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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 - 한껏 게으르게, 온전히 쉬고 싶은 이들을 위한 체류 여행
김남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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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김남희 작가님의 글을 접한 건, 몇 년 전 헌책방에서 발견한 인생기출문제집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돌아보면 스무 살부터 서른 살까지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끊임없이 주변을 기웃거리던 시기였다. 겨우 하고 싶은 일을 찾은 후에도 실행할 용기를 내기까지는 몇 년이 더 필요했다. 하고 싶은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의 경계는 내게도 모호했기에. 길 밖으로 나가보기 전에는 모르는 거야, 시도도 안 해봤는데 잘할 수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아, 실패하면 어때, 난 아직 젊은데, 이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들의 시선과 판단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간절한 것을 찾는 것.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고,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일을 찾아가는 것. 나의 이십대는 그 일을 찾느라 보낸 시간이었다. “이 세상엔 오직 두 부류의 인간이 있다. 한 부류의 인간은 자기 길을 가는 인간이고, 다른 한 부류의 인간은 그 길을 가는 사람에 대해 말하며 사는 인간이다.”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 인생기출문제집김남희 당신 삶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p.269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헤매던 그때 큰 힘이 되었고, 여전히 헤매고 있으므로 이 글은 내게 큰 힘이 되고 있다.

 

인생 선배로서 내게 멋진 글을 전해주셨던 작가님은 서른넷이 되어서야 자기 길을 가는 인간이기로 했고, 그 길 위에서 ‘12년간 80개국을 다닌 여행가가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삼십 대에 사표를 쓰고 세계일주를 떠난 건 자신이 세상에 태어나 내린 결정 중에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는 말로 시작하는 이 책은 유난히 추위에 작한 작가님이 선택한 겨울 쉼터, 발리-치앙마이-라오스-스리랑카에서 보낸 200일에 대한 기록이다.

 

짙고 농염한 초록의 논과 숲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한 기분이 들었던 발리의 우붓, 지구에서 가장 큰 생명체인 흰수염고래를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비행기값이 아깝지 않았던 스리랑카, 소박하고 느린 삶이 주는 여유를 잃지 않은 시간 부자들이 사는 태국의 치앙마이, 여행은 단순한 소비 행위가 아니라 타인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회적 행위임을, 그러니 우리는 발끝을 들고 조심조심 다녀가야 하는 손님일 뿐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었던 라오스까지. 83편의 글 중, 인상 깊었던 두 편을 소개해본다.

 

사원을 나오자 마데 아저씨가 묻는다. 새 공원에 가겠느냐고. 이름은 새 공원이지만 결국 동물원이라 마찬가지라 나는 들어갈 생각이 없다. 게다가 우붓까지 관광을 하며 가는 여덟 시간짜리 차량 렌트비가 4만 원인데 새공원 입장료는 한 사람에 3만 원. 돈을 새들에게 모이처럼 뿌려줄 수는 없다. 근데 엄마가 뜻밖의 반응을 보인다. "나 새 좋아하는데... 들어가 보고 싶어." 엄마가 새를 좋아하다니 금시초문이다. "엄마 혼자 들어갔다 와요." "혼자서는 안 갈래. 무슨 재미로 혼자가?" 어쩔 수 없이 나도 따라 들어갈 수밖에. 열대의 새들을 모아놓았는데 규모도 작고 새의 종류도 많지 않다. 그래도 엄마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새들을 찾아다닌다. 그런 엄마가 새들보다 더 신기하다. 나는 어째서 엄마가 새를 좋아한다는 것도 몰랐을까.

세상의 모든 딸은 자신을 낳아준 엄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세상의 모든 엄마는 또 자신이 키운 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엄마'라는 이름을 벗어놓은, 욕망을 지닌 한 여성으로서의 엄마를 나는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은 익숙했던 상대를 재발견하게 만든다. 내 안에 단단하게 굳어있던 상대에 대한 이미지를 녹여준다. 엄마와 함께 여행을 떠나오다니, 참 잘했다. (p.28)

 

엄마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함께 떠난 여행지에서의 엄마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엄마에 대해 알고 있는 것만큼 엄마에 대해 모르는 게 아닐까. 엄마는 편히 여행하라고 혼자 계획을 짜며 여행을 준비했는데, 어떤 음식이 먹고 싶은지 어떤 것을 보고 싶은지 물었으면 좀 더 좋은 여행이 되었을까 싶었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준비했던지라 후회하진 않는다. 아쉬움을 교훈삼아 다음 여행에 적용하면 될 일이니까. 딸인 나의 생각은 이러한데, 엄마의 생각은 어떨까 궁금해진다. 나 역시 엄마와 함께 여행한 일을 참 잘했다고 생각했기에 이 구절이 마음에 들었다.

