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序

 

나무는 서 있는데 나무의 그림자가 떨고 있었다

예감과 혼란 속에서 그랬다

 

 

 

2012년 겨울

황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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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카페. 책을 읽겠다고 온 것인가, 노트북을 하겠다고 온 것인가.

왼쪽 필통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커피 홀더까지, 와남보하노분민빨.

알록달록하길래 일지를 쓰다말고 사진을 찍었다.

오늘 빌려온 '중쇄를 찍자!' 세 권 색깔이 하나같이 예쁘다.

책의 재미는 말할 것도 없고😚💕 얼른 읽고 백만년만에 일드 챙겨봐야지!


독서마라톤은 7월 한 달 애써서 읽은 덕분에, 이제 겨우 16,414m. 달성률 38.9%를 기록했다.

이 기세를 몰아서 남은 7월도 독서마라톤에 매진하기로 했다. 작년까진 상상도 못했을, 책 읽는 나날의 연속.

이게 다 9위를 기록중인 삼성라이온즈 덕분이다.

나의 삼성은 망하더니, 야구따위 눈길도 주지 말고 책을 읽으라 한다. 오늘도 졌다.

최형우만이 타율 순위의 꼭대기에서 밝게 빛나고 있다. 아아, 도대체가 중간은 없는 기록의 팀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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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이를 완독한 내게는 더도말고 덜도말고 세 구절이 남았는데, 그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태도에 대해 말을 곱씹는 것이 나는 분명히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행복하다, 라고 되뇌면 조금 더 행복해지고 불행하다, 라고 되뇌면 그만큼 더 불행해지곤 했다. 괜찮다, 할 수 있다, 사랑한다, 같은 말에는 분명 큰 힘이 있다. 단순한 말 한마디라도, 그 말을 되뇌며 살면 그만큼 무언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p.15)



아침 일찍부터 너를 놓아두고 외출해야 하는 날. 늦은 와중에도 너에게서 눈을 못 떼다가 아슬아슬한 시간이 되어서야 집을 나선다. 그래서 사랑을 하고 그래서들 가족을 만드는가. 여백이에게서 매일 배운다. 가르침 없이 가르칠 줄 아는 여백이. (p.61)



하루는 작업실의 오빠가 문득 그런 말을 했다.
"사실 세상의 모든 것은 우연인데, 그 우연에 질문을 던지게 되면, 그게 필연이 되는 거래."
오래전에 함성호 시인의 시집에서 읽었다는 짧은 글귀인데, 인상 깊어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 말을 믿는다고 했다. 나 역시도 그렇다. 사실 모든 일은 우연이다. 솔직히 운명이라는 것은 믿지 않지만, 어느 정도의 정해진 인연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편이 훨씬 행복하기 때문이다. 연인을 만나는 것도, 가족으로 태어난 것도, 오래된 친구와 길에서 마주치는 것도 우연한 사건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필연적이게도 우리가 함께구나'라고 믿는 것이다. 새로운 연인과의 시작을 좀더 설레게 하고, 가족의 일부가 되는 고양이와의 만남에 좀더 애정을 담을 수 있는 핑곗거리. 그래서 우리는 재미없고 불분명한 삶의 조각조각을 꿰어 인연의 실을 엮고 있는지도 모른다. 매끄럽고 반짝이는 금줄이 아니더라도, 바닷가의 조개껍데기를 모아 실로 묶은 목걸이를 선물 받는다면, 한순간만큼은 그 목걸이가 보석인 것처럼 아주 아름답게 보일 거라고 상상한다.
나의 고양이 여백이도 사실은 그냥 졸리고 추운데 털이 있기에 내 모자 속으로 들어왔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신기하다고 호들갑을 떨며 나와 여백이의 인연을 예쁘게 묶었다. 그리고 이렇게 여백이와의 특별한 첫 만남을 자랑하곤 한다.
우연의 무게는 다 똑같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에 '바람'을 담아 이유를 덧붙인다면 그것이 필연이 되고, 소중해지며, 강하고 찬란한 '인연'이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p.83)

 

 

 

특히 마지막 글은 너무 좋아서, 한 번 필사하고 세 번 소리내어 읽었다.

