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보트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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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의 문체가 부쩍 그리운 겨울이다. 왜 그리운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올 겨울은 유독 그렇다. 그래서 모처럼, 그녀의 소설을 찾아 읽었다. 8년 전 『냉정과 열정사이 Rosso』로 에쿠니 가오리에 입문한 이래 그녀의 많은 소설을 챙겨 읽었지만, 이번 『하느님의 보트』만큼 재밌게 읽었던 적은 없었노라- 단언할 정도로 『하느님의 보트』를 인상깊고 재미있게 읽었다. 에쿠니 가오리의 문체야 문체만으로도 만족하며 읽는 작품도 있었으니 두말하면 입 아프고, 그녀의 문체로 풀어내는 이야기들도 좋아하지만 이번 『하느님의 보트』를 유독 재밌게 읽었던 이유는 따로 있다.

 

 

 

  두 주인공 요코와 소우코가 엄마와 딸의 입장에서 번갈아 이야기하는 소설『하느님의 보트』는 어른과 아이의 감성을 고루 갖춘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작품이다. 에쿠니는 그 넘기 어려운 벽을 가볍게 넘나든다.

(p.285, 아동문학가 야마시타 하루오 '작품 해설'  中)

 

 

 

  딸 소우코의 시점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계속해서 소우코의 시점으로 쓰이는 줄 알았던 소설은 얼마 안가 엄마 요코의 시점으로 쓰이고, 다시 소우코의 시점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적당한 분량으로 둘의 시점이 번갈아가며 진행되는 점이 참 재미있었다. 딸과 엄마의 시점으로 읽히기도 하며 어른과 아이의 시점으로 읽히기도 하고, 여자와 여자의 시점으로 읽히기도 하는 대단한 소설. 위에 인용한 작품 해설 속 구절처럼 『하느님의 보트』는 이런 에쿠니의 능력을 느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하느님의 보트』이야기를 하다말고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면, 누군가 나에게 작년에 가장 재밌게 읽은 책을 꼽으라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정유정의 『7년의 밤』을 꼽는다. 『7년의 밤』을 좋아하는 이유는 소설 속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한 사실적인 묘사와 흡입력있는 스토리 전개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 최고의 이유는 『하느님의 보트』를 재밌게 읽은 이유와 동일하다. 최소 두 사람 이상의 시점으로 소설이 쓰였다는 것.

  『7년의 밤』만 읽었을 때는 단지 『7년의 밤』이 워낙 잘 쓰였기 때문에 재밌었나보다 싶었는데, 이번 『하느님의 보트』를 읽고 깨달았다. 내가 두 사람 이상의 시점으로 쓰인 작품들을 재밌게 읽은 이유는 두 가지 성격의 소설을 동시에 읽는 느낌이 들어서 그랬던 것 같다. 마침 작품 해설에 내 생각을 딱 맞게 풀어놓은 구절이 있어서 다시 인용해본다.

 

 

 

  『하느님의 보트』는 어른의 눈높이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춘 두 대의 카메라로 촬영된 두 시각의 문학이다. 즉 어린 독자는 소우코에게 동감하면서 성장소설로 읽을 수 있고, 성인인 독자는 요코의 입장에서 연애소설로 읽을 수 있다.

(p.285-6, 아동문학가 야마시타 하루오 '작품 해설'  中)

 

 

 

  나는 소설 초반에는 요코의 입장에서 연애소설로, 후반부로 갈수록 소우코의 입장에서 성장소설로 읽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며 내가 밑줄 친 구절들을 살펴보니 초반에는 요코의 말에, 후반에는 소우코의 말에 유독 밑줄이 많았다. 그리고 나는 끝내, 요코의 입장은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독서를 끝냈는데 그건 아마도 내가 ‘뼈마디까지 녹아버릴 듯한 사랑’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 사람을 향한 사랑은 그 누구도 공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사람과 뼈마디까지 녹아버릴 듯한 사랑을 한 사람은 요코였으니까. 요코만의 사랑이었기에 누구도 공감할 수 없었던 요코의 광기. 요코는 그 사랑을 끌어안은 채, 하느님의 보트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끝내 ‘헐 다운’으로 가버렸을까. 요코의 시점으로 끝난 소설의 마지막장을 넘기고서 ‘인생은 불현 듯 암전이 된다’던 요코의 말이 떠올라 나는 많이 먹먹했다.

