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맨 - 제2회 골든 엘러펀트 상 대상 수상작
이시카와 도모타케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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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디에도 없는 옆집 아저씨, 원빈이 주연한 영화 <아저씨>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너희들은 내일만 보고 살지? 내일만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한테 죽는다. 나는 오늘만 산다. 그게 얼마나 좆같은 건지 내가 보여줄게.”

 

<아저씨> 상영 당시, 저 대사는 ‘내일’과 ‘오늘’이라는 표현의 어색함 때문이었는지 많은 관객들에게 조금의 오글거림을 선사했다지만 내게는 누가 뭐래도 명대사였다. 원빈이 연기한 차태식의 ‘내일만 사는 놈’은 지켜야 할 것들이 있고, 소중한 사람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저 대사를 한마디로 줄이자면 ‘너 나한테 죽는다.’지만 나는, 한 때 지켜야 할 것들이 있고, 소중한 사람이 있어서 내일도 보고 살았을 차태식이 생각나서 먹먹했던 관객이었기 때문에 저 대사가 참 좋았다.

 

이 책, 이시카와 도모타케의 『그레이맨』 서평을 영화 <아저씨>의 명대사로 시작한 건 『그레이맨』 속 구절 때문이었다.

 

“당신들은 살아서 지켜야 할 것들이 있어. 소중한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게 없어. 당신들은 우리를 이길 수 없어.” (p.394)

 

<아저씨>에는 차태식이 유일한 ‘오늘만 사는 놈’이지만, 『그레이맨』 에서는 ‘우리’다. 사유리, 료타로 등등 죽음의 심연에 빠져있던 그들을 ‘회색 남자’가 구해낸다. 자신은 사람의 마음속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재능이 있다며, 특히 자살을 각오한 사람을 한눈에 알아보는 능력이 있다면서 말이다. 물론 그가 이런 재능을 갖게 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절망의 심연 속에서 그를 살게 한 복수, 그에게 그런 복수를 갖게 만든 처참했던 사건. 그래서 그는 자살을 결심한 사람들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이 그러했기 때문에.

 

아닌 게 아니라 로쿠조의 말이 맞았다. 복수심 같은 마이너스의 감정은 그것을 품은 자의 영혼을 소모시킨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을 파멸로 몰고 가는 그 같은 감정에서 도망치기 위해 거기에 또 다른 감정이나 가치를 꿰어 맞춰서 대강 절충을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유즈키 레이라는 자는 그 강인한 정신력으로 복수심을 결코 내버리는 일 없이 깊이 간직한 끝에 목적을 이루었다. (p.452)

 

<아저씨>의 차태식은 전당포 귀신이었던 자신에게 한줄기 빛을 선사해준 소미를 잡아간 내일만 사는 놈들을 찾아내 처리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그레이맨』의 그레이는 범인뿐만이 아니라 이 나라 전체를 갉아먹는 그 잘못된 구조에 복수하고자 했다. 오로지 그것만이 그가 삶을 이어가는 이유였지만 애석하게도, 그가 선택한 복수의 방법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범죄에는 범죄였다. 그는 자신의 복수를 실행하기 위해 범죄를 행한 범죄자였으나 그의 범죄는 또 다른 선(善)을 낳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복수를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자신의 재능을 십분 발휘해 자살을 결심한 많은 사람들을 살렸고 '공범'이라는 필요로, 명목으로 그들을 살아가게 만들고 있으니까. 그의 재능으로 살아난 한 사람, 료타로가 회색 남자였던 그를 '그레이'라 부르면서 그는 회색 남자에서 그레이맨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 어떤 영웅들보다 자신에게 붙는 호칭을 마음에 들어했던 영웅이었다. 내가 『그레이맨』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던, 작가와의 인터뷰 속 작가가 말하는 ‘약자 출신의 영웅’말이다.