 

TV가 여행자를 수동적인 존재로 만들고 있다. 이제 귀찮은 선택을 할 필요가 없어졌는지 모른다.

생각해보면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우리의 삶도 다 비슷하다. 공부하고, 일하고, 생존하느라 자신의 취향조차 모르고 살아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혼자서 무언가를 해보는 훈련이나 습관도 안 되어 있다. 그러니 여행지를 고를 때도 지금 인기있는 곳을 고르기 쉽다. 라오스를 여행하면서 자기만의 라오스를 찾기보다는 <꽃보다 청춘>의 라오스를 소비할 뿐이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그 집단적인 소비 행위에 타인을 위한 배려가 끼어들 틈은 없다. (p.378)

 

라며 자신 역시 TV 프로와 본질적으로 같은 일을 하고 있기에 마음이 불편해진다고 고백한다. ‘여행으로 밥을 버는 처지라면 더 나은 여행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좋은 여행이란 무엇일까.’ ‘나는 좋은 여행자인가.’ 이런 질문에 천착해왔지만 자신이 좋은 여행자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다고.

나 역시 이 구절을 읽으면서 나의 여행을 돌아봤다. 여행에 있어 나는 수동적인 존재는 아니었는지, 나만의 방식으로 여행했는지를. 이 글을 쓰기 몇 시간 전에 나는 친구와 조만간 있을 부산 여행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돌아왔는데 친구는 도서관에서 부산 여행에 관한 책을 빌려왔고, 나는 몇 년 전 떠났던 부산 여행에서 아쉬웠던 것들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다른 정보를 찾아 갔다. 시간이 여유롭지 못해서 남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여행을 계획했는데, 친구와 나만의 여행으로 남을지는 아직은 모를 일이다. 그래도 다짐해본다. 앞으로 어떤 여행을 하게 되건 나만의 여행지를 찾을 것. 그리고 타인을 위한 배려를 잊지 않는 여행을 할 것이라고.

 

유난히 추위를 타는 작가님과는 다르게, 나는 추위도 타고 더위도 잘 타서 따뜻한 남쪽 나라를 여행지로 삼을 확률이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따뜻한 남쪽 나라를 선택하는 날이 온다면 그건 분명 이 책 덕분일 확률은 높다. 작가님이 들려주었던 겨울 쉼터 속 사람들의 이야기가 녹아든 그 풍경 안에서 한껏 게으르게, 온전히 쉬어 보고 싶다. 200일은커녕 20일도 어렵겠지만, 2일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한껏 게으르게, 온전히 쉬는 2일이라니. 너무 극단적이어서 극적으로 느껴지긴 하지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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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 시드니 걸어본다 7
박연준.장석주 지음 / 난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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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네 번째다. 임프린트 난다의 걸어본다시리즈가 내 품에 들어온 것이 말이다. 걸어본다 세 번째 시리즈였던 나의 사적인 도시가 내겐 첫 번째였는데, 운이 좋았다. 박상미 작가님의 글은 내 취향을 저격했고, 나는 걸어본다 시리즈를 모으기 시작했다. 비단 나 뿐만 아니라, 에세이를 좋아하는 사람의 취향을 저격했는지 많은 분들과 걸어본다 시리즈를 함께 읽었다. 여섯 번째 시리즈인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으로 배수아 작가님의 알타이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했는데, 박연준-장석주 작가님의 시드니가 내 품에 도착한 것이다.

 

이 책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가 시인인 두 사람의 결혼 사실을 알리는 청첩장 역할을 하는 책이라는 건 어느 날 기사를 보고 알았다. 10년 열애 끝에 올 1월 혼인신고를 했지만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던 이들이 9월 초부터 한 달 동안 호주 시드니에서 살았던 기록이라는 것도. 후에 이 책이 내 품으로 들어왔고, 책을 손에 쥔 나는 뒷표지에 실린 김민정 작가님의 축사같은 추천사를 한참 읽었다. 뒷표지를 활자로 가득 채울 만큼 빼곡한 글을 보면서, 두 사람에 대한 애정이 뚝뚝 묻어나서 글을 읽는 내가 다 훈훈했다.