 

 

 

  그리고, 소우코. 소우코에게 ‘이사’란 어떤 것이었을까. 요코에게 이사란 ‘그곳이 어떤 장소이든 익숙해지면 그 사람을 만날 수 없을 것 같았고, 그 사람이 없는 장소에 익숙해질 수는 없었으며 그곳이 어디든 내가 있어야 할 장소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이곳에서 저곳으로 장소를 옮기는 의미였겠지만, 소우코에게 이사란 이사인 동시에 ‘전학’이었을 것 같다. 2명도, 3명도 아니다. 소우코에겐 그저 한명의 친구가 필요했을 뿐인데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이사를 간다는 건, 곧 전학을 가야한다는 말이었으니까. 그래도 소우코는 묵묵히 요코와 이사를 다녔다.

 

 

 

  나는 내가 모르는 소우코의 생활을 생각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몇 번이나 모든 것을 뒤로해야 했던 소우코의 생활을. (p.90)

 

 

 

  이 구절을 통해 요코가 그런 소우코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결국 헤아리지 않았던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머무는 기간이 조금 늘었을 뿐, 소우코는 다시 전학을 가야했으니까.

  소우코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소설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요코가 하느님의 보트에서 내리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가 소우코였는데, 그런 소우코가 먼저 하느님의 보트에서 내렸기 때문에. 소우코는 홀로 지낼 요코가 불안하고, 미안하지만 끝내 요코의 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어쩌면 소우코는 자신이 먼저 하느님의 보트에서 내려야 요코도 따라 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았을지도. 후에 요코의 선택이 어떠할지라도. 또, 그러는게 요코의 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코도 요코 자신만의 삶을 충실하게 살았듯이 소우코도 이제는 소우코만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갈 때가 왔으니까.

 

 

 

  작품 해설을 읽어보니 『하느님의 보트』를 두고 ‘에쿠니 작품 중에서도 최고의 걸작’이라고 평하는 목소리가 많단다. 나만 좋게 읽은게 아니구나 싶어서 괜히 뿌듯했다. 또, 에쿠니 가오리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쓴 소설 중에서 가장 위험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p.284, 에쿠니 가오리 '작가의 말' 中)

 

 

 

  에쿠니 가오리가 표현하는 ‘위험하다’의 어감이 어떠한 ‘위험하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종종 사용하는 ‘긍정의 위험’이라고 표현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렇다. 격하게 재미있고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났을 때나 ‘어어, 이거 위험하다.’라고 표현하듯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서 ‘이거, 죽인다’라고 표현하듯이.

  내게도 『하느님의 보트』는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중에 가장 위험한 작품이었다.

 

 

 

* 인상깊었던 구절 모음

 

― 한 번 지나간 일은 절대로 변하지 않잖아. 언제나 거기에 있어. 지나간 일만이 확실하게 우리 거야. (p.19)

 

그리고 입학 선물로 보조 가방을 만들어 주었던 소카의 할머니. 딸 부부와 같이 살았는데, 정작 딸과는 마음이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마음이 맞지 않는다는 말은 그 동네에서 배운 것이다. 우리가 이사를 하고 인사하러 갔을 때, 할머니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p.54)

 

운동회 날이면 나는 뭐니 뭐니 해도 점심시간이 가장 좋다. 바깥 공기에서 모두가 싸 온 김밥의 김 냄새가 풍겨서 특히 좋다. (p.68)

 

‘헐(hull)’은 선체를 뜻하는 말이란다.

― 바다에서는 아주 먼 곳을 ‘헐 다운’이라고 합니다. (p.167)

 

프로는 대가 없는 장소에서 연주해서는 안 된다. 옛날에 모모이 선생님에게 그런 언질을 들었기 때문이다. (p.181)

 

― 미인은 만들어지는 거야. 여자는 미인으로 자라는 게 아니라, 미인으로 키워지는 거라고. (p.182)

 

불편함. 나는 때로 그것에 대해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자유를 추구했다. 추구했다기보다, 내게 자유는 음식이나 수면처럼 필요한 것이었다. 자유롭기 위해 싸웠다. 자유를 찾아 가출도 했다. 하지만 자유와 불편함이란 무척 닮은 것이었다. 그래서 구별을 못할 때도 있었다. (p.183)

 

인생은 불현듯 암전이 된다. (p.247)

 

고등학교에 들어온 지 두 달이다. 약속한 대로 엄마에게 매주 편지를 쓰고 있다. 고심해서 최대한 길게 쓰고 있는데 엄마에게서 오는 답장은 언제나 썰렁하다. 그래도 엄마의 글씨를 보면 안도한다. 파란 볼펜으로 쓴 엄마의 글자는 커다랗고 정성스럽다. 나는 그 편지를 통해 해변에 또다시 집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엄마가 피아노에 소음장치를 달았다는 것을 알았다.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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