 

이렇게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를 선택하게 하고 오롯이 읽어낼 수 있었던 데에는 이 시대의 영웅, 그레이의 힘이 컸다. 어느날 갑자기 마주하게 된 처참한 사건으로 절망의 심연으로 빠져버린 그. 무지막지한 영혼 소모를 강인한 정신력으로 이겨내며 복수심을 결코 내버리지 않았던 그. 료타로가 ‘그레이’라고 불러주었을 때 인간을 초월한 존재, 그제야 겨우 자신이 거기에 이르렀다는 실감이 들어서 무척 기뻤다던 그. 그런 그를 생각하면 많이 먹먹해지는, 제2회 골든 엘러펀트 상 대상 수상에 빛나는 이시카와 도모타케의 『그레이맨』이었다.

 

 

 

* 인상 깊었던 구절 (서평에 인용한 구절 제외) *

 

"남의 죽음을 예언하는 게 아니에요. 죽음으로 향하려는 사람을 민감하게 감지하는 거죠. 당신은 침울한 사람과 슬퍼하는 사람을 분간할 수 있나요?"

"그런 정도라면 가능할 거 같은데?"

"그것과 마찬가지예요.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주의 깊게 지켜보면 극한의 궁지에 몰려 있는 인간을 분간할 수 있어요. 자살하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어떤 사인을 보내는 법이에요. 하지만 그걸 알아봐주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게 문제죠." (p.219)

 

몸을 베어내는 듯한 아픔. 폐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 이 지상에서 자신의 존재가 불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아버린 절망감. 몸의 세포가 모조리 다 타버릴 듯한 분노. 그리고 그 분노에 목이 졸려버린 슬픔. 어떻게도 해결할 수 없는 자기혐오. (p.284)

 

"어디에도 내 자리가 없었거든요."

불쑥 중얼거렸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이곳을 내 자리로 정했어요." (p.289)

 

"다행인지 불행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야말로 나락에 떨어졌을 때 그레이에게 구조됐어요. 그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런 썩어빠진 세상에 저할할 줄 아는 사람이 있구나, 정말 대단하구나, 하고. 그래서 그레이를 따라 나섰죠. 지금도 이 잘못된 세상에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지만, 무엇보다 나는 그레이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될지 꼭 지켜보고 싶어요." (p.290)

 

"자살하는 사람들에게 저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돈에 얽힌 문제가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 말을 바꾸자면,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는 거야. 물론 질병이나 그 밖의 불행한 사연도 있겠지. 하지만 역시 돈에 얽힌 문제가 압도적으로 많은 게 사실이야." (p.331)

 

"나는 미국이 결백하냐 아니냐의 논의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하지만 만일 미국이 스스로의 손으로 자기 나라의 건물을 파괴하고 국민이 죽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전쟁을 벌였다면 그건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겠지."

그레이는 잠시 한 호흡을 쉬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국민을 희생시키면서 제 나라의 영리를 추구했다. 그렇다면 거기에 사용된 나노테르밋 폭탄은 그야말로 붕괴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나?" (p.366)

 

"그레이는 처음부터 재분배를 생각한 게 아니라 권력자에게 공포감을 주는 것이 목적이었군요?" (p.419)

 

설령 불가능하다고 해도 나는 그레이를 절망의 심연에서 구해내야 한다. 그레이가 나를 죽음의 심연에서 구해주었듯이. (p.437)

 

비가 내리는 날은 날씨가 좋지 않다.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비가 내리더라도 해는 구름 뒤에 숨어 있을 뿐, 그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p.470)

 

비가 내리더라도 날씨가 좋을 때가 있는 것이다. (p.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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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묘묘 이야기 - 「어서와」 고아라 작가의 따뜻한 감성 만화
고아라 글 그림 / 북폴리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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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까칠한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고양이의 이름은 묘묘. 묘묘의 집에 곰곰이라는 곰이 찾아오면서 곰곰묘묘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세히 말하자면, 까칠한 고양이 같은 여자와 우직한 곰 같은 남자의 이야기.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둘의 관계가 정확히 어떠한 관계였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예전 사진이라는 단체 사진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찍힌 사진을 보며, 곰곰과 묘묘 둘의 대화에서,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이런 사이일까 하고 추측할 수 있을 뿐이었다. 앞부분을 읽으면서 둘의 관계가 많이 궁금해 했지만, 책을 읽어갈수록 둘의 관계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녀 사이가 으레 그러하듯 곰곰묘묘 이야기도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니까. 어떠한 관계였는지를 궁금해 하기보다는 어떠한 관계가 될지 궁금해 하며 읽는게 독자의 몫이 아닐까하며 읽었다.

