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1 - 시대가 만든 운명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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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역사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는 한다. ‘구제도의 모순’이라고 일컬어지는 중세 신분제도 안에서의 배고픔과 차별을 견디지 못한 민중들은 목숨을 바쳐 프랑스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었지만 공포정치를 지나 다시 나폴레옹을 황제로 받아들였다. 초기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으로 등장한 사회주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이루지만 그 결과는 독재정치였고, 독일의 나치즘 하에서 무수한 학살을 당한 유대인들은 현재 자신들의 역사를 반대로 되풀이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역사의 아이러니는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도도한 역사의 물결은 바꿀 수 없다. 그리고 변화는 민중들 안에서 먼저 일어난다. 그런 변화를 감지한 지도층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 발버둥치지만,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려는 노력은 결국 시대에 커다란 짐을 지우고 비참한 결말을 맺는다. 이 책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은 바로 그런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18세기 후반의 조선. 영조가 죽고 마침내 왕의 자리에 올라 민중을 위한 열린사회, 웅대한 나라 조선을 꿈꿨던 정조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역사의 흐름을 반대로 되돌리려 했던 노론의 치열한 싸움이 전개되던 시대를 온 몸으로 겪어내며 역사의 한 가운데를 통과한 정약용을 통해 저자는 질문을 던진다. 너희들의 시대는 어떠한가?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정약용의 일생(中 특히 정조와의 관계), 둘째 정조암살설, 셋째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당시 남인들 포함)의 사상. 그 중 1권은 정약용의 출생과 정조 사망 전까지 정약용의 활약을 그린다. 저자는 의도적으로 정약용과 사도세자의 연결고리를 단단히 하여 정조까지 연결시킨다. 그리고 그런 연결은 남인들을 제거하기 위해 핏대를 세우는 노론에게 정약용은 훗날 ‘천 사람을 죽여도 정약용을 죽이지 못하면 아무도 죽이지 않은 것만 못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노론에게 최대의 정적으로 떠오르게 된다.

 

정약용이 초시에 합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간 이후 벼슬이 동부승지, 형조참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정조의 사람을 쓰는 방법이다. 정조는 왕의 자리에 오른 후에도 사도세자를 죽인 자들을 바로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두며, 오히려 정승의 자리에 올려 정사를 논한다. 그것은 저자가 말한 대로 피눈물을 흘리는 초인적인 인내를 요구했을 것이다. 그리고 조용히 남인들을 키운다. 정약용은 영의정까지 오르는 체제공과 함께 정조에게 가장 든든하고 믿을 수 있는 신하이자, 밤 깊도록 학문을 논하고 농을 하는 동지였다. 하지만 그런 지위에 오르기까지 정조는 정약용의 사람됨과 학문을 한 눈에 알아보지만 바로 기용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시험하고 과제를 주며 단련시킨다. 때로는 아버지처럼 감싸주고 때로는 스승님처럼 혼을 내고 가르치며 정조는 정약용을 자신의 사람이자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재상으로 만들어갔고 정약용은 정조의 기대에 부흥한다. 정조는 자신의 이상을 함께 실현할 신하로서 남인들을 그렇게 조금씩 키워갔다.

 

탁월한 식견을 가진 왕이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고 정직하고 능력 있는 신하들이 만들어가는 사회는 과거의 모순을 조금씩 고쳐가고 서서히 발전하고 있었다. 만일 정조가 그 때 죽지 않았더라면 하는 탄식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정약용과 이가환 등 정조에 의해 키워진 신하들이 곧 정승에 오를 준비가 되어 있었고, 정조의 꿈을 품은 계획도시 화성이 완성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조 사후의 역사를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낙향한 정약용에게 조용히 내각 서리를 보내 곧 부르겠다는 따뜻한 전갈을 보냈던 정조는 얼마 안 있어 승하하고 말았다.

 

이 책이 많은 부분 할애하고 있는 정조암살설은 정조의 임종을 지킨 사람이 다름 아닌 정조의 정적 정순왕후였다는 것과(조선시대 임금의 임종은 아무리 어머니라 해도 여자는 지켜볼 수 없는 것이 법도였음에도 정조는 정순왕후와 단 둘이 있는 가운데 죽었다.) 정조는 의술을 배워 자신의 병을 스스로 치료할 정도로 극도로 주변 사람들을 믿지 못했고, 수렴청정 반교문이 반포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정순왕후는 정조 사망 당일 불법으로 인사권을 행사해 자신의 주변인들을 승진시켰다는 점 등을 증거로 들고 있다. 정조암살설은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의 주장대로 정조가 암살되었다 확신하기에는 이르지만, 조선은 시대의 흐름을 읽고 열린사회를 지향했던 군주 대신 당색에 사로잡혀 오직 당론만을 쫓았던 노론에 의해 퇴보하기 시작했기에 정조의 죽음에 안타까움과 의문이 더해지는 것이다.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2권은 정조 사후 마치 분풀이라도 하듯이 남인들을 제거하기에 혈안이 된 노론에 의해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는 남인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사상이 주를 이룬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그 시대의 천재 이가환은 물었다. “너희들의 시대는 단지 반대당파에 속한다는 이유로 천재를 죽이지는 않는가?” 이승훈은 물었다. “너희들의 시대는 주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죽이고, 열린사회를 지향하는 것을 국가에 대한 반역으로 몰지는 않는가?” 정조는 이렇게 물었다. “너희들의 시대에는 나처럼 부친을 죽인 적당과 타협하며 미래를 지향했던 정치가가 있는가?” 정약전은 물었다. “너희들의 시대에도 불의한 세상에 대한 절망을 민중과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시킨 사람이 있는가?” 그리고 정약용은 물었다. “너희들의 시대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를 죽이지는 않는가?”    1권 p.13-14

 

이 책을 읽으면서 오늘날을 반추해보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이 물음들에 있다. 이 책이 지향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열린 사회, 열린 사고를 지향했던 사람들이, 오직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반대파를 죽였던 자들에 의해 사지에 몰려야만 시대를 정약용을 통해 복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시열에 의해 사문난적으로 몰렸던 윤휴는 성리학이 아닌 유학의 본질인 공자의 유학을 공부하고자 했고 자신만의 학문체계를 세웠다. 그러나 그는 그 이유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 성리학이 아닌 다른 학문은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천주교는 조선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지만 남인들이 천주교와 연관되어 있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았다. 성리학이 아닌 학문은 정적을 제거하는 도구로 이용된 것이다. 남인들이 죽거나 유배를 간 이후 조선은 노론의 세상이 된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힘 한번 써 보지 못하는 순조 이후 조선은 세도정치에 휘둘리다 1910년 나라를 잃고 만다.

 

역사는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일어나고, 안타까운 순간도, 가슴을 쓸어내릴 만큼 다행스러운 순간도 있다. 역사를 단지 지나간 과거로만 볼 수 없는 이유는 이런 역사를 통해 우리는 현재를 볼 수 있고, 봐야만 하기 때문이다. 정약용의 시대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는가? 이가환, 이승훈은 우리에게 무엇을 묻고 있는가?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들의 시대는 어떠한가?

 

우리 사회는 지금 천명을 받아들이는 세상인가? 아니면 다산의 사상을 불 속에 처넣고 태워버리는 세상인가? 우리 사회는 정약용이 도를 펼칠 수 있는 사회인가? 아니면 서용보, 이기경, 홍낙안 등이 득세하는 세상인가? 우리 사회는 다산이 꿈꾸었던 그런 나라를 향해서 가고 있는가? 오늘 정약용은 이런 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2권 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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