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헤일, 시저!> 라이브톡 예매를 완료했다는 글에 덧글이 달렸다. 영화 보셨냐고, 어떠셨냐고.

 

2. 덧글이 달리기 전에 간단한 리뷰도 올리지 못했던 건 묘했기 때문이다.

재미는 있는데 마냥 재밌는 건 아니고, 어렵긴 한데 마냥 어려운 건 아니고. 잘 봤는데 뭐라 콕 집어 설명하기 어려운 영화.

 

3. 이 영화를 선택한 건 단순한 이유였다.

첫째, 라이브톡으로 선정된 영화였기 때문이고 둘째, 조지 클루니-스칼렛 요한슨-채닝 테이텀-틸다 스윈튼 등등 좋아라하는 배우들이 대거로 출연하는 영화였기 때문에.

코엔 형제와 그들의 영화에 대해 잘 알았으면, 설레는 플러스 알파가 됐을텐데 하고 아쉬워했다. 지금껏 코엔 형제표 영화를 어떻게 한 편도 안 보고 살았나 싶었다.

 

4. 영화는 1950,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한다. 시나리오도 있고, 돈도 있는데 주연 배우가 사라진 비상상황. 정체불명의 미래로부터 주연 배우 베어드 휘트록(조지 클루니)을 납치했으니, 돈을 준비하라는 협박 메시지가 도착한다. 그렇게 영화 <헤일, 시저!>의 제작이 무산될 위기에 처한다. 영화사 캐피틀 픽쳐스의 대표이자, 어떤 사건사고도 신속하게 처리하는 해결사 에디 매닉스는 할리우드 베테랑들과 함께 일촉즉발 스캔들을 해결할 개봉수사작전을 계획한다.

 

조슈 브롤린이 연기하는 에디 매닉스와, 조지 클루니가 연기하는 베어드 휘트록을 비롯해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그 당시 할리우드의 실제 인물을 모델 삼아 만든 캐릭터이고, 영화에서 다루는 사건 역시 실제 사건을 레퍼런스 삼았다고 한다. 누가 누구고, 이 사건이 어떤 사건인지 알고 보면 확실히 더 재미있겠다 싶었다.

 

라이브톡에서 동진님의 해설이 끝나고, 한 관객분이 질문을 하셨다. 그 당시 할리우드를 모르는 사람이 이 영화를 보면 어렵고, 덜 재미있지 않겠느냐고. 동진님의 답은 아니오였다. 영화 속 레퍼런스는 비단 이 영화만 있는 게 아니며, 레퍼런스를 모른다고 해도 우리가 영화를 즐기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고. 이 이야기를 하시면서 영화 <빅쇼트>를 언급하셨다. 금융 시장 관련 용어를 모르고 본다고 해서, <빅쇼트>를 재미없게 보는 것은 아니지 않냐며. 물론,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ㅎㅎ

 

영화 속 <헤일, 시저!><벤허>로 대표되는 성서 영화다. 성서 영화는 물론, 1950년대의 할리우드에 대해서도 까막눈이었지만 재밌게 봤다. 할리우드의 전성기였던 저 당시엔 영화를 저렇게 만들었고, 저런 장르의 영화가 있었고, 배우는 그 장르에 맞게 연기를 했겠구나 지켜보는 재미가 있달까.

부산한 할리우드 제작 현장에서 영화사 대표 에디가 날고 뛰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 그 속에서, 비중에 상관없이 제 몫을 다 해내는 배우들의 면면 역시 이 영화의 매력 중 하나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역시 에디. 일에 대한 그의 고뇌가 영화를 보는 내내 인상 깊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영화사를 휘청이게 만드는 사건 사고 가운데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 해내는 에디. 쉬운 일과 옳은 일의 기로에서 할리우드에 남아 영화를 만들어가겠다는 옳은 일을 택한 그를 보고 있으면 훈훈했다. 그리고 이 영화의 끝에, 영화에 대한 코엔 형제의 사랑이 있다. 지극하고, 따뜻한 사랑. 이 영화에 대한 동진님의 평이 떠오른다. ‘고전 헐리웃 영화에 보내는 코엔형제의 연서라는 평. 맞다. 그 때의 할리우드에 연애편지를 보낸다면 분명 이 영화와 같을 것이다. 한 자 한 자 마음을 담아 써내려간 연애편지처럼, 영화를 만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눈을 맞추는 영화. 묘했지만, 뜻깊은 영화였다.

 

 

reference

1. (에 대해) 말하기, 언급; 언급 대상, 언급한 것

2. (정보를 얻기 위해) 찾아봄, 참고,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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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치의 만행이 극에 달했던 1944, 아우슈비츠 수용소. 그곳에는 시체들을 처리하기 위한 비밀 작업단이 있었다. '존더코만도'라고 불리던 이들은 X자 표시가 된 작업복을 입고,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오직 시키는 대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한다. 그러던 어느 날, '존더코만도' 소속이었던 남자 '사울'의 앞에 어린 아들의 주검이 도착한다. 처리해야 할 시체더미들 사이에서 아들을 빼낸 사울은 랍비를 찾아 제대로 된 장례를 치러주기로 결심한다.