 

  곰곰의 말마따나 요리도 참 잘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한 퍼펙트 인생을 살고 있는 묘묘의 일상에 어느 날 찾아온 곰곰. 집도, 연락할 친구도, 갈 곳도 없었던 곰곰은 묘묘의 집에서 지내면서 묘묘의 일상의 틈을 부지런히 채운다. 한 집에서 같이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청소를 하고, 때때로 외출해서 장을 보고, 도서관에서 가서 책을 읽고, 산책을 한다. 이달의 다독왕에 선정될 정도로 책 읽기를 좋아하는 묘묘. 곰곰은 그런 묘묘 옆에서 같이 책을 읽거나, 묘묘가 어떤 책을 읽는지 궁금해 하고, 때로는 집중있게 책을 읽는 묘묘를 바라본다. 묘묘가 책 읽는 시간까지 곰곰이 함께 한다는 것. 나는 여기서 둘의 사이가 무척 가까워졌음을 느꼈다. 묘묘에게 독서란 일상 중의 일상이었고, 그 시간을 곰곰이 함께한다는 건 곰곰이 묘묘의 일상이 되었다는 것이니까.

 

  4월에 내리는 눈처럼 생각치 못하게 찾아온 손님, 곰곰.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먹다가 문득 자신이 어떻냐고 묻는 곰곰, 곰과 고양이의 우정이 유지될 수 있는 건 한 짐승의 지독한 짝사랑 때문이라고 말하는 곰곰, 짭짭 소리를 내며 밥을 먹는 곰곰, 산책하다 말고 네잎클로버를 찾는 곰곰, 걸려 넘어졌던 돌부리를 잊지 않고 찾아가 뽑아내는 곰곰, 어느 가을 날 춥다며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입혀주는 곰곰. 묘묘는 그런 곰곰이 점점 신경 쓰인다. 혼자 지내는 게 익숙했던 묘묘는, 곰곰이 겨울잠에 들어간 사이에 곰곰의 존재감을 깨닫는다. 자신만 그런 줄 알았으나 곰곰 역시 늘 혼자였음을. 겨울에 내리는 첫눈을 보며 묘묘는 생각한다. 사진을 찍어줄 걸, 밥 먹을 때 눈치주지 말 걸, 좀 더 다정하게 대할 걸. 그리고, 꿈에서 2년 전 가을 곰곰과 함께했던 때를 꿈꾸고 일어난다. 그 때, 묘묘의 방문을 열고 일어났냐며 아침 먹으러 나오라 말하는 곰곰. "봄이묘."라는 묘묘의 말로 곰곰묘묘 이야기는 끝이난다. 대사들이 짧고, 쉽게 읽히지만 그 틈 속에서 머물러서 한참을 생각하게 하는 책. 곰곰묘묘 이야기는 그런 책이다.

 

  곰곰이 생각하는 '사랑'과 묘묘가 생각하는 '사랑'을 보며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무엇인지 열심히 떠올리며, 나는 곰곰묘묘 이야기를 쉽게, 그러나 열심히 읽었던 것 같다.

 

 

 

 

 

* 인상 깊었던 구절 *

 

곰곰 : 사랑이 뭐곰?

묘묘 :

곰곰 : 난 언제나 곁에 있다곰. 그게 사랑이라곰 생각한다곰. 묘묘, 넌 어떻곰?

 

묘묘는 생각했다. 얼마전 곰곰이 요리를 해 준 일이 있었다.

 

묘묘 : 씨묘 개나 주라묘!

 

그것은 매우 거북한 맛의 요리였다.

그 후 며칠 뒤 길을 걷던 묘묘는 익숙한 냄새를 맡게 되었다.

 

묘묘 : 킁킁. 이것은 곰곰의 요리 냄새다요!

