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소리도 없이 말도 없이
등뒤로 털썩
밧줄이 날아와 나는
뛰어가 밧줄을 잡아다 배를 맨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배는 멀리서부터 닿는다

사랑은,
호젓한 부둣가에 우연히,
별 그럴 일도 없으면서 넋 놓고 앉았다가
배가 들어와
던져지는 밧줄을 받는 것
그래서 어찌할 수 없이
배를 매게 되는 것

잔잔한 바닷물 위에
구름과 빛과 시간과 함께
떠 있는 배
배를 매면 구름과 빛과 시간이 함께
매어진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사랑이란 그런 것을 처음 아는 것

빛 가운데 배는 울렁이며
온종일을 떠 있다

- 장석남 <배를 매며> 전문.

 

*

 

네이버 메모앱에 저장되어 있었다.
2014년 11월 9일에 기록해둔 메모였고, 그 즈음에 무슨 책을 읽었나 살펴보니 시집이 한 권 있다.
신현림 작가님이 엮으신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 ' 2권.
이렇게 남겨뒀다는 건 정말 좋았다는 것일테고,
이렇게 남겨둔 덕분에 시간이 지나도 좋은 시를 다시 읽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손으로 쓴 구절도 좋지만 '빛 가운데 배는 울렁이며 온종일 떠 있다'도 만만치않게 좋다.
아니 그냥 이 시 자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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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납하러 갈땐 그렇게 투덜대면서도, 빌려올땐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대체 이 무슨 심보인지.

한동안 전자책을 읽다가 종이책을 보니 반가운 마음에 또 한가득 품에 안고나니 6권이었다.

오늘 도서관행의 주된 목적이었던 '용이 산다' 2권

(집에와서 다 읽고 네이버 접속해서 시즌2도 정주행 완료😁) 과
읽고 싶었던 정혜윤 작가님의 '사생활의 천재들',
이크종인데 노란책이라니! 안 빌려올 수 없었던 '그래요, 무조건 즐겁게!',
제목에 끌린 '오블라디 오블라다',
김소연 작가님의 시집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 당긴다'도 제목에 끌려 업어왔다.

박지웅 시인의 '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는

내 단골 도서관에서 보기 드문 문학동네 시인선이어서 눈길이 갔다가 마음에 들어서 대출.

도서관도 원정을 뛰어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학동네시인선을 보고 행동에 옮겨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내가 찾는 도서를 상호대차 하는 것도 좋지만,

오늘처럼 서가를 둘러보며 책을 빼들고 구경하고 대출해오는 맛은 또 다르니까.

라고 둘러댔지만 현실은 아직도 모르는 책이 많기 때문이다.

단골 도서관도 매일같이 드나들어도 여전히 새로울 때가 많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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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소방관이다. 오늘도 사고 현장에 나와있다.
불길이 휩싸인 집에서 쓰러진 사람들을 구조하고 나가려는 찰나에

검은 실루엣 하나가 눈에 들어오고, 남자는 그 자리에서 망설인다.
붕괴되기 직전의 이 집에서 당장이라도 나가야 하는데

저 실루엣은 사람인가, 물건인가. 사람이면 어쩌지 싶어서.
남자가 무전기로 응답하지 않아 뛰어 들어온 동료가 남자를 구해낸다.

덕분에 남자의 부상은 왼쪽 눈 위에 화상을 입은 것으로 끝나,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런 남자를 찾아온 팀장에게 그날 사람 형제를 봤다고, 불길이 너무 세서 차마 확인은 못했는데

만약 네댓살 먹은 아이였으면... 하고 말을 잇지 못하는 남자.

팀장은 기회가 되면 자신이 물어봐주겠다며,
괜한 걱정말고 일단은 푹 쉬라는 말로 남자를 위로한다.
니 몸이 우선이라고. 앞으로 네가 살려야 할 목숨이 몇개인지 아냐고 덧붙이며.