 

 

2. 홀로코스트 영화로는 '인생은 아름다워'를 본 것이 전부였다. 아우슈비츠의 참혹함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위한 아버지의 그 마음에 눈물짓고 봤던 영화. 그 후에 나치의 만행을 글로 읽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림도 없었다. 나는 극히 일부를 알고 있었고, 어쩌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3. 영화의 배경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가장 큰 규모의 제2수용소 '비르케나우'. 비르케나우로 향하는 열차를 탄 사람(그 누구도 자의로 열차를 탄 사람은 없었겠지만)은 결코 그곳을 나올 수 없다는 악명을 떨치던 곳. 정말이지, '지옥'이 있다면 바로 그곳일 것이다. 그것도 생지옥.

 

 

가짜 샤워기가 달려있어 샤워장처럼 보이는 가스실에, 저마다 옷을 벗고 들어간 사람들은 굳게 닫힌 문을 두드리고 괴로움에 비명을 지르다 세상을 떴다.

(자료를 찾아보니, 당시 독일군은 가스실 옆에 오토바이 두 대를 두고 종일 공회전을 시켰다고 한다. 비명소리를 감추기 위해서였는데, 그 어떤 소음으로도 비명소리는 덮을 수 없었다고 한다. 나는 이 일이, 사람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스실의 문이 열리면 존더코만도들은 시체를 옮기고, 가스실을 청소하고, 소각하고, 재를 치웠다. 보는 것조차 힘겨웠던 그 광경은, 인물의 배경이 철저하게 아웃포커싱 처리된 덕분에 희미했지만 그 희미함으로도 끔찍함을 결코 지울 순 없었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라고 해서 꼭 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줘야 하느냐, 이 문제에 대해 감독은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아웃포커싱 처리를 선택했다고 한다.) 오토바이의 공회전이 비명소리를 감출 수 없었던 것처럼, 귀를 막아도 소리는 결코 피할 수 없었다. 그렇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 영화는, 다소 흐릿한 영상과 선명한 음성을 통해 관람의 개념을 넘어서 '홀로코스트'를 체험하게 하는 영화다.

4. 아들의 제대로 된 장례를 치러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울에게 정말 네 아들이 맞냐는 질문이 날아든다. 사울의 아들이 아닐 수도 있다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생지옥 같은 아우슈비츠를 그 모습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놓은 듯, 생생한 현장감에 얼이 빠져있던 나는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지옥 같은 그곳에서 사울이 발견한 것은 아들이라는 존재를 넘어선 희망그 자체였다는 것을.

 

 

사울의 말마따나 사울의 아들로 추정되는 그 소년은, 가스실에서 살아남은 아이였다. 한 존더코만도가 전에도 이런 적이 한 번 있었다고 말했고, 희미하게 붙어있는 아이의 목숨을 늘어난 일거리마냥 귀찮게 여기던 독일군은 아이를 손쉽게 처리하고 자리를 뜬다. 이 수용소를 나가기 전까지,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르는 희망인데. 사울의 아들이자 희망인 소년은 그렇게, 두 번 죽는다. 그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사울은, 그래서 결심했는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이 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랍비를 찾아 제대로 된 장례를 치러주는 일이라고.

 

 

5. 그런 사울의 여정을 담은 이 영화는, 69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고 제 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다. 독특한 화면비와 촬영 방식, 음향 효과에 눈길이 갔던 건 이 영화의 메시지를 보다 선명하게 보여주는데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올해의 데뷔작이라 꼽고 싶은 영화.

 

 

소박한 꿈도, 아우슈비츠라는 이름 안에선 결코 소박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장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사울. 영화의 끝자락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사울의 미소를 보며 깨닫는다. 끝까지 아들(소년)의 장례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한 사람의 모습을 통해, 감독은 누군가의 아들이자 딸이었을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기억은, 우리의 몫이다. 영화가 사울이라는 한 사람에게 집중한 것처럼, 기억은 한 사람을 기억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 사람을 기억하게 만들어,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잊지 못할 잔인한 역사를 기억하게 한다. 그곳에서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관람되었으면 한다. 사울의 뒤를 따라 홀로코스트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는 쉽지 않은 영화지만, 보고 나면 다리에 힘이 풀리고 그저 숙연해지는 영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람할 가치가 충분한 영화다.