 

순간 역한 냄새에 울화가 치밀어 올라오는 듯 했지만

두근 두근. 갑자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묘묘는 요리하는 곰곰이 떠올랐다.

크고 자상한 뒷모습, 흥겹게 휘파람을 불던 옆모습.

묘묘는 이 역한 냄새에도 곰곰을 떠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묘묘는 이 놀라운 순간을 곰곰에게 설명하고 싶었다.

묘묘는 생각을 정지하며 곰곰을 곰곰히 바라보았다.

멍청하고 둔한 히말라야 태생, 다시 묘묘는 집중하며 곰곰에게 해 줄 말을 생각했다.

가만보면 귀여운 120kg의 곰곰.

 

묘묘 : 아 배고프묘! 가서 밥 좀 해묘!

곰곰 : 묘묘! 나 이젠 스파게티 겁나 잘하곰.

묘묘 : 하? 그렇묘? 어디 함 보겠묘!

곰곰 : 기다리곰♪

묘묘 : 땅 꺼진다묘!

 

곰곰은 그렇게 요리를 시작하고, 묘묘는 그런 곰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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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과 사귀다
이지혜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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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마음을 슬쩍, 혹은 과감히 보여주는 50개의 공간들을 이야기하는 책답게 나는 <그곳과 사귀다>를 나만의 그곳에서 읽었다. 감성이 충만해지는 늦은 밤에 ‘내 방’에서, 자주 찾는 ‘카페’ 나만의 지정석에서, 출퇴근길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에서 등등. 늘 그렇듯 나의 일상의 공간들에서 읽었지만, 내 일상을 채우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이라 그런지, 책을 읽는 공간들이 반짝 반짝 빛나고 새롭게 느껴졌다.

 

  이 책을 읽을 때마다 나는 한 사람이 생각났는데, 올해로 만난 지 6년이 되는 친구 K양이다. K양과 나는 만나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하면 3시간은 기본이요, 5시간도 거뜬히 대화할 수 있는 지칠 줄 모르는 대화 상대다. 지금이야 돈을 벌어서 카페도 가고, 밥집도 가서 이야기하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해 갓 대학생이 된 그 때의 우리는 한 푼이 아쉬웠다. 그런 우리가 대화를 하기 위해 선택했던 공간은 공원, 도서관 앞 벤치, 백화점 앞 광장 같은 곳이었다. 운동을 하기 위해서라거나, 도서관 이용을 위해, 쇼핑을 위해 그 공간으로 향한 것이 아니라 대화가 목적이었던 우리. 나는 K양과 함께 했던 그 시절을 통해, '공간'은 공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배웠다. 그 공간에서 보낸 시간, 공간에 함께 있었던 상대, 공간에서 나눈 이야기들. 그 공간을 채운 모든 것들이, 그리고 그 공간에 대한 모든 기억들이 중요한 것임을 <그곳과 사귀다>를 읽으면서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50개의 공간들을 가장 솔직한 ‘마음’을 주고받는 곳 / 웃기도 울기도 하는, 여러 감정을 만나는 곳 / 잊었지만 기억하기 위해, 한 번 더 돌아보는 곳 / 어제와 오늘을 다르게 만드는, 순간을 마주하는 곳이라는 크게 네 개의 주제로 나누어 각각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이야기와 함께 그 공간을 느낄 수 있도록 그 공간들이 담긴 사진도 함께. 이 책의 매력 중 하나는, 공간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 뒤에 실리는 ‘~에서 만난 Her, His story'다. 그 공간이 우체국이라면 우체국을 방문한 사람 이야기가 실려 있고, 그 공간이 산후조리원이라면 산후조리원에 머물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공간에 대한 저자만의 기억을 넘어, 일상에서 마주쳤을지 모를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당장이라도 책을 덮고 노트를 펼쳐서 그 공간에 대한 나만의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고 싶어졌다. 그렇게 쓰인 몇몇의 공간들에 대한 나만의 이야기를 훗날 다시 읽었을 때, 그 공간은 내게 어떻게 다가올까. 우리의 일상을 채우는 공간들을 되돌아보며, 소박한 일상이 주는 소중함을 선물해 준 이 책과 함께 다시 읽고 싶다.