 

호주에 사는 지인이 긴 여행으로 집을 비우게 되었으니 와서 지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두 사람은 여행 가방을 꾸려 시드니로 향했다. 다른 사람이 살던 집에 들어가서, 그 집 살림을 하며 먹고 자고 생활하게 된 것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커피를 마시고, 버스를 타고, 사람을 만나고. 제일 많이 한 것은 누가 뭐래도 산책이었다. ‘시드니에서의 생활을 주제 삼아 소소한 일상을 포착해서 풀어낸 박연준 시인의 글이 먼저 담겼고, 큰 맥락을 잡아 풀어낸 장석주 시인의 글이 뒤에 담겼다.

 

느낌은 다르지만, 일본 소설 냉정과 열정사이가 떠올랐다. 헤어진 연인을 가슴에 담아둔 채 각자의 삶을 사는 두 남녀의 이야기가 그려졌던 소설. 하나의 이야기인 동시에 두 사람의 이야기라는 점이 독특해서 흥미롭게 읽었다. 하나의 이야기인 동시에 두 사람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건, 아오이와 쥰세이가 연인이었기 때문이고 이 책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를 쓴 두 시인이 부부이기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두 사람이 만나 연인이라는, ‘부부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었으므로.

 

시드니에 도착해서 시드니를 떠날 때까지 두 사람의 글은 달랐지만, 그래서 재미있었고 마음에 들었다. 누구든 이 책을 읽으면 알게 될 것이다. 그게 이 책의 둘도 없는 매력이라는 것을.

 

대개 사랑은 콩깍지가 씐 상태라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은 콩깍지가 벗겨졌는데, 그것도 한참 전에 벗겨졌는데도 그 사람이 좋은 것이다. 모든 단점들을 상쇄시키는 것, 이해 불가능한 상태가 사랑이다. (p.52 박연준)

 

어디까지가 콩깍지이고, 어디부터가 안 콩깍지일까. 말 장난 같은 이 말을, 속으로 되뇌어본다. 내 품에 들어온 이 책을 지금은 콩깍지 씐 상태로 읽었으나, 시간이 흘러 다시 읽게 되는 그 때를 안 콩깍지라고 말할 수 있을까. 박연준 시인의 따뜻한 글을 지나, 장석주 시인의 정교한 글의 끝에서, 나 역시 안녕, 시드니,’하고 무심히 발음해본다. 그리고 이런 문장을 써도 되나 싶어서 고민하다, 못 쓸건 또 뭐란 말인가 싶은 마음으로 마지막 문장을 쓴다. 두 사람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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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소리도 없이 말도 없이
등뒤로 털썩
밧줄이 날아와 나는
뛰어가 밧줄을 잡아다 배를 맨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배는 멀리서부터 닿는다

사랑은,
호젓한 부둣가에 우연히,
별 그럴 일도 없으면서 넋 놓고 앉았다가
배가 들어와
던져지는 밧줄을 받는 것
그래서 어찌할 수 없이
배를 매게 되는 것

잔잔한 바닷물 위에
구름과 빛과 시간과 함께
떠 있는 배
배를 매면 구름과 빛과 시간이 함께
매어진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사랑이란 그런 것을 처음 아는 것

빛 가운데 배는 울렁이며
온종일을 떠 있다

- 장석남 <배를 매며> 전문.

 

*

 

네이버 메모앱에 저장되어 있었다.
2014년 11월 9일에 기록해둔 메모였고, 그 즈음에 무슨 책을 읽었나 살펴보니 시집이 한 권 있다.
신현림 작가님이 엮으신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 ' 2권.
이렇게 남겨뒀다는 건 정말 좋았다는 것일테고,
이렇게 남겨둔 덕분에 시간이 지나도 좋은 시를 다시 읽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손으로 쓴 구절도 좋지만 '빛 가운데 배는 울렁이며 온종일 떠 있다'도 만만치않게 좋다.
아니 그냥 이 시 자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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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납하러 갈땐 그렇게 투덜대면서도, 빌려올땐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대체 이 무슨 심보인지.

한동안 전자책을 읽다가 종이책을 보니 반가운 마음에 또 한가득 품에 안고나니 6권이었다.