이 책 '여백이'를 접한 것이 '우연'이었다면, 책을 읽어보자 대출해 온 것은 '질문'을 던진 셈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기록함으로써 '필연'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3년 전에 신간 도서 목록에서 보고 그냥 지나쳤던, 작가님의 에세이 '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를

독서 목록에 넣으며 다시 질문을 던진다.

악어 인형과 함께 큰, 가르침 없이 가르칠 줄 아는 고양이 여백이와 작가님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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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간 정갈한 글씨만 보여줘서 그렇지, 강연을 들을때 내 글씨는 흘림체의 끝이다.

김훈-김연수 작가님 북토크때 두 분을 번갈아 봄과 동시에 진행하는 문태준 작가님도 보느라

눈은 무대에 고정하고 날려 쓴, 나조차도 이게 뭔 소리인가 싶은 메모다.

날려쓰기 좋은 트라디오 펜이겠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아니게 썼다. 하하.

2. 지난 주 비밀독서단 작가특집 은희경 작가님 편을 재밌게 보고,

예고를 보는데... 알고는 있었지만 예고 영상 속 김연수 작가님이 너무나도 반가웠다.

그 기세 그대로 '소설가의 일'을 다시 읽고 있다. 책에 직접 메모했던지라

 책을 읽을 때마다 본의 아니게 메모를 다시 읽는다.

음성녹음도 하고, 사진도 찍는 와중에 쓴 메모라 단편적이지만, 휘갈긴 글씨 덕분에 현장감이 느껴져서 재밌다.

3. 정갈한 글씨를 보여줄 때마다, 멋진 글씨가 아니어서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메모를 공개하자니 정갈한 글씨는 적어도 비비크림을 바른 얼굴을 보여준 셈이었구나 싶다.

이건 정말 민낯이 아닌가...!


4. 하루 하루 새책을 읽어도 모자랄 판에, 이 책을 지난 주 내내 붙들고 다녔다.

앞머리를 자르겠다고 들어온 미용실에서 30분을 기다리고 있는 지금도 이 책은 내 곁에 있다.

오늘은 이 구절이 마음에 든다.


5. 공책과 연필만 있다면, 소설가는 어디에서든 글을 쓸 수 있다.

작업실 책상에 앉아서 쓸 수도 있고 동네 카페의 창가 자리나 방바닥에 엎드려서 쓸 수도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일산에서 서울로 나가는 지하철에 앉아서 이런저런 글들을 자주 쓴다.

거기서는 어쩐지 좋은 생각들이 잘 떠오른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라면 도박장 옆에서 글을 쓰는 게 제일 좋다고 말하겠고,

포크너라면 사창가가 최고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요는 소설이란 어디서나 쓸 수 있다는 것. (p 241)


6. 어쨌든 요는 좋은 책은 읽어도 읽어도 좋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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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관한 한, 저는 쇼핑 중독자입니다. 책을 향한 기이한 허기와 갈증으로 허겁지겁 이제껏 1만 권이 넘는 책을 닥치는 대로 사들였지만 여전히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합니다. 다른 물건들을 살 때는 우유부단해서 답답하기 이를 데 없어도, 유독 책만큼은 덥석덥석 챙긴 뒤 과감하게 카드를 긁지요 (어제만 해도 하루에 열아홉 권의 책을 샀습니다). 물론 결제일인 매달 27일이 되면 긴 한숨을 쉬며 후회합니다. 하지만 그건 그날 하루뿐. 저는 도무지 교훈을 얻지 못합니다.