 

 

 

* 인상 깊었던 구절 *

 

아, 그냥 흙과 미끄럼틀만 있으면…… 서로 마음을 나눌 곳만 있다면 인연이 될 수 있구나. (p.34)

 

동창회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서로의 옛날을 안다. 그렇기에 현재가 더 편안하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을 넘어 추억한다는 것은 이렇게 모든 시간을 가치 있게 만들어준다. 함께한 시간들이 있기에 오늘이 어떤 모습이든 추억으로 남길 수 있다. (p.43)

 

감정이 변할 때마다 우리 발길이 향하는 곳도 변한다. 지금 당신이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자신에게 묻는다면 당신의 심경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지도. (p.100)

 

물론 문자 메시지나 전화와 같은 '즉각적인 전달'도 마음을 전하는 방법이지만 때론 3일 전쯤 우체국으로 달려가 편지지에 마음을 적어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 마음이 점점, 조금씩 전달되는 3일 동안이 꽤 행복할 테니 말이다. (p.148)

 

헌책방에서 시간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헌책방엔 우리들의 헌 기억들이 있고, 헌 시간들이 있다. 지금보다 어쩜 더 세련되고 더 투명한 그런 시간들이. 헌 시간들이 다시 반짝반짝 빛난다. (p.168)

 

이것은 분명하다. '끝이 두려워' 목표점을 너무 멀리 잡아둔 사람보다 '끝이 있는' 그들이 훨씬 뜨겁게 살고 있다는 것. (p.184)

 

모두 때가 되어 온 것들, 때가 되어 버려진 것들이 가득한 재활용센터에서 맺고 끊는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했다. 상대방이 납득할 만하 이유가 있다면 헤어짐의 이유가 더 분명하겠지만 그냥 '때가 됐어'라는 말이 더 분명한 이유가 될 때도 있다. (p. 235)

 

유행에도 뒤처지고 낡아 빛이 나진 않지만 그 안에 숨은 이야기가 가득하기에 그 어떤 물건보다 세련된 것이다. 나도, 우리도 오래된 이야기들을 잊지 않는다면 오랜 시간 마음이 '그득그득'할 것이다. (p.248)

 

우리는 많이 읽고 듣고 볼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동등하게 우리 앞에 있고 접시에 무엇을 담는지는 우리 권리다. 인생도 뷔페다. (p.272)

 

몰입하는 시간이 있다는 건 중요한 일이다. 지금 이때를 아는 것, 이때가 지나면 무언가가 지나간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지. 새벽 시장에서 만난 할머니에게서 몰입이라는 단어를 배웠다.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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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보트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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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의 문체가 부쩍 그리운 겨울이다. 왜 그리운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올 겨울은 유독 그렇다. 그래서 모처럼, 그녀의 소설을 찾아 읽었다. 8년 전 『냉정과 열정사이 Rosso』로 에쿠니 가오리에 입문한 이래 그녀의 많은 소설을 챙겨 읽었지만, 이번 『하느님의 보트』만큼 재밌게 읽었던 적은 없었노라- 단언할 정도로 『하느님의 보트』를 인상깊고 재미있게 읽었다. 에쿠니 가오리의 문체야 문체만으로도 만족하며 읽는 작품도 있었으니 두말하면 입 아프고, 그녀의 문체로 풀어내는 이야기들도 좋아하지만 이번 『하느님의 보트』를 유독 재밌게 읽었던 이유는 따로 있다.

 

 

 

  두 주인공 요코와 소우코가 엄마와 딸의 입장에서 번갈아 이야기하는 소설『하느님의 보트』는 어른과 아이의 감성을 고루 갖춘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작품이다. 에쿠니는 그 넘기 어려운 벽을 가볍게 넘나든다.

