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농담』만큼 재밌는게 없다.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결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인데, 정말 그렇다.
루드비크에서 헬레나로 넘어오니 이런 재미가 있구나 싶고,

또 루드비크 시점으로 넘어가는 3장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흥미진진해하며 읽고 있다.

오늘의 필사는 2부 헬레나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구절을 담았다.


그러나 특히 그가 모라비아 출신이며 침발롬이 있는 민속 악단에서 연주한 적도 있다는

말을 듣고는 아연실색했다, 나는 내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내 인생의 라이트모티프가 다시 들려왔다,
멀리서 나의 젊음이 내게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에게로 내가 무너져 가고 있었다.


- 2부 헬레나 42


­
'사랑에 빠지면 종소리가 들린다'는 표현을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싶어 감탄했다.
tvN 드라마 '도깨비' 방영 전에 김인육 시인의 <사랑의 물리학>을 시집에서 읽고 멍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시가, 소설이 그저 활자에 그치지 않고 내게로 걸어오는 순간이 있다면 이런 때구나 싶었다.

이후에 도깨비에서 이 시가 나오는 걸 보고 많은 사람들이 좋은 시를 알게 되어 다행이다 했다.

나는 그만큼의 영향력이 있지 않은 사람이라 이 구절을 널리 알릴 수 없겠지만,

농담에 이런 구절도 있다고 이 넓은 우주에 종이 비행기 하나쯤 날릴 수는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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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의 『농담』을 읽고있다.
­
『참을 수 있는 존재의 가벼움』보다 이 책이 잘 맞는 건지,

민음북클럽 손끝으로 문장 읽기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잘 읽고 있다.

첫번째 필사로는 이 구절을 소개한다.


(나는 코스트카의 이런 다른 점을 좋아했고, 그와 논쟁을 하면, 나는 정말 누구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언제나 확인할 수 있어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았다.)

- 밀란 쿤데라 『농담』 17쪽


­

내게도 이런 친구가 있어서 그런지 내 이야기 같았다.
영화부터 시사까지 그날의 대화 주제에 대해 담론을 펼치곤 하는데, 생각이 다를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머릿 속에서 내 생각이 선명해지는 것을 느끼곤 했다.

혼자 생각할 땐 그냥 찰흙 덩어리를 가져다둔 기분인데,

담론을 하다보면 그 찰흙 덩어리를 이리 만지고 저리 만져 모양을 내는 것 같달까.

친구가 지난 대화에서 "너랑하는 대화는 분야가 다양해서 재밌어" 했는데, 기분이 좋았다. 꾸

준히 읽고, 보고, 끝까지 쓰는 삶을 살며, 시간이 지나도 그런 친구이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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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가 말하는 내 인생의 소설 15

 

 

필립 로스는 뉴어크의 작가로도 불린다. 뉴저지주 뉴어크에서 나고 자랐다는 이유만은 아니다. ‘위퀘이크 지구’ ‘프린스 스트리트’ ‘키어 애비뉴’ ‘챈슬러 애비뉴등 뉴저지주 뉴어크에서 유대계 미국인으로 성장한 그의 생에 곳곳에 이정표처럼 자리잡은 뉴어크의 공간들이 그의 작품 속 서사 공간으로 종종 소환되어왔다. 삶으로나, 작품세계로 보나 뉴어크는 필립 로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이름인 셈이다.

201610, 83세의 필립 로스는 뉴어크 공립도서관에 자신의 개인서가를 유증遺贈하기로 약속함으로써, 뉴어크를 향한 그의 오마주를 공공연하게 드러낸 바 있다. 위퀘이크 시절의 자신을 가리켜 도서관에서 읽고 쓰기에 대한 흥미를 키워나간, “도서관에 취한a library-intoxicated” 청년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한 필립 로스는 개인서가 유증을 약속하며 배포한 보도자료에서도 뉴어크 공립 도서관이 그 자신의 문학적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뉴어크 러트거스대학교에서의 첫해에, 수업이 없는 날이면 거의 항상 몇 시간씩 중앙도서관에서 지냈다.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거나 무언가 자료를 찾아보기 위해 혼자 조용히 있을 만한 장소가 아쉬울 때면, 중앙도서관 서고와 참고문헌실과 열람실에 진을 치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도서관은 나의 또다른 뉴어크의 집, 즉 나의 첫 번째 다른 집이었다.”

