가 할 수 있는...아니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까지 모든 일을 했다.

그러나 세상은...

가장 청순하고 때묻지 않은 어린 소녀들이 때묻고 부한 자의 거름이 되어야 하는...

인간을 '현실이 쓰다 버린 쪽박'으로 만들어버리는 잔혹하고 비정한 현실의 냉혈한 얼굴을 가진 세상은 전태일에게 마지막 선택을 강요하고 있었다.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와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


오늘은 토요일, 8월 둘째주 토요일.

내 마음에 결단을 내린 이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

한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치오니

하느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불타는 몸으로 그는 이렇게 외쳤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일요일은 쉬게 하라...'

이게 그가 스스로 몸을 불태워 외친 말이었다. 그리고 가까스로 불을 끄고 병원에 왔으나 의사는 가난한 그에게 화기를 낮춰준다는 주사 한대 놔주지 않았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친구들에게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부탁을 하고, 마지막으로 '배가 고프다'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배가 고프다'...그 평생의 고통이었으리라...



지금 그가 죽은 청계천은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변했다. 그러나 그를 그토록 매몰차게 내몰았던 세상도 그만큼 변했는지 모르겠다. 지난 세대에게는 성전과도 같았던 이 책은 아직도 팔리고 있지만 현재를 사는 이들에게도 성전이 될 수 있을 것인가...아직도 그의 외침은 유효한가?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를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자와도 같았던...가난하고 나약했으나 그 자신보다 더 나약한 자를 위해 스스로 불꽃이 되었던 아름다운 청년...


아직도 그를 모르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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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돌려다오 태학산문선 110
이용휴.이가환 지음, 안대회 옮김 / 태학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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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하다’, ‘참신하다’란 표현은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나를 돌려다오’는 18세기 조선시대 문장가인 ‘이용휴’와 그의 아들 ‘이가환’의 글을 모은 산문집으로, 이 책 속에 담겨있는 글들은 문체의 독특함, 발상의 참신함, 그리고 압축된 글 속에 선명하게 부각되는 메시지 등 조선시대에 써진 글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무척 신선하다.


[공은 세상에 있을 때도 늘 세상을 싫어했지요. 이제 영영 가는 것은 먹을 것 입을 것 마련하는 일도 없고, 혼사나 상사의 절차도 없고, 손님을 맞고 편지를 왕래하는 예법도 없고, 염량세태나 시비의 소리도 없는 곳일 게요. 다만 맑은 바람과 환한 달빛, 들꽃과 산새들만이 있을 뿐이겠지요. 공은 이제부터 영원히 한가롭겠구려]


이 글은 이용휴가 돌아가신 친척을 위해 쓴 제문이다. 보통 제문에는 일정한 형식을 갖춰 고인의 이력이나 슬픈 마음을 표현하기 마련인데, 이 글은 그저 고인이 이 세상의 온갖 예법이나 근심걱정이 없는 곳으로 갔음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을 뿐이다. 원문으로도 88자밖에 안되는 아주 짧은 글 속에 고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담고 있으면서도, 다른 시선으로 죽음을 바라보고 있는, 기존의 형식을 파괴한 아주 신선한 글이다.

아버지 ‘이용휴’에 비해 아들 ‘이가환’의 글은 조금 부족한 감이 있다. 그렇기는 해도 어디까지나 아버지에 비해서이지 글 자체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의 글이나 문장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할 만큼 아는 것이 없는지라 달리 길게 쓸 말은 없지만 곁에 두고 틈틈이 읽어볼 만한 좋은 글을 찾는다면 이 책 또한 아주 좋은 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청소년들에게는 교육적인 목적으로도 좋을 것 같다. 내용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글을 쓰는 형식이나 간결함 속에 드러나는 주제 등 모든 것이 참신하고 새롭기 때문이다. 또한 18세기 조선을 살았던 사람들과 그들의 일상을 문틈으로나마 엿볼 수 있는 건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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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니 2010-10-21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참한 리뷰군요 *^^*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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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나보다. 학교가 파하고 집에 거의 다 왔을 무렵 죽어있는 새 한 마리를 발견했다. 당시 내가 살던 동네는 시내 중심가에서 한참 떨어진 변두리동네로, 거의 시골이나 다름없어서 이런저런 곤충이나 뱀, 새 따위를 늘상 보고 살았다. 나는 그때 그 새가 불쌍하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저 새를 묻어줘야겠다’고 결심하고는 책가방을 내려놓고 새가 떨어져있던 곳 바로 옆을 열심히 팠다. 어느 정도 파내려간 후에 책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한 장 쭉 찢어서 새를 돌돌 말고는 구멍에 넣고 흙을 덮어 무덤을 만들어주었다. 그러면서 혼자 흐뭇해했었다. 이렇게 하면 이 새가 좀 더 편안할테니까...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주인공 작은나무는 5살에 부모를 잃고 체로키족인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숲 속에서 살게 된다. 그리고 체로키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법과 삶을 살아가는 방식, 자연의 이치를 배운다.