(p.285, 아동문학가 야마시타 하루오 '작품 해설'  中)

 

 

 

  딸 소우코의 시점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계속해서 소우코의 시점으로 쓰이는 줄 알았던 소설은 얼마 안가 엄마 요코의 시점으로 쓰이고, 다시 소우코의 시점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적당한 분량으로 둘의 시점이 번갈아가며 진행되는 점이 참 재미있었다. 딸과 엄마의 시점으로 읽히기도 하며 어른과 아이의 시점으로 읽히기도 하고, 여자와 여자의 시점으로 읽히기도 하는 대단한 소설. 위에 인용한 작품 해설 속 구절처럼 『하느님의 보트』는 이런 에쿠니의 능력을 느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하느님의 보트』이야기를 하다말고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면, 누군가 나에게 작년에 가장 재밌게 읽은 책을 꼽으라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정유정의 『7년의 밤』을 꼽는다. 『7년의 밤』을 좋아하는 이유는 소설 속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한 사실적인 묘사와 흡입력있는 스토리 전개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 최고의 이유는 『하느님의 보트』를 재밌게 읽은 이유와 동일하다. 최소 두 사람 이상의 시점으로 소설이 쓰였다는 것.

  『7년의 밤』만 읽었을 때는 단지 『7년의 밤』이 워낙 잘 쓰였기 때문에 재밌었나보다 싶었는데, 이번 『하느님의 보트』를 읽고 깨달았다. 내가 두 사람 이상의 시점으로 쓰인 작품들을 재밌게 읽은 이유는 두 가지 성격의 소설을 동시에 읽는 느낌이 들어서 그랬던 것 같다. 마침 작품 해설에 내 생각을 딱 맞게 풀어놓은 구절이 있어서 다시 인용해본다.

 

 

 

  『하느님의 보트』는 어른의 눈높이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춘 두 대의 카메라로 촬영된 두 시각의 문학이다. 즉 어린 독자는 소우코에게 동감하면서 성장소설로 읽을 수 있고, 성인인 독자는 요코의 입장에서 연애소설로 읽을 수 있다.

(p.285-6, 아동문학가 야마시타 하루오 '작품 해설'  中)

 

 

 

  나는 소설 초반에는 요코의 입장에서 연애소설로, 후반부로 갈수록 소우코의 입장에서 성장소설로 읽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며 내가 밑줄 친 구절들을 살펴보니 초반에는 요코의 말에, 후반에는 소우코의 말에 유독 밑줄이 많았다. 그리고 나는 끝내, 요코의 입장은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독서를 끝냈는데 그건 아마도 내가 ‘뼈마디까지 녹아버릴 듯한 사랑’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 사람을 향한 사랑은 그 누구도 공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사람과 뼈마디까지 녹아버릴 듯한 사랑을 한 사람은 요코였으니까. 요코만의 사랑이었기에 누구도 공감할 수 없었던 요코의 광기. 요코는 그 사랑을 끌어안은 채, 하느님의 보트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끝내 ‘헐 다운’으로 가버렸을까. 요코의 시점으로 끝난 소설의 마지막장을 넘기고서 ‘인생은 불현 듯 암전이 된다’던 요코의 말이 떠올라 나는 많이 먹먹했다.

 

 

 

  그리고, 소우코. 소우코에게 ‘이사’란 어떤 것이었을까. 요코에게 이사란 ‘그곳이 어떤 장소이든 익숙해지면 그 사람을 만날 수 없을 것 같았고, 그 사람이 없는 장소에 익숙해질 수는 없었으며 그곳이 어디든 내가 있어야 할 장소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이곳에서 저곳으로 장소를 옮기는 의미였겠지만, 소우코에게 이사란 이사인 동시에 ‘전학’이었을 것 같다. 2명도, 3명도 아니다. 소우코에겐 그저 한명의 친구가 필요했을 뿐인데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이사를 간다는 건, 곧 전학을 가야한다는 말이었으니까. 그래도 소우코는 묵묵히 요코와 이사를 다녔다.

 

 

 

  나는 내가 모르는 소우코의 생활을 생각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몇 번이나 모든 것을 뒤로해야 했던 소우코의 생활을. (p.90)

 

 

 

  이 구절을 통해 요코가 그런 소우코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결국 헤아리지 않았던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머무는 기간이 조금 늘었을 뿐, 소우코는 다시 전학을 가야했으니까.

