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소방관이다. 오늘도 사고 현장에 나와있다.
불길이
휩싸인 집에서 쓰러진 사람들을 구조하고 나가려는 찰나에
검은 실루엣 하나가 눈에 들어오고, 남자는 그 자리에서 망설인다.
붕괴되기
직전의 이 집에서 당장이라도 나가야 하는데
저
실루엣은 사람인가, 물건인가. 사람이면 어쩌지 싶어서.
남자가
무전기로 응답하지 않아 뛰어 들어온 동료가 남자를 구해낸다.
덕분에
남자의 부상은 왼쪽 눈 위에 화상을 입은 것으로 끝나,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런
남자를 찾아온 팀장에게 그날 사람 형제를 봤다고, 불길이 너무 세서 차마 확인은 못했는데
만약
네댓살 먹은 아이였으면... 하고 말을 잇지 못하는 남자.
팀장은
기회가 되면 자신이 물어봐주겠다며,
괜한
걱정말고 일단은 푹 쉬라는 말로 남자를 위로한다.
니
몸이 우선이라고. 앞으로 네가 살려야 할 목숨이 몇개인지 아냐고 덧붙이며.
시간이
흘러, 남자는 팀장에게서 전화를 받는다.
저번에
그 사건에 대해 알아봤다고. 그 현장에 사상자 없었다고.
팀장의
전화를 받은 뒤로 남자는 평온을 되찾는다.
그렇게
한 여자를 만나 따뜻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아가던 남자는
여느
날처럼 출동했던 어느 날, 후배 동료를 살리려다 현장에서 세상을 뜬다.
눈을
뜨니 남자의 눈앞에는 신으로 보이는 자가 있다.
자신이
죽은 것을 깨닫고, 자신이 지킨 후배 동료는 무사한지 묻는다.
신은
그런 남자를 보고 대단하다며 받아친다.
신
같은 존재냐고 묻는 남자의 말에 신은 그렇다고,
그러니
미련이 있다면 털어 놓으라고, 네 이야기라면 언제든지 들어줄테니
부인, 아들, 부모
등 뭐든지 해보라고 말한다.
남자는 '뭐든지'라는
말에 한참을 고민하다 입을 뗀다.
십여
년 전에 자신이 화염 속에 놓고 온 그것이 사람이었는지, 물건이었는지를.
죽어서도
그날 일을 잊지 못하는 남자가 대단하다며, 그날 그것은 물건이었다고 신은 답한다.
그날
집주인이 장봤던 물건들. 야채, 과일. 뭐 그런 것들이 든 봉투였다고.
남자는
그제야 안심이 되었는지, 흐느낀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보다 더 마음에 두었던 그날의 진실 앞에서.
내가
한 생명을 버리고 도망친 것은 아니었는지, 계속 마음에 걸려 내내 마음속에 품고 지냈다고.
다시금
감사하다는 말을 끝으로 남자는 자리를 뜬다.
그리고, 혼자
남은 신의 곁에 네댓살 먹은 아이가 서있다.
아이에게
신은 말한다.
"이제... 그를... 용서해. 이런
사람들이야." 라고.
- 죽음에
관하여 20.5-21화.
*
죽음에
관하여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
책
반납하기 전에 아쉬워서, 에피소드를 글로 풀어 적어뒀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