 

책에 관한 한, 저는 허영투성이입니다. 이미 구입한 책들을 미처 다 읽지 못했는데도 계속 사고 있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어나가는 속도보다 사들이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고 할까요(심지어 어떤 책은 결국 읽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삽니다). 서재를 둘러본 어떤 사람들은 놀라면서 묻습니다. “이 책들을 다 읽으신 거예요?” 그럴 때마다 저는 (이젠 제법 뻔뻔하게) 대답합니다. “그럴 리가 있겠어요. 반도 못 읽었죠.” 저는 도저히 만족할 줄 모릅니다.

 

책에 관한 한, 저는 고집불통입니다. 좀더 체계적이고 능률적인 독서법이 있을 텐데도, 나만의 책읽기 방식을 고수합니다. 산만한 독자인 저는 한꺼번에 10여 권의 책을 동시에 읽어나갑니다.(게다가 그 책들은 대부분 분야가 다릅니다). 완독에 대한 의지도 없어서 흥미를 잃으면 서슴없이 중간에 그만두지요. 책을 구입할 때도 남들의 추천 리스트나 베스트셀러 순위 같은 것에는 거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1만 권이 넘는 책을 사면서 오랜 시행착오를 겪는 동안, ‘물건을 고르는 나만의 감식안이 생겼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책을 서재에 꽂아둘 때도 나만의 방법을 고수합니다(그러다 내 서재에서 특정 책을 못 찾아 쩔쩔매면서 좌절하기도 합니다). 저는 도대체 요령부득입니다.

 

하지만 저는 변명합니다. 이게 제가 책을 사랑하는 방식입니다. 스피노자는 모든 한정은 부정이다라고 했지요. 사랑하기 위한 조건을 줄줄이 내걸고 나서야 사랑할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생활에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책을 정말 사랑한다면 문자의 형태로 책에 박혀 있는 지식이나 서사뿐만이 아니라, 책에 관련된 모든 것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저는 믿습니다. 책에 담긴 이야기, 책에 서린 정신, 책에서 나는 냄새, 책을 어루만질 때의 감촉, 책을 파는 공간, 책을 읽는 시간 등이 모두 모이고 모여 책에 대한 사랑을 온전히 이루어낸다는 것이지요.

 

저는 목적지향적인 독서를 하지 않습니다. 바꿔 말하자면, 특정한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 어떤 책을 선택해서 파고들지는 않습니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제게 책읽기는 그저 습관입니다. 과거에 그래왔고 현재에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아마 미래에도 저는 관성적으로 책을 읽겠지요. 그렇게 사랑에 습관이 더해질 때, 마침내 책은 제게 말을 걸어옵니다. 책읽기는 제게 오락이고 영감이면서 시간을 배우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제게 좋은 책이란 너무나 흥미로워 한번 손에 들면 단숨에 끝까지 독파해버릴 수 있는 책이 아닙니다. 글자들을 읽어 내려가는 일보다 문단과 문단, 문장과 문장, 단어와 단어 사이에서 여백을 발견하는 일이 어쩌면 더 중요한 일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독서라는 행위는 읽고 있는 순간들의 총합인 셈입니다. 독서는 바깥세상의 흐름에서 벗어나 책 속에 구현된 세계 속으로 뛰어들 때 시작되지만, 책 속의 세계에서 언뜻 일렁이는 어떤 그림자의 의미를 다시금 이 세상에 되비쳐 볼 때 비로소 완성되기도 합니다. 책읽기란 결국 철조망이 촘촘하게 쳐진 뻘밭 같은 세월 속을 헤쳐 나가는 우리의 서툰 포복술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 이동진, 밤은 책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


종종 꺼내 읽는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글은 사실 프롤로그다. 글이 어쩜 이리 아기자기한지,

내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것도 있지만 책에 대한 동진님의 욕심과 허영과 고집이 그대로 묻어나서 참 좋다. 

 

 

책에 관련된 모든 것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 그는, 오락이고 영감이면서 시간을 배우는 방법 앞에서 내일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럴 리가 있겠어요. 반도 못 읽었죠."


p.s. 새벽에, 이 글을 필사하다가 비가 내리는 소리에 잠이 들었다. 속상할 땐 필사가 제격이며, 필사하는 여름밤에는 밤비가 제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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