매일 아침이면 산이 깨어나는 광경을 보고, 대지의 여신 모노라의 숨결을 느낀다. 자연은 봄을 낳기 위해 산통을 겪고, 여름이면 자연이 자라고, 가을은 죽어가는 것들을 위해 정리할 기회를 주고, 겨울에는 잠을 잔다. 그리고 인간은 반드시 필요할 때가 아니면 자연에게 결코 해를 가해서는 안된다. 절대 취미삼아 낚시를 하거나 짐승을 잡아서도 안되고 함부로 나무를 잘라서도 안된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인 짓인 것이다.

그리고 뭔가 좋은 일이 생기거나 좋은 것을 손에 넣으면 무엇보다 먼저 이웃과 함께 해야 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말로는 갈 수 없는 곳까지도 그 좋은 것이 널리 퍼지게 된다. 사랑과 이해는 같은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랑할 수 없고, 또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더더욱 없다. 사랑했던 것을 잃었을 때는 마음이 아프다.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 것뿐이지만, 그렇게 되면 항상 텅 빈 것 같은 느낌 속에 살아야 하는데 그건 더 나쁘다. 늙어서 자기가 사랑했던 것들을 떠올리게 되면 좋은 점만 생각나지 나쁜 점은 절대 생각나지 않는다, 그게 바로 나쁜 건 정말 별거 아니라는 걸 말해주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여전히 가치있는 존재라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은 항상 사려깊고 예의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작은 나무는 그렇게 매일매일 훌륭한 인디언으로 성장한다.


[ 보라 굽이치면서 높이 솟아오른 저 산들을.

붉은 태양이 산등성이 위로 떠올라 아침을 탄생시키면,

하얀 안개 시트는 그녀의 무릎을 휘감고

그녀의 손가락인 나무들을 스쳐가는 바람은

하늘에다 대고 그녀의 등을 긁어주네. ]


난 이제 더 이상 죽은 새를 보고 가엾다고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날이면 이맛살을 찡그리며 오늘은 재수없는 날이라고 투덜거릴 것이다.

하지만 작은 나무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법에 의해 고아원에 가서도 늑대별을 보면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대화를 하고 떡갈나무에게 자신의 안부를 전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는 이 책을 남겼다. 이 책은 1976년 제1회 에비상을 받았다. 전미 서점 연합회가 설정한 에비상의 선정기준은 서점이 판매에 가장 보람을 느낀 책이라고 한다.

작은 나무가 고아원에서 다시 산으로 돌아오던 날 신발을 벗어던지고 다시 대지의 숨결을 느끼듯이, 이 책은 손길이 닿는 어느 누구나 영혼을 따뜻하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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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 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 개정증보판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2
유성룡 지음, 김흥식 옮김 / 서해문집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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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양원은 요동에서 활동하던 장수라 오랑캐와 싸울 줄은 알았지만 왜적과의 싸움에는 미숙했기 때문에 패했던 것이다. 또 평지에 있는 성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몰랐던 탓도 있었다. 김효의가 전하는 내용을 자세히 전하는 까닭은 훗날 성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내용을 알려 주어 대비토록 하려는 까닭이다.]

이것이 유성룡이 이 책을 지은 까닭이다. '징비록'은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호종하면서 영의정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유성룡이 임진왜란과 난의 전후 상황을 자세히 묘사해 후세에 다시는 이러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반성의 기록이자 혹여 이 같은 일이 다시 생기더라도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당부이기도 하다. 하여 중간중간 '이 일을 기록해 놓은 것은 후에 도움이 될까 보아서이다.' 같은 글귀가 자주 발견된다.

임진왜란...그 기록은 안타깝고...답답하고...때론 눈물이 날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약자의 운명은 늘 고통스럽다.

조선 건국 후 태평성대를 이루었다하나 어찌 왜란의 여러 징후를 그렇게 무시하였던 말인가...평소 지배계층이라 거들먹거리던 이들은 어찌하여 그리 무심하게도 자신의 목숨만을 보존하려 했단 말인가...힘없는 백성들은 왜놈에게 뿐만 아니라 성급하고 무지한 양반네들에게도 그 한많은 목숨 유지하기 어려웠구나..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죽이고 잡아먹는 극한 굶주림 속에서도 우리는 조선을 구하러 왔다는 저들의 배를 채워주야만 했구나...

 [그 무렵 각 도에서는 수많은 의병들이 일어나 왜적을 물리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이 나라를 지킬 수 있었던건 자신의 위치에서 목숨을 바쳐 적을 맞아 싸운 여러 장수들과 전국 각지에서 일어선 의병들...그리고 그분들과 함께 싸웠던 이름없는 백성들의 힘이다. 

조선시대에 씌여진 책이라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으나 쉽게 옮겨져 있어 읽기가 편하다. 많은 사진과 자료, 그리고 여러 인물들과 조선시대 관직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되어 있어 누구나 무난히 이해하며 읽을 수 있다.

징비록을 지을 당시 유성룡의 마음처럼 반성하고 준비하였다면 좋았을텐데...그 후의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우리가 임진왜란의 교훈을 너무 쉽게 잊었다고...오늘을 사는 우리들 또한 깊이 되새겨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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