오늘 도서관행의 주된 목적이었던 '용이 산다' 2권

(집에와서 다 읽고 네이버 접속해서 시즌2도 정주행 완료😁) 과
읽고 싶었던 정혜윤 작가님의 '사생활의 천재들',
이크종인데 노란책이라니! 안 빌려올 수 없었던 '그래요, 무조건 즐겁게!',
제목에 끌린 '오블라디 오블라다',
김소연 작가님의 시집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 당긴다'도 제목에 끌려 업어왔다.

박지웅 시인의 '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는

내 단골 도서관에서 보기 드문 문학동네 시인선이어서 눈길이 갔다가 마음에 들어서 대출.

도서관도 원정을 뛰어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학동네시인선을 보고 행동에 옮겨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내가 찾는 도서를 상호대차 하는 것도 좋지만,

오늘처럼 서가를 둘러보며 책을 빼들고 구경하고 대출해오는 맛은 또 다르니까.

라고 둘러댔지만 현실은 아직도 모르는 책이 많기 때문이다.

단골 도서관도 매일같이 드나들어도 여전히 새로울 때가 많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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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소방관이다. 오늘도 사고 현장에 나와있다.
불길이 휩싸인 집에서 쓰러진 사람들을 구조하고 나가려는 찰나에

검은 실루엣 하나가 눈에 들어오고, 남자는 그 자리에서 망설인다.
붕괴되기 직전의 이 집에서 당장이라도 나가야 하는데

저 실루엣은 사람인가, 물건인가. 사람이면 어쩌지 싶어서.
남자가 무전기로 응답하지 않아 뛰어 들어온 동료가 남자를 구해낸다.

덕분에 남자의 부상은 왼쪽 눈 위에 화상을 입은 것으로 끝나,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런 남자를 찾아온 팀장에게 그날 사람 형제를 봤다고, 불길이 너무 세서 차마 확인은 못했는데

만약 네댓살 먹은 아이였으면... 하고 말을 잇지 못하는 남자.

팀장은 기회가 되면 자신이 물어봐주겠다며,
괜한 걱정말고 일단은 푹 쉬라는 말로 남자를 위로한다.
니 몸이 우선이라고. 앞으로 네가 살려야 할 목숨이 몇개인지 아냐고 덧붙이며.

시간이 흘러, 남자는 팀장에게서 전화를 받는다.
저번에 그 사건에 대해 알아봤다고. 그 현장에 사상자 없었다고.
팀장의 전화를 받은 뒤로 남자는 평온을 되찾는다.
그렇게 한 여자를 만나 따뜻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아가던 남자는

여느 날처럼 출동했던 어느 날, 후배 동료를 살리려다 현장에서 세상을 뜬다.

눈을 뜨니 남자의 눈앞에는 신으로 보이는 자가 있다.
자신이 죽은 것을 깨닫고, 자신이 지킨 후배 동료는 무사한지 묻는다.
신은 그런 남자를 보고 대단하다며 받아친다.
신 같은 존재냐고 묻는 남자의 말에 신은 그렇다고,
그러니 미련이 있다면 털어 놓으라고, 네 이야기라면 언제든지 들어줄테니
부인, 아들, 부모 등 뭐든지 해보라고 말한다.

남자는 '뭐든지'라는 말에 한참을 고민하다 입을 뗀다.
십여 년 전에 자신이 화염 속에 놓고 온 그것이 사람이었는지, 물건이었는지를.
죽어서도 그날 일을 잊지 못하는 남자가 대단하다며, 그날 그것은 물건이었다고 신은 답한다.
그날 집주인이 장봤던 물건들. 야채, 과일. 뭐 그런 것들이 든 봉투였다고.

남자는 그제야 안심이 되었는지, 흐느낀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보다 더 마음에 두었던 그날의 진실 앞에서.

내가 한 생명을 버리고 도망친 것은 아니었는지, 계속 마음에 걸려 내내 마음속에 품고 지냈다고. 

다시금 감사하다는 말을 끝으로 남자는 자리를 뜬다.

그리고, 혼자 남은 신의 곁에 네댓살 먹은 아이가 서있다.

아이에게 신은 말한다.

 

"이제... 그를... 용서해. 이런 사람들이야." 라고.


- 죽음에 관하여 20.5-21화.

*


죽음에 관하여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

책 반납하기 전에 아쉬워서, 에피소드를 글로 풀어 적어뒀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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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6-02-19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밀님의 이 글을 몇번을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해밀 2016-02-20 00:02   좋아요 0 | URL
이 에피소드 정말 좋죠.
기회가 되시면 책으로 다시 한 번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부족한 글,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