뉴어크 공립도서관은 유증받은 필립 로스의 개인서가를 수용해, 라이브러리 이니셔티브 프로젝트로도 잘 알려진 건축가 헨리 마이어버그의 디자인으로 관내에 로스 도서관을 꾸릴 예정이며, 로스 개인 집필실의 소품 일부도 함께 비치 될 것이라고 한다. 3,500권의 장서로 이뤄질 로스 도서관의 책들은 관외 대출은 하지 않고, 관내 이용만 가능하다.

 

그렇다면 로스 도서관’ 3,500권의 책 중 어떤 책부터 읽어보는 게 좋을까? 201610월 장서 유증 발표와 함께 로스는 자신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친 15편의 소설 목록을 발표했다. J.D. 샐린저, 솔 벨로, 버나드 맬러머드, 프란츠 카프카, 브루노 슐츠 등 로스 자신과 같은 유대계 작가들이 포함된 목록은 다음과 같다. 작품명 뒤의 나이는 로스가 해당 작품을 처음 읽었던 나이를 가리킨다.

  

 

 

 

 

 

  

01 시민 톰 페인 Citizen Tom Paine하워드 패스트/ 14

 

02 핀리 렌 Finnley Wren필립 와일리/ 16

    

 

03 천사여, 고향을 보라 Look Homeward Angel토머스 울프/ 17

 

   

 

04 호밀밭의 파수꾼 Catcher in the RyeJ.D. 샐린저/ 20

    

 

 

 

 

 

 

 

 

 

 

 

 

 

 

 

05 오기 마치의 모험 The Adventures of Augie March솔 벨로/ 21

 

 

 

06 무기여 잘 있거라 A Farewell to Arms어니스트 헤밍웨이/ 23

    

 

07 점원 The Assistant버나드 맬러머드/ 24

 

 

08 마담 보바리 Madame Bovary귀스타브 플로베르/ 25

 

 

  

09 소리와 분노 The Sound and the Fury윌리엄 포크너/ 25

 

 

10 소송 Der Prozess프란츠 카프카/ 27  

  

 

 

11 전락 la Chute알베르 카뮈/ 30

  

 

 

12 죄와 벌 Преступление и наказание』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35

    

 

   

 

13 안나 카레리나 А́нна Каре́нина』 레프 톨스토이/ 37

    

 

14 셰리 Cheri콜레트/ 40

 

  

15 계피색 가게들 Sklepy Cynamonowe브루노 슐츠/ 41

 

 

 

 

 

 

문학동네, 필립 로스 매거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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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은 전투예요. 이런 게 아니라도, 또다른 걸로 말이에요. 가차없는 전투죠.

하필이면 가장 약하고, 예전처럼 투지를 불태우는 게 가장 어려울 때 말이에요."


『에브리맨』 정영목 옮김





사실 입으로 말하기 전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감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런 감정을 만들어내고 소유하게 되었다.


『굿바이, 콜럼버스』 정영목 옮김

 

 

 

 

 

우리는 오점을 남긴다. 우리는 자취를 남기고, 우리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불순함, 잔인함, 학대, 실수, 배설물, 정액―달리 이 세상에 존재할 방법이 없다.

 

『휴먼 스테인』(1/2권) 박범수 옮김

 

 

 

 

"특별히 이유가 있어서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잃기도 하고 얻기도 해요.

전부 종잡을 수 없는 일이죠. 종잡을 수 없음이 지닌 무한한 힘. 반전 가능성.

그래요, 예측 불가한 반전과 그것이 지닌 위력이죠."

 

『전락』 박범수 옮김 





"다른 사람의 약한 곳은 강한 곳과 똑같이 너를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약한 사람들이라고 해를 주지 못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들의 약점이 바로 그 사람들의 힘이 될 수도 있어."


