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소리도 없이 말도 없이
등뒤로 털썩
밧줄이 날아와 나는
뛰어가 밧줄을 잡아다 배를 맨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배는 멀리서부터 닿는다

사랑은,
호젓한 부둣가에 우연히,
별 그럴 일도 없으면서 넋 놓고 앉았다가
배가 들어와
던져지는 밧줄을 받는 것
그래서 어찌할 수 없이
배를 매게 되는 것

잔잔한 바닷물 위에
구름과 빛과 시간과 함께
떠 있는 배
배를 매면 구름과 빛과 시간이 함께
매어진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사랑이란 그런 것을 처음 아는 것

빛 가운데 배는 울렁이며
온종일을 떠 있다

- 장석남 <배를 매며> 전문.

 

*

 

네이버 메모앱에 저장되어 있었다.
2014년 11월 9일에 기록해둔 메모였고, 그 즈음에 무슨 책을 읽었나 살펴보니 시집이 한 권 있다.
신현림 작가님이 엮으신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 ' 2권.
이렇게 남겨뒀다는 건 정말 좋았다는 것일테고,
이렇게 남겨둔 덕분에 시간이 지나도 좋은 시를 다시 읽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손으로 쓴 구절도 좋지만 '빛 가운데 배는 울렁이며 온종일 떠 있다'도 만만치않게 좋다.
아니 그냥 이 시 자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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