      

 

사울의 뒤를 따랐던 당신에게도, 사울의 뒤를 따라보겠다 결심할 당신에게도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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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6-03-30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리뷰 읽고 보니 영화 `사울의 아들`이 보고 싶네요.
사실 쉽게 볼수 있는 영화가 아니라 많이 망설여지기는 하네요.
아... 어쩔까요.... ㅎㅎㅎ

해밀 2016-03-30 15:06   좋아요 0 | URL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도 이야기, 배경도 배경이지만 영화의 연출 자체가 친절하지는 않은 영화라
선뜻 추천해드리긴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천해드리고 싶은 영화예요.
기분 안 좋을때만 피하고 관람하시면 어떠실런지요.^^ 응원합니다!ㅎㅎ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결국 지나가게 된다. 그것이 가장 큰 위안이었다.

- 김이설 <환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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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03. 04. 11시, 부산행.

승차를 앞두고, 역 편의점에서 씨네21을 사들고 오는 나를 보며 친구가 말했다.

웬일로 책을 안 가져왔네 싶더니, 책을 사려고 안 가져온 거냐고.

종이책을 늘 챙겨다니긴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열차 안에서 씨네21 읽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역 편의점에서 씨네21을 사는 것 역시 좋아한다.

이건 출퇴근할 때 매주 사 읽던 버릇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싶은데, 갓 구매한 씨네21을 품에 안은 그 설렘이 좋아서다.

내가 애정하는 배우가 표지에 실렸다면 그 설렘이 두 배. 오늘은 후자다.

'건축학개론' 승맹이로 입문해서 '패션왕' 정재혁이로 제대로 빠졌고, 여전히 진행중인 이제훈앓이.

기대했던 시그널이, 박해영 경위가 잘 풀려서 기분 좋은 요즘.

시그널 본방사수를 못하는 게 너무 아쉬웠던 것도 있고, 이제훈이니까 당연히 사야지 싶었던 이번 호.

인터뷰 중 이 구절을 읽고 또 한 번 반했다.


취향과 휴식 사이


집에서는 스마트폰 대신 이베이를 뒤져 구매한 다이얼식 전화기를 연결해 쓴다.

다이얼식 말고도 버튼식까지 하나, 이렇게 두대나 구비해놓았다.

걸이 CD플레이어를 '특이하게도' 화장실에 설치해놓고 음악을 듣는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안 되는 CD를 찾아서 모으고,

CD플레이어에 디스크를 넣고 빼고 하는 그 과정들이 이제훈에게는 행복한 시간이다.

영화 O.S.T는 그중 가장 큰 목록을 차지하는데, 최근에는 <캐롤>(2015)의 음악이 그 공간을 채우고 있다.

<위플래쉬>(2014)처럼 강한 충격을 준 영화들은 몇번이나 보고 또 보고, 서플먼트까지 놓치지 않고 공부하듯 본다.

지칠 때면 극장에 가서 몸을 파묻고서야 편안함을, 그리고 새로운 자극을 느낀다.

해외 촬영 때는 모두 쉴 때도 시간을 쪼개 갤러리를 찾는다.

홍콩도, 홍콩영화도 워낙 좋아해 홍콩의 옛날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야우마테이의 미도카페에 가서

프렌치토스트와 홍콩식 밀크티를 마시며 영화를 곱씹는다.

한창 신나하며 아날로그적 취향을 말하던 그가 묻는다. "제가 너무 덕후인가요?"

씨네21 1044호 이제훈 인터뷰 중에서. 





이 덕후, 제가 접수하겠습니다.
진짜 미쳤... 캐롤에 위플래쉬라니... 이러니 앓이를 안할래야 안할수가 없다.

인터뷰를 읽으며 벅차오르던 팬심이 폭발했던 순간은 따로있다.


<건축학개론>이 나온 지도 벌써 4년이 지났다.

풋풋한 첫사랑에 이어 발랄한 로맨틱 코미디나 진한 멜로에도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라니. 하... 전적으로 후자요. 진한 멜로 원해요, 원합니다. 영화도 좋고 드라마도 좋으니 차기작은 멜로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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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챙기다말고 또 잉여력이 솟아서 책 가지고 놀기.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이라는 책의 제목을 생각하다가,

그러고보니 내가 가진 책 중에도 '밤'이 들어간 책이 10권은 되겠다 싶었다.

그렇게 모아본 10권의 책들. 대출 중인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는 책까지 합치면 11권.

10권이나 된다니 참 많다 싶으면서도 10권 밖에 안 되는구나 싶었다.

밤을, 새벽을 좋아하긴 해도 책은 어디까지나 책인 건데, 내가 나한테 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흠...-_-a

10권 중 7권이 소설이다. '밤'은 역시, 소설에 제격이다.

내가 책을 가장 많이 읽는 시간대 역시 밤이고, 글을 쓰는 시간대 역시 밤이다.

밤이 들어간 책을 읽은 것도 밤이었으며, 지친 몸을 뒤로하고 시간을 붙들어 이 글을 쓰는 것도 밤이다.

가장 애정하는 제목은, '우선권은 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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