『울분』 정영목 옮김 

 

 




"두려움이 덜할수록 좋아. 두려움은 우리를 나약하게 만들어. 두려움은 우리를 타락시켜.

두려움을 줄이는 것, 그게 자네의 일이고 내 일이야."


『네메시스』 정영목 옮김





원래 그런 거라네.

인간의 비극이란 게, 일단 완성 되고 나면 언론인들한테 넘어가 오락거리로 전락하지.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김한영 옮김





모든 사람이 원하는 유일한 강박, 그게 '사랑'이에요.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면 완전해진다고 생각하지요?

영혼의 플라톤적 결합? 내 생각은 달라요.

나는 사람은 사랑을 시작하기 전에 완전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사랑이 사람을 부숴버린다고.


『죽어가는 짐승』 정영목 옮김





이방인이라서 나쁘다느니, 유대인이라서 좋다느니!

사랑하는 부모님, 어쩌다가 나를 자식으로 낳아주신 두 분, 모르세요?

그런 생각이 약간 야만적이라는 걸? 두 분이 표현하고 있는 게 두 분의 공포라는 걸?


『포트노이의 불평』 정영목 옮김





나의 아버지는 그냥 여느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라는 존재에게서 미워할 모든 것을 갖추고 사랑할 모든 것을 갖춘

바로 그런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유산』 정영목 옮김





산다는 것은 사람들을 오해하는 것이고, 오해하고 오해하고 또 오해하다가,

신중하게 다시 생각 해본 뒤에 또 오해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


『미국의 목가』(1/2권) 정영목 옮김





진짜 상상적 사건은 바로 거기서, 사실들에서,

철학적이거나 이상적이거나 추상적인 것이 아닌 특정한 것들에서 시작한다네.


『사실들』 민승남 옮김





"그 글은 그 사람의 말이에요. 그는 말했어요.

'책을 읽는/글을 쓰는 사람들인 우린 끝났어. 

우린 문학의 시대가 막을 내리는 걸 목격하고 있는 유령이야.

이걸 받아적게.' 난 그가 말해주는 대로 썼죠."


『유령 퇴장』 박범수 옮김






언젠가 문학동네에서 받았던 필립 로스 매거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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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춤추고 싶다 - 좋은 리듬을 만드는 춤의 과학
장동선.줄리아 크리스텐슨 지음, 염정용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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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땐뽀걸즈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이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서 티파니(제니퍼 로렌스)는 팻(브래들리 쿠퍼)에게 헤어진 아내와의 재결합을 도와주는 대신, 자신과 함께 댄스 경연 대회에 참가해달라는 제안을 건넨다. 처음엔 그저 댄스 경연을 위한 춤을 준비하던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지고, 춤을 추며 보내는 하루하루가 점차 즐거워진다. 그러는 사이에 각자가 가진 상처는 조금씩 옅어진다. silver lining, 구름의 흰 가장자리 아래서.

취업 전선에 뛰어들기 전, ‘댄스스포츠대회를 앞두고 있는 거제여상 열여덟 땐뽀반학생들의 유쾌발랄 성장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땐뽀걸즈’. 땐뽀반의 수장 이규호 선생님의 지도 하에 아이들은 차차차와 자이브를 배우며, 둘도 없을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을 보낸다. KBS 스폐셜판 나레이션처럼, 세상 무엇에도 굴하지 않고 나를 오롯이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땐뽀걸즈 곁을 지나간다. 자이브의 흥겨운 리듬에 맞춰서.

 

문득 이 두 편의 영화가 떠올랐던 것은, 이 책 뇌는 춤추고 싶다속 구절 때문이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우리는 택시기사에게 요금을 지불했다. 그때 택시기사가 독일어를 할 줄 알며, 우리가 나눈 이야기의 일부를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8일간의 학술대회를 마치고 나자(우리가 서로 토론을 하고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또 춤도 추었던 그 8일간), 60세쯤 되는 그리스인 택시기사가 그것을 이렇게 요약해서 말했다. “춤추기는 멋진 일이죠! 사람들은 늘 웃음이 최고의 약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춤추기가 그렇죠. 웃음은 춤을 출 때 그냥 덤으로 받는 겁니다!”

(p.351-352)

 

택시기사의 말마따나 춤추기는 멋진 일이고, 웃음은 그냥 덤으로 받기도 하는 춤에 관해 8일간 열렬히 떠든 두 사람이 있다. 시즌2에 출연해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린 뇌과학자 장동선과 뇌와 춤의 심리학적, 신경과학적 관계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 온 신경과학자 줄리아 F. 크리스텐슨이다. 두 사람은 그리스의 에기나섬에 있는 아폴로 호텔에서 열린 신경과학과 관련된 학술대회에서 처음 만났고, 대화는 바로 춤에 관한 것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호텔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추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춤을 추면 대체 왜 저렇게 행복해질까? 춤을 추면 더 건강해질까? 혹은 더 똑똑해질까? 둘은 한참 동안 이런 대화를 나눈 후에 수많은 사람들 틈에 섞여 먼동이 틀 때까지 춤을 추었고, 아침에 잠깐 눈을 붙인 다음 학술대회에 참석했다. 여드레 밤낮으로 학술 토론과 춤 사이를 번갈아 오갔고, 마침내 모든 것이 하나로 묶이게 되었는데 당시 여드레 밤낮 동안 두 사람이 나눈 대화의 주제와 춤에서 이 책 뇌는 춤추고 싶다의 중심이 되는 여덟 개의 장이 탄생했다고 한다.

 

나를 사로잡는 리듬인 1솔로 댄스로 시작해서 내게는 어떤 춤이 어울리는지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9춤 고르기가 담겨있는 이 책은 범주가 뇌과학이지만, 워낙 유쾌하고 춤에 관련된 여러 이론들(뇌과학, 신경학 등)이 적재적소에 나와서 읽기에 부담 없는 책이다.

 

우리가 자료 조사를 하면서 우연히 발견한 유튜브 동영상에서도 당김음의 마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 명의 이탈리아인이 자동차에 앉아 있었다. 카메라는 앞쪽에서 그들을 찍고 있었다. 그들은 이탈리아인 특유의 과도한 몸짓을 해 가며 최근에 나온 여름철 히트곡인 <데스파시토Despacito>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 노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그들은 어디서나 그 노래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것을 끔찍해했다. 또한 사람들이 그 노래가 나오기 무섭게 춤을 추는 것 역시 싫어했다. 그들은 그 노래가 실패작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때 라디오에서 다음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곡은 바로……, 바로 <데스파시토>였다. 그 이탈리아인들은 그 노래에 대해 불평을 하는 동안에도 중간중간에 끊임없이 따라 부르며 머리를 흔들고 즐기기 시작했다. 그 노래가 실제로는 한심하다고 주장하면서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해마다 여름철이면 히트곡이 나오고 우리들 모두는 언제부턴가 더는 듣고 싶지 않게 된다. 하지만 그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문득 노래를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p.40-41)

 

구절 속에 영상 주소가 쓰여 있어서 찾아봤는데, 상황 설명을 듣고 봐서 그런지 재밌었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했던가. 이탈리아 특유의 손짓을 해가며 난 이 노래 불호야 하는데 데스, , 시토- 하는 후렴구가 나올 때마다 따라 부르는데 피식 웃음이 났다. 영상의 끝부분에는 이 상황이 연출임을 보여주는데, 어쩐지 엄마미소 짓게 된다. 그래, 이런 마성의 노래가 있지 있어. 이를테면 수능금지곡이라 부르는 U R Man (요즘으로 말하면 픽미나 나야나가 있겠지만 내겐 이 노래가 최고다) 같은. 당김음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고, 너무 들어서 지겨울 정도인데도 막상 또 나오면 언제 그랬냐는듯 듣게 되는 노래들. 최근에는 야놀자 CM송이 그랬다. 하도 들어서 지겨운데 어느 순간 입에 붙어서 야야야야야놀자 하고 있는 그 노래. 애기가 이거 들으면 울다가도 뚝 그친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찾아보니, 가만히 있던 돌잡이 아기 얼굴에 웃음꽂이 피고 흥겹게 춤을 추는 영상이 있었다. , 그 이야기가 정말 사실이었구나 했다.

데스파시토에 이어 바로 다음 챕터로 '모든 아기는 춤꾼'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야놀자송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이 딱 이러해서 재밌었다. 어떤 리듬을 듣고 춤으로 따라 하려는 충동은 이미 신생아의 뇌에 완전히 준비되어 있는 상태고, 아기들은 춤을 출 때 미소를 지었다는 사실을 과학자들이 밝혀냈다는 글을 읽고 있으면 새삼스럽지만 이런 생각이 든다. 뇌과학은 멀리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오스트레일리아의 웨스턴시드니 대학의 캐서린 스티븐스와 그 팀은 일련의 연구를 통해 춤을 지켜보는 사람도 매우 강한 정서적 자극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댄서가 무대에서 날 듯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때 우리의 몸도 함께 흥분을 느낀다. 프랭크 폴릭은 동료인 커린 졸라와 장선희와 함께 특히 이 문제에 대해 깊이 파고들었다. 2011년과 2012년에 이들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댄스를 즐겨 구경하는 사람들의 뇌에서는 근육운동과 관련된 기억 과정이 그들이 그 춤동작을 직접할 때와 똑같이 단련된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었다.

(p.322)

 

위 구절을 읽고서 다짐하게 된 것이 하나 있는데, 내년엔 춤에 관련된 공연을 챙겨보자는 것이었다. 당장 행동에 옮겨서,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뮤지컬을 예매하는 사이트에 접속해 발레단이나 무용단의 공연을 살펴보았다. 흥미로운 공연이 많았다. 이 책을 읽지 않았으면 시도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땐뽀걸즈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땐뽀반의 단장 혜영이는 이렇게 말했다.

 

 

 

 

 

 

춤추기 전은 진짜 (사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고 공부에도 그렇게 흥미가 없었고

뭔가 완성되는 느낌? 내가 점점 진짜 박혜영인 것 같은 느낌?”

 

내가 점점 진짜 박혜영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혜영이의 말은 아래 구절과 맥락을 같이한다.

 

대부분의 춤들은 <더티 댄싱>에서처럼 무더운 여름 한 철에 익혀지지는 않으며, 모든 춤이 더티 댄싱일 필요는 없다. 당신 자신의 템포, 자신의 리듬에 귀 기울이라. 미하엘 엔데는 이것을 자신의 동화책 모모에서 특별히 아름답게 표현했다. “음악은 아주 멀리서부터 왔지만 나의 내면 아주 깊숙한 곳에서 울렸지.” 당신의 내면에 들어 있는 완전히 자기만의 음악을 발견하라. 그리고 거기에 맞춰 춤을 추라.

(p.352-353)

 

어쩌면 혜영이는 땐뽀를 하면서 자기만의 음악을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내면 아주 깊숙한 곳에서 울리는 음악을. 그렇게 발견한 음악은 이후에 어떤 일이 있어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춤을 통해 몸에 남았고, 추억에 남았으며, 사는 의미를 깨닫게 해준 힘이 되었으니까.

 

이 책의 저자이자 춤의 힘을 오래전부터 아내에게 전파하고 싶었던 남편, 장동선 박사는 책의 말미에 이렇게 썼다.

 

나에게 이 책은 무엇보다 아내 유진에게 함께 춤추러 가자고 설득하려는 시도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까이 있는 것을 느끼며, 춤을 추면서 이런저런 잡다한 일들을 잊는다는 것은 아주 멋진 일이다. 나는 이 느낌을 아내와 함께 나누고 싶다. 부부로서 춤을 추며 늙어 가면 좋겠다. 이것이 나의 꿈이다. 이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유진, 당신에게 바친다.

(p.390-391)

 

아아, 이쯤 되니 내가 읽은 책의 장르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뇌과학 책을 읽은 것인가, 춤에 관한 유쾌한 에세이를 읽은 것인가, 아니면 두 장르의 탈을 쓴 사랑 고백 편지를 읽은 것인가. 하하. 내게도 이런 춤이, 이런 사랑이 오기를 바라며 기쁜 마음으로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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