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 '해어화'에 대한 지극히 감성적인 리뷰. 스포일러 주의.
2. '비긴 어게인'과 '위플래쉬'를 통해 얻은 게 있다면, 좋은 영화를 관람했다는 것과
더불어, 음악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 제맛이라는 것이었다.
(여담인데,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를 1차 2D, 2차 4DX, 3차 명필름아트센터에서 관람한 바 있다.
세번째 관람이었으나, 환상적인 오디오(돌비 서라운드 시스템이었던가😌) 덕분에 3차 관람이 가장 인상 깊었다.)
이 영화를 선택하게 만든 차지연 배우님은 조연도 아니고 특별출연이니,
분량이 내 성에 안 찰 것은 눈에 선했지만 영화관에서 꼭 한 번 듣고 싶었다.
내 예상보다 더 적게 나오고, 이후론 아예 안 나와서 너무 아쉬웠지만.
3. 말을 알아듣는 꽃. 더 나아가 예술과 학문을 아는 예인 '해어화'. 기생의 또 다른 이름이다.
영화는 세 사람의 이야기다.
명창 산월의 딸로 권번에서 나고 자란 소율과,
권번으로 팔려와 기생으로 자란 연희와,
당대 최고 작곡가인 윤우의 이야기.
두 사람이 동경했던 이난영 선생님 앞에서, 두 사람은 나란히 노래했지만 이난영은 연희를 지목했다.
연희의 노래 앞에서, 윤우는 연희를 다시 보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단순히 관리들 놀음에, 일원 한 장이라도 주고 들어야하는 노래가 아니라 너는 하다못해
저 길 가는 거렁뱅이도 들어야 하는 목소리를 가졌다."고.
이 말이 연희를 움직인다. "선생님이 그러셨어, 내가 조선의 마음이 되어야 한다"고.
그 말을 듣고, 소율은 윤우에게 달려간다.
작곡가이자, 자신에게 사랑을 속삭였던 김윤우라는 남자에게.
연희의 가슴을 뛰게 한 '조선의 마음'은 윤우가 소율에게 주겠다고 했던 곡 이름이었다.
왜 자신이 아닌 연희를 선택했냐고, 정가만 들려줘서 그렇지
자신도 대중가요를 얼마든 부를 수 있다며 소율은 대중가요를 외친다.
세차게 퍼붓는 빗속에서, 소율은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외치는 것처럼 보였다.
윤우는 '너 아닌 다른 사람을 마음에 담아본 적 없다'는 말로 소율을 위로한다.
마음을 준 것이 아니라, 연희의 노래가 필요했던 것이겠지 하고 소율은 안심했을 것이다.
두 사람이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는 것을 제 두 눈으로 목격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4. 물론 하루 아침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
소율에게 둘도 없는 동무였고, 오랜 정인이었기에 그럴리 없을 거라 믿었다. 믿었던만큼 배신감이 컸다.
그렇게 소율은 '질투'라는 화차에 오른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둘을 갈라놓는다.
이 과정에서 소율은 되돌릴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른다. 그렇게 악역이 된다.
그렇지만, 어디 소율만이 악역인가. 연희와 윤우 그 누구도 소율에게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소율을 찾아와 연희의 행방을 묻는가 하면, 소율의 잘못을 따지고 든다.
소율의 악행이 두드러져서 묻혔을뿐, 두 사람도 소율에게는 악역이었다.
5. 연인이 된 시점을 중심으로 연희와 윤우라는 두 캐릭터는 급격하게 무너져 내렸다.
천재성있는 가수와 작곡가가 아니라, 오직 소율의 감정선의 극대화를 위해 쓰이는 인물이 된 것 같아 아쉬웠다.
모르긴 몰라도 영화가 살릴 수 있는 건 분명히 있었다. 그 시대의 음반 산업도, 예인으로서의 삶도.
시대극이 보여줄 수 있는 배경까지 빠짐없이 소율의 감정선에 소비된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소율을 연기하는 한효주의 연기만큼은 빛난다는 것이다.
소율에게 영화의 모든 신경이 쏠려있었다는 것은 둘째치고 말이다.
경무국장에게, 바칠 것은 자신의 가무뿐이라며 자리를 박차고 돌아왔던 소율은 고되 보였으나 행복해보였다.
사랑하는 윤우 앞에 앉은 그 순간만큼은 윤우의 말마따나 복사꽃 같이 예뻤다.
그랬던 소율은 화차를 굴릴수록 생기를 잃어갔다. 두 사람을 망가뜨릴수록 소율 자신도 망가졌다.
텅빈 두 눈으로, 윤우가 자신을 위로하며 해주었던 그 말을 돌려주던 소율.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나를 들여다본다는 니체의 말처럼, 자신을 잃어가며 계속했던 사랑이었다.
거짓말만이 남은 사랑 곁에서, 모든 후회는 온전히 소율의 몫이다.
비단 설득력만이 문제가 아닌, 아쉬움 많은 치정극의 끝에서 소율만이 남는다.
6. 그래도 그렇지. 정도가 있지, 선을 넘어도 너무 넘었다 싶지만, 눈에 밟히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Wicker Park)'의 알렉스가 내 마음 한 구석에 오래 남아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