  소우코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소설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요코가 하느님의 보트에서 내리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가 소우코였는데, 그런 소우코가 먼저 하느님의 보트에서 내렸기 때문에. 소우코는 홀로 지낼 요코가 불안하고, 미안하지만 끝내 요코의 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어쩌면 소우코는 자신이 먼저 하느님의 보트에서 내려야 요코도 따라 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았을지도. 후에 요코의 선택이 어떠할지라도. 또, 그러는게 요코의 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코도 요코 자신만의 삶을 충실하게 살았듯이 소우코도 이제는 소우코만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갈 때가 왔으니까.

 

 

 

  작품 해설을 읽어보니 『하느님의 보트』를 두고 ‘에쿠니 작품 중에서도 최고의 걸작’이라고 평하는 목소리가 많단다. 나만 좋게 읽은게 아니구나 싶어서 괜히 뿌듯했다. 또, 에쿠니 가오리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쓴 소설 중에서 가장 위험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p.284, 에쿠니 가오리 '작가의 말' 中)

 

 

 

  에쿠니 가오리가 표현하는 ‘위험하다’의 어감이 어떠한 ‘위험하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종종 사용하는 ‘긍정의 위험’이라고 표현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렇다. 격하게 재미있고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났을 때나 ‘어어, 이거 위험하다.’라고 표현하듯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서 ‘이거, 죽인다’라고 표현하듯이.

  내게도 『하느님의 보트』는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중에 가장 위험한 작품이었다.

 

 

 

* 인상깊었던 구절 모음

 

― 한 번 지나간 일은 절대로 변하지 않잖아. 언제나 거기에 있어. 지나간 일만이 확실하게 우리 거야. (p.19)

 

그리고 입학 선물로 보조 가방을 만들어 주었던 소카의 할머니. 딸 부부와 같이 살았는데, 정작 딸과는 마음이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마음이 맞지 않는다는 말은 그 동네에서 배운 것이다. 우리가 이사를 하고 인사하러 갔을 때, 할머니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p.54)

 

운동회 날이면 나는 뭐니 뭐니 해도 점심시간이 가장 좋다. 바깥 공기에서 모두가 싸 온 김밥의 김 냄새가 풍겨서 특히 좋다. (p.68)

 

‘헐(hull)’은 선체를 뜻하는 말이란다.

― 바다에서는 아주 먼 곳을 ‘헐 다운’이라고 합니다. (p.167)

 

프로는 대가 없는 장소에서 연주해서는 안 된다. 옛날에 모모이 선생님에게 그런 언질을 들었기 때문이다. (p.181)

 

― 미인은 만들어지는 거야. 여자는 미인으로 자라는 게 아니라, 미인으로 키워지는 거라고. (p.182)

 

불편함. 나는 때로 그것에 대해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자유를 추구했다. 추구했다기보다, 내게 자유는 음식이나 수면처럼 필요한 것이었다. 자유롭기 위해 싸웠다. 자유를 찾아 가출도 했다. 하지만 자유와 불편함이란 무척 닮은 것이었다. 그래서 구별을 못할 때도 있었다. (p.183)

 

인생은 불현듯 암전이 된다. (p.247)

 

고등학교에 들어온 지 두 달이다. 약속한 대로 엄마에게 매주 편지를 쓰고 있다. 고심해서 최대한 길게 쓰고 있는데 엄마에게서 오는 답장은 언제나 썰렁하다. 그래도 엄마의 글씨를 보면 안도한다. 파란 볼펜으로 쓴 엄마의 글자는 커다랗고 정성스럽다. 나는 그 편지를 통해 해변에 또다시 집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엄마가 피아노에 소음장치를 달았다는 것을 알았다.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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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 2 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 2
초(정솔) 글.그림 / 북폴리오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이 책 『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 2』를 읽으면서, 나는 최양일 감독의 영화 <퀼>을 떠올렸다. <퀼>은 맹인안내견과 주변 사람들의 교류를 그린 베스트셀러 <맹인안내견 퀼의 일생(盲導犬クイ-ルの一生)>을 영화화한 작품인데, 처음 <퀼>을 보던 당시에 펑펑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반려 동물을 키운 경험이 없기 때문에, 아무래도 영화로 접한 반려 동물이 먼저 떠올랐던 것 같다. <퀼>의 퀼, 『하치 이야기』의 하치, 영화 <블라인드>에서 맹인견으로 등장한 슬기가 그러한 예다. 매체를 통한 내 간접 경험은 직접 반려 동물을 키운 경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매체들을 통해 나는, 반려 동물인 그들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걸 두고 영화로 배웠다고 하는 걸까.ㅎㅎ