시간이 흘러, 남자는 팀장에게서 전화를 받는다.
저번에 그 사건에 대해 알아봤다고. 그 현장에 사상자 없었다고.
팀장의 전화를 받은 뒤로 남자는 평온을 되찾는다.
그렇게 한 여자를 만나 따뜻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아가던 남자는

여느 날처럼 출동했던 어느 날, 후배 동료를 살리려다 현장에서 세상을 뜬다.

눈을 뜨니 남자의 눈앞에는 신으로 보이는 자가 있다.
자신이 죽은 것을 깨닫고, 자신이 지킨 후배 동료는 무사한지 묻는다.
신은 그런 남자를 보고 대단하다며 받아친다.
신 같은 존재냐고 묻는 남자의 말에 신은 그렇다고,
그러니 미련이 있다면 털어 놓으라고, 네 이야기라면 언제든지 들어줄테니
부인, 아들, 부모 등 뭐든지 해보라고 말한다.

남자는 '뭐든지'라는 말에 한참을 고민하다 입을 뗀다.
십여 년 전에 자신이 화염 속에 놓고 온 그것이 사람이었는지, 물건이었는지를.
죽어서도 그날 일을 잊지 못하는 남자가 대단하다며, 그날 그것은 물건이었다고 신은 답한다.
그날 집주인이 장봤던 물건들. 야채, 과일. 뭐 그런 것들이 든 봉투였다고.

남자는 그제야 안심이 되었는지, 흐느낀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보다 더 마음에 두었던 그날의 진실 앞에서.

내가 한 생명을 버리고 도망친 것은 아니었는지, 계속 마음에 걸려 내내 마음속에 품고 지냈다고. 

다시금 감사하다는 말을 끝으로 남자는 자리를 뜬다.

그리고, 혼자 남은 신의 곁에 네댓살 먹은 아이가 서있다.

아이에게 신은 말한다.

 

"이제... 그를... 용서해. 이런 사람들이야." 라고.


- 죽음에 관하여 20.5-21화.

*


죽음에 관하여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

책 반납하기 전에 아쉬워서, 에피소드를 글로 풀어 적어뒀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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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6-02-19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밀님의 이 글을 몇번을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해밀 2016-02-20 00:02   좋아요 0 | URL
이 에피소드 정말 좋죠.
기회가 되시면 책으로 다시 한 번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부족한 글,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흔한 김연수 덕후의 책장.jpg

내가 책을 정리하는 건지, 책이 나를 정리하는 건지. 책 정리하다가 책장 찍고 놀기.

애정하는 김연수 코너🙆💕 사랑이라니, 선영아와 스무살이 들어오니 더 알록달록해졌다.

문학동네 컬렉션으로 완벽하진 않지만 무지개 놀이.
김중혁 코너와 합치고 싶었는데 한칸에 가득차서 김중혁 코너는 김애란, 황정은 코너와 합치기로.

아, 그러고 보니 한 권이 빠진 것 같다 싶더니...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이 없다.

저번에 다시 읽고 어디다 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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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며칠 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던 허니와 클로버 1-5권을 미련 없이 반납할 수 있었던 이유.
1-10권 전권 구매...✨ 


2. 이렇게 전권을 들여본 건 오랜만이다. 자주 갔던 집 앞 만화책방이 문을 닫게되어

 책방에 있는 책을 판매할 때,

너에게 닿기를(그 당시 8권까지 나왔었던 기억이 난다)을 업어온 이후로 두번째.



3. 전권째 들이고 싶은 만화가 계속해서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이 메마른 마음을 훈훈하게 만든다.

'출금'이라는 단어를 찍어대기 바쁜 통장을 뒤로하고, 상호대차를 신청해둔 3월의 라이온이,

2월에 사겠다고 장바구니에 담아둔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구매를 기다리고 있다.



4. 소장 중인 책 중에서 중고도서로 판매할 10권을 정리하기는 그리 어렵더니,

10권을 사들이는 일은 이렇게 쉬워도 되는 건가 싶다.



5. 요즘들어 '버리는 일'과 '정리하는 일'에 관한 기사나 글을 자주 접하는데,

책 모으기를 여전히 좋아하는 나는 그 일들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이나 먼 사람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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