 

 

  책 속 구절처럼, 신기하게도 동물은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것, 나의 시간과 분위기를 공유하는 존재라는 것, 내가 그들을 충분히 깊게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알 거라는 것을 나는, 매체 속 반려 동물들을 통해 느끼고, 알았다. 물론 매체는 매체여서, 실화를 다뤘다고 해도 살이 덧붙여진 부분도 있을 것이고, 실화가 아닌 작품도 있는 법이지만 말이다.

 

 

  『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 2』를 컴퓨터를 통해 보지 않고, 단행본으로 접해서 좋았던 점은 책에 수록된 작가의 미공개 에세이를 읽을 수 있다는 매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특히 위 4컷 중 상단 왼쪽 컷의 에세이가 참 와닿았다.

 

  배움의 즐거움 / 반려 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배움의 연속이다.

  나는 정말 오랫동안 개와 함께 지냈고, 개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해왔지만, 지금의 낭낙이는 나에게 또 다른 지식을 요구한다. 그래서 때때로 개가 늙으면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해 검색해 공부를 한다. (생략) 공부를 하는 것은 관심의 적극적인 반영이라는 생각이 든다. 낭낙이를 만나 개에 대해 알고 싶어졌고, 순대를 만나 고양이의 병에 대해 알고 싶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공부와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내가 개와 고양이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즐거울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그들에게 느끼는 애정의 증거가 아닐까.

(p.206-7)

 

  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나는 '배움의 연속'을 깨달았다.공부를 하는 것은 관심의 적극적인 반영이고, 그들에게 느끼는 애정의 증거를 넘어서 내가 이렇게  『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 2』를 읽는 것 또한 배움의 연속이라는 것을.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우울한 날, 반려 동물로 인해 기분이 좋아지는 건 그들이 작은 몸으로 최선을 다해 위로해주니까 다시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작다고 가볍게 여길 수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으며, 겁 많은 개가 많이 짖고, 환기를 위해 잠시 열어놓은 문으로 많은 강아지들이 밖으로 뛰쳐나가서 유기견이 된다는 것을, 그래서 문을 열어놓을 땐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알며, 고양이는 환경 변화에 적응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등의 '배움'. 반려 동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부족한 나로서는 정말 배울 것이 많았다. 나를 바꾼 책이니만큼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이 책은 정말이지 좋은 책이다.^^

 

 

  영화로 배우고, 글로 배우는 나로서는 정드는 것 또한 다르지 않았다. 나는 어린고양이와 늙은개, 순대와 낭낙이에게 제법 많은 정이 들었다. 웹툰이어서 가능했으며, 접한 경로가 비록 책일지라도 말이다.ㅎㅎ <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가 연재되면서 순대와 낭낙이, 탁묘 뾰롱이까지 작가님의 사랑을 넘어서 <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를 읽는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그 사랑이 순대와 낭낙이에게 직접적으로 전해지지 않을지라도.

 

 

  나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으므로, 옆에 있는 반려 동물을 한 번 더 쓰다듬어 주는 대신, 친한 친구가 키우는 '푸치'와 '땅콩'의 안부를 물어야겠다. ^^

 

p.s. 겉표지를 벗기면 볼 수 있는 온전한 표지. 창문을 통해 순대와 낭낙이를 지켜보다가, 문을 열고 순대와 낭낙이 그리고 작가님이 살고있는 집안을 바라보게 